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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파정치, 정치적 폭언 '도' 넘었다전문성이나 정책으로 승부하지 않는 막말로 얼룩진 정치
마연옥 기자  |  k-toda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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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3.03  14: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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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의 잇따른 막말로 인해 정치인의 자질문제가 입방아에 오르고 있다. 지난달 24일 새정치민주연합 정청래 최고위원은 “참 얼굴이 두껍다”며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를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그는 ‘당 대표’를 자처하며 박근혜 대통령과 정부는 물론 당 지도부를 향해서도 연일 초강경 발언을 쏟아내 인신공격성 비난이라는 논란이 일었다.

정 최고위원은 과거에도 여러 차례 막말논란을 부른 바 있다. 2013년 11월 박 대ㅐ통령을 굳이 ‘박근혜 씨’라고 불렀고 그에 앞서 7월에는 바뀐 애(박근혜의 패러디)는 방 빼“라는 막말을 올린 것이다.

이러한 정치적 폭언이 도를 넘었다는 지적이다. 정치인의 막말은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킨다는 점에서 위험하다. 막말을 하는 사람도 국회의원에서 판사, 검사, 인터넷 팝캐스트 진행자, 익명의 네티즌에 이르기까지 점차 확산되어 가고 있는 추세다. 소수의 엘리트뿐만 아니라 누구나 막말을 전달할 수 있는 정치적 폭언의 ‘대중화’가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한 여당 의원은 단식농성을 하는 세월호 유가족을 향해 “국회에서 저렇게 있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어디 뭐 노숙자들 있는 그런…”이라고 말했다. 장하나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진상규명에도 나서지 않는 대통령, 당신은 국가의 원수”라고 표현했다.

왜 이들은 막말을 하는 걸까? 과연 누구를 위한 막말일까? 정치권은 막말 인사의 출세 통로가 된 지 이미 오래다. ‘가카의 빅엿’ 표현으로 이명박 대통령을 조롱해 논란이 됐던 서기호 전 서울북부지방법원 판사는 금배지를 달고 여의도에 입성하기도 했다.

정치인들의 교육 수준과 사회적 경력은 보통사람들보다 높다. 대부분의 유권자도 정치인들을 지도층으로 간주하고 높은 도덕 수준을 요구한다. 그런데 왜 정치인들은 보통사람도 사용하지 않는 폭언과 막말을 일삼는 것일까?

신율 명지대 교수는 한 언론 칼럼에서 막말 정치인의 특징은 ‘튀어야 산다’는 생각으로 ‘오버를 잘한다’고 지적했다. 자신의 존재를 과시하려는 욕구에서 막말을 하는 경향이 있다고 본다. 막말 정치인이 언론에 대서특필되면서 영웅주의 심리가 충족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정치인의 자질론이 떠오르고 있다. 정치인이 평균 이하의 자질을 지녔다고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자질이 부족한 국회의원은 국정 운영을 고민하기보다 ‘언론플레이’를 통해 이름을 알리는 일이 정치의 임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정치권에서는 웬만한 설화(舌禍)는 개의치 않는 ‘그룹 싱크(group think)’가 있다.

비슷한 의견을 가진 사람끼리만 소통한 결과, 그 의견이 전부인 것처럼 판단한다. 심지어 “자신의 부고 빼면 언론에 나올수록 좋다”는 말도 있을 정도다. 요새는 “무플보다는 악플이 낫다”는 말이 있다.

많은 정치인은 사회문제의 대안을 제시하기보다 돌출발언을 하거나 대선후보 줄서기에 몰두한다. 그러나 자질론은 왜 멀쩡한 사람도 국회의원이 되면 폭언을 일삼는지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다.

정치인은 소신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소속 집단에 호소하는 수단으로 전략적으로 막말을 선택한다. 막말을 한 사람들은 소속 집단에서 ‘할 말을 했다’, ‘용기 잇다’는 식으로 칭찬을 받는다. 심지어는 ‘스타 정치인’이 되기도 한다.

막말정치는 지지층을 결집하는 데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정치인은 막말을 통해 패거리 정치의 정체성과 소속감을 강화하는 것이다. 같은 편의 속을 후련하게 해주는 효과도 있다. 그러나 막말정치는 국가와 같은 큰 집단이 아니라 자신이 속한 작은 집단만 우선시 하는 보족정치 패거리 정치의 단면일 뿐이다.

여야가 19대 국회 들어 ‘막말 논란’에 휩싸인 것은 이례적인 일이 아니다. 지난해 7월에는 홍익표 민주당 원내대변인이 박근혜 대통령을 겨냥,‘귀태(鬼胎)’발언을 해 국회가 잠시 파행을 겪기도 했다. 당시 홍 원내대변인은 새누리당의 강력한 사퇴 요구로 결국 원내대변인 직에서 물러났다. 최 원내대표는 이 과정에서 “민주당은 정치권의 불신을 조장하고 국회의 후진성을 보여주는 막말, 저주성 폭언을 이제는 중단하고 국민 앞에 품격 있는 국회의 모습을 보여주시기 바란다”며 “민주당 지도부가 차제에 이런 막말정치 중단선언과 함께 대선결과 승복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밝혀달라”고 주장한 바 있다.

   
 
지역과 당리당략만 생각하는 이기주의, 시대정신은 없다

“여야를 떠나 대부분의 의원에게 정치를 하는 가치와 방향성이 없다.” 새누리당의 한 초선 의원은 지난해 12월에 이같이 잘라 말했다. 그는 “지역구 출신이라고 하더라도 지역과 국가의 발전을 어떻게 함께 이룰 것인가를 고민해야 하는데, 오로지 지역만 생각한다”며 “국가의 발전, 한국 사회가 가야 할 방향성 등에 대한 고민과 가치관이 없다”고 말했다.

국가와 국익보다는 자신의 지역구와 진영(陣營)의 논리에 빠져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는 현실, 여야 의원들이 꼽은 대한민국 정치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점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의 한 3선 의원은 “자신과 의견이 다른 진영에 대해 적개심, 증오심을 갖고 적으로 규정하는 문화가 여전히 남아 있다”며 “상대방을 설득시키려는 문화보다는 자기 진영의 극단적인 지지층을 의식한 선명성 경쟁이 진영 논리를 더 강화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여야의 견해차는 관점이 다른 것이지 정의와 불의의 문제가 아니다”라며 “합리적인 토론과 정치적인 조율로 문제를 풀어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정당의 존재 이유는 정권 창출이다. 하지만 각 정당들이 보여주는 무한정쟁의 이면에는 ‘전부 아니면 없다’는 극단적 사고방식이 도사리고 있다. 여당의 한 전직 의원은 “지금의 정치는 대권 승리, 총선 승리라는 권력 쟁취에만 몰입돼 있다”며 “오로지 권력 쟁취에만 몰두하는 치킨게임을 벌이고 있기 때문에 불복 논란과 진영 논리가 기승을 부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시대정신, 사회공동체의 개선 등에는 관심이 없는 ‘무지(無知)의 정치’가 벌어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우리정치사의 고질병 ‘계파’ 선거 대마다 내홍 겪어

진영의 정치 뒷면에는 우리 정치의 고질병인 ‘계파 정치’가 자리 잡고 있다.

“의원총회 등을 보면 저 의원이 우리 당 의원이 맞나 싶다. 당을 위해 뭉치고 의견을 모은다는 생각은 아예 처음부터 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계파를 위해 말하고 움직이는 것 같다.”

새정치연합의 한 재선 의원은 계파 정치에 대해 이같이 토로했다. 친이(친이명박)계, 친박(친박근혜)계, 친노(친노무현)계, 486계…. 국회에서는 끊임없이 계파가 생겨나고 계파 간의 반목과 분열 강도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다.

새누리당에서는 2008년과 2012년 총선에서 친이계와 친박계가 번갈아가며 상대방을 겨냥한 이른바 ‘공천 대학살’을 벌였다. 현 여권은 연이어 정권 창출에 성공했지만 각 정권 주도세력의 감정은 더 나빠졌다. 그래서 “친이계와 친박계는 불구대천의 원수와 가깝다”는 이야기도 공공연하게 나온다.

새정치연합에서도 주요 선거 때마다 벌어지는 계파 간 갈등이 심각한 수준이다. 7·30 재·보궐선거 당시 서울 동작을 공천권을 놓고 빚어진 파열음은 계파 갈등의 일단에 불과했다.

야당의 한 초선 의원은 “특정 계파에 찍히거나, 당론을 배제했다는 이유로 다음번 공천을 못 받게 되는 명분을 주기 싫으니 문제 제기를 하지 않는 것이고, 나 역시 부끄럽지만 마찬가지”라며 “오픈 프라이머리 등 철저히 상향식 공천이 되면 현재 계파 중심의 국회 분위기가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계파 정치도 인물 중심에서 노선 중심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지적도 있었다. 여당의 한 재선 의원은 “친박, 비박의 구도를 깨고 노선 중심의 정파로 바뀌어야 정당이 유기적인 조직체가 될 수 있다”며 “그러나 중진은 물론이고 초선 의원들도 이 같은 계파 정치 청산에 무관심한 것이 현실”이라고 토로했다. 그는 “자리 하나가 나면 그 자리에 가려고 (계파에) 줄을 서는 의원이 너무 많다”고 덧붙였다.

YS의 ‘상도동계’와 김대중(DJ) ‘동교동계’ 치열한 대립

계파라는 말을 들을 때 조선시대 사색당파가 떠오른다. 그리고 지금까지 우리 정당사에서 귾임없이 명멸했던 다양한 형태의 정당 파벌을 들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조선시대 사색당쟁은 우리나라 계파정치의 대표사례로 파벌이나 계보라는 말을 부정적으로 인식하게 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정치계파는 유력 정치인을 중심으로 존재하는 집단으로, 구성원은 리더의 정치적 영향력에 의해 충원된다. 계파 구성원은 국회나 당내 투쟁에서 리더를 적극 지지하고, 리더는 추종자에게 당직과 공천을 제공한다. 이 같은 계파 정치는 합리성이 강조되는 미국과 유럽보다 인간적 관계를 중시하는 한국, 일본 정치에서 강하게 나타난다.

우리나라 정치계파는 일제강점기 중국이나 미국 등 해외에서 독립운동에 참여했던 단체나 인물 사이에서도 나타났다. 1920년 상하이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선 27개 정당과 사회단체가 난립해 최악의 파벌다툼이 벌어지기도 했다. 해방과 함께 우리 손으로 정치를 담당하게 된 이후에도 다양한 정치파벌이 때로는 인물을 중심으로, 때로는 이념을 중심으로 합종연횡과 이합집산을 거듭하며 해방 정국이 정치계파에 의해 좌우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우리나라 최초 야당이라고 할 수 있는 한국민주당은 사실상 여러 지연과 학연을 배경으로 한 계파 정치 연합체로 출발했다. 이후 민주국민당(민국당), 민주당, 민중당, 신민당으로 이어지면서 야당 계파의 갈등과 대립은 계속됐다.

우리나라의 계파정치하면 김영삼(YS) 전 대통령의 ‘상도동계’와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동교동계’를 언급하지 않고는 설명할 수 없다. 1970년대 신민당에서는 중도통합론의 이철승과 선명야당을 내세운 김영삼 사이에서 당권과 공천권을 둘러싼 대립 및 갈등이 치열했다. YS와 DJ 계파는 8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대립 양상을 보이기 시작한다. 당초 YS는 민주당 구파에서, DJ는 신파에서 출발했으나 그 후 각 자택 소재지를 다라 상도동계, 동교동계로 불린다.

양 계파는 전두환 정권의 독재에 맞서 ‘민주화추진협의회(민추협)’를 구성하는데 1985년 12대 총선에서 민추협은 이철승, 김재광, 이기택 등 ‘비민추협’인사들과 신한민주당을 창당한다. 관제야당인 민주한국당을 붕괴시킨 이 총선에서 민추협과 비민추협은 계파 안배 원칙에 따라 철저하게 공천을 안배했다.

YS와 DJ는 독재정권에 맞설 때는 손을 맞잡았지만 대권을 눈앞에 둔 결정적 순간에는 늘 대립했다. 1980년 ‘민주화의 봄’ 정국에서 그랬던 것처럼, 87년 6월 항쟁 직후의 13대 대선 때도 마찬가지였다. 통일민주당의 양 계보는 대선후보로 YS와 DJ 중 누구로 할 것인지를 놓고 갈등하다 분당(分黨) 했다. 통일민주당의 양 계보는 대선후보로 ‘상도동계’와 '동교동계‘는 민주세력의 단일화 요구를 끝내 외면했다.

결국 YS와 DJ는 ‘적과의 동침’을 통해 대권을 잡았다. YS는 정적이던 박정희의 후예 김종필(JP)과 전두환의 후계자인 노태우와의 ‘3당 합당’을 통해 대통령이 됐고, DJ역시 ‘권력 나눠먹기’라는 비난을 감수하면서 ‘DJP연합’으로 집권했다.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적이 되고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가 된 셈이다.

하지만 이러한 계파정치를 하면서 우리나라를 짊어질 정치인의 자질을 키우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반대를 통해 독재정권을 무너뜨리고 민주화는 실현했지만 정권을 잡은 후 그 폐해가 속속히 드러났다. 정작 국가와 국민을 위해서 정책을 세우고 드러나는 사회현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자질이 부족한 함량미달의 정치인들을 양산했기 때문이다.

정치의 정도(政道)에 대한 성찰부족과 그로인한 통찰력 부재는 정책부실이나 부도덕하고 미성숙한 정치인을 낳은 셈이다. 참다운 정치인이 되려면 학벌보다도 많은 경험과 소양, 그리고 폭넓은 지식과 지혜가 동반돼야 한다. 그러나 많은 정치인은 계파에 줄서기에 바빴고 이합집산을 통해 권력을 향한 이기심만 부추겨왔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한마디로 정치인으로서 소양을 닦고 폭넓은 공부를 할 시간을 잃어버린 것이다.

친노의 탄생 그리고 ‘20-40-60’의 법칙

노무현 대통령이 집권하면서 이른바 친노가 만들어졌다. 그러나 당시의 친노는 계파적 패권을 드러냈다기보다는 강경함과 ‘싸가지 없음’으로 더 각인됐다. 2007년 대선에서 패배하고 노 전 대통령의 최측근이던 안희정 현 충남도지사가 ‘친노는 폐족(廢族)’이라고 밝히면서 친노는 정치 무대 밖으로 사라진 듯했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이 2009년 서거한 뒤 친노의 응집력이 커지면서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왔다. 그리고 2011년 손학규 전 새정치연합 상임고문이 대표로 있던 민주당과 친노‧시민사회 중심의 ‘혁신과 통합’이 통합하면서 야당을 장악하기 시작했다.

현재 새정치연합의 비노 의원들이 주장하는 친노의 폐해는 2012년 4월 총선 공천의 실패, 그해 6월 전당대회에서의 ‘이해찬-박지원 역할분담론’, 그리고 대선 선거운동 과정에서 비노 의원들을 소외시킨 것 등이 주를 이룬다.

새정치연합에서 친노의 수는 대략 ‘20-40-60’의 법칙을 따른다고 본다. 문 대표와 끝까지 같이 갈 의원이 20명, 그렇지 않지만 문 대표와 듯을 같이할 수 있는 사람까지 범위를 넓히면 40명, 더 넓은 의미에서 문 대표 행보를 지지하는 의원까지 포함하면 60명이라는 것이다. 당내 최대 계파임에는 틀림없다.

여권에서 나타나는 계파정치의 양상은 야권의 그것과 같은 듯 다른 모양이다. 정치적 계파라고 하면 보스를 중심으로 한 종적인 서열구도 외에 횡적인 연대가 동시에 있어야 하지만 여권의 모습은 그렇지 않다는 평가가 많다.

한나라당은 1997, 2002년 대선 후보였고 대통령 당선이 유력해 보였던 이회창 총재를 중심으로 움직였다. 두 번의 실패로 장악력을 상실한 자리를 두고는 자연스럽게 이명박(MB) 의원을 지지하는 세력과 박근혜 의원을 지지하는 세력 간에 다툼이 벌어졌다.

   
 
강경파 득세하자 ‘왜 강경 발언으로 존재감을 드러내려 하나’

 계파 정치의 심화로 유발되는 또 다른 문제점은 강경파의 득세다.

야당의 한 초선 의원은 “전문성이나 정책으로 존재감을 보이려 하지 않고 무조건 목소리를 크게 해서 존재감을 보이려는 의원들이 있다”며 “그들의 목적은 그런 존재감을 계파에 보여줘 다시 공천을 받으려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국회의원의 본질적인 역할에 대한 인식과 준비 부족 역시 강경파 득세의 또 다른 원인이라는 진단도 있었다. 야당의 한 비례대표 의원은 “국회 밖에서는 갈등을 부추기거나 목소리를 크게 내도 된다고 생각한다”며 “그러나 국회의원은 그래서는 안 된다. 갈등을 조정하고 의견을 수렴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는 점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야당의 한 재선 의원도 “국회의원에게 중요한 것은 의원들, 국민들, 지역 유권자들과 소통하는 능력”이라며 “일부 의원은 소통 능력이 부족하고, 그렇다고 소통 능력을 키우려는 노력도 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강경파에 대해 ‘정치를 해서는 안 될 사람들’이라는 극단적인 비판도 제기됐다. 여당의 한 중진 의원은 “정치를 해서는 안 될 사람들은 상대를 인정하지 않고 자기주장만 하는 사람들이다”라며 “여야를 떠나 목소리를 높이고, 극단으로 가는 경향이 있는 사람들이 정치를 해서는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여기에 선거 때만 되면 잊지 않고 나오는 ‘폭로 정치’는 진영 논리와 강경파들의 목소리가 합쳐진 결과물이다. 2012년 대선 당시에도 여야는 상대 후보자들에 대한 주식매매 부당이익 의혹, 고가 전세 논란 등 온갖 의혹 폭로를 주고받았다.

이에 대해 야당의 한 재선 의원은 “상대방을 무조건 흔들어야 선거에서 이길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에 필요 이상으로 목소리를 높이고, 상대방 비난에 몰입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무책임한 폭로에는 반드시 대가가 따른다는 점을 각인시키는 것이 중요하다”면서도 “이와 더불어 ‘선거 승리=권력 독점’이라는 지금의 정치구조를 바꾸는 것도 강경파 득세와 폭로 정치를 막는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입법부의 부끄러운 자화상 ‘법 위에 국회의원’

“국회 본회의장에서 국회의원이라는 사람들이 버젓이 담배를 물고 있다. 금연구역인데 그러고 있는 거다. 법을 만드는 국회의원부터 이렇게 법을 무시하고 있으니 법이 제대로 지켜지겠나….”

국회 본회의를 마치고 나온 한 야당 초선 의원은 이같이 탄식했다. 법을 만드는 역할을 하면서 정작 그 법을 무시하는 의원들의 모습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지방자치단체장 출신의 한 야당 초선 의원은 “국회에 와서 가장 황당했던 점이 의원들이 법을 안 지킨다는 것”이라며 “대한민국에서 법이 무서운 줄 모르는 집단을 꼽으라면 바로 국회일 것”이라고 꼬집었다. 입법부의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그는 “지자체에서는 법과 규정을 어기면 곧바로 감사와 징계가 따르기 때문에 일을 할 때 관련법과 규정을 하나하나 꼼꼼하게 찾아가며 한다”며 “그런데 막상 법을 만든다는 의원들이 정기국회 일정, 예산안 처리 일정을 너무나 쉽게 무시한다”고 비판했다.

새누리당의 한 초선 의원 역시 “‘법을 만들면 법을 지켜야 한다’는 가장 중요한 가치를 국회에서는 우습게 생각한다”며 “여야 모두 혁신을 외치고 있는데 ‘합의를 파기해도 괜찮다’ ‘국회 일정을 무시해도 괜찮다’ 등 국회에 만연한 집단적 면피 정신을 바로잡는 것이 바로 혁신이다”라고 지적했다.

민주라는 이름으로 선동하는 ‘천민민주주의’에 희망은 없다

법을 어기면서 사람들을 선동하는 사람을 ‘천민민주주의자’로 부를 수 있다. 이들의 선동에 놀아난 민주주의가 ‘천민민주주의’다. 자신의 판단 없이 이러한 사람들의 선동선전에 빨려들어 그들을 추종하는 어리석은 사람들에 의한 민주주의가 천민민주주의다. 지금은 신분상의 귀천이 없는 세상에서 ‘천민민주주의’를 거론하는 것은 적합하지 않은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 ‘천민’은 신분상 천한 사람을 의미하고, 만민평등 사상을 받아들이고 있는 오늘날 ‘귀족’과 대척점에 있는 ‘천민’은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민주주의’라는 말을 왜곡하고,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법의 지배’에 도전하거나 직접민주주의를 앞세워 선전선동을 하면서 여론을 호도하고 있다. 이러한 중우정치나 포퓰리즘을 우리는 어떻게 얘기해야 할까.

민주주의가 가지고 있는 위험성을 이미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같은 고대 철학자들은 간파하고 있었다. 그들은 이것을 민주주의가 안고 있는 본질적 속성으로 이해하고, 민주주의를 좋지 않은 정치 체제라고 생각했다.

플라톤은 민주주의 자체를 부정적으로 바라봤다. 그는 ‘가장 좋은 자’ 곧 ‘철학자’가 지배하는 정부를 ‘가장 좋은 정부’ 곧 이상국가로 생각했다. ‘가장 좋은 정부’가 타락하면 명예를 사랑하는 자의 정부인 티모크라시(timocracy)가 된다. 티모크라시는 지도자들의 정신에 패기가 과도하게 넘쳐 발생하는 정부다. 과도한 기백을 가진 사람은 이상적인 지배자가 아니라 군인이 되어야 한다. 플라톤은 스파르타 군사 정권을 염두에 두고 이 말을 사용했다.

티모크라시가 타락하면 과두제로 전락한다. 과두제란 부자들 곧 소수에 의한 통치이다. 그들의 욕망은 ‘돈에 대한 욕망’이다. ‘돈에 대한 욕망’은 ‘지혜 도는 명예’를 사랑하는 정신보다 열등하다. 티모크라시는 다시 모든 사람들에 의해 지배되는 정치체제 곧 ‘모든 사람에게 욕망의 봇물을 터주는 정권’ 곧 민주주의로 쇠퇴한다.

민주주의는 플라톤이 경험한 아테네 도시국가를 경멸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가 경험한 민주주의는 분출하는 욕구 가운데 가장 저급한 욕구에 의해 지배되는 정치체제였다. 이러한 민주주의가 타락의 마지막 단계 곧 ‘지배자가 최악의 저질적인 욕구인 성욕과 술맛에 탐닉하는 욕망의 노예’가 되어 신민을 착취하는 폭군제로 전락한다.

플라톤과 달리 아리스토텔레스는 민주주의 자체를 부정적으로만 평가하지는 않았다. 다만 극단적인 민주주의에 반대했다. 극단적인 민주주의는 법과 질서를 존중하지 않는다. 따라서 헌법이 올바르게 유지될 수 없다.

극단적인 민주 정치가 진행되면 공공 업무에 자격이 있는 시민만이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참여하여 절대적 평등과 자유를 외치게 된다. 그들은 ‘자유와 평등’을 ‘그들이 좋아하는 것을 마음대로 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그 결과 모든 사람이 각기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마음대로 하여 국가에는 규율과 절제가 없고 탁월한 능력자에 대한 일반인의 존경심도 사라져버린다. 이렇게 되면 아첨과 선동이 난무하는 ‘폭민 지배’로 기울어지고, 감정으로 들뜬 대중이 정치를 완전히 장악한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극단적인 민주주의가 ‘천민민주주의’의 한 현상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민주주의’를 자신의 주장을 정당화하기 위한 명분으로 사용하는 사람들을 ‘천민민주주의자’로 부를 수 있다. 이들은 자신이 정당화하려는 사태는 민주주의와 무관하거나, 민주주의의 원칙에 어긋남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일반인을 오도하고 선동하는 것이다.

마연옥 기자  k-toda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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