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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생실습에서 만난 아버지의 삶
글 정연희  |  k-toda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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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3.03  13:3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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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가슴에 묻혀있는 아픔을 느끼고

그동안 아버지의 권위에 살짝 불만이었던

마음이 부끄럽고 죄송스럽기만 했다.

   
 
"선생님, 우리 학교에 교생 선생님이 오셨는데 너무 멋있어요."

승현이가 가방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그래? 뭐가 그렇게 멋있어?"

"학생들에게 선물도 주시고 잘 생겼어요."

승현이 말에 옆에 있던 아이들도 한마디씩 거들었다. 문득 젊은 시절, 모교에서 교생실습을 하던 추억이 떠올랐다. 추억은 이래서 아름다운 것인가 보다 생각하며 웃음을 흘렸다.

모교인 고등학교에 교생실습을 처음 나간 날, 교정에 서자 고등학교 3년 동안 아버지와 같은 학교에서 생활하면서 친구들에게 잘난 척 한다는 말을 듣지 않으려고 무던히 애를 썼던 기억이 났다. 적극적이었던 성격이 소심해지고 마음껏 자유롭지도 못했던 고등학교 생활이었기에 부담도 되었고 약간의 두려움도 있었다.

도착해서 어색하고 부끄러워 교무실 문을 살며시 열었다. 고3 때 담임이셨던 선생님께서 교무주임으로 계셔서 반갑게 맞아 주셨다. 2학년 반을 맡고 계시는 선생님께 안내를 해주시고, 반 담임은 학교 다닐 때부터 잘 알고 있던 박 선생님 반으로 정해 주셨다. 아마도 박 선생님께서 미리 말씀을 해 두셨던 것 같았다. 덕분에 즐겁고 편안하게 한 달을 보내고 백점이라는 대단한 점수를 가지고 학교로 돌아왔다.  

교수님들의 칭찬과 친구들의 부러움을 받으며 우쭐했던 그 시절의 행복감에 잠시 젖어 보았다. 지금 이 순간 아이들과 만나고 수업하면서 재미있었던 일보다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더 생각나는 건 왜일까? 

교생실습 나온 딸이 기특하셨는지 아버지께서 오토바이로 학교까지 데려다 주시고 출근을 하셨다. 문제는 아침마다 아버지께 옷을 점검 받는 것이었다. 어느 날 학생답게 편안하게 입고 나오는데 가만히 보시더니 장롱을 여시고 고모가 입던 정장을 꺼내 주시며 갈아입으라고 하셨다. 너무나 정형적이고 나이 들어 보이는 옷이기에 싫은 내색을 하자 근엄한 표정으로 쳐다보셨다. 어쩔 수 없이 그 옷을 입고 학교에 갔다. 박 선생님께서 웃으시며 핀잔을 주셨다.

 "너 솔직히 얘기 해봐. 이 옷 아버지가 입으라고 했지?"

 "네......"

 "요즘 누가 이런 옷을 입냐? 그렇다고 이렇게 정장을 입고 오면 어떻게?"

박 선생님은 아버지와 같이 근무를 하셨기에 황당해 하시면서도 이해를 해주셨지만 다른 선생님들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쳐다보셨다. 그 때의 기분을 뭐라 표현할까? 쥐구멍이 있으면 숨고 싶은 간절한 심정이었다. 아침 내내 우울한 기분으로 있다가 복도에서 교장선생님을 만나서 인사를 드렸더니

"정 교생, 옷이 참 마음에 드네. 교사는 이런 복장이어야 하는 거야."

하고 말씀하시자 옆에 계시던 선생님들이 웃지도 못하고 고개를 돌리는 모습을 보며 그 순간 나도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교무실로 들어가셔서 그 많은 선생님들 앞에서 말씀하셨다.

 "정 교생의 복장이 교사의 가장 이상적인 복장이니 앞으로 이런 옷을 입도록 하세요."

그날 저녁 아버지께서 학교에서 있었던 얘기를 물어보셔서 교장선생님의 말씀을 전해드리자 환하게 웃으셨다.

“교사가 티셔츠나 입고 수업을 하면 절대 안 되는 거다. 교사는 교사답게 늘 정장을 입고 학생들 앞에 서야 하는 거다.”

하시며 아버지의 선택이 탁월하셨음을 강조하셨다. 그 순간 나는 나를 평생 세련된 옷을 못 입는 사람으로 가슴 깊이 낙인을 찍었다.

고등학교 다닐 때 얼굴이 하얗고 잘 생긴 젊은 선생님이 계셨다. 그 선생님께서 운동장에 계시면 학생들이 우르르 창문으로 몰려가서 내려다보곤 했다. 그렇게 인기 많던 선생님께서 군복무를 마치고 부임하셔서 교생실습을 나간 모교에 계셨다. 그 선생님을 통해 아버지의 삶을 처음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어느 날 전교 조회가 있었는데 선생님께서 옆으로 오시더니 소곤소곤 말씀을 하셨다.

 "지금 이 자리에 서 있는 기분이 어때?"

 "부끄럽고 민망합니다."

선생님과 잠깐이었지만 즐겁게 얘기를 하며 교무실로 들어왔다. 교무실에서 은사님 한 분이 조용히 부르시더니

 "너 선생님과 표나게 얘기하지마라. 학생들한테 미움 받는다."

하시며 의미 있는 웃음을 보이셨다. 그 순간 학생시절에 그 선생님을 선망의 눈빛으로 보던 친구들이 떠올랐다. 여전히 선생님은 학생들로부터 사랑을 듬뿍 받고 계셨다. 학생들로부터 질투의 시선을 받았지만 가끔씩 선생님과 대화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교생 마지막 날 선생님께서 내 자리로 오셔서 잘 가라는 말씀을 하시던 중에

"너는 발전을 하고 있는데, 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은 자리에 있구나."

하셨다. 그 젊은 선생님은 시골의 작은 학교에서 늘 똑같은 시간을 보내는 게 자신의 무능함으로 여기시는 것 같았다. 문화적인 혜택도 없고 고요하기만 한 시골 생활에서 무슨 꿈을 꿀 수 있었을까? 그 선생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아버지의 삶을 생각했다. 아버지도 시골 학교에서 평생을 보내시면서 얼마나 현실에서 좌절하셨을까? 한의사가 되고 싶은 꿈을 갖고 계셨던 아버지께서는 가족과 집안을 위해 꿈을 포기하시고 희생하셨다고 들었다. 그 선생님의 말씀을 통해 아버지의 가슴에 묻혀있는 아픔을 느끼고 그동안 아버지의 권위에 살짝 불만이었던 마음이 부끄럽고 죄송스럽기만 했다.

승현이의 한 마디로 추억 속에서 소중한 것들을 찾아냈다. 아버지의 강요로 입게 된 정장으로 인해 같은 교생들과 선생님들께 주책이라는 소리를 들었지만 교장선생님의 극찬은 내게 다른 의미가 있었다. 교장선생님께 아버지의 체면을 세워 드렸고, 아버지와 근무하신 많은 여선생님들께서 보수적인 교장이라는 평을 하셨을 텐데 그 딸이 가장 이상적인 옷을 입었다고 학교의 최고 어른께 인정을 받았으니 아버지께 명분은 세워 드리지 않았을까? 자기 딸에게도 그렇게 촌스러운 옷을 입히는데 아버지와 함께 근무한 여선생님들이야 뭐라 할 수 있었을까? 박 선생님처럼 인정하고 넘어 가셨겠지···….

얼마 전에 마트에서 박 선생님을 우연히 만났다. 세월이 흘러 나이가 들어 모습은 변했지만 선생님의 맑고 예쁜 눈빛은 그대로셨다. 아버지의 안부를 먼저 물어 보시고

“아버지는 참 좋은 교장선생님이셨어.”

라고 하시며 행복하게 웃으시는 모습을 보며 아버지의 교사로서의 삶은 성공적이었다고 혼자 생각했다.

 

 

글 정연희  k-toda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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