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고흥군 섬여행 이틀째. 어제는 원시체험의 섬 시호도를 찾았고 오늘은 소록도를 돌아볼 예정이다.

소록도는 고흥반도 끝자락인 녹동항에서 1km도 채 안되는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섬의 모양이 어린 사슴과 닮았다고 하여 소록도(小鹿島)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녹동항에서 배로 불과 5분 거리에 있으며, 2009년 3월 2일 1,160m길이의 소록대교가 개통되어 지금은 육로로 오갈 수 있게 되었다.

녹동항에서 아침식사후 드디어 소록도에 들어갔다. 소록도에서는 주차장에 차를 주차후 도보로 섬 안을 돌아볼 수 있다. 탐방코스는 주차장-소록도병원방향 산책로(수탄장)-추모비-검시실-감금실-자료관-중앙공원 순이다. ‘어린 사슴의 섬(小鹿島)’이라는 아름다운 이름과는 달리 섬을 찾는 발길이 무겁기 그지없다. 관광여행이 아니라 한센병 환자들의 고통과 애환의 흔적을 돌아보는 ‘다크 투어(Dark Tour)’이기 때문이다.

소록도는 한센병 환자들이 모여사는 곳으로, 그 기원은 구한말 개신교 선교사들이 1910년 세운 시립나요양원에서 시작되었다. 1916년에는 주민들의 민원에 따라 조선총독부가 소록도 자혜병원으로 정식으로 개원하였다. 일제 강점기에는 한센병 환자를 강제 분리·수용하기 위한 수용 시설로 사용되면서 전국의 한센병 환자들이 강제 수용되기도 하였다. 당시 한센병 환자들은 4대 원장 수호 마사스에가 환자 처우에 불만을 품은 원생 이춘상(李春相)에게 살해당할 정도로 가혹한 학대를 당하였으며, 강제 노동과 일본식 생활 강요, 불임 시술 등의 인권 침해와 불편을 당했다. 소록도 안에는 일제 강점기 한센병 환자들의 수용생활의 실상을 보여주는 소록도 감금실과 한센병 자료관, 소록도 갱생원, 신사 등 일제 강점기 모습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역사적 건물과 표지판 등이 많이 남아 있다.

소록도 병원은 해방 후에도 한센병 환자의 격리 정책을 고수하여 환자 자녀들이 강제로 소록도 병원 밖의 학교에서 공부해야 하였으나, 이후 한센병에 대한 연구가 진척되고 환자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개선되면서 한센병 치료 및 연구, 요양 재생 등을 기본 사업으로 하는 요양 시설로 바뀌었다. 또한 1965년 부임한 한국인 원장으로부터 과일 농사, 가축 사육 등의 기술을 익혀 스스로의 힘으로 살 수 있도록 배려를 받았으며, 일부는 소록도 축구단을 결성하여 한센인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완화하였다.

소록도는 섬의 전체가 국유지로 일반적인 주민은 거주하지 않으며 대부분 섬 주민은 국립 소록도 병원의 직원 및 이미 전염력을 상실한 음성 한센병 환자들이다. 또한 환자의 대부분은 65세를 넘긴 고령자이다. 환자들의 주거 구역은 외부인이 접근할 수 없도록 차단되어 있다. 병원의 직원 등 환자가 아닌 사람들이 거주 하는 관사지대(소록리 1번지)와 환자들이 거주하는 병사지대(소록리 2번지)로 나뉘며 병사지대는 외부인의 출입이 제한되어 있다.

삼림과 해변이 잘 보호되어 있어서 정취가 뛰어나며, 관광지는 아니지만, 걸어다니면서 섬 주변을 둘러볼 수 있게 길이 잘 닦여 있다. 우체국 등 관공서와 천주교회, 개신교회, 원불교당 등의 종교 시설, 초등학교 분교 등 교육 시설도 갖추어져 있다.

섬 입구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소나무숲 산책로와 함께 득량만 바다풍경이 한 눈에 들어온다. 경관이 아름답다. 그런데 소나무숲 앞의 ‘수탄장(愁嘆場)’ 안내판이 경관을 즐기기보다는 먼저 방문객들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이곳은 1950-1970년까지 철조망이 쳐 있었던 곳으로, 직원지대와 병사지대로 나뉘어지는 경계였다는 설명이다. 병원에서는 전염병을 우려하여 환자 자녀들을 직원지대에 있는 미감아 보육소에 격리하여 생활하게 하였으며, 병사지대의 부모와는 이 경계선 도로에서 한달에 단 한번 면회가 허용되었다고 한다. 이때 미감아동과 부모는 도로 양옆으로 갈라선 채 일정한 거리를 두고 눈으로만 혈육을 만나야 했다. 이 광경을 본 사람들이 ‘탄식의 장소’라는 의미로 ‘수탄장’이라 불렀다고 전해진다. 안내판에는 실제로 환자인 부모와 미감아동들의 월례 정기면회 장면을 사진으로 보여주고 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마음이 숙연해지게 한다.

소나무숲이 울창한 해변데크길을 600m 정도 걸으면 추모비를 만난다. ‘哀恨의 追慕碑’라고 쓰여진 이 비석은 1945년 8월 15일 해방을 맞아 원생들은 자치권을 요구했고, 이를 거부하는 자들에 의해 협상대표자 84명이 처참하게 학살을 당한 애한을 추모하기 위한 비석이다. 참사 56년 만인 2001년 12월 8일에 화장, 매몰된 현장에 전 원생 및 언론기관과 관심있는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유골발굴작업을 실시하여 다수의 유골을 발굴하였다고 한다.

국립소록도병원 본원 건물 좌측을 돌면 길이 100m, 높이 3.5m 규모로 타일 및 대리석에 의한 모자이크기법을 이용한 거대한 벽화가 눈에 띈다. 이 벽화는 ‘아름다운 동행-소록도 사람들’이라는 프로젝트로, 과거 소록도 주민들의 인권유린의 상처를 극복하고 광맥처럼 뭍혀있는 소록의 염원을 발굴, 그들의 삶의 실상을 과거, 현재, 미래로 구분, 반영한 벽화를 형상화한 것이다. 박대조 작가의 작품으로 2013년 4월 30일 제작되었다. 이곳에는 붉은 사슴, 소록도 주민들 얼굴모습, ‘한센병은 낫는다’라고 새겨진 구라탑(救癩塔) 모형 등이 새겨져 있다.

코너를 돌면 본격적으로 한센인들의 수난의 장소였던 검시실(檢屍室), 감금실 등을 볼 수 있다.

검시실 건물은 일제 강점기에 일본인들이 한센병 환자들을 대상으로 정관수술과 시체해부를 했던 곳으로 소록도의 인권유린의 아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검시실 또는 해부실로 불리는 건물은 두 칸으로 나뉘어져 있으며, 입구의 넓은 방은 사망환자의 검시를 위한 해부실로 사용되었고, 안쪽은 주로 검시 전의 사망환자의 유해를 보관하는 영안실로 사용되었다. 모든 사망환자는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이곳에서 사망원인에 대한 해부절차를 마친 뒤 간단한 장례식을 거쳐 섬 내 화장장에서 화장 후 납골당에 유골로 안치되었다. 이러한 상황을 보고 소록도의 환자들에게는 ‘세번 죽는다’라는 일화가 전해지고 있다. 그 첫 번째는 한센병 발병이요, 두 번째는 죽은 후 시신 해부요, 세 번째는 장례 후 화장이다. 건물 내부에 수술대와 검시대 그리고 세척시설들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어 당시의 처참한 상황을 짐작할 수 있다. 이 검시실 건물은 2004년 2월 6일, 문화재청 등록문화재 제 66호로 등록되었다. 검시실 건물벽에는 일제하 제 4대 수호원장 시절 그의 명을 거역한 벌로 감금실에 갇혔다 풀려나면서 단종수술을 받은 이동(李東)이라는 환자의 시 <단종대>가 걸려 있어 보는 이들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그 옛날 나의 사춘기에 꿈꾸던

사랑의 꿈은 깨어지고

여기 나의 25세 젊음을

파멸해 가는 수술대 위에서

내 청춘을 통곡하며 누워 있노라

장래 손자를 보겠다던 어머니의 모습

내 수술대 위에서 가물거린다.

정관을 차단하는 차가운 메스가

내 국부에 닿을 때

모래알처럼 번성하라던

신의 섭리를 역행하는 메스를 보고

지하의 히포크라테스는

오늘도 통곡한다.

검시실 옆은 감금실(監禁室) 건물. 이곳 역시 일제하 소록도 한센병 환자들의 인권유린의 현장이다. 붉은 벽돌과 육중한 담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남과 북 두 건물이 회랑으로 연결된 H자 형태로 방은 철창이 설치되어 있고 각 실의 한쪽 마루바닥을 들어 올리면 변기가 나오는 형무소와 유사한 구조로 되어 있다. 일제말기에는 부당한 처우와 박해에 항거하던 환자들이 무수히 이곳에서 사망하거나 불구가 되었으며, 출감 시에는 예외없이 정관절제를 당하였다고 한다. 감금실 벽에는 수많은 낙서가 쓰여 있어 당시의 처참했던 상황을 실감케 한다. 이 건물 역시 2004년 2월 6일 문화재청 등록문화재 제 67호로 등록되었다.

소록도의 과거와 현재가 전시되어 있는 자료관에 들어서면 소록도의 아픈 역사와 유물들을 한 눈에 돌아볼 수 있다. 이곳에는 소록도병원의 연혁, 원생들의 노동과 수난, 수호원장 동상 건립과 살해 및 하나이원장 창덕비 건립 소개, 해방후 84명 원생들의 참사 전말, 오마도 간척공사 추진경과, 교황 요한바오로2세 및 김대중대통령 부인 이희호여사 방문, 원생들이 사용하던 생활용품 및 집기비품, 소록도의 은어 소개 등 다양한 기록물과 사진, 물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자료관을 나오면 바로 중앙공원. 중앙공원은 1934년부터 환자 위안장으로 가꾸어 오던 산책지를 유원지로 만들어 1936년 12월 1일에 준공하였다. 그 후 이를 확장하여 대공원으로 만들자는 계획에 의해 1939년 12월 공사에 착수하여 완도, 득량 등지로부터 운반된 기암괴석과 일본, 대만 등지에서 들여온 나무들을 조화롭게 배치하고, 공원 모퉁이에는 연못을 만들어 각종 물고기를 넣어 기르도록 하는 등 약 6천평의 이 공원은 환자들의 피와 땀으로 4개월 공사 끝에 1940년 4월 1일 완성되었다. 그리고 1962년, 중앙공원 옆에 폐허로 남아 있는 벽돌가마터와 가마터 주변 약 1,200평 부지를 공원으로 조성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공원 내에는 구라탑(救癩塔), 다미안공적비, 오스트리아수녀공적비, 한하운 시비, 교황 요한바오로2세 방문기념비 등이 있다.

이중 오스트리아수녀공적비는 마리안느 스퇴거 및 마가렛 피사렛 수녀가 1962년 및 1966년 각각 소록도를 찾아와 40여 년을 한센병환자와 그 자녀들을 위하여 헌신적인 봉사를 한 고마움을 기리기 위해 세운 공적비이다. 이들 두 수녀는 2005년 11월, 이제는 나이가 들어 소록도에 부담을 줄 수도 있음을 염려하여 편지 만 남기고 소록도를 떠나 모국으로 돌아갔다.

또, 중앙공원에는 한하운 시인의 시비도 유명하다. 일제시대 제4대 원장 수호(周放正秀)는 자혜의원 확장공사 때 원생들을 동원, 완도에서 거대한 바윗돌을 날라왔다. 그 당시 나병환자들 사이에서는 ‘놔도 죽고 메도 죽는다’는 노랫가락이 유행했다고 한다. 수호 원장은 그 공원에 자신의 동상을 세운다. 그리고 자신이 세운 동상 제막식날 이춘성이라는 원생의 칼에 피살된다. 1942년 6월 16일의 일이다. 한하운 시가 쓰여진 바윗돌은 바로 그 동상 앞에 있던 상석(上席)이라 한다.

보리피리 불며 봄언덕

고향 그리워 피-ㄹ 닐니리.

보리피리 불며 꽃 청산靑山

어린 때 그리워 피-ㄹ 닐니리.

보리피리 불며 인환人寰의 거리

인간사人間事 그리워 피-ㄹ 닐니리.

보리피리 불며 방랑의 기산하幾山河

눈물의 언덕을 지나 피-ㄹ 닐니리.

한하운 시 <보리피리>는 나병에 걸린 저주와 고독을 노래한 ‘영혼의 영가’이다. 천형의 나병으로 인간세계에서 쫓겨나 자학과 저주, 슬픔과 고독을 안으로 삭이고, 보리피리 불며 고향의 봄 언덕, 어린 시절, 건강한 사람이 살아가는 세상을 그리워하며 이 산과 저 강과 언덕을 넘는다. 나병과 싸워 이긴 그의 시는 존엄한 생명의 구경(究竟)을 노래한다.

글 사진/ 임윤식  k-toda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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