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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저편, 안개 속으로영국 리치몬드 공원을 걷다
글 임윤식  |  k-toda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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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2.03  14:5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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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에서 제일 큰 공원인 왕립 리치몬드공원(Royal Richmond Park), 몇일 만에 해가 나서 오늘은 공원산책에 나섰다. 공원일주 산책로를 단순 완주할 경우 8 마일, 보통걸음으로 약 2시간 반 정도 걸린다.

공원 가운데 위치한 호수 및 이사벨라식물원, 숲속 초원, 사슴들이 모여 놀고 있는 곳이나 작은 숲길 등 까지 돌아볼려면 4-5시간 정도는 금새 간다. 호수의 명칭은 pond로 표기되어 있으나 연못이라기 보다 실제로는 백조 및 각종 철새들이 모여 사는 작은 호수 규모이다.

여유있게 즐기려면 하루도 모자란다. 공원 내에는 36홀 퍼블릭 골프장이 있으며, 이와는 별도로 공원에 두개의 사설골프장이 붙어있다.

오늘은 가볍게 산책하면서 공원 안 펨브록 롯지(Pembroke Lodge) 카페에서 영국차 한 잔 마시면서 조용히 쉴 심산이었는데 막상 나서니 오랫만에 다시 둘러보고싶은 곳이 많다.

   
 
천천히 즐기면서 걷다보니 킹스톤 게이트에서 이곳 카페까지 한 시간이나 걸렸다. 편도시간이니 다시 온 길로 나갈려면 또 한 시간 잡아야 한다. 내친 김에 오늘은 호수가 있는 공원 중앙을 횡단해 보기로 한다.

펨브록 롯지 카페는 영국 살 때 자주 와서 차 마시며 담소하던 곳. 필자 가족은 직장관계로 영국에서 4년간 산 적이 있다. 그 때도 리치몬드공원 근처에 살아서 공원산책을 자주 했었다. 펨브록 로지는 멋진 조지 왕조풍 맨션으로 현재는 인기있는 레스토랑이다.

이 하얀 색 롯지는 1727년 킹 조지2세가 사냥쉼터로 지었으며, 1847년 빅토리아 여왕이 당시 수상이었던 존 러셀 경(Lord John Russell)에게 하사하였다. 후에는 그의 손자인 철학자 버트란드 러셀(Bertrand Russell)이 14년간(1876-1890년) 살았던 곳이기도 하다.

버트란드 러셀은 20세기의 지식인 가운데 가장 영향력있는 철학자 중 한 사람으로 1950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인물이다.

   
 
이곳은 분위기도 좋지만 특히 야외카페에서 내려다보는 경관이 수려하다.

카페 우측 산책로로 몇십미터 만 가면 King Henry's Mound라는 언덕이 있다. 리치몬드공원에서 가장 높은 곳이다. 헨리8세 왕이 사슴사냥하러 왔다가 이곳에서 잠시 쉬면서 킹스턴 밸리 조망에 취하곤 했던 곳이라고 한다.

1536년 헨리8세가 비운의 왕비 앤 볼린의 처형을 알리는 런던탑의 봉화를 바라보았던 곳이기도 하다. 날씨가 좋으면 16km 떨어진 런던 시내 및 세인트 폴 대성당도 보인다. 공원 아래 킹스톤 밸리의 안개 낀 주택가 풍경이 한 편의 흑백영화장면을 보는 듯 하다.

문득 프랑스의 전설적인 사진가 윌리 호니스(Willy Ronis)의 작품이 생각난다. 안개 자욱한 파리시내를 내려다 보면서 사랑을 속삭이는 두 연인의 모습을 담은 사진 한 점. 1957년에 찍은 les amoureux de la Bastille라는 작품이다. 나도 카메라 모드를 흑백으로 바꿔 윌리 호니스의 마음으로 사진 몇장 담아본다. 요즘들어서는 점점 요란법석한 칼러사진보다 잔잔하고 단순한 흑백풍경이 더 좋아지는 것 같다.

왤까? 기억의 저편이 그립고 아쉬워서일까?

   
 
     
 
영국에서는 요즘도 안개 끼는 날이 많다. 노인 한 분이 다리를 절면서 안개 속으로 걸어간다. 비가 오든 안개가 끼든 가야 하는 길. 이 노인에겐 많이 보이는 것보다 덜 보이는 게 마음 편할런지도 모른다. 필자도 요즘은 많이 보이는 것보다 덜 보이는 게 헐씬 좋을 때가 적지않다.

나 역시 늘 절룩거리며 세상 길을 가고 있기 때문이리라. 어린 아기를 실은 유모차 한 대도 따라간다. 이 아이는 아직 걸어보지 않은 길이다. 같은 길을 함께 간다.

낮이 되면서 안개가 사라지고 날씨가 맑아지자 산책나온 사람들이 늘기 시작한다. 노부부의 산책, 자전거를 타는 젊은이들, 연인과 함께 나온 젊은 남녀 등. 이들의 열기로 겨울이 포근히 녹아내린다.

King Henry's Mound를 지나면 Poet's Corner라고 쓰여진 팻말도 보인다. 영국의 유명한 자연시인 James Thomson이 리치몬드에 살면서 이곳을 자주 거닐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어쨋든 시인들이 이곳을 거닐면 시가 저절로 나올 만 하다. 명색이 시를 쓴다는 필자도 혹시 졸시 한 수 건질까 하여 '은유의 안개' 속으로 걸어들어가 본다.

   
 
공원에서는 승마를 즐기는 주민들도 적지않다. 필자 가족 역시 이곳 리치몬드공원에서 매주말 1시간씩 거의 1년간 승마를 배운 적이 있다. 공원 내에 승마학교(Riding School)가 있어 큰 부담없이 승마를 배울 수 있었다.

리치몬드공원에서는 숲길을 걷다보면 사슴떼를 자주 만난다. 수십, 때로는 백마리도 넘는 사슴이 떼지어 몰려다닌다. 가까이 접근해도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는다. 필자가 옆으로 다가가니 왠 옷입은 사슴이 왔나 하고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본다. 그들 입장에서는 딴 나라에서 온 사슴으로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들 눈에는 내 모습이 신기한가 보다. 말을 걸려는 듯 내 앞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나도 한 마리의 사슴이 되어 그들과 논다.

글 임윤식  k-toda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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