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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거대공룡 삼성그룹, 이재용 부회장 전면으로 나서나?경영스타일 ‘존재하되 드러내지 않는다’
주엽 기자  |  k-toda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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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1.29  11:4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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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은 지금 3세 경영 시대를 맞고 있다. 고 이병철 전 회장이 대구에서 삼성의 모태인 삼성상회를 창업한 것은 1938년이다. 지금부터 76년 전이다. 이 전 회장의 뒤를 이어 제 2창업을 통해 삼성을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시킨 이건희 회장이 삼성호의 키를 잡은 것은 1987년이다. 지금으로부터 27년 전이다.

현재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입원 8개월째인 아버지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을 대신해 그룹의 얼굴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참석하는 각종 정부 행사는 물론 한국을 방문한 해외 VIP 의전 및 해외 행사에도 모습을 드러내는 등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그럼에도 그가 경영에 직접 개입한다는 정황은 드러나지 않고 있다. 계열사 어디에도 대표이사 직함을 받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올해 사장단 인사에서도 승진자 명단에 이름이 빠졌다.

이 같은 삼성의 경영 스타일은 “존재하되 드러내지 않는다(Essn non videri)."라는 모토를 가진 스웨덴 발렌베리 가문과 흡사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스웨덴 주식시장 시가 총액의 40%를 차지하고, 이 나라 국내총생산(GDP)의 30%를 차지하고 있는 발렌베리 가문은 2014년 현재 156년 동안 5대에 걸쳐 경영권 세습이 이뤄지고 있는 세계적으로 유일무이한 가문이다.

삼성그룹이 창업 당시 발렌베리 가문의 경영 스타일을 벤치마킹했다는 사실은 이미 알려진 지 오래다. 최근 삼성그룹의 변화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승계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삼성SDS에 이어 그룹 지배구조의 최정점에 있는 제일모직이 유가증권시장에 상장되면서 ‘이재용 부회장의 삼성’은 점점 더 구체적인 모습을 띄고 있다. 두 회사의 상장을 통해 이재용 부회장은 경영권 확보를 위한 실탄을 확보했다. 삼성은 준비를 차질 없이 진행하고 있으며 머지않아 그가 경영대권을 물려받을 것이라는 의견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2016년까지 계열사 순환출자를 전부 해소하고 삼성생명, 삼성전자, 삼성물산을 중심으로 74개 계열사를 재편한다는 목표를 지난해 발효했다. 현재 삼성그룹은 삼성에버랜드가 삼성생명 지분 19.3%를 보유하고, 삼성생명이 삼성전자(지분 7.2% 보유)와 삼성물산(지분 4.7%)을 거느리는 순환출자 구조를 큰 골격으로 유지되고 있다.

이승만 전 대통령 ‘서울에 오면 찾아오라’

삼성은 1987년 11월 창업주인 이병철 회장이 타계할 때도 형제간 분란이나 혹시나 있을 재산 싸움에 대비, 이중 삼중의 포석을 깔아서 이 회장 생전에 준비를 다 끝내두었다. 당시 후계 작업의 원칙 중 하나는 이병철 회장의 부인인 박두을씨와의 사이에 난 자녀들에겐 회사 경영을 맡기고 후처 소생들에게는 회사를 물려주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병철 전 회장의 조부는 이홍석으로 시문에 능해 문산정(文山亭)이라는 서당을 세워 후학을 길렀다. 재물을 모으는 데도 소질이 있어 가산이 천석에 이르렀다. 이홍석은 외아들 이찬우를 낳았는데 그가 바로 이병철 회장의 아버지다.

이찬우 대에 이르러 집안은 풍년에는 2000석, 흉년이 들어도 1500석은 거둬들일 정도로 더 부유해졌다. 머슴만 30여 명에 달했다. 이찬우는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과 인연을 맺었다. 청년기에 서울로 상경해 독립협회 회원들과 행동을 함께했고, 기독교청년회에 출입하면서 이승만 박사를 알게 된 것이다. 두 사람은 동갑내기였다.

이병철은 훗날 아버지와의 인연에 힘입어 대통령 이승만과 자주 만날 수 있게 된다. 이 대통령이 대구를 방문했을 때 이병철은 자신이 이찬우의 아들임을 밝혔다. 반갑게 인사를 나눈 이 대통령은 "서울에 오게 되면 찾아오라"고 했다. 이듬해 이병철은 이화장으로 이 대통령을 찾아갔다. 약속된 만남이 아니었음에도 이 대통령은 이병철을 만나 많은 이야기를 나눈 것으로 전해진다.

진주 지수보통학교-서울 수송보통학교를 거쳐 중동중학교 3학년에 다니던 1926년 가을, 이병철은 아버지로부터 한 통의 편지를 받는다. 혼담이 이루어져 12월5일(음력)에 혼례를 올리게 되었으니 귀가하라는 내용이었다.

19세이던 해의 겨울, 이병철은 경상북도 달성군 묘동에 사는 박기동의 넷째 딸 박두을과 결혼했다. 사육신 박팽년의 후손인 박두을은 이병철보다 세 살이 많았다. 이병철의 맏아들 이맹희는 1993년 자서전 <붇어둔 이야기>에서 어머니 박두을에 대해 말한다.

'친가 쪽도 이미 3000석지기에 가까울 정도의 부자였지만 외가 쪽의 지체가 높아서 한쪽으로 기우는 혼사였다는 말들이 있었다는 게 집안 어른들의 설명이었다. 어머니는 시집올 때 몸종을 비롯해 몇 명의 하인을 데리고 왔다고 한다.'

박두을은 유교를 숭상하는 가문에서 전통적인 부덕(婦德)을 배우고 성장해서 그런지, 바깥 활동은 되도록 삼가고 집안일에만 전심전력을 다했다. 또 예의범절이 밝아 대소가(大小家)가 두루 화목하게 했다. 게다가 몸치장, 얼굴 치장 한번 제대로 해본 일이 없어 사치와는 애당초 거리가 멀었다.

   
 
이병철 회장 일찌감치 3남인 이건희 회장을 후계자로 지목

이병철의 자식은 10명이다. 그 가운데 박두을과의 사이에 3남 4녀, 일본인 구라다와의 사이에 1남 1녀를 두었다. 1녀는 혼외자로 입적했다. 이병철은 <호암자전>에서 자식이 4남6녀라고 밝혔다.

이병철은 장녀 이인희(1928년생), 장남 이맹희(1931년생), 차남 이창희(1933년생), 차녀 이숙희(1935년생), 3녀 이순희(1940년생), 4녀 이덕희(1941년생), 3남 이건희(1942년생), 5녀 이명희(1943년생), 4남 이태휘(1953년생), 6녀 이혜자(1962년생)를 차례로 낳았다. 이 가운데 일본인 여성이 낳은 자식은 4남 이태휘와 6녀 이혜자다.

특히 딸 중에서는 이인희(한솔그룹 고문), 이명희(신세계그룹 회장) 두 자매에게만 계열사를 분할해줬다. 차녀 이숙희는 박두을의 소생이지만 구인회 LG그룹 창업주의 아들인 구자학 회장과 결혼하면서 계열사를 물려받지 못했다.

이병철은 일찌감치 3남인 이건희 회장을 후계자로 지목했다. 그리고 후계구도의 장애물들을 하나씩 제거하면서 후계 작업을 추진했다. 1980년대 초 이병철 회장이 위암 수술을 받고 나서 후계자 수업이 빨라진다. 이병철 회장 타계 12일 만인 1987년 12월 1일 전격적으로 이건희 회장을 삼성 2대 회장에 임명할 수 있었던 것도 다 사전 작업 덕분이었다.

유교적 전통을 중시하는 한국 사회에서 장남과 차남을 배제한 3남을 후계자로 선정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하지만 관례를 깨고 3남을 회장으로 앉힌 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그 시기는 1987년 대통령 선거일을 며칠 앞두고 정국이 소용돌이 칠 때였다. 노태우‧김영삼‧김대중‧김종필 등 당시 내로라하는 정계 거물들이 '6‧10 민주항쟁'으로 쟁취한 대통령 짓선제 선거에 출마하고 있었다. 민정당 노태우 후보가 12월 19일 대통령에 당선됐지만 투표일 전에 실시된 각종 여론조사는 그야말로 박빙이었다.

노태우 전 대통령과 이맹희 회장은 경북고등학교 동기 동창으로 학생 때부터 친하게 지낸 사이다. 뿐만 아니라 이맹희 회장은 노 전 대통령 외에도 당시 실세였던 육사 11기 정호용, 김복동과도 학생 때부터 잘 아는 사이였다.

특히 이맹희 회장은 전두환 대통령과의 관계에서는 주인집 아들과 직원 아들(전두환 전 대통ㄹ여의 부친이 이병철 회장이 운영하던 정미소 공장장이었다)이라는 특이한 관계였다. 이 때문에 전두환 대통령이 이맹희 회장을 어려워한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이맹희 회장은 "친구들이 정권 실세가 된 뒤 삼성 회장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해본 적도 있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병철 회장이 이를 눈치채고 철저하게 감시했다.

이병철 회장은 혹시나 해서 1986년에 신현확 전 총리를 삼성물산 회장으로 앉혀 후계자로 지목해 이건희 회장의 방패막이로 삼기도 했다. 부총리와 총리를 지낸 신 회장은 당시 자타가 인정하는 TK(대구‧경북)의 대부다.

이처럼 이병철 회장이 장남과 차남을 버리고 3남 이건희 회장을 후계자로 삼은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1960년대 후반 '사카린 밀수 사건'이 터지면서 이병철 회장과의 갈등을 빚었던 것이다.

아버지로부터 미움받는 결정적인 사건 벌어져

이병철 회장은 호암자전에서 '장남 맹희는 주의의 권고와 본인 희망대로 그룹 경영을 일부 맡겨 봤지만 6개월도 못 가 맡겼던 기업은 물론 그룹 전체가 혼란에 빠지고 말았다'고 경영 능력을 폄하했고 '차남 창희는 그룹 산하의 많은 사람들을 통솔하고 복잡한 대조직을 관리하는 것보다는 알맞은 회사를 건전하게 경영하고 싶다고 희망해 그대로 해주었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해 이맹희 회장은 억울해한 것으로 알려진다. 1960년대 말 정권을 흔들 정도의 스캔들로 비화됐던 '한국비료 밀수 사건'은 잘못 알려진 부분이 많다는 것이다. 당시 밀수품으로 알려진 사카린은 한국비료가 일본 미쓰이공업으로부터 받기로 한 100만달러의 대용이었다.

일본 미쓰이공업이 공장 설비를 대가로 한국비료에 100만달러를 주기로 했는데 정상적인 방법으론 도저히 돈을 가져올 수 없어 대신 사카린을 가져왔다는 것이다.

이때 정권 실세들과 의견조율을 하고 사카린을 들여왔는데 언론에서 대서특필되고 야당에서 문제 삼자 삼성을 희생양으로 삼았다고 이맹희 회장은 말한다. 결국 이 사건의 책이미을 지고 이병철 회장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고 맹희‧창희 두 형제가 선두에 서서 삼성을 이끌었다.

이후 이맹희 회장은 아버지로부터 미움을 받는 결정적인 사건이 벌어진다. 아들들에게 기업을 맡기고 경영을 하는 것을 지켜본 이병철 회장이 아들들에게 맡겨서는 도저히 안 되겠다고 판단하고 다시 회장으로 복귀하려는 즈음 투서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청와대에 전달된 투서의 내용은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이병철 회장이 경영 일선에 나서려고 한다는 비판내용이 주요골자였다. 이 때문에 이병철 회장은 발끈했다. 이 투서 사건을 이맹희 회장이 주도한 것으로 알고 맹희‧창희 두 형제를 경영에서 완전 배제하고 삼성 근처에 얼씬도 못하게 만들었다.

당시만 해도 이병철 회장은 아들들에게 기업을 물려줄 마음이 없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이병철 회장은 자서전에서 '고생스러운 기업 경영의 일을 자손들까지 억지로 강요하고 싶지 않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었다'고 토로했다.

3남 이건희 회장에 대해서도 '(건희가) 일본의 와세다대학 1학년 때 중앙매스컴을 맡아 인간의 보람을 찾는 것이 어떠냐고 물었더니 그 길이 가장 좋은 것 같다고 대답했다. 매스컴 경영은 기복이 심해 재정적 지원이 가능한 몇 개의 회사를 붙여주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건희에게는 고생스러운 기업경영을 맡기는 것보다 매스컴을 생각했던 것이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는 장‧차남에 대해서는 경영능력에 대한 회의 때문에, 3남은 성품 등으로 가업을 맡기는 것을 유보하려 했던 것으로 해석된다.

이병철 회장은 3남 이건희 회장을 후계자로 낙점하는 과정에서 철저하게 장남을 배제했다. 그러나 차남이 새한미디어를 창업할 때는 상당한 도움을 준 것으로 전해진다. 이맹희 회장은 "창희는 그후 아버지한테 사과도 하면서 굽히고 들어갔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병철 회장은 임종 시에도 장남을 부르지 않았다. 대신 이맹희의 아들이자 자신의 장손인 이재현 현 CJ 회장을 불렀다.

이재현 회장에 대한 이병철 회장의 애정은 각별한 것으로 알려진다. 이재현 회장이 고려대를 졸업하고 1983년 씨티은행에 입사했을 때 이병철 회장이 상당히 노여워했다는 것이다. 장손을 삼성에 입사시키지 않고 씨티은행에 취직시켰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이 재현 회장은 바로 제일제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삼성은 이건희 회장이 '마누라와 가족 외에는 다 바꾸라'는 유명한 신경영을 주도하면서 탄탄대로를 달렸다. 지난해 기준으로 500조원이 넘는 자산규모에다 연간 400조원이 넘는 매출을 기록한다.

 

 

주엽 기자  k-toda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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