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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의 독립운동가 황상규 지사조국독립에 목숨도 아끼지 않는다
노진 기자  |  k-toda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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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1.05  10:3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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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규 지사는 밀양에 있는 집성학교를 나온 후 독립운동에 투신, 일생동안 독립운동을 벌였다. 그는 애국계몽기에 창설된 밀양읍의 동화학원을 인수해 독립사상을 고취시키면서 우리나라의 역사 교재가 없음을 절감하게 된다. 이에 동국역사(東國歷史)를 비밀리에 저술해 청년들에게 교육하다가 이 사실이 일본에 발각되자 1918년 만주 길림성으로 망명했다.

같은 해 그는 류동일, 김규식 등과 북로군정서를 조직하고 재무총책을 맡는다. 1919년에는 상해 임시정부의 재정 위원이 활동했으며 손영필 윤치형 등을 통해 한춘옥, 손호관, 권화술, 손영돈 등으로부터 거액의 독립자금을 건네받은 후 상해임시정부로 보냈다. 이 뿐만 아니라 동양척식회사의 창녕 관리인이었던 양인부를 설득해 1년분의 소작료를 전부 매각하게 해 임시정부의 독립자금으로 전달했다.

1919년 11월 의열단을 조직해 김대지와 함께 고문으로 활동했다. 의열단은 일제의 무력적인 탄압에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 ‘정의의 사를 맹렬히 실행한다’는 생명을 건 항일투쟁을 표방한 독립운동단체다. 조선총독부 수뇌들을 암살대상으로 정하고 일본의 중요기관 등 시설에 대해서도 폭파를 시도할 정도로 의열단은 조국독립을 위해 치열한 투쟁을 벌였다.

황상규 지사는 밀양폭탄사건에 연루되어 체포되었으며 혹독한 고문을 버티고 감옥에서 7년형을 복역했다. 출옥 후 1927년 결성된 신간회 중앙서기장으로 선임되어 항일전선을 펼쳤으며 조선어학회의 간사로서도 활동했다. 안타깝게도 황상규 지사는 일생동안 항일독립운동을 위해 불꽃같은 삶을 태우다 1931년 삶을 마감했다.

 

노진 기자  k-toda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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