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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 정약용 선생을 배우다 -(2)조선의 '르네상스 시대' 열려했던 실학자
마연옥 기자  |  k-toda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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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12.08  11: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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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세유표

다산 정약용은 애덤 스미스와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경제학적 관점을 가지고 국가와 인간의 경제활동을 바라봤다. 다산은 애덤 스미스보다 39년 늦은 1762년에 태어났다. 당시 조선의 시대상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이 끝난 후 물질적 정신적 후유증을 극복하는 과정 중에 있었다.

중국에서는 명나라에서 청나라로 교체되는 일련의 사건이 전개되면서 명분과 의리를 중시하는 당시 조선의 지배계층은 커다란 충격에 휩싸였다. 하지만 조선의 지식인층은 이러한 새로운 호나경적 변화를 수용하고 이를 알아가려는 노력을 전개하기보다는 기존의 자신들의 세계관을 유지하고 고수하기 위한 방식으로 반응하게 된다.

일명 존명배청(存明俳淸)이라 하여 청나라를 치고 명나라는 돕는다는 명분론을 앞세워 북벌을 기획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도 새로운 변화를 직시한 층이 있었으며 그 중심에 정약용이 서 있었다.

정약용은 명분이 아닌 실질적인 대안을 찾으려 시도하고 그러한 대안을 경세치용학과 이용후생학이라는 두 가지 학문관으로 정리하게 된다. 경세치용학은 당시 가장 중요한 산업이었던 농업분야에 대한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방식으로 토지제도를 어떻게 개혁하는 것이 좋은지를 제시하였으며, 이용후생학은 상공업을 발달시키기 위해서는 어떤 방식으로 기술을 개발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견을 제시해 주었다.

이러한 생각을 하게 된 배경에는 두 번의 외침으로 인해 조선을 부국강병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실질적인 대안으로 백성들의 노동방식과 생산 방식에 주목하게 된다. 애덤 스미스와 마찬가지로 재화의 생산을 늘리기 위해서는 노동생산성을 높여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이를 위해서 분업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지금 우리나라는 사농공상이 뒤섞여서 구별이 없는데, 다만 한 마을 안에 사민이 섞여 살 뿐 아니라 또한 한 몸뚱이로 네 가지 업을 겸해서 다스리니 이것이 한 기예로 성취된 것이 없다.”

기예란 오늘날로 말하면 숙련공들이 갖고 있는 숙련 정도라고 할 수 있다. 정약용은 당시 생산성 향상이 이루어지지 못한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자급자족적인 생산활동으로 인해 각 경제주체들이 모든 생산활동을 스스로 전개하는 데 있다고 보았고, 각각 특별한 기술을 연마할 경우 생산량이 증가할 것이고 이는 곧 부국강병으로 가는 데 이바지 할 것이 제시한다.

정약용은 이에 그치지 않고 사농공상이 철저히 분업화하기 위해서는 동일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특정한 곳에 모여서 거주해야 한다는 사실을 제시한다. 비슷한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끼리 모여 서로 교육내지 연구를 함께할 경우 더 큰 기예를 익힐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상업도시와 일반도시 등이 구분되어 정착이 되고 나면 많은 물류량이 발생할 것이고 이를 대비하기 위해서는 수레와 배의 규격을 통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보다 원활한 물류시스템을 갖추기 위해서였다.

다산의 경제관이 서양에서 전개되어 온 경제관과 다른점은 일련의 경제적 개선 작업이 개인의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서 수행되어야 한다고 보지 않고 국가가 주도해서 수행해야 한다고 주장한 점이다.

당시 조선에서는 상업이 발달함으로써 가져다 주는 혜택을 목격할 수 있는 곳은 없었다. 당시 수행되는 상업적 거래는 몇몇 거상들에 의해 수행되었으며, 이러한 거상들은 대부분의 품목에 대한 수급을 조절할 수 있었기 때문에 매점매석의 행패를 부리기 일쑤였다.

즉 당시 시장은 완전시장의 형태보다는 독과점시장에서 전개될 수 있는 모습들이 더 많이 엿보인 것이다. 결국 다산 정약용이 시장의 기능에 부정적인 견해를 보이고 국가의 적극적 개입을 강조한 것은 오늘날 독과점시장으로 인한 시장 실패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개입해야 한다는 가장 기초적인 이론과 그 맥을 같이 한다.

애덤스미스와 불과 몇 십년 차이를 두고 우리나라는 애덤 스미스에 필적할 만한 경제관을 갖고 있는 지식인이 있었던 것이다.

목민심서

   
 
목민심서에 기록된 정약용의 가르침은 당시뿐 아니라 오늘날에도 여전히 관리들이 갖춰야 할 덕목과 자세를 제시하고 있으므로 여전히 유효하다.

율기(律己), 애민(愛民), 봉공(奉公)으로 대표되는 이 책의 정신은 한 고을의 지도자, 한 나라의 관리로서 갖춰야 할 모습들을 이야기하고 있다. 한자 그대로를 풀이하면 율기는 자신을 다스리는 것을, 애민은 백성을 사랑하는 것을, 봉공은 공을 받드는 것을 의미한다.

그는 가장 먼저 수기(修己), 즉 자신을 닦는 일이 중요함을 언급했으며 이후 치인(治人), 즉 완성된 인격과 능력으로 나라를 다스리고 백성들을 위해 봉사하라고 얘기했다. 그 중에서도 그는 목민관들에게 청렴과 애민을 강조했다.

그는 강진에서 유배기간과 목민관을 거치면서 세상에서 소외되고 헐벗은 백성들의 궁핍한 삶에 대해 직접 체험하고 느꼈다. 그가 남긴 ‘유아(有兒)’라는 제목의 시가 있다.

“유아(有兒)는 흉년을 걱정한 시(詩)이다. 지아비는 아내를 버리고, 어미는 자식을 버렸다. 어떤 일곱 살 먹은 여자아이가 자기 동생을 데리고 길거리를 방황하면서 엄마를 잃어버렸다고 엉엉 울고 있었다.”

흔히 우리는 다산의 작품에 대한 말들은 많이 하지만 실제로 그의 작품을 접하기는 특별한 관심이 없으면 쉽게 접하기 어렵다 그래서 정약용의 진심이 담겨있는 그의 시 ‘유아’를 소개해 보고자 한다.

“어떤 아이 둘이서 걸어가는데, 동생은 쌍상투 누이는 묶은 머리, 동생은 말을 배울 나이고, 누나는 다박머리 드리웠네.…쌀독은 벌써 비어서 사흘이나 굶었어요. 엄마는 저를 안고 흐느껴 울며 눈물 콧물 두 뺨에 얼룩졌어요. 동생은 울면서 젖을 찾았지만, 젖은 말라서 붙어버렸어요. … 동생을 사슴 새끼 품듯 안고 잤어요. 동생은 세상모른 채 잠이 들었고, 저 역시 죽은 사람처럼 잠들었어요. 문득 깨고 나서 보았더니 엄마는 여기 없었어요. …”

“… 날 저물어 어두워지면 새들도 집을 찾는데 외로운 두 오누이 찾아갈 집이 없구나! …슬프다! 이 나라 백성들 하늘의 떳떳함마저 잃었구나! 지아비와 어미가 사랑 못하고 엄마도 제 자식 돌보지 않는구나. 전에 내가 마패 갖고 암행어사 때 당시가 갑인년(甲寅年)이었는데, 임금님 분부하셔 고아들 보살펴 고생 없게 하라고, 모든 벼슬하는 관리들아! 이 말씀 감히 어기지 말지어다.”

이와 같이 다산은 가난 때문에 가장은 집을 떠나고, 삶의 고단함에 지친 어미는 아이를 버려두고 길로 나설 수밖에 없고, 날아다니는 미물도 해가 지면 둥지로 돌아가건만 사람의 자식이 날이 저무는데 갈 곳이 없어 울며 방황하고 있는 어린아이의 울음을 보며, 복받치는 슬픔을 시로 남겼는데, 벼슬하는 관리들의 경각심을 일깨우는 마음도 녹아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거기다가 다산은 늘 농사짓는 사람들의 삶에 대하여, 농부들이 진정으로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을 때 비로소 행복한 나라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온몸으로 역설하기도 했는데, 자신의 어려운 처지를 비관했던 여느 사람들에 비해서, 다산은 없는 자에 대한 올바른 배려의 마음을 통해 그의 학문의 바탕에도 애민의 사상이 자리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때문에 정약용은 유독 목민관의 자세로서 청렴을 강조했다.

“청렴이란 관리의 본무이며, 모든 선행의 원천”이라며 “수령 노릇을 잘하려는 자는 자애로워야 하고, 자애로워지려는 자는 반드시 청렴해야 하고, 청렴하려는 자는 반드시 검약해야 한다”

특히 목민심서 서문에서 그는 군자의 학문은 수신(修身)이 그 절반이요, 나머지 절반은 목민(牧民, 백성을 다스리는 것)이라 했다. 그리고 실학을 받아들여 여러 기술을 개발함으로써 백성들의 삶을 보다 편안하게 해주고자 했다.

 

 

 

마연옥 기자  k-toda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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