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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테이트모던 갤러리에서 만난 설치미술가 이승택, 그는 누구인가?‘거꾸로’ 살아온 예술인, 한국의 대표적 아방가르디스트
글,사진/임윤식  |  k-toda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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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12.03  14:4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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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소재 테이트 모던 갤러리는 뉴욕현대미술관과 함께 세계 최고·최대를 자랑하는 미술의 전당이다. 이곳에는 20세기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를 대표하는 화가, 조각가, 설치미술가, 사진가 등의 작품들이 소장되어 있다. 피카소, 모네. 몬드리안, 칸딘스키 등 기라성같은 작가들의 대표작들이 상시 전시되고 있다.

그런데 이들 전시작들을 돌아보다가 필자는 우연히 낮익은 작품 한 점을 발견했다. 우리들이 어릴 적 시골에서 자주 보던 돗자리를 엮을 때 쓰는 틀, 즉 평행봉에 고드렛돌이 주렁주렁 매달린 조형물이 눈에 띈다. 반가워서 가까이 가서 보니 작품 옆에 Seung-taek Lee 1932, Born North Korea, Works South Korea라고 쓰여 있다. 그리고 작품명으로 ‘Godret Stone 1958, Stone,Wood and Cord'라고 적혀 있다.

이승택 작가(82)가 한국의 대표적 설치미술가 중 한 분이라는 건 듣고 있었지만 테이트 모던 갤러리에 작품이 상시전시될 정도인 줄은 미쳐 몰랐다. 테이트 모던 갤러리에는 한국출신 작가 중 이승택 작가 이외 비디오아트의 거장 백남준 작가의 작품 9점도 소장되어 있다. 백남준 작품은 현대자동차가 최근 테이트 모던 갤러리에 기증한 것이다. 이들 두 작가의 작품 이외 다른 한국작가의 작품이 몇 점이나 소장되어 있는지 일일이 확인해보지는 못했지만 이번 방문에서는 이승택 작가의 작품 한 점 만 우연히 발견했을 뿐이다.

지난 10.7-11.9 기간 중 서울 사간동 소재 ‘갤러리 현대’에서 ‘거꾸로’라는 제목으로 이승택 작품전시회가 열린 바 있다. 지하, 1층 및 2층 전관에 전시된 이승택 작품은 대표 조각작품, 설치작품과 더불어 행위미술 기록 영상도 최초로 선보였다.

먼저 1층에 들어서면 거꾸로 매달려 있는 작가의 자각상(自刻像)이 충격으로 다가온다. 그 아래 이불 위에는 ‘나는 세상을 거꾸로 보았다, 거꾸로 생각했다, 거꾸로 살았다’고 쓰여 있다. 이승택 작가의 예술인생을 한마디로 집약한 표현이다. 또, 지하1층에는 ‘AntiArt'라고 쓴 망토를 입은 이승택 작가의 전신 모습사진이 전시되어 있고, 넓은 들판에서 바람을 이용해 어마어마한 크기의 붉은 천을 날리는 장면이나 불을 이용한 분신행위 등 상상을 초월하는 퍼포먼스 장면들이 영상물로 상영되기도 했다.

   
 
‘갤러리 현대’는 그를 ‘한국을 대표하는 전위미술가 1세대’로 소개하고 있다. 재야작가로 50년을 살았던 그는 2009년 백남준아트센터 제1회 국제예술상을 수상한 이후 이름을 알리며 전세계 미술계의 극찬을 받고 있다.

런던 테이트 모던 갤러리에 상시전시되고 있는 ‘고드렛돌’ 역시 “돌멩이는 딱딱하고 무거울 것이란 고정관념을 뒤집어 물렁물렁한 질감의 돌멩이”로 만든 것이다. 이승택은 세상의 수많은 오브제 중, 특히 전래의 ‘고드렛돌’이라는 오브제를 모티프로 예술의 기원이자, 오랜 전통이라 할 수 있는 주술(呪術)적, 제의(祭儀)적 충동/행위를 현재적으로 풀어내고 이어왔다. 주지하다시피, 고드렛돌은 오래전부터 조상들이 사용해오던 생활 오브제로 발이나 돗자리 등을 직조할 때 날을 흔들리지 않게 길게 늘어뜨려 붙잡아 두는 것으로 사용되었다. 약간의 물리적 무게감은 있으나 시각적으로는 부드러운 느낌을 주는 동글동글한 생김새를 간직하고 있다. 주로 돌, 혹은 사기, 도자, 나무 등으로 만들어 사용했으며 가운데 실이 감기는 부분이 움푹하게 파여 있는, 대체로 어색한 좌우대칭을 취하고 있는 안정되고 미더운 모습이다.

1932년 함경남도 고원 출생인 이승택 작가(82)는 한국전쟁 당시 고향을 등지고 월남했다.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조각과를 졸업한 그는 규정된 모든 것을 의심하고 재고하면서 늘 새로운 눈으로 오브제를 보고자 노력해온 작가로 알려져 있다. 이를 대변하듯 대부분의 평문은 '반항'과 '저항'으로 그를 설명한다. ‘부정의 영역을 향한 노력(김원방)', '반항과 도전의 조형세계(서성록)', '야당적 미술인, 미술의 야당인(하용석)', '영원한 이단아(윤진섭)', '저항으로 일관해 온 비조각의 세계(장석원)' 등이 그것이다. 이승택은 "한국적인 것은 세계적인 것이다"라는 명제 아래, 물, 불, 바람, 연기 등 비미술적인 재료를 사용해 전통 조각의 범주를 확장했으며, 이와 더불어 묶음과 해체를 통해 전통 조각의 방식을 전복시키고자 했다.

   
 
‘갤러리 현대’의 소개자료에 의하면, 이승택 작품의 주제는 크게 세가지다. 비물질의 작품화, 작품 공간의 확장, 그리고 한국적인 것의 현대화이다. 이 주제들은 부정, 저항, 도전, 창조라는 4가지의 공통적 탄생배경을 갖는다. 이승택은 대학시절 니체의 철학에 심취했고 이는 그의 작품세계의 핵심인 ‘부정’의 기반이 되었다. 그는 존재하는 것들을 부정하고 도전해야 새로운 것을 창조할 수 있음을 깨달은 것이다. 물, 불, 바람, 연기 등 시각화하기 어려운 재료를 작품화한 빗물질 시리즈, 노끈으로 물체의 형태를 병형시켜 물성을 바꾸는 묶음 시리즈가 그의 대표작이다.

2년 전인 2012년 8월에 성곡미술관에서도 원로작가회고전으로 <이승택 1932-2012: Earth, Wind and Fire>展을 개최한 적이 있다. 약 2개월의 전시기간 당시 성곡미술관 측은 이승택 작가를 “한국 현대미술의 살아있는 역사이자 현재 한국의 대표적 아방가르디스트(Avant-gardist)”라고 소개한 바 있다. 당시 성곡미술관 측에서 평한 이승택의 작품세계를 발췌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평생을 ‘안티(anti)정신’으로 살아온 작가의 산수(傘壽) 기념 회고전으로 끊임없이 기성의 가치에 도전해온 작가의 실험적 예술세계가 두 달 동안 미술관 전관에서 펼쳐졌다. 50여 점의 대형설치작업을 중심으로 조각, 도자, 회화, 사진 등이 모처럼 한 자리에서 대중에 선보이며 드로잉, 육필 원고, 사진자료 등 그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자료들이 최초로 소개됐다.

세잔느의 세상을 담는 전혀 다른 시각과 시도가 없었던들, 피카소와 마티스의 자유로운 상상도 없었을 것이며 오늘날의 현대미술의 풍요도 없었을 것이다. 그를 현대미술의 아버지라고 부르는 이유다. 뒤샹의 악마적 저항이 없었더라면, 변기는 판매점과 화장실에서 만 기능하고 있었을 것이다. 현재의 오브제 작업이라든가 오브제로부터 비롯한 설치작업은 어쩌면 아직은 조심스러웠을 것이다. 백남준의 예술정신도 마찬가지다. 이렇듯 남과 다르게, 기성화단과 예술제도, 예술권력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그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그들이 하지 않는 것을 과감히 실천해나가는 사람. 세상을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는 자들. 자기만족과 현상유지를 부정하고 극복하기 위해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 노력하고 실천하는 자들. 이들이 있었기에 오늘의 현대미술과 미술의 내일은 존재하며 가능할 것이다.

   
 
미국여행길에서 만났던 작가미상의 ‘평범하지 않은 새(uncommon bird)’라는 조각작품이 떠오른다. 전선줄에 나란히, 편안하게 앉은 새들 대부분이 같은 방향을 일제히 바라보고 있을 때, 그들과 반대의 방향을 예의 바라보는 한 마리의 새가 있는 작은 작품이다. 그들과 다른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한 마리의 새. 그 새가 훗날, 결국 세상을 바꾸는 새일 수 있다는 메시지의 작품이다. 반개념, 혹은 당대 보편적인 양태와는 다른 시도와 태도는 때론 주류로부터의 탄압과 노골적 소외, 집단 따돌림 등으로 고통을 당할 수 있다. 또한 그들은 그에게 가능한 모든 물리적/심리적 폭력을 가할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은 결코 그를 무시하지 못한다. 그는 세상을 바꾸어가기 때문이다. 독설과 파격으로 전위(前衛)적이고 미래적인 작업으로 세상을, 미술동네를 심하게 흔들지만, 그가 있어 미술은 진정 긴장하고 발전한다. 그래서 그들은 그를 미치광이로 부르기도 한다. 틀린 말 아니다. 미치지 않고 어떻게 질곡의 한국현대를 살아 올 수 있었겠는가?

이승택의 전위(前衛) 60년을 관통하는 예술실험 모티프는 단연 ‘비(非)물질’이다. 누가 보아도 결코 작품이라고 부를 수 없을 정도의 사소하고 허접한 것들에 대한 애지적 관심으로부터 그의 작업은 비롯했다. 세상 모두가 국내외 동시대의 미감을 따라잡으려 경쟁하고 또 무언가를 잘 꾸미고 만들려고 애쓰던 시절, 그는 모든 것을 뒤집었다. 구체적인 형태나 형체가 없는 비(非)물질에 주목했다. 대부분의 작가들이 안료나 지지체 등과 같은 당면한 물질의 문제를 고민하고 그 고민을 물질로 드러내려 할 때, 비(非)물질적 존재를 환기시키는 아이러니를 세상에 내어 놓았다. 전통은 물론, 당대의 주류 미술관념을 벗어난 파격을 잇달아 선보이며 화단의 이단아, 문제아를 자처했다. 세상은 그를 반항아로 보았지만, 그는 진정 자유로운 예술가였으며 영혼이 건강한 자유인이었다.”

이승택 작가는 "남들이 옳다고 하면 일단 아니라고 보는", 매사를 뒤집어보고 현실을 부정하는 것이 평생 몸에 뱄다고 했다. 홍익대 미대 1학년 시절인 1955년 석고 데생 시간에 남들과 달리 검은 종이 위에 흰 분필로 그림을 그리거나 1956년 당시 '1좌대 1작품'이 관례였던 국전에 받침대 하나에 조각상 2점을 얹었다가 출품을 거부당한 일화는 유명하다.

이승택은 "수많은 작가가 세계적인 미술 사조에 편승해 그 속에서 자신의 것을 개발하면서 작업하지만 나는 50년대 말부터 그런 사조와는 상관없이 독자성을 가진 작업을 했다"고 강조했다.

이승택은 지난 11월 15∼19일 런던 프리즈 아트페어 마스터스 섹션에 한국 작가로는 처음으로 개인 부스로 참여하는 동시에 같은 기간 10여 명의 작가 만 선정해 전시하는 프리즈조각공원에서 대형 설치 작품 '삐라'를 선보이기도 했다.

이처럼 "기존의 개념과 관념을 뒤바꾸는 작업"을 해 온 이승택은 '시대를 앞서 간' 탓에 그다지 주목받지 못한 채 평생 재야에서 활동해야 했다. 대신 인천의 맥아더 장군 동상, 도산공원의 안창호 선생 동상 등 초상 조각으로 생계를 이어간 그는 작업에 있어서는 한결같이 부정과 저항의 정신을 고집했다. 그러다 보니 '거꾸로' 국내보다 해외에서 먼저 인정을 받았다.

'세계 미술계 파워 1위'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 영국 런던 서펜타인 갤러리 디렉터는 "세계 미술사에 남을 독자적인 작가"라고 평했고, 토비아스 버거 홍콩 엠플러스(M+) 미술관 큐레이터는 "현대 미술사를 다시 쓸 작가"라고 극찬하기도 했다.

글,사진/임윤식  k-toda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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