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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적인 천체과학자 이순지(李純之)-(1)해와 달은 물론 행성 위치까지 정확히 계산
마연옥 기자  |  k-toda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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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10.31  14:2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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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을 역사관이라고 한다. 역사관은 사람마다 다르고 다양한 시각이 있을 수 있지만 우리는 그동안 조선시대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면서 폄하해온 경향이 있다. 초등학교 때 교과서에서 ‘조선은 500년 만에 망했다’고 하면서 조선이 망한 이유로 사색당쟁, 대원군의 쇄국정책, 성리학의 공리공론, 반상제도 등을 달달 외우게 했다. 이 때문에 조선은 500년 만에 망한 민족으로 조선역사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이로 인해 각종 외래문화가 우리나라에서 판을 치게 되었으며 도덕은 추락하고 분열되어 좌파와 우파,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내편과 네편으로 나뉘어 서로를 탓하는 등 적대시하기에 이르렀다. 이는 우리만의 고유한 철학과 정신을 잃어버리고 얼이 빠져 과거 위대했던 역사마저도 부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본지는 조선의 역사를 조명함으로써 우리의 전통문화의 우수성을 알리고 우리가 잃어버린 정신은 무엇인지 살펴보고자 한다.

코페르니쿠스가 태양이 아니라 지구가 돈다고 지동설을 주장한 것이 1543년이다. 하지만 코페르니쿠스의 주장에는 물리학적인 증명이 없다. 물리학적으로 지구가 돈다는 것을 증명한 것은 1632년 갈릴레오가 처음으로 시도해 성공했지만 종교법정은 그를 풀어주면서도 길릴레오의 책은 출판을 금지시켰다. 그 책이 인류사에 나온 것은 그로부터 100년 후인 1767년이다.

그러나 조선의 이순지(李純之 1406~1465)는 1400년대에 해와 달은 물론 행성의 위치를 정확하게 계산하고 일식과 월식이 언제 일어나는지 예측할 수 있는 칠정산 내외편(七政算 內外編)을 발간했다. 칠정산(七政算)이란 7개의 움직이는 별을 계산한다는 뜻으로 해와 달, 5행성(수성 ‧ 금성 ‧ 화성 ‧ 목성 ‧ 토성)의 위치를 계산하여 미리 예보하는 것이다.

이 책의 중요성은 서울에서 관측한 자료를 기초로 해서 계산했다는 점이다. 그 전까지는 명나라의 수도인 북경(北京)의 위도를 기준으로 하였으나 이를 서울 기준으로 바로 잡은 것이다.

일본의 경우 칠정산(七政算)에 해당하는 정향력(貞享曆 ‧ 일본인이 만들어 일본에 맞는 역법)은 조선의 것보다 240년 후인 1682년에 등장한다. 이는 조선통신사로 일본에 갔던 나산, 박안기(螺山, 朴安期)가 가르쳐 준 것이었다.

     
 
   
 
명문집안의 태생이 중인 계급에서나 하는 과학자가 되다

지금으로부터 584년 전인 1430년 6월의 어느 날이었다. 세종이 신하들과 국사를 논의하다가 갑자기 신하들은 바라보며 물었다.

“한양의 위도가 얼마인고?”

세종 앞에 늘어선 많은 신하들이 모두 꿀 먹은 벙어리가 돼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러자 세종이 다시 물었다.

“한양의 위도가 얼마인고?”

신하들은 머리를 숙인 채 서로를 힐끔거리기만 할 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침묵이 길어지자 세종이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 한 신하가 앞으로 나섰다.

“한양의 위도는 38도 강(强)이옵니다”

이렇게 대답을 한 신하가 바로 이순지(李純之)다. 당시 그는 승문원에서 외교 문서 관련 업무를 맡았던 전형적인 사대부출신 관료였다. 하지만 세종은 그에게 천문역법을 책임지라며 발탁인사를 단행했다. 명문집안의 태생이 중인 계급에서나 하는 과학자가 되는 순간이었다. 세종은 즉위 초부터 조선의 독자적인 천문역법을 세우고자 했다. 삼국시대에는 주로 중국의 역법을 빌려 썼고 고려 때는 그것을 개성 기준으로 약간 수정해서 사용했다.

조선시대에 한양으로 천도한 후에는 그것을 약간 더 수정해서 사용했지만 근본적으로 조선을 기준으로 한 천체 운동은 계산하지 못했다. 세종은 조선에 맞는 역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중국의 달력을 갖다 써도 해와 달이 뜨는 시간이 다르므로 사리/조금의 때가 정확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순지를 중심으로 조선의 천문역법을 정비하라는 세종의 명에 따라 역법 프로젝트가 본격적으로 진행됐다. 이때 이순지의 나이 약관 29살이었다. 그리고 첫 번째 준 임무가 조선의 실정에 맞는 달력을 만드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순지는 세종에게 진언했다.

“못 만드옵니다.”

“왜 그런 얘기를 하느냐?”

“달력을 만드는 서운관(書雲觀, 오늘날 국립기상천문대)에 인재들이 오지 않사옵니다.”

“왜, 오지 아니하느냐?”

“여기는 승급이 느리옵니다.”

당시 과학자는 중인 계급이나 하는 것으로 인식되었기 때문에 사대부에서는 그리 달가워하지 않는 일이었다. 게다가 한직이었던 것이다.

그러자 세종은 즉시 명령했다.

“서운관의 승급속도를 제일 빠르게 하라!”

“그래도 아니 오옵니다. 서운관의 봉록이 적사옵니다.”

“봉록을 올리거라.”

“그래도 인재들이 안 오옵니다.”

“왜 그러느냐?”

“서운관 관장이 너무나 약하옵니다. 왕의 측근을 보내주시옵소서. 정인지를 보내주시옵소서.”

당시 정인지는 고려사를 쓰고 한글을 만든 집현전 학자이자 세종의 측근 중의 측근, 영의정이었다.

이에 세종은 영의정 정인지를 서운관 관장으로 겸임 발령을 냈다. 그리고 1444년 드디어 조선에 맞는 달력을 만드는 데 성공한다. 이순지는 당시 가장 정확한 달력이라고 알려진 아라비아의 회회력의 체제를 분석해 중국과 아랍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자국에 맞는 독자적인 달력을 만들게 된 것이다.

이순지, 1400년대 지구가 태양을 도는 시간 365일 5시간 48분 45초라고 계산

오늘날 계산인 365일 5시간 48분 46초에 비해 1초밖에 차이나지 않아

일본학자가 쓴 세계천문학사에는 회회력을 가장 과학적으로 정교하게 분석한 책이 조선의 이순지著 ‘칠정산외편(七政算外篇)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순지는 ‘칠정산외편’이라는 달력을 만들어 놓고 1447년 세종 29년 음력 8월 1일 오후 4시 50분 27초에 일식이 시작될 것이며 그날 오후 6시 55분 53초에 끝난다고 예측했다. 그리고 그 예측은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세종은 몹시 기뻐하며 달력의 이름을 ‘칠정력’이라고 이름 붙였다. 이처럼 정교한 달력을 만들 때 핵심기술은 지구가 태양을 도는 시간을 얼마나 정교하게 계산해 내는가에 달려 있다.

‘칠정산외편’에 보면 이순지는 지구가 태양을 도는 데 걸리는 시간은 365일 5시간 48분 45초라고 계산했다. 오늘날 물리학적인 계산은 365일 5시간 48분 46초로 1초 차이가 나게 1400년대에 계산해냈던 것이다. 이는 세종시절의 과학기술 수준이 세계 최정상급이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게다가 세종의 용병술은 절묘했다고밖에 달리 표현할 방도가 없을 정도로 뛰어났다. 신하들의 특성을 절묘하게 조화시켜 동아시아에서 최고의 문명국가로 만드는 기틀을 다져나갔다.

이순지는 이론적 근거를 제시하는 학자로, 이천(李薦 1376~1451. 武臣이며 과학자)을 감독관으로 장영실(蔣英實)은 기술자로 임명해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했다.

그리고 1432년부터 시작된 천문기기(天文機器)제작 사업을 시작해 6년만에 완성한다. 이 기간에 혼천의(渾天儀), 간의(簡儀), 자격루(自擊漏)를 비롯해 앙부일구(仰釜日舅)의 제작이 환료되어 전국으로 배포됐다.

이를 기반으로 계절의 변화와 하루의 시각을 알 수 있는 흠경각루(欽敬閣漏)가 세종의 숙소인 강녕전(康寧殿) 옆 흠경각에 세워졌다.

이순지의 이론적 토대 위에 자격루 만들어져

장영실은 부각된 반면 그가 남긴 뛰어난 업적 평가절하

1436년 이순지는 모친상을 당하여 자신의 후임으로 김담(金淡, 1416~1464)을 추천하고, 시묘살이를 위하여 관직을 물러난다. 김담 역시 훌륭한 천문학자이었지만 세종은 이순지를 종5품에서 정4품으로 무려 3단계나 승급을 시키고 그의 아버지에게까지 명을 내려 상중임에도 불구하고 출사할 것을 명한다.

당시 이순지는 어머니의 시묘를 하며 자식으로서의 도리를 다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두 차례나 눈물로서 상소를 올리며 벼슬을 사양했지만, 세종은 이를 끝내 허락하지 않았다.

1445년(세종 27년)에 <제가역상집>이라는 책을 완성했다. 이 책은 주로 천문, 역법, 의상, 구루의 4부에 걸쳐 당시의 지식을 정리해 놓은 것이다. 의상이란 천문 기구를 말하고, 구루란 해시계와 물시계를 말한다. 세종 때 수많은 천문기구와 해시계, 물시계가 만들어진 것은 바로 이런 연구가 뒷받침되었기 때문이다.

그때도 지금과 같이 자연 과학의 연구에는 수학이 중요한 몫을 차지했다. 이순지는 수학에도 전문가였다. 그래서 토지 측량 사업에도 많은 공을 세웠다. 세조 11년(1465년)에 그가 세상을 떠나자 나라에서는 정평군이라는 시호가 내려졌다.

하지만 이순지는 그가 남긴 업적에 비해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얼마 전 고액권 화폐의 인물을 선정할 때 장영실이 10인의 인물후보군에 포함되었다. 특히 그가 만든 자격루의 유물 그림은 구 1만원권 화폐의 뒷면을 장식하기도 했다. 장여실은 조선시대 과학기술자들을 대표하는 인물처럼 여겨지고 있으나 이순지는 그 업적에 비해 평가 절하돼 안타깝게 한다.

마연옥 기자  k-toda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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