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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고장 역사속 탐방사라진 칠산바다 풍어의 노래 옥당고을, 영광
신수경 기자  |  k-toda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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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10.13  12:5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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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비, 천일염, 수산업 관광산업으로 대변신을 꿈꾸다

해풍을 타고 연한 비린내가 코끝을 스친다. 법성포 포구에는 줄지어 조기가 좋은 볕을 따라 내걸려 해풍을 맞고 있다. 다름 아닌 영광굴비의 고장 영광. 법성포항 앞을 메운 매립지 25만 9천여 ㎡ 부지가 굴비타운으로 변신하고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장소가 되고 있다. 또한 정부는 2019년까지 세계 3대 해상풍력 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한 지역으로 영광의 백수읍 사하리와 염산면 두우리를 거점지역으로 삼겠다는 계획이다. 영광은 천일염 산업으로도 유명하다. 영광의 염산면과 백수읍 바닷가 일대 124곳 580ha에 염전이 자리하고 있다. 매년 6만여톤을 생산, 100억원 이상의 수입을 올리고 있다. 그리고 영광군에는 대규모 산단이 들어서고 있다. 대마면 송죽리 일대 164㎡ 부지를 말하는 데 3년간 2천억원을 들여 미래 녹색 성장 산업기지로 만들기로 했다는 것. 영광군은 이곳을 국내 전기 자동차 산업특구로 키우겠다는 전략이다. CT&T와 AD모터스, 탑알앤디 등 국내 5개 전기자동체 업체중 3개 업체가 투자를 결정한 바 있다.

옥당골, 번성한 포구이자 문물의 집산지

영광은 전라남도의 북서부 끝 해안에 위치한 영광은 북쪽으로 전라북도 고창군과 맞닿아 있다. 현대인에게 널리 알려진 ‘영광굴비’ 영광의 대명사로 통하지만, 이곳은 예전부터 ‘옥당골’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정이품 당상관의 자제가 첫 부임지로 이곳을 거치면 옥당(홍문관)으로 영전하는 경우가 많아서였다. “아들을 낳아 원님으로 보내려면 옥당골로 보내라”라는 말이 전해질 정도였다. 즉 ‘지방 수령을 지내려면 남으로는 전라도 영광, 북으로는 황해도 안악’이라는 말이 있었을 만큼 각종 물산이 풍부하고, 우리나라 서남 해안을 연결하는 뱃길의 중요한 거점으로서 번성하던 고장이었다. 조선시대 말까지 곡식과 특산물을 거둬 한양으로 보내는 조창이었다.

   
 
고려 성종 11년(992) 정부에서 남쪽 지방에 열두 군데의 조창을 설치할 때 지금의 영광 법성포에는 부용창이 두어졌다. 부용창은 조선 시대에 이르기까지 나주의 영산창(영산포)과 함께 전라도의 2대 조창으로서 가장 번성한 포구이자 문물의 집산지가 되었다. 그 후 조선 중종 9년(1514)에 영산창이 폐쇄된 후에는 전라남도 전 지역의 세미를 관할하는 우리나라 최대의 조창이 되었다. 더불어 이 조창을 방비하기 위해 수군 만호가 배치되었고 숙종 34년(1708)에는 법성진으로 승격, 수군첨절제사가 주둔하게 됨에 따라 바다의 자원과 세미를 받아들이는 곳이자 수군기지로서, 또 전라도 최대의 포구로서 번영을 누렸다. 이 무렵부터 홍문관(弘文館)의 별칭(別稱)인 옥당(玉堂)을 상징하는 "옥당고을"의 칭호를 전라도 영광과 황해도 안악에서 사용해오고 있다. 영광은 지금의 법성항을 거쳐 중국과 국교가 있어 국내외 사신들의 왕래가 빈번 하였으므로 일찍이 문화교류가 활발하게 이뤄져 무역항으로 발달하여 "예악문물"이 찬연한 고을이었기 때문에 당시에도 국내외적으로 매우 중요한 위치의 지역이었다.

뜻을 굴하지 않겠다는 의미의 굴비

영광굴비는 옛 부터 임금님의 수랏상에 으뜸으로 오르는 법성포의 자랑이었다고 한다. 유래를 보면 고려 16대 예종 때 이자겸이 유배를 오게 되어 굴비를 먹게 되었는데 그 맛이 너무 좋아 혼자 먹는 것이 임금님께 죄스럽게 생각되어 어떻게 하면 이 맛을 보전하여 먼 곳까지 임금님께 진상할 수 있을까 생각했다고 한다. 그래서 굴비의 나머지를 소금에 간해 바위에 말려서 진상하게 되었는데, 결코 자기의 잘못을 용서받기 위한 아부가 아니고 뜻을 굴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굴비(屈非)로 명명한 데서 유래가 되었다고 합니다.

호남 제일의 포구였던 법성포는 역사의 고장으로써, 백제불교 최초도래지이기도 하다. 지금으로부터 1600여년전 백제 침류왕 원년인 서기 384년에 인도의 고승 마라난타 존자가 중국의 동진을 거쳐 아무포에 도착하여 최초로 불교를 전파한 곳이며, 고려조에는 국가 중추기관인 조창(부용창)이 부용포에 건치 되어 국가의 재정적 측면에 기여했으며, 고려 후기에 그 지명이 법성포로 바뀌었다. 조선조 중종 9년(1514년)에 수군의 기지인 법성진이 설치되면서 법성진성이 축조가 되어 아직도 그 흔적이 남아 있는 곳으로 지금은 서해안의 융기현상으로 토사가 메워져 옛 모습을 찾기가 어려워졌지만, 법성포 12경의 천혜의 절경을 가진 곳이다. 넉넉한 자연 자원만큼 넉넉한 인심을 자랑하는 영광, 영광이 굴비, 천일염 등 수산업과 관광산업 등으로 다시한번 영광의 빛을 재연하기를 꿰하고 있다.

 

신수경 기자  k-toda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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