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획 > 이슈
5.16 혁명, 그리고 새마을 운동과 산림녹화사업 (1)정치권, 도덕적 해이로 극에 달해 … 강력한 도덕적 힘 시대적 요구
정리 노진 기자  |  k-today@hanmail.net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4.09.03  14:07:10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구글 msn

야당의 사사건건 발목잡기와 세월호사건 등으로 사회불안이 증폭되고 있는 현 상황은, 1950년대 후반기의 나라꼴이 엉망이라는 점에서 별반 차이가 없다.

당시 국민에게 희망과 용기를 불어넣고 전쟁으로 잿더미가 된 국가산업을 일으키는 데 앞장서서 혼신의 힘을 쏟아야 할 정치권이 정부나 여야당 할 것 없이 하나같이 도덕의 해이로 부패와 당리당략에만 눈이 어두워 제정신을 못 차리는 상황이었고, 그 해악적 영향이 사회 전반에 미쳐서 나라의 앞날이 암담하기 그지없었다. 이미 치러낸 전쟁만 국난이었던 것이 아니라 전후의 상황 역시 국난의 연장선이었다.

   
 
게다가 4.19민주혁명과 그 이후의 국내사정은 사회혼란의 절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자유당정권이 무너지고 민주당이 집권했으나, 학생들과 민중의 봉기 덕분에 정권을 거저 얻은 민주당은 한 지붕 아래서 구파와 신파로 갈라져 밥그릇 싸움에 여념이 없었고, 가장 강한 사회집단세력으로 떠오른 학생들은 현실성을 벗어난 남북통일을 외치며 북한 젊은이들과 대화하겠다고 판문점으로 달려가는 판이었다. 그야말로 국가의 위기는 극에 달해 있었다. 이 위기국면을 슬기롭게 수습하고 나라를 구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도덕적 힘이 필요했다.

장경순 장군은 그 힘을 갖추고 있는 집단은 오로지 군부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때문에 그는 박정희 장군을 만나는 자리에서 넌지시 얘기하곤 했다.

"각하, 우리나라 야단났습니다. 이래 가지고야 되겠습니까? 정말이지 무슨 수가 나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박 장군은 침통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거나 기껏해야 짧은 대답이 고작이었다. 그러던 1961년 5월 15일 오후 3시 무렵, 나에게 박 장군으로부터 호출명령이 떨어졌다.

"각하, 그렇다고 이렇게 주저앉을 일이 아니잖습니까? 갑시다."

오후 5시, 내가 근무를 마치자마자 박정희 장군의 신당동 자택으로 지프를 타고 달려가자, 박 장군은 굳은 얼굴로 맞이했다. 거실에서 단 둘이 마주앉았다.

"장 장군, 오늘밤이 거사요."

박 장군의 청천벽력 같은 말이 떨어졌고, 자초지종을 설명한 뒤 도와달라고 했다. 임무는 ‘낙하산부대 동원과 장도영 장군을 설득하는 것’이었다. 대화는 채 5분도 걸리지 않았다. 내가 일어나 나오려고 하자, 박 장군은 밤 10시에 종로 화신백화점 뒤 미화호텔에 가서 한웅진 장군을 데려오라고 말했다. 지프를 달려 10시 조금 전에 미화호텔에 도착했지만, 한 장군은 약 5분이 지나서야 꺼떡꺼떡 들어왔다.

장경순과 한 장군이 신당동 박정희 장군 집에 도착해 문을 열고 들어가자, 마루의 소파에 앉아 있던 박 장군은 신발을 벗지 말고 오라오라고 하면서 침통한 표정을 지었다. 거사가 폭로되었다는 것이었다. 사는냐 죽느냐 일촉즉발의 순간이었다.

나는 피가 정수리로 확 솟구치는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이대로 물러설 수는 없는 일이었다.

"각하, 그렇다고 이렇게 주저앉을 일이 아니잖습니까? 갑시다. 기왕지사 한번 해보고 죽든지 살든지 해야 할 것 아닙니까? 각하께선 한 장군과 같이 빨리 먼저 출발하십시오. 제가 뒤를 따르겠습니다."

모두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나왔다.

박정희 장군의 지프가 출발하자, 어디선가 난데없는 지프 한 대가 골목에서 튀어나와 따라붙었다.

소령 두 명을 뒷자리에 태우고 앞자리에 뛰어오른 나는 마음이 다급해진 나머지 운전병더러 미행차량을 추월해 가로막으라고 지시했다. 그렇게 되자 지프 한 대는 앞서가고 두 대는 뒤에서 엎치락뒤치락 서로 진로를 방해하며 따라가는 형국이 되었다. 광화문 네거리를 지나 한강대교에 이르기까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는 곡예가 한동안 벌어졌다. 그래서 나는 운전병더러 초스피드로 달려 다리를 건너도록 지시했다. 그런 다음 사육신묘 있는 근처에서 차를 세우고 권총에 실탄을 재었다. 여차하면 미행자를 처치해버릴 각오였다. 그러나 문제의 미행차량은 강을 건너지 않았고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낙하산부대를 동원해 한바탕 해보고 나서 책임을 지든지 말든지 해야 할 거 아니냐고. 그러나저러나 이 노릇을 어쩐담.'

영등포와 김포공항으로 갈라지는 분기점에 도달하자, 박정희 장군이 차를 멈춘 채 기다리고 있었다. 두 대의 지프는 어둠을 뚫고 쏜살같이 제6관구사령부를 향해 달렸다.

제6관구사령부에 도달하자, 정문 앞에 부챗살 모양으로 포진해 있던 병력이 앞서서 달려오는 박 장군의 차를 삽시간에 에워쌌다. 나는 박 장군 안위가 몹시 걱정되는 것은 물론이고 역사의 물꼬를 바로잡으려는 혁명봉기가 채 날개를 펴보기도 전에 이처럼 한순간에 접게 마는 것이 아닌가 싶어 가슴이 터지는 것 같았다.

'까짓 거 기왕 여기가지 왔으니, 낙하산부대를 동원해 한바탕 해보고 나서 책임을 지든지 말든지 해야 할 거 아니냐고. 그러나저러나 이 노릇을 어쩐담.'

그는 캄캄한 어둠 속에서 차를 돌려 공수특전단으로 들어갔다. 그래서 낙하산부대 동원문제를 해결했지만 박정희 장군의 안위가 걱정되었다. 차를 타고 출발해 제6관구사령부로 향했다. 제6관구사령부에 도착해 막 들어가려다 육군헌병감 조흥만 준장과 마주쳤다.

조 준장은 군고위층의 명령을 받고 박정희 장군을 체포하러 왔으나 박 장군을 만나자 그의 기에 눌러 감히 체포할 엄두를 못 내고는 얼굴이 백지장처럼 되어 나오다가 나를 만난 것이다.

"조 장군, 우리끼리 한번 피를 흘려보겠어, 아니면 협조를 하겠어?"

장경순의 기세에 질렸는지, 조 준장은 협조하겠다고 순순히 대답했다.

그때, 한강대교 쪽에서 총성이 들려왔다. 혁명군 일부와 이들의 시내 진입을 저지하려는 헌병대 사이의 총격전이었다. 조 준장은 즉시 출동 헌병대 지휘관에게 전화를 걸어 병력을 철수시켰다.

제6관구사령부는 비상사태를 당하여 갈피를 잡지 못해 우왕좌왕하고 있었고, 실내의 팽팽한 긴장감은 거의 폭발직전이었다. 그러다가 내가 나타나자 그의 기세가 하도 험악해보였는지 분위기가 약간 가라앉는 듯했다.

나는 서종철 장군한테 경례를 했다.

"각하, 수고하십니다. 박정희 장군은 어디 계십니까?"

"여기 없소. 조금 전에 떠났소."

그러자 김재춘 대령이, 박 장군은 해병대 병력을 동원하러 갔다고 알려주었다. 김포에 주둔하고 있는 해병 제5여단이 혁명군에 동참하기로 되어 있었던 것이다.

나는 서종철 장군한테 요구했다.

"각하, 죄송하지만 참모총장 각하께 전화해서 저 좀 대주시지요. 제가 직접 걸면 받지 않으실 겁니다."

서 장군은 다이얼을 돌려 장도영 장군을 부르더니 수화기를 나에게 넘겼다.

"각하, 장경순입니다. 지금 어디 계십니까?"

"아니, 장 장군. 아직도 거기 있는 거요?"

"곧바로 각하를 뵈러 가겠습니다."

"여보, 이거 왜 이래. 지금이라도 늦지 않으니까 돌아가라고, 제발!"

그리고 장도영 장군은 전화를 딸깍 끊었다. (계속)

정리 노진 기자  k-today@hanmail.net

<저작권자 © 오늘의한국,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최근인기기사
1
국회 개원 이후 최초 원가검증기구 운영한다
2
완도군, 4개 권역 352억 투입 어촌 성장 이끈다
3
맑은 하늘이지만 황사 영향, 큰 일교차 주의해야
4
산자중기소위, 코로나 피해 지원 위한 추경예산 수정의결
5
윤석열 전 검찰총장 대선 후보 적합도 39.1% 단연 1위
6
박영선·오세훈, 'MB아바타'·'독재자 아바타' 설전
7
박병석 국회의장, 낸시 펠로시 미국 연방 하원의장과 첫 화상회담
8
[국회] 임신 중인 근로자도 육아휴직 가능해진다
9
매년 4월 12일, ‘도서관의 날’로 정한다
10
국회 정무위원회, 안정적인 서민금융 재원 확보 방안 마련
회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08513) 서울특별시 금천구 벚꽃로234 | 대표전화 : 02)702-0111 | 팩스 : 070-4275-1429
잡지사업등록번호 : 서울중, 라00675 | 등록일 : 1982년 12월 23일 | 인터넷신문사업등록번호 : 서울 아03244
회장: 임윤식 | 사장: 정희돈 | 편집국장 : 정재형 | 청소년보호책임자 : 정재형
Copyright © 2013 오늘의한국.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