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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6 혁명, 그리고 새마을 운동과 산림녹화사업 (2)
정리 노진 기자  |  k-toda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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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09.03  14:0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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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제서야 해병장교는 정신이 번쩍 든 듯, 각 차량의 헤드라이트를 환하게 켜도록 해서 속력을 내어 한강대교를 건너기 시작했다.

나는 장도영 참모총장을 만나 설득하기 위해서 제6관구사령부를 출발해 육군본부로 향했다. 노량진에 이르렀을 때였다. 전방에 여러 대의 군용차량이 마치 야간훈련에서 이동하는 것처럼 헤드라이트를 가린 채 나와 같은 방향으로 꾸물꾸물 움직이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해병대 트럭이었고, 적재함에는 완전무장 차림의 병사들이 타고 있었다.

그 광경을 보자 열이 뻗쳤다. 이런 넋 빠진 놈들이 있나 싶었다. 차량들을 차례로 추월해 맨 앞으로 가서 지프를 타고 있는 지휘관에게 소리를 질렀다.

"이봐, 귀관! 이게 도대체 뭐하는 짓이야. 혁명하러 가면서 이렇게 꾸물대 가지고야 일이 되겠어? 헤드라이트 켜고 빨리 좀 전진 못해?"

그제서야 해병장교는 정신이 번쩍 든 듯, 각 차량의 헤드라이트를 환하게 켜도록 해서 속력을 내어 한강대교를 건너기 시작했다.

육군본부로 달려가다가 문득 한웅진 장군이 떠올랐다. 그는 방송국을 장악해 군사혁명소식을 세상에 공표하는 임무를 맡고 있었다. 그렇게 함으로써 혁명성공을 기정사실화해버린다는 전략이었다.

나는 운전병더러 KBS로 가자고 했다. 당시 KBS는 지금의 세종호텔 쪽 남산 밑에 있었다. 서울역 근처에 도달하자, 전방에서 콩을 볶는 듯한 총성이 들려왔다. 드디어 상황이 벌어졌구나 싶어 긴장해서 현장에 도착해보니, 앞서간 혁명군 해병대가 멈춰선 채 전방을 향해 마구 실탄을 난사하고 있었다. 가만히 보니 저쪽에서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목표도 방향도 없이 캄캄한 어둠을 향해 방아쇠를 당기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나는 하도 기가 막혀 해병대 지휘관을 닦아세웠다.

"이봐, 귀관. 지금 어디다 대고 쏘는 거야? 사격 당장 중지시켜. 적도 아무것도 없는데 무슨 얼빠진 짓거리야. 당장 전진해!"

내가 호통을 치자, 그제야 해병부대장은 부하들을 이끌고 중앙청 쪽으로 진출하기 시작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장교는 오정근 중령이었고, 내 배재중학교 후배였다. 제3공화국 때 국세청장을 한 사람이 바로 그다.

해병대를 보내고 퇴계로 쪽으로 차를 몰아 이윽고 KBS 앞에 도착하자, 한웅진 장군이 안에서 나오다가 나를 보고 엄지손가락을 세우며 눈짓을 했다. 맡은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했다는 득의의 제스처였다. 나는 그제야 마음이 놓였다.

이제 장도영 장군과 부딪힐 일만 남았다. 장 장군 앞에 도달하지도 못한 채 누군가의 제지를 받아 체포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었다. 더군다나 다른 곳도 아닌 육군본부가 아닌가. 그만큼 단신으로 적군 사령부에 뛰어드는 것에 못지않은 담력과 각오가 필요했다.

그런데 내가 도착했을 때는 다행히도 문재준 중령이 휘하병력을 이끌고 저지선을 돌파해 육군본부를 실질적으로 막 장악한 직후였다.

"송 장군, 당신이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혁명에 훼방 놓앗다며?"

내가 들어가자, 장도영 장군이 손사래를 치며 다급하게 외쳤다.

"장 장군, 10분만! 아니, 5분!"

잠시 밖에 대기하고 있다가 나중에 들어오라는 뜻이었다. 나는 속으로 '지금이 어느 때라고'하며 막무가내로 밀고 들어갔다.

"각하, 저더러 나가라는 말씀입니까? 제가 아니라, 나갈 사람은 따로 있습니다."

그런 다음 그 자리의 기라성 같은 장성들 중에서 송석하 소장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소리를 질렀다.

"송 장군, 당신이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혁명에 훼방 놓았다며? 지금 나라의 운명이 걸린 위급상황인데, 무슨 그 따위 생각을 해. 나가! 당장 나가!"

그는 소장이고 나는 준장이었지만, 상관에 대한 예우고 뭐고 없이 몰아붙였다. 실내 분위기는 삽시간에 살얼음판처럼 되고 말았다. 모두 어안이 벙벙해서 굳은 표정이었고, 당사자로 지목된 송 장군은 얼굴이 하얘졌다.

가만히 생각하니, 장도영 참모총장 한 사람한테 단도직입으로 부딪혀서는 안 될 일인 것 같았다. 그래서 김신 공군참모총장의 손을 잡아끌며 잠깐 둘이 보자고 했다. 김 장군이 슬그머니 일어나서 따라 나왔다.

"각하, 각하야말로 다름 아닌 바로 김구 선생님 자제분 아니십니까. 추앙받는 애국자요 민족지도자로서 평생을 애쓰시다 비명에 돌아가신 선친을 생각해서라도, 누구보다 먼저 각하께서 이 혁명에 솔선 동참하고 지휘를 하셔야 하는 겁니다. 그래서 나라를 살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내가 아픈 데를 꼬집으며 설득하자, 김 장군은 협조하겠다고 선선히 응했다.

나는 참모총장실에 돌아와 이전에는 해병대사령관 김성은 장군을 끌어내 설득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성호 해군참모총장을 데려나가 역시 혁명을 인정하도록 만들었다.

그제서야 장도영 장군은 협조에 응했다. 대세가 기울었다고 판단한 그는 결국 한동안 혁명의 얼굴마담 노릇을 하게 되었다.

전군에 초비상이 걸린 상태에서 혁명의 성공이 가시권에 들어오게 되었고 KBS는 '혁명의 소리'를 라디오로 계속 내보내고 있었다. 5.16 혁명은 그렇게 성공했고, 그때부터 대한민국 역사는 오랜 굴절과 혼돈을 접고 희망과 번영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나는 박정희 대통령에게 혁명 성공 이후 본연의 임무로 돌아가기로 했으니, 그렇게 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각자 본연의 임무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느냐고 대답했다. 정치가 썩을 대로 썩어서 돌아갈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장경순 장군은 농림부 장관을 지내면서 본격적인 산림녹화사업을 추진해 대성공을 거두게 된다. 그는 요즘도 어쩌다 시골길을 달리며 주위의 울창한 삼림을 볼 때마다 신선한 감회와 아울러 뿌듯한 긍지를 느낀다고 한다. 그는 원래 시골 출신인 데다 청년시절부터 농촌부흥운동에 대한 꿈을 간직하고 있었다.

그렇다보니 그 당시 우리나라의 헐벗은 산을 볼 때마다 가슴이 아프고 몹시 안타깝게 여겼다. 농촌사람들뿐 아니라 도시사람들까지 모두 불을 때 취사와 난방을 해결하는 시대였으니 산에 나무가 남아날 수 없엇을 뿐 아니라, 가뜩이나 한국전쟁을 치르는 동안 포화로 전국의 산들이 엉망이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1960년대 초에 사방(砂防)과 조림사업이 시급한 전국의 붉은 산이 무려 37만7,000정보나 되었다.

장 전 부의장은 제18대 농림부장관에 취임하면서부터 산림녹화사업을 농정과제의 첫 번째로 삼아 과감하게 추진함으로써 전국의 산들을 푸르게 만들었던 것이다. (계속)

 

정리 노진 기자  k-toda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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