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1월 12일 오바마 대통령은 G20 수뇌회의가 끝난 뒤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리고 마지막 문제는 주최측인 한국기자들에게 질문할 수 있는 발언권을 주었다. 그러나 한국기자들 중에서는 질문하는 기자가 아무도 없었다. 한동안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그 때 중국 CCTV의 루이청깡이 일어나서 “저는 중국에서 왔습니다. 제가 전 아시아를 대표해서 질문하겠습니다”라고 말한다.

오바마는 “마지막 질문은 한국 기자에게 주도록 하겠습니다”라고 밝히지만 루이청깡은 끝까지 “그럼 여기 있는 한국 친구들이 저에게 그들을 대표해서 질문하게 한다면 어떻겠습니까?”라고 밝히자 묘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이러한 돌출행동은 상대방을 무시하는 처사이며 기자로서의 예의에도 어긋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바마는 직접적으로 거부하기 어려운 상황에 직면했지만 한국기자들에게 질문을 하라고 재차 요구를 했다. 그렇게까지 하는데도 한국기자들이 꿀 먹은 벙어리같이 앉아있자 번역하는 사람이 있다는 말까지 친절하게 했다. 하지만 황당하게도 단 한명의 한국기자도 질문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오바마는 또 다시 한국기자들을 불러보지만 대답 없는 메아리일 뿐이었다. 이 때문에 한국 기자들이 오바마를 바보로 만들고 한국의 국격을 떨어트렸다는 비판을 면치 못했다. 오바마는 그만큼 한국기자들을 배려하는 의도가 분명했음에도 단 하나의 질문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 결과 중국 기자가 한국기자를 대표해서 질문을 하는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이 때문에 어떻게 중국기자가 한국기자를 대표해서 질문을 하게 만들 수 있냐는 여론이 들끓었다. 중국기자의 예의를 망각한 행동에 대해 강력하게 비판해도 모자를 판에 한국 기자들은 한심하게도 침묵으로 일관했다는 비난이다.

이는 우리나라 주입식 교육의 병폐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꼽히고 있다.

추종자는 될지언정 리더는 될 수 없다

스웨덴 왕립과학원 회원이자 예테보리대 물리학과 매츠 존슨 교수는 “한국 학생들은 매우 큰 꿈을 꾸고 열심히 공부한다. 하지만 강의나 토론을 할 때 질문하는 것을 망설여 깜짝 놀랐다. 기존 학문에 도전하고 비판하지 않는 학생들이 자라서 어떻게 사회 ‧ 문화 ‧ 경제적 혁신을 이끌 수 있을까.”라고 우려를 나타냈다. 이러한 그의 경고는 ‘추종자는 될지언정 리더는 될 수 없다’는 따끔한 일침으로 받아들여진다.

서울대학교 경력개발센터 소장을 맡고 있는 김태완 교수(조선해양공학과)는 우리나라의 기형적 교육시스템과 암기식 교육방식의 폐해에 대해 누구보다 강한 문제제기를 해왔다.

그는 “최고의 학부생들만 모이는 명문대이지만, 정작 토론문화에 쭈뻣해하고 논술마저 대학 입학에 필요한 ‘공정’쯤으로 인식한 채 주입식 교육에만 익숙한 학생들을 볼 때마다 우리의 교육시스템에선 ‘오바마 대통령’ 같은 미래형 글로벌 인재는 나오기 힘들겠다는 암울함마저 느껴진다.”고 토로했다.

한국이라는 치열한 경쟁이라는 울타리 속에서 태어나서 유아때부터 ‘영어 유치원→사립초등학교→국제중학교→특목고등학교’라는 방정식에서 한 치도 어긋나지 않아야 ‘명문대 입학’이라는 등식이 성립될 수 있다는 압박감은 이미 자녀를 둔 학부모라면 ‘한국사회의 성공법칙’으로 인식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 같은 기형적 교육시스템은 결국 높은 대학진학률에도 불구, 기술인력 부족을 비롯해 실업률 상승, 취업률 하락 등으로 이어지면서 다양한 분야에서 국가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주요변수가 된다는 게 김 교수의 판단이다.

그는 “한국의 교육현실은 대학 입학 이후 진로를 탐색하기 시작하고 무엇을 해야 할 지 몰라 당황하는 경우를 많이 봤다”며 “결국 할 수 있는 양질의 일자리가 제한되고 일자리, 산업, 부가가치를 창출하기에는 너무 경직된 교육시스템”이라고 비판했다.

또한 그는 우리교육의 문제점으로 ‘초등학교 토론교육 시스템의 원천적인 부재’와 ‘높은 학업 성취도에 비해 의사전달 능력이 부족’하고, ‘대학입시 중심의 주입식 교육으로 인한 수동적 학습태도’, ‘오바마대통령과 같은 의사전달 능력을 갖춘 인재의 부재’ 등을 꼽았다.

게다가 너도나도 오직 명문대만을 바라보고 모든 초·중·고교 과정이 대학입시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보니 결과를 인정하고, 승자와 패자가 서로를 배려하는 문화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계속)

마연옥 기자  k-toda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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