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오랫만에 홍대 앞을 가봤다. 아니 처음이 아니던가? 제일 먼저 어느 식당 앞 메뉴판이 나를 깨운다. 오늘의 메뉴 '흡연 가능'. 그렇지. 이런게 홍대 앞이라지. 홍대 앞은 이런 식이라지.

한달 전 쯤 서지가인 지인을 따라 중고서점에 들어간 적이 있다. 오랫만에 가 본 중고서점. 60년대 냄새가 풀풀 나는 지하헌책방이다. 그곳에서 우연히 발견한 책 한권 '홍대 앞 새벽 세시'. 시인이며 밴드 '3호선 버터플라이'의 기타리스트인 성기완이 쓴 홍대 앞 인디문화 10년 풍경이란다. 인디문화? 뭔가 흥미가 당긴다. 젊음의 거리가 궁금하다. 내가 홍대 앞을 가본 적이 정말 있던가? 5천원을 주고 그 책을 샀다. 동행한 서지가가 놀란다.

홍대 앞 문화란 무엇일까? 이 책에서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홍대 앞'이란 이름은 일종의 이미지다. 어딘가 예술적이겠지. 어쩐지 괴짜 같겠지. 멋이 있겠지. 전위적이겠지. 홍대 앞 풍경은 이러한 기대에 부응한다. '이상하게 하고 다녀도 괜찮은 동네다. 맘껏 괴짜여도 좋은 동네다."

아니, 이곳은 이상하게 옷을 입고 괴짜처럼 행동해야 어울리는 동네인지도 모른다. 위험할 것 같으면서도 안전한 동네. 젊은이들이 가장 가고싶어하는 쉼터. 맞나?

독일이 통일되기 직전인 1988년. 필자는 IMF총회 참석차 서베를린에 가서 ‘베를린 장벽’을 본 적이 있다. 불과 사람 키 두배 높이도 되지않을 듯한 그 국경장벽에는 독일국민들의 한이 서린 낙서들이 끝없이 그려져 있었다. 그건 낙서가 아니었다. 피를 토하듯 그려낸 독일인들의 염원이었다. ‘혼’이 담긴 예술이었다. 그 벽이 다음 해에 무너지고 드디어 1990년 정식 통일이 이뤄졌다.

또, 최근 런던 테임즈강변 ‘퀸즈워크’를 걸으며 내셔널 씨어터 옆 담벼락의 낙서들을 보고 놀란 적이 있다. 어둠침침한 벽 전체가 온통 낙서투성이. 그게 지저분하다기 보다는 멋지고 조형미가 있다고 느낀 적이 있다. 아니, 낙서도 예술이 되겠구나 하고 감탄한 적이 있다. 그런데 홍대 앞 골목들이 바로 그 모양이다.

홍대 앞은 낙서가 예술인 동네다. 골목과 빌딩 곳곳이 낙서 천지다. 낙서가 멋스럽고 아름답다. 이 낙서 속에 젊은이들의 외침과 갈증이 얼마나 그려져 있을까? 낙서 어느 구석에 그게 숨겨져 있을까? 낙서와 예술의 경계는 어디 쯤일까? 피카소의 고향도 이럴까....

홍대 앞은 빌딩 위를 걸어다니 듯 아슬아슬하면서도 사랑이 펄펄 나는 동네다. 상상(想想)이 꼬리를 무는 예술마당이다. 멋진 난장판이다.

글 임윤식  k-toda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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