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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청, 유서깊은 '옛길' 6개소 명승으로 지정지역 관광활성화 콘텐츠 개발 지자체와 공유 추진
한창세 기자  |  ko-toda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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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1.09.18  19: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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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남대로 갈재, 삼남대로 누릿재, 관동대로 구질현, 창녕 남지 개비리, 백운산 칠족령, 울진 십이령 지정 예고

문화재청(청장 김현모)은 16일 삼남대로 갈재와 삼남대로 누릿재, 관동대로 구질현, 창녕 남지 개비리, 백운산 칠족령, 울진 십이령 총 6개소의 옛길을 국가지정문화재 명승으로 지정 예고했다.

지난 2020년 구룡령 옛길 등 명승으로 지정된 옛길 6개소는 옛길 별로 이야기 자원 발굴과 상시프로그램·각종 행사·미디어콘텐츠 개발 등 특색에 맞는 프로그램 개발과 상품화를 추진한 바 있다.

이번 삼남대로 갈재 등 6개 옛길은 문화재청의 ‘옛길 명승자원조사’ 와 관계전문가, 지방자치단체의 추천을 받아 발굴한 옛길 잠재자원 21개소 중 현지조사, 문화재위원회 검토 등을 거쳐 역사문화적 가치, 경관적 가치, 생태적 가치, 활용 가치 등을 고려해 명승으로 지정 추진됐다.

조선시대 옛길 국가 주요 간선로 역할

과거의 옛길은 주로 고려시대에 통치 목적으로 건설된 역로(驛路) 였다가 조선시대로 이어지면서 국가의 중요 간선도로 시설로 여겨졌다.

조선 후기에는 민간 상업이 활발해지면서 물자유통 등 교류가 많아졌고, 이용이 빈번한 도로는 대로로 승격되었고 전국적으로 9개 대로 체계가 완성됐다.

특히 삼남대로, 관동대로, 영남대로, 의주대로 등 간선도로는 한양을 중심으로 전국과 연결되었고, 민간교역 기능도 점차 높아졌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당시 도시개발에 따라 대부분의 옛길이 신작로로 바뀌는 과정에서 좁은 길이 확장되고 길가에 가로수가 세워지면서 본래의 옛 모습을 잃었다.

문화와 역사, 전통 등 정신적 가치 살려야

현재까지 남아 있는 몇몇 옛길마저도 임도(林道)로 사용되면서 훼손돼 역사적으로 중요한 옛길이 더 이상 훼손되지 않도록 보존할 필요가 요구됐다.

옛길은 ‘예전부터 다니던 길’ 또는 ‘옛날에 존재했던 길’ 등의 사전적 의미를 넘어 명승 옛길은 단순히 시간과 공간의 의미만이 아닌 인간과 자연과 교감의 결과다.

또 오랜 시간 축적되어 온 문화와 역사, 전통 등을 포함하는 정신적 가치와 선조들의 생활상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삼남대로

   
사진=문화재청

‘삼남대로’는 한양에서 충청‧전라‧경상, 즉 삼남지방으로 가는 길로서 삼례-전주-태인-정읍-나주-강진을 거쳐 해남의 이진항에서 제주에 이르는 약 970리(약 388km) 길을 말한다.

삼남대로 갈재

'삼남대로 갈재'는 고려 시대 현종이 나주로 몽진할 때 이용한 삼남대로의 대표적 고갯길로, 신증동국여지승람, 호남읍지, 동여도 등 각종 지리지와 고지도에 ‘노령(蘆嶺)’, ‘갈령(葛嶺)’, ‘위령(葦嶺)’ 등으로 표시되어 있다.

이곳은 전라북도와 전라남도를 구분하는 상징적인 장소로 조선 시대 많은 문인들이 이곳을 지나는 등 역사적 가치와 중요성이 높다.

   
사진=문화재청

또한, 송시열이 기사환국(己巳換局) 으로 사사되기 전 마지막 여정이 갈재였으며, 동학농민군이 장성에서 대승을 거두고 곧바로 정읍으로 향하기 위해 갈재를 넘었다고 한다.

기사환국은 1689년 숙종의 장자 균의 원자책봉을 계기로 송시열 등 서인이 축출되고 남인이 장악한 사건이다.

길 가운데 축대가 조성되어 마차와 사람들이 다녔던 경로가 구분되고, 돌무지가 회전 교차로의 역할을 하는 등 과거 교역을 위해 활발히 이용되었던 옛길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이외에도 정읍과 장성을 연결하는 돌길, 흙길의 형태가 잘 남아 있고, 고갯길 정상에는 부사 홍병위 불망비가 위치하는 등 옛길을 따라 다양한 문화유산과 함께 주변에 참나무, 단풍나무, 소나무 등이 우거져 경관적 가치 또한 크다.

삼남대로 누릿재

'삼남대로 누릿재' 역시 조선 시대 강진과 영암을 잇는 삼남대로의 중요한 고갯길로 광여도, 강진군읍지  등에 ‘황치(黃峙)’로 기록되어 있고, ‘황현(黃峴)’이라 불렸다.

   
사진=문화재청

정약용, 최익현, 송시열, 김정희 등 많은 문사들의 방문기록이 내려오는 등 역사적 가치가 큰 옛길이다.

특히, 정약용은 강진에서 유배를 지내며 월출산과 누릿재를 여러 시와 글로 남기기도 했다.

조선 시대에는 강진과 해남, 제주 등지로 유배를 갈 때 주요 경로였으며, 반대로 강진, 해남 일대의 선비들이 한양으로 과거를 치르러 올라가는 길이었다.

월출산을 넘어 강진으로 가는 길은 험하지만 거리가 짧은 누릿재와 상대적으로 낮은 고개를 넘어가는 불티재가 있었으나,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누릿재를 주로 이용했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인근 주민들이 영암장, 나주장을 다니며 오래도록 지역을 연결하는 통로가 됐다.

또한, 옛길에서 보이는 월출산과 농촌경관이 조화를 이루고 있고, 정상부 인근에 넓게 분포하는 서낭당 돌무더기 등이 남아 있어 다양한 옛길 문화를 보여주는 민속적 가치가 뛰어나다.

관동대로

‘관동대로’는 한양에서부터 양평-원주-강릉-삼척을 거쳐 울진 평해까지 약 885리(약 357km)에 이르는 도로다.

   
사진=문화재청

관동대로 구질현은 강원도에서 한양, 수도권으로 향하는 관동대로의 일부로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구질현(仇叱峴,)’이라 기록되어 있으며, 광여도에는 ‘구존치(九存峙)’로도 표기되어 있다.

지형이 험해 ‘아홉 번은 쉬고 나서야 고개를 넘을 수 있다’고 해서 ‘구둔치’로 불리기도 했다.

길 주변에는 계단식 지형이나 습지가 형성된 것으로 보아 농사를 지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1940년대 중앙선 철로가 개통된 이후에도 주민들은 양동면 시장이나 지평시내를 갈 때 기찻삯이 비싸 소나 말 등을 기차에 싣고 갈 수 없어 옛길을 이용했다고 한다.

특히, 양동장과 횡성장을 오가는 소몰이꾼들이 이 길을 자주 다니면서 강도바위 이야기가 전해진다.

길 중간 낭떠러지에 바위가 있었는데, 강도들이 이 바위 뒤에 숨어있다 소를 팔고 온 상인들의 돈을 뺏고 낭떠러지로 밀어버렸다고 한다.

또한, 이곳은 남한강 수운을 이용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길목으로 오랜 시간 많은 사람들이 왕래하면서 V(브이)자 형의 독특한 지형이 형성됐고, 옛길을 따라 수림이 울창하고 경관이 빼어나다.

창녕 남지 개비리

'창녕 남지 개비리'는 박진(朴津)과 기강(歧江)이 만나는 곳에 위치한 옛길로 소금과 젓갈을 등에 진 등짐장수와 인근 지역민들의 생활길로 애용되었으며 일제강점기 지형도에도 옛길의 경로가 기록되어 있는 유서 깊은 곳이다.

개비리는 ‘개가 다닌 절벽(비리)’ 또는 ‘강가(개) 절벽(비리)에 난 길’이라는 뜻으로, 선조들은 과거 낙동강의 수위가 지금보다 높아 발아래에는 강물이 차오르고, 아슬아슬한 벼랑길임에도 생계를 이어나가기 위해 옛길에 올랐다고 한다.

일제강점기 신작로를 만들 때 자동차가 통행할 수 있는 최소한의 경사와 너비를 확보하기 어려웠던 덕에 옛길의 모습이 비교적 잘 남아 있다.

   
사진=문화재청

벼랑길에서 조망되는 낙동강의 모습과 소나무, 상수리나무 등으로 이루어진 식생이 옛길과 어우러져 자연경관이 아름다운 명승지이다.

백운산 칠족령

'백운산 칠족령'은 평창과 정선을 연결하는 대표적 고갯길로 순조 대 편찬된 만기요람에 동남쪽의 통로로 기록되어 있고, 문희리(文希里)를 거쳐 동면내창(東面內倉)으로 가는 경로가 평창군 오면 지도에 구체적으로 표시되어 있다.

이곳은 동강(남한강 상류)에 이르는 최단 경로로서 1960년대까지만 해도 동강을 통해 소백산 일대 금강송을 서울로 운송하던 떼꾼들이 애용했다고 전해지며, 길을 따라 감입곡류(하천이 계곡을 파고들며 굽어 흐르는 현상)를 이루는 동강의 빼어난 경관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울진 십이령

'울진 십이령'은 두천원(斗川院)을 기점으로 봉화 인근 내륙의 생산품과 울진 인근의 해산물을 교역하던 십이령의 일부로, 샛재·바릿재 등 옛 십이령의 주요지점이 잘 남아있다.

십이령은 울진과 봉화에 걸쳐 위치한 12개의 큰 고개를 말하며, 영남지방을 대표하는 험준한 길로 사대부보다는 주로 상인들이 오가던 길이었다.

조선 후기 문신 이인행(李仁行, 1758~1833)은 신야집(新野集)에 유배지까지의 여정 중 겪었던 험한 길 중 십이령을 첫 번째로 꼽았고, 이곳에서 어염(魚鹽, 바다에서 나는 물고기와 소금)을 파는 상인들이 끊임없이 왕래하던 모습을 남겼다.

실제 울진 십이령은 울진 내성행상 불망비, 성황당과 주막 터, 현령 이광전 영세불망비 등 보부상과 관련된 역사문화적 요소가 현재까지 전해지고 있다.

특히, 샛재에 위치한 ‘조령 성황사’는 옛 보부상들이 성공적인 행상을 기원하며 제사를 지내던 곳으로, 오가는 길손들뿐만 아니라 주민들이 정기적인 배향을 하는 유서 깊은 곳이다.

황장봉산 동계표석

'황장봉산 동계표석'(黃腸封山 東界標石)은 양질의 소나무인 황장목을 확보하기 위해 해당 지역을 봉산(封山, 나라에서 나무 베는 것을 금지하던 산)으로 지정한 것으로 옛길 주변에 우거진 금강송을 볼 수 있다.

문화재청은 올해부터 옛길 6개소 지역 관광활성화를 위해 6개소  명승 옛길 콘텐츠를 개발하고, 해당 지자체와 관련단체에도 이를 공유할 계획이다.

한창세 기자  ko-toda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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