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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음악 작곡가 이동훈] “우리 음악이 얼마나 좋은데 치장을 하노?”
김영주 방송작가  |  news@kpc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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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2.10  14:3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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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7월, 고향 경상남도 고성에서
‘이동훈 공룡 가요제’(가제) 개최 예정

   
 

겨울비가 내리는 화요일, 이동훈 작곡가(74)를 만났다. 때는 오후 2시, 비 오는 날이라 촉촉해진 감성 때문일까? 종로 3가에 있는 이동훈 작곡가의 사무실. 신곡을 준비 중인 가수 몇 분이

연습 중이었고, 사무실에 계신 실장님과 음악적인 대화가 한창이었다. 마치 그 속으로 내가 동참한 듯, 음악인이 되어 보았다.

기타도 만져보고, 작사가가 되려면 어찌하면 되냐고, 말문을 뗐다. “왜? 노래 좋아하나? 그럼 기념으로 음반 하나 만들어보지?

곡도 만들어서 김 작가가 부르면 더 재밌잖아?” “아, 정말이에요?

할 수 있을까요?” 후일을 기약하고, 이동훈 작곡가의 50년에 가까운 음악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이하 이동훈 작곡가와 일문일답)

Q. 작곡(음악인)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A. 경남 고성군에서 태어나서 어릴 때부터 음악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부모님은 법조인이 되기를 바라셨죠, 아버지께서 병역기피자로 지서에 잡혀가는 것을 본 후, 제 마음에 상처로 남았고, 뭔가 인간의 감성을 다루는 직업, 음악을 하고 싶다는 막연한 바람을 가지게 되었지요.

Q. 선생님 음악 인생을 큰 흐름으로 설명해주신다면?

A. 초등학교 졸업 후 부모님이 부산에 보내서 공부를 하게 해주셨어요. 고등학교 때까지 부모님이 뒷바라지해주시는 대로, 편하게 지냈습니다. 하지만, 고등학교 때 우연히 음악 하는 선배를 만나 악기를 만지게 되었습니다. 이후 부산 남포동에 있는 음악 학원에 다니게 되었고, 스스로 ‘음악적으로 좀 소질이 있구나’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생각해보니 초등학생 무렵 고무줄을 입술에 물고, 손가락으로 튕기면 그 길이와 강약에 따라 소리가 다르게 울리게 된다는 걸 신기하게 여겼던, 음악적 감수성을 지니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부산에서 활동을 하다 보니 음악적 목마름이 심해졌고, 1972년 서울로 상경했죠. 그때부터 신나는 음악 인생이었습니다. 6년간 원 없이 음악 이론 공부에 매진했고, 제 나름대로 독자적 음악관을 만들어갔습니다. 그때만 해도 집안이 부농이었기에 돈 걱정 없이 나 하고 싶은 대로 살았지요. 수도음악학원의 총괄 책임강사로 있었고, 수많은 제자를 두게 되었습니다.

다만, 정치적으로는 1960~70년대에 공연윤리위원회가 있어서 신작이 나오면 검열을 받아야 하는 시절이었고, 건전가요 위주로 심의가 나왔고, 비탄조다, 왜색가요다, 표절이다 등 금지곡이 많았습니다. 저는 저의 개성이 녹아있는 리듬 앤드 블루스, 라틴음악 계열을 좋아합니다. 작곡과 함께 대중음악 이론서를 많이 썼지요. 신촌에 있는 음악 학원의 대표강사로 있을 때는 당시 김수철을 비롯한 대학생 그룹사운드 음악 하는 친구들이 대거 저를 거쳐 갔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재밌고, 신나는 시절이었지요.

부산에서는 <숨어 우는 바람 소리>의 김민우 선생에게 배웠고, 서울로 와서는 음악계의 거물이신 이명희 선생님께 배웠습니다. 이후 결혼도 하고, 최진희의 <카페에서>와 조항조의 <사나이 눈물>, 박우철의 <연모>등을 썼으며, <음악통론서>, <인기가요 편곡집>, <화성학 및 코드 진행>, <포크기타 교본 및 해설집 TAPE 1·2집>이 있습니다. 음악적으로는 신났지만, 사실, 내 음악으로만 먹고살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부모님의 도움이 컸지요. 2000년, 어머님이 돌아가시니 정신이 번쩍 들더군요.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겠다. 남들처럼 생계 걱정 안 하고 음악만 하고 사는 것만 해도 복 받은 건데, 내 하고 싶은 대로 다하고 살면서, 술에 찌들어 젊음을 탕진하고 말았구나’ 싶더라고요. 그때부터는 건전하게, 그저 음악만 하고 삽니다. 하하…

   
▲ 정동일 전 서울 중구청장 레코딩 장면.

Q. 배출한 제자, 특별한 인연이 있다면?

A. 저는 모든 인연이 다 소중하다고 생각합니다. 가요계가 다 그렇듯이 특별히 어떤 계기나 인연이 따로 있었다기보다, 작품에 따라 가수와 맞으면 인연이 되는 것이기 때문에 최진희 씨나 조항조 씨가 더 저의 작품과 맞아서 인연이 된 것이지요. 저와 만났던 모든 제자와 후배, 동료들은 그때그때 인연에 따라 만나졌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김 작가를 오늘에 만나는 것도 알고 보면 ‘인연’이 듯이요.

Q. 작곡에 대한 노하우, 영감이 잘 떠오를 때는?

A. 저는 특별히 그런 거 없습니다. 유난히 어떤 기억이나 감성이 고조가 될 때는 있지만, 자연스럽게 몰입하는 편입니다. 일부러 잘 쓰려 하면 잘 안되는 것처럼. 음악을 들으면서 공부하는 학생처럼, 늘 좋아하는 음악이나 라디오를 듣습니다. 그렇게 하면 오히려 남의 곡을 알게 모르게 따오는, 그런 게 없어지더라고요. 한마디로, ‘작업을 위한 작업’을 피합니다. 그저, 몸에 배어 나오는 자연스러운 음감과 리듬에 맡기는 편입니다.

Q. 2020년에 선생님의 고향 고성에서 ‘이동훈 가요제’가 열린다고 들었다. 어떤 가요제가 되기를 바라는지?

A. 첫 번째는 ‘지역 문화 활성화’입니다. 지역에 도움이 되는 ‘축제’여야지, 왜 지역에서 엽니까? 고맙게도 전국연예인연합회 고성지회에서 추진한 ‘이동훈 가요제’가 2020년 열리게 되는데 ‘고성’에 도움이 되어야 앞으로, 2회, 3회 가요제가 계속 열리게 될 것 아닙니까? 두 번째는 참신한 신인 발굴입니다. ‘이동훈 가요제’라고 해서 내 이름을 알리는 게 아니라, 신인을 발굴해서 윗세대와 아래 세대가 서로 교감·교류하는 것이 중요하잖아요?

사실, 저는 이번 가요제 ‘운영’ 부분에는 개입을 하지 않을 겁니다. 다만, 큰 방향은 제시해주고 싶습니다. 첫째 지역에 도움이 되어야 한다. 둘째 전국 대회로서 신인을 발굴하고, 남녀노소 누구나 어울릴 수 있는 전문 음악 축제가 돼야 한다, 두 가지입니다.

   
▲ '한국가요작사협회' 모임에서.

Q. 요즘 트로트 음악 열기, <보이스 퀸> 등 음악방송이 활발한데요, 보고 느끼는 점이 있나요?

A. 당연히 있죠. 처음엔 반가웠습니다. 음악을 하고 싶어도 못하다가, 생활인으로 살다가, 실력 하나만 갖고, 무대에 도전해보자, 그동안의 한을 풀어본다, 뭐 이런 맥락에서요. 하지만 횟수를 더할수록, 결국은 너무 상업적이더라고요. 노래로만 승부를 해야지, 가수를 뽑는 게 아니라, 탤런트를 뽑는 건지, 미스코리아 선발대회 하는 것 같더라고요. 그리고 심사위원 양반들, 내가 나무랄 처지는 아니지만, 가끔 너무 주관적이다 싶어요. 최대한 객관적이고 연륜 있는 적재적소의 심사위원을 붙여놔야지, 방송이 너무 ‘보여주기’에 혈안이 되는 것 같아 안타깝습디다.

Q. 음악을 하고자 하는 분들에게 한 말씀?

A. ‘가수되기’가 쉬울까요? 음반 취입하고, 가수 활동한다고 다 가수가 아닙니다. 작곡가나 작사가도 마찬가지고요. 취미 수준으로 하면 모를까, 이름을 걸고 활동하는 가수와 음악가들은 각성해야 합니다. 쉬운 말로 인간이 먼저 돼야죠. 가끔 재능은 있는데 인간성이 개차반인 사람도 더러 있습니다. 그건 가수와 우리 음악인들의 얼굴에 먹칠을 하는 겁니다.

‘K 팝’ ‘한류 열기’도 그래요. 거품이 너무 많습니다. 너무 뽐내지 않아도, 멋 내지 않아도, 우리는 그 자체로 음악성과 예술성이 풍부한 민족입니다. 있는 그대로, 내공을 기르고, 자기 철학을 가지고, 신념대로 하면 됩니다. 제발, ‘겉보기’에 치중하지 말고, ‘알맹이’가 괜찮은 좋은 음악인, 가수가 많이 나오기를 기대합니다.

   
▲ 반야월 선생님과의 야유회.

Q. 올해 계획이 있다면?

A. 아까 말씀드렸던 경남 고성에서의 ‘이동훈 가요제’가 잘 되었으면 좋겠고요, 올해 제가 4년 동안 맡았던 한국가요작가협회 신임회장을 곧 뽑습니다. 연임이 된다면 ‘무조건 우리 회원을 위해 일한다’ 한 가지고요, 새로운 인물이 나온다면, 열심히 밀어줄 것입니다. ‘노래’를 업으로 하는 사람들, 쉽지 않습니다. 우리 회원들 모두, 잘되기를 바라고, 제가 건강해야지요. 건강해야지만 더 오래 음악을 할 수 있겠지요. 오케이?

에필로그

이동훈 작곡가님의 말씀 한마디, 한마디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알고 보니, 외가 쪽 집안 어른이었던 이 선생님과의 인터뷰에서 필자가 오히려 에너지를 얻고 온 느낌이다. 대중음악은 시대를 상징하는 바로미터, 대중음악이 건강하고, 음악인들이 활발하고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어야 사회가 밝고 건강해진다고 믿는다. 예로부터 음악과 노래를 좋아하는 한국인들의 정서에 맞는 좋은 음악이 많이 발표되기를 바란다. 아울러, 이동훈 선생님의 건강한 삶을 기원하고, 올해 경남 고성에서 열리는 ‘이동훈 가요제’가 성황리에 열리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인터뷰를 마쳤다.

김영주 방송작가  news@kpc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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