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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혁림미술관을 찾아] “통영의 현재와 미래 담고 싶어”전영근 관장, 대를 이은 예술가의 삶을 말하다
김영주 방송작가  |  news@kpc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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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11.11  11:5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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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영근 관장.

짧아서 더욱 소중한 가을날, 전혁림예술제가 열리고 있는 통영의 전혁림미술관을 찾았다. 푸른색을 사랑한 작가, 바다의 작가로 불리는 전혁림 화백의 예술혼이 그대로 남아있는 이곳은 통영시 봉수동에 위치해 있다. 푸른 물결이 찰랑대며 반짝이는 느낌이랄까? 봉수골은 봄날의 벚꽃길로도 유명하다고 하는데 가을날의 봉수골도 참 아름다웠다. 가을이지만, 봄날처럼 설레고 수채화 같은 풍경에 미술관에 들어서기 전부터 마음이 알싸하게 환해졌다.

전혁림미술관에서는 제5회 전혁림예술제 청년작가 조명전으로 엄미란 작가의 ‘동화(童話)’ 전이 열리고 있었다. 차분하지만 하늘거리는 느낌의 전혁림미술관에서 전혁림 화가의 아들이자, 같은 화가의 길을 걷고 있는 전영근 관장과 함께 전혁림 화백과 전혁림미술관에 얽힌 이야기를 나누었다. (전영근 저서 ‘그림으로 나눈 대화’ 일부 발취)

Q. 반갑습니다, 관장님, ‘전혁림미술관’은 언제 생겼나요? 설립 취지와 개요를 말씀해주시죠.

A. 전혁림미술관은 2003년 5월 11일에 개관했습니다. 통영이 예술의 고장이라고는 하지만 그때까지 통영에는 청마 유치환 님의 문학관 한 곳밖에 없었습니다.

분야를 막론하고, 한국 근현대를 아우르는 예술가들을 동시대에 배출한 통영을 사람들은 흔히 예술의 고장, 예향이라고 부르지요. 그럼에도 그들의 역사를 생생하게 느껴볼 수 있는 곳이 없어 늘 안타까운 마음이었습니다. 화가 아버지와 더불어 예술가 친구들의 삶을 바라보며 성장한 까닭에 어린 시절부터 작은 규모의 미술관을 마련하여 통영의 현재, 미래의 문화와 예술을 기록하고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다는 막연한 꿈을 갖고 있었습니다. 마침 아버님이 90세 때까지 작품을 하셨고, 저도 작가의 길을 걷고 있어서 대를 있는 증표처럼 의미를 갖고 전액 사재를 들여 신축하게 된 것이죠.

전혁림 미술관은 통영의 미륵도 용화사 가는 길목에 위치하고 있으며, 아버님이 1975년부터 30년 가까이 생활하던 집을 헐고 새로운 창조의 공간으로 신축한 건물입니다. 건물의 외벽은 아버님 그림과 제 작품을 20×20㎝의 세라믹 타일로 제작, 7500여 개로 조합하여 통영의 이미지와 전혁림 화가의 예술적 이미지를 표현하였으며, 3층 전면의 벽은 아버님의 1992년 작품 창(Window)을 타일 조합으로 재구성한 대형 벽화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Q. 외경이 참 아름답습니다, 이렇게 지은 이유가 있을까요?

A. 지금도 생각납니다. 아버지 87세 때, 제가 45세 되던 해의 겨울이었는데요, 아버지께 드디어, 고향 통영에 미술관 하나를 짓자고 다짐했던 꿈을 이야기했던 순간이었습니다.

“미술관? 좋지만 우찌 운영할 끼고? 우리나라는 아직 개인 사설 미술관이 드문 데다 지원도 없는 걸로 아는데 우찌 운영할 건지 계획이 있나?” 하셨던 아버지. 제 대답은 간단하고도 단호했지요.

“한번 해 보입시다. 지어 놓으면 어찌 됐든 운영은 해나가지 않겠습니까. 그러다 문을 닫더래도 그것이 한국이 갖고 있는 문화예술의 한계가 반영된 것이니, 저 개인만의 실패라고 말할

수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 니 알아서 해라. 단, 어렵다고 중단하지는 마라.”

그렇게 시작된 미술관 공사는 2003년 2월 1일에 우리가 살던 집을 헐고 그 자리에 터를 닦고 시작되었습니다. 가장 단순한 형태의 골격에 전시실은 최대한 넓게 하고 외부를 미로처럼 구성하여 외관의 단조로움을 극복하고자 했습니다. 아버지와 제 그림을 넣어 구워 낸 타일 7500장을 미술관 벽에 장식하고 나니, 아버지의 평가가 궁금했지요. 새벽 6시부터 밤 9시까지, 하루도 쉬지 않고 땀과 흙으로 뒤범벅이 되어 강행군을 한 끝에 미술관 공사는 무사히 마무리되었습니다. 당신의 이름을 딴 미술관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감회는 남달랐을 겁니다.

“아니! 벌써 다 됐나? 야아, 정말 대단하다, 저 타일은 우찌 구웠노?”

감탄을 연발하며 3층까지 가보자며 재촉하시는 아버지의 모습에 뿌듯함과 지난 고생의 기억이 몰아치며 안심이 되었습니다.

“꿈을 꾸는 것 같다! 내 아들이지만 니 대단하다.”

이후, 그해 겨울은 내 일생의 가장 뜨거운 겨울로 남았습니다. 그리고 아버지는 여생을 전시실과 연결된 작업실을 오가며 더 왕성하게 작품 활동에 매진하셨죠. 지금 아트숍과 카페로 운영되고 있는 바로 이 별관입니다.

   
▲ 전혁림 화가.

Q. 미술관의 전시는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요?

A. 1,2층은 아버님의 작품과 유품들을 상설전시하고요, 3층은 저의 작품으로 전시되어 있습니다.

기획 전시는 전혁림미술상 수상 작가 초대 전시와 지역의 청년작가 조명전을 개최하여 년 2회의 기획 전시를 유치하고 있습니다.

제5회 전혁림예술제는 지난 10월 7일에 시작되었고, 올해의 전혁림미술상은 김진 씨가 수상했습니다. 올해 예술제 역시 지난해 미술상 수상자 김보중 작가 초대전으로 열렸고, 15일부터 전시되고 있는 통영 출신 엄미란 청년작가 조명전이 20일까지 열립니다.

전혁림예술제 운영위원회(위원장 김이환)는 지난 10월 7일 이곳 전혁림미술관에서 제5회 전혁림예술제 개막식을 열었고, 이날 개막식에는 저와 김이환 운영위원장, 강석주 통영시장, 강혜원 시의장, 이이옥·정광호 시의원, 김일룡 통영문화원장 등 많은 내·외빈이 참석해주셨습니다.

전혁림예술제 개최의 가장 큰 의미는 신진작가를 발굴하고, 청년작가의 창작활동을 북돋우는 데 있습니다. 그런 취지에서 시상하는 것이 전혁림미술상이고, 청년작가 조명전이지요. 전혁림미술상 수상자는 이듬해 초대전을 개최하는 것이 관례로 돼 있습니다. 이번에 초대전을 개최한 김보중 작가는 작년 수상자지요. 올해 수상자인 김진 작가는 프랑스 세르지 국립예술고등학교 졸업, 베르사유 미술학교 졸업, 서울여자대학교 미술대학 현대미술과를 졸업했습니다. 엄미란 씨는 2011년 코리아 아트 페스타 예술상, 2013년 미술대전 입상 등에서 수상한 바 있습니다. 엄미란 작가는 자신의 작품 활동뿐 아니라 수년간 후배들의 예술 재능을 이끌어주는 수고가 고향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자신의 위치에서 최대한의 노력을 아끼지 않음을 봐 왔기에 이번 예술제를 통해 작품세계를 조명하고자 전시를 마련하였습니다.

Q. 아버님 전혁림 작가는 ‘푸른색을 사랑한 화가’로도 불립니다. 아들로서 전혁림 작가의 작품세계를 말씀해주신다면?

A. 아버님은 조선시대의 민화에서 느껴지는 한국인의 미의식을 훌륭하다고 여기시고, 그 미감을 평생을 통하여 시대와 함께 현대화를 위해 노력하신 분이셨습니다.

아버지의 손등이나 손톱은 항상 푸른 물감으로 물들어있었습니다. 물감을 씻어내고 그 위에 새로운 푸른색 물감을 덧칠하고, 또 씻어내고, 새 물감이 물드는 과정을 반복하며 아버지의 손에 새겨진 푸른 흔적은 마치 아름다운 문양 같았습니다.

새벽 4시가 되면 어김없이 들려오는 아버지의 헛기침과 캔버스에 나이프를 빚는 소리에 잠이 깨고는 했는데요, 현대미술의 흐름을 담은 미술 잡지와 조선시대 민화집을 탐독하고, 작품 제작에 몰두하는 것이 아버지의 하루였습니다. 우리나라의 1세대 서양화가로서 진정한 우리의 미술을 찾아야 한다는 의무감과 민족의 새로운 것을 탐구하시며 그림을 그리셨습니다. 화가는 쉽게 말하면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지만, 다양한 분야를 탐구하고 그 분야의 가치와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는 자세를 가질 때 비로소 평면 너머에 존재하는 세계와 그 세계의 진실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질 수 있고, 현재와 미래에 빛나는 작품을 완성할 수 있다고 봅니다.

이런 저의 예술 담론이 제가 바로 아버지에게서 평생을 통해 배운 가르침이기도 합니다.

Q. 관장님이신 전영근 작가님은 어떤 작업을 하고 계시나요?

A. 저는 물결이나 빛, 소리 등 형태가 분명치 않은 자연을 형상을 만들고 스토리를 구성하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아버님과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며 아들이자 제자, 후배로서 선친의 곁을 지켜왔기에 알게 모르게 선친으로부터 작품세계에 많은 영향을 받았겠지요. 하지만 오롯이 ‘저만의 것’을 찾으려는 노력을 오래전부터 계속해 왔어요. 오십 대에 들어서면서부터 작품이 점차 달라지기 시작했고 지금은 저만의 독창적인 작품세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독자성을 가져야 한다는 건 제 오랜 과제였거든요.

아버지는 ‘오방색’을 이용한 원색의 강렬함을 담았다면, 저는 분할과 구성에 역점을 두며 강렬한 원색보다는 절제된 톤의 조절을 특징으로 하고 있습니다. 오로지 자신의 삶의 체험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끌어내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Q. 통영을 지키는 예술인으로서 어떤 정신을 가지고 계시며, 이어갈 것인지?

A. 결국 예술가는 작품으로 삶을 표현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아버님은 평생의 모습을 통해 예술가의 자세를 보여주신 분입니다. 2세로서 아버님의 예술정신을 지켜드리고 삶을 통해 실천해가는 작가로 살아가고자 합니다.

미술관이 하나의 작품이 되길 바랐습니다. 또한 매년 새롭게 보일 수 있도록 타일을 바꾸고 있어요. 그래야 관람객의 재방문율도 높아지지 않을까요?

이벤트 아닌 이벤트로 관람객의 보는 즐거움을 선사하기 위해 고민하고 건물 전체의 타일을 바꿀 때면 일일이 그림을 입혀 1만 5천 장의 타일을 굽고 있습니다. 작업실에 가마가 갖춰져 있어 직접 도자기와 타일을 정성스럽게 구워내고 있습니다.

또한, 앞으로도 일 년에 두 번 정도의 전시를 가지며 예술가로서의 책임을 다하고 싶습니다.

작업하는 동안 새로운 생각이 다시 나옵니다. 예술가는 작업을 하고 결과물을 보여줘야 합니다. 자기 발전을 위해 노력하는 작가야말로 진정한 예술가이죠. 예술에서 완성, 끝이란 없습니다. ‘꾸준히’만이 정답이에요.

아, 그리고, 전혁림 화가의 둘째 손자, 제게는 둘째 아들이 되는 우리 막내가 현재 미술관 일을 돕고 있습니다. 같은 화가의 길은 걷지 않지만, 미술관 일을 도우면서 미술관 운영과 관리를 배워서 잘 이어가게 할 생각입니다.

   
▲ 미술관 외형.

Q. 끝으로 강조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A. 우리의 1세대 예술가들이 그랬듯이 진정한 예술가의 길을 가는 분 들이 있을 것이고, 그들의 삶이 현재보다 좀 더 많은 분들의 관심과 격려가 있어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창작 활동과 미술관의 지속적인 운영이라는 두 개의 숙제를 안고 가는 길이 힘겹기도 하지만, 세상의 고난을 견뎌낼 수 있도록 당신의 삶을 통해 가르치고 사랑해준 화가 전혁림이 이미 나의 표상이 되었기에 저 또한 이 길을 끝까지 가보고자 합니다. 평생을 오직 예술을 위해 태어난 분처럼 끝없는 열정으로 최선을 다하신 아버지께 항상 깊은 감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작가로서는 쉽지 않겠지만, 아버지 전혁림 화가를 능가하는 작가가 되는 것이 저의 목표라고 할까요? 목표가 목표로 끝날지라도 아버지의 뒤를 이어 화가의 길을 걷고 있는 지금의 제 삶과 예술이 저에게는 행복이고, 저의 전부입니다.

에필로그

전혁림 화백 마흔셋의 나이에 늦둥이 아들로 태어난 전영근 화가. 전혁림 화백이 통영의 문학, 음악, 연극 등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들과 교류하며 평생을 열정적으로 예술가의 길을 걷는 모습을 지켜보며 성장한 그는 프랑스 그랑쇼미에르 아카데미에서 공부한 후, 다시 통영으로 돌아와 아버지의 곁을 묵묵히 지키며 작품 활동을 이어가고 있으며, 통영의 아름다운 풍광과 나고 자란 지역의 문화를 자신만의 시각으로 해체하고 재구성하여 독창적인 화법으로 풀어내고 있다. 2003년 문을 연 전혁림미술관의 관장을 맡아 스승 전혁림의 이름으로 통영 청소년 미술 아카데미를 진행하고, 지역 청년들에게 전시 기회를 풍성하게 꽃피우기 위해 애쓰고 있는 전영근 관장은 통영을 찾는 사람들에게 전혁림미술관으로 예향 통영의 자부심과 예술의 역사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화가 아버지의 모습과 예술가 친구들의 자유로운 모습이 한없이 멋있어 보여 이 길을 선택하고 그들의 모습을 따라가면 되지 않을까 막연히 생각하던 시절의 자신이 너무나 철부지였다고 말하는 정영근 관장. 예술가로 살아가는 길이 힘겹지만 한편으로는 자신만의 철학과 삶과 자유를 오롯이 불어넣은 작업을 할 때가 제일 행복하다고 하는 그는 전혁림 화백의 효자 아들이기 이전에, 치열한 예술혼을 지닌 천상 작가로 느껴졌다.

김영주 방송작가  news@kpc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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