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중순 경, 초여름 한없이 이어지는 마른장마 속에 나른하기 이를 데 없는 오후 3시 무렵. 장인(匠人) 박경옥 중앙옻칠연구소장은 구슬땀을 닦아가며 외국서 들여온 진객(珍客)을 요리조리 들여다보며 음미하는 모습이다. 이 물건이 도대체 무슨 물건이길래 이리도 흠뻑 빠져 시간가는 줄 모르고 매달려 있는 것일까.

달포 전에, 항공료와 체재비 일체를 제공받으면서 일본 가나가와현 사가미하라시(市)에서 열린 전통공예 기술 전수와 관련한 초청행사에 참여하게 되었는데, 그 때 일본을 떠나기 직전 일본의 동양문화협회 구로모토 회장이 건네준 ‘진품’이 5단합 나전칠기였다. 어림짐작으로 봐서도 일본 메이지(明治) 시대 이전으로 추정되는 진객임에 틀림없다.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이의 복원작업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며 골몰하고 있었던 것.

지금까지 누가 뭐래도 나전칠기의 종주국은 한국이고, 지난 74년 처음으로 옻을 만진 이래 40여년을 채화옻칠 명장(名匠)으로서 이름을 떨쳐온 그였지만 이 5단 합의 정교함을 보고는 범상치 않은 ‘물건’임을 직감한 터다. 오늘도 그가 옻칠내음 가득한 너저분한 공방을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지켜가는 이유가 되기에 충분했다. 그럴수록 그의 의지를 더욱 불태우게 만들고, 장인의 혼을 사르는 이유가 됐다.

“사실 지금은 일본이나 우리나 공예산업이 침체기를 맞은 것은 분명해보입니다. 지금은 사람들을 집으로 초청하는 시대가 아니어서 장식품을 자랑할 수가 없고, 또 비즈니스를 하더라도 사무실로 들이는 시대가 아니어서 장식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죠.”

각종 공예산업의 쇠락이 거기서 연유한다고 박경옥 소장은 애기한다.

또 한 가지는, 우리의 전통 공예가 빼어난 작품성을 가진 것임에 틀림없으나 작품의 예술성이나 작품성이 평가대상이 되기보다는 전혀 다른 영역에서 평가받는 경우가 많은 연고로 전통 장인들이 사장되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는 점은 큰 문제점으로 여겨진다는 점이다. 보이지 않는 줄타기가 횡행하고 주류와 비주류로 편가르기가 만연하게 된다.

즉, 전통공예를 작품성으로 평가하기 보다는 학계서 어떤 인맥 등으로 평가하기 때문에, 불필요한 라인 혹은 계보가 형성될 수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진정한 장인을 점수화한다는 것이 얼마나 허망한 일이고, 가능하기라도 하단 말인가 하는 것이다. 2013년 1월 한국전통문화대학에서 진행됐던 주요무형문화재 선정 파행사건도 같은 맥락에서 읽어볼 수 있다는 얘기다.

많은 후학들이 칠기공예에 활동하고 있다지만 그처럼 화려하고도 섬세한 예술성을 자랑하는 이도 많지 않다. 더욱이 일본 등 세계무대에서 인정받을만큼 빼어난 예술세계를 보여주는 공예가로서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

40년 외길, 현존 최고 목칠공예장(匠) 명성...특허 2개 보유

자연 재료인 옻칠을 이용한 전통의 나전칠기 기술과 채화칠(彩畵漆) 기예를 숙련기술로 보유하면서, 40년여 외길을 걸어온 현존 목칠공예장(匠)은 국내 몇되지 않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옻칠은 한 ․ 중 ․ 일에서 금속이나 목공 도장용으로 소중히 여겨져 왔던 도료. 역사적으로는, 약 3,000년전 청동기 시대에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고려시대 나전칠기와 조선시대 다양한 칠기 제품으로 빛을 발하였으나, 현대들어 급속도로 잊혀져가며 멸절위기에 처한 기술이자 전통문화라고 할 수 있다.

이 옻칠 장르 중에서도 협저칠기(夾紵漆器) 혹은 건칠(乾漆)에 일가(一家)를 이룬 것으로 평가받고 있는 박 소장이다. 둥근 화병, 휘어진 그릇 등 온갖 형태의 기물을 만들거나 옻칠만으로 그리는 칠화 등은 극치의 예술성을 자랑한다.

여기서 협저칠기란 옻칠의 장점을 최대한 살릴 수 있는 형태로, 백골(나무틀)을 사용하지 않고, 목심(나무)서부터 표면까지 삼베와 철로 반복하여 기물을 형성하고 성형하는 기법의 칠기를 말하는데, 크기에 비해 가볍고, 두께에 비해 강도가 매우 높으며, 나무로 표현하기 어려운 유려한 곡선이나 아름다운 기물의 형태를 표현할 수 있는 장점을 갖는다.

특히 젓가락용 옻칠장치 및 칠 방법을 비롯해 금속판 옻칠 부착방법, 옻칠 분말 채화(彩畵)방법, 그리고 협저칠기법에 의한 기물 성형 기초작업 등은 그의 대표적인 숙련기술이다.

그간 수상경력도 화려하다. 지난 1995년 10월 전승공예대전 국무총리상 수상하면서 일약 전국적인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 것을 시작으로, 평화미술대전 공예부문 대상, 서울 공예상 공모전 대상, 한국 옻칠공모전 은상 2회 수상, 전국 공예품 공모전 공예연합회 회장상, 일본 신종공예전 신인상, 일본 칠공미전 공예협회 회장상, 그리고 일본 이시가와 국제칠미전 3회 입상 등은 국내외적으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수상 경력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외에도 개인 및 단체 전시 작품활동에서도 황성한 면을 보여 왔다. 서울 가나인사이트 센터에서 개인전시회 3회 개최한 것을 비롯해 롯데백화점 시립미술관 등에서 그룹전시회 5회 등.

특히 그가 일본 옻칠연수 국비지원 수료 1호로 칭함받는데서도 알 수 있듯, 수료를 전후해 일본 도쿄돔 테이블 페어전 작품전시 및 시연채화활동을 포함, 도쿄 매구로 가조원 복원참여 등을 거쳐 앞서 밝힌 바와 같이 일본 가나가와현 동양문화유산협회초청 국보급 유물 복원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는 것도 눈여겨 볼만하다.

이밖에 그는 한국표준과학연구소 옻칠연구위원에 위촉된 바 있으며, 정부 전통 고유기술 자금지원 심의위원, 한국공예예술가협회 상임이사 등을 역임했으며, 채화칠 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실사 및 실기시험에 참여한 바 있다.

지금도 그의 작품활동은 거침이 없다. 올 2월 중순께 전통 젓가락 갤러리 ‘저집’과 함께 YTN 방송 채화 젓가락 제작시연과, 한국관광공사가 주관한 세계토양학 학술대회 VIP 기념품을 제작 납품함으로써 자신의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한 바 있다.

그의 옻칠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그만의 예술혼과 옻칠기술이 내재된 특허를 2개나 보유하고 있다는 점. 옻칠을 이용한 장신물의 제조방법(2011.9.14., 특허청)과 젓가락용 옻칠장치(2011.10.26., 특허청) 등 2 종이 그것이다.

이로 인해 최근 수년간 그의 특허기술을 활용한 공예품이 비즈니스로 연결돼 물건을 만들어내기 무섭게 팔려나간다. 최근 수년간 수출실적만도 수억원에 이르며, 국내 연관산업 진출도 본격화하고 있는 실정이다. 중앙옻칠 대표전화 02)792-1995.

강호정 기자  k-toda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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