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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도(納島)] 남해 감귤의 고향, 지금은 외로운 섬밀림 속 정글탐험을 하다
글·사진 임윤식  |  news@kpc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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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12.07  15: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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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4일, 통영 앞바다 거의 무인도가 된 납도를 다녀왔다. 납도는 한 때 우장춘 박사가 감귤재배지로 선정, 제주도 다음으로 감귤생산이 많았던 섬이었다. 그러나 감귤 과잉생산으로 값이 떨어지고, 당시 겨울한파로 밀감나무가 고사되면서 섬 사람들은 하나둘 모두 육지로 떠나고 이제는 겨우 섬에 연고가 있는 두세 집 정도만 섬 관리 등을 위해 오고가는 고도(孤島)가 되었다.

 

납도공동체 회원 한 분의 말에 의하면, 납도에 주민등록을 한 주민은 현재 6명이라 한다. 그러나 아직은 실제 거주여건이 되지 않아 상주주민은 한 집 뿐이다. 나머지 주민들은 육지를 오가면서 섬 관리 및 낚시하러 올 때 만 어설픈 숙소로 이용하고 있다. 태양광집열판과 공구 몇 개가 최근 집주인이 다녀갔음을 보여준다. 그들은 아직은 실제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섬을 살리기 위한 베이스캠프로 이곳에 근거를 두고 있는 것 같다. 납도는 1999년까지 8가구가 자가발전기에 의존해 생활하던 유인도였다. 1973년도에 펴낸 내무부의 도서지에 따르면 당시 인구는 16가구 81명, 분교생은 13명이었다고 한다. 현재도 주민등록상 주민이 6명이나 되고 실제 상주주민이 있기 때문에 무인도는 아니다.

경상남도 통영시 욕지면 노대리에 속해 있는 납도는 140년 전 고성에서 동래 정씨가 뗏목에 떠밀려 이곳에 정착하면서 유인도가 되었다. 납도의 유래는 생김새를 따라 섬이 납작하다고 하여 얻은 이름이다. 이 섬의 전체 면적은 약 3만 5000평이고 면소재지인 욕지도와는 6.5km, 통영과는 약 30km 떨어진 섬이다. 최고지점이 해발 35m로 아주 낮은 구릉지로 되어 있으며, 대부분 암석해안으로 이루어져 있다.

동아일보 1966년 1월 6일자 ‘제2의 밀감산지… 남해의 납도’란 제목의 기사를 보면, “충무항에서 발동선을 타고 5시간 남짓 남쪽으로 내려가면 납도에 닿는다. 이따금 폭풍에 쫓긴 고깃배들이 찾아들 뿐 오가는 이 드문 이 섬은 경치가 아름답기로도 소문난 섬. 섬 사람들은 이제 10여 전 에 심은 밀감나무가 자라 올들어 처음 대량생산에 성공했고 제주밀감 보다 맛이 좋다 하여 제2의 밀감 센터로 크게 번창할 꿈에 부풀어 있다.

동백나무가 빽빽히 섬둘레를 병풍처럼 감싸 방풍림이 돼 있는데다 땅이 기름지고 기후가 알맞다는 말을 들은 우장춘박사가 직접 현지를 답사 ‘제주도보다 천연적인 조건이 더 좋다’는 결론을 내리자, 섬사람들은 앞을 다투어 밀감의 묘목을 심었던 것인데 올해 그 첫 결실을 보게 된 것. 납도 섬에 밀감나무 묘목을 심어 1966년 이 섬의 박종식 씨가 당시로서는 큰돈이던 15만 원을 벌었고, 박 씨의 뒤를 이어 묘목을 심었던 섬 주민들도 돈벌이를 할 수 있다는 벅찬 꿈에 잠겨있다”라고 쓰여 있다.

   
▲ 납도.

또, 2001년 6월 21일 KBS의 <우기자의 취재수첩, 피플 세상 속으로>에서 납도에 사는 마지막 주민인 김덕연 씨와 박연옥 씨 모녀를 소개한 적이 있다. 당시 김덕연 씨는 73세, 박연옥 씨는 53세였다. 김덕연 씨는 17살에 납도로 시집와, 고동과 약초를 캐면서 생활을 영위해 왔다. 남편이 죽자 약초인 어성초와 고동을 판 돈에 보조금을 보태어 살아가고 있었다.

한번은 통영시내에서 정신지체장애를 앓고 있는 박연옥 씨를 잃어버려 혼 줄이 난 후 김덕연 씨는 딸을 납도 밖으로 데리고나가지 않았다고 한다. 두 식구 먹고 살기 위해서는 무엇 하나라도 팔아서 돈을 마련해야 되는데 그러려면 육지로 나가야 하고, 육지를 갈려면 딸 혼자 섬에 두어야 하는 것이 어머니는 늘 걱정이 됐다 한다. 데리고도 가고 싶지만 잃어버릴까 무서워 그러지도 못했다. 조금의 돈이라도 벌게 되면 어머니는 딸을 위해 과자와 사탕을 사고, 섬에 도착하자마자 딸의 이름부터 불러대기 시작했던 어머니. 혹시라도 딸이 바닷가에 나갔다 사고라도 당한 건 아닐까. 산에 올라가서 길이라도 잃은 건 아닐까. 밥은 먹었는지, 울지는 않았는지. 사소한 것에서부터 어머니는 모든 게 걱정 뿐이었다. 납도의 마지막 주민이었던 김덕연 할머니와 딸에 얽힌 이야기는 그 스토리 만으로도 눈물겹고 가슴 뭉클하다.

두 모녀의 영상 엔딩 장면 역시 감동이다.

“할머니의 기도처럼 저 바다로 마을사람이 떠나고 5남매도 제 갈길을 떠났다. 모두가 떠나버린 섬. 그러나 거기에 어머니가 산다. 70이 넘은 어머니와 철모르는 딸, 딸을 가슴에 품은 어머니는 섬이 되어 오늘도 바다에 떠 있다.”

두 모녀가 살던 집이 지금은 마치 유적처럼 폐가로 남아 있다. 할머니와 딸이 마루에 마주앉아 오손도손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보이는 듯 하다. 납도는 이와 같은 시기를 거쳐 한동안 무인도로 방치되어 있다가 근년에 들어서야 다시 주민들이 한 두명씩 늘어나기 시작하였다.

납도의 마지막 주민 김덕연 할머니도 키웠다는 감귤나무는 ‘씨 없는 수박’으로 유명한 우장춘 박사의 권고로 1967년 납도에서 처음 시험 재배됐다. 그 당시 우장춘 박사는 납도를 원시 자연림이 그대로 살아있는 ‘천혜의 섬’이라고 극찬을 했다고 한다. 밀감이라고도 부르던 당시의 감귤은 제주에서만 나는 과일로, 납도의 기후와 맞아 이 섬에서 자라게 되었다. 납도에 성공한 감귤은 1970년대부터 본섬 욕지도에서도 재배되었고 재배 규모가 전체 주민의 절반인 500여 농가, 120여㏊에 이를 정도로 한때 인기 높았다.

   
▲ 숲길.

당시 납도에서는 감귤나무를 ‘대학나무’라 불렀다고 한다.

자식을 대학에 보낼 정도로 부를 상징하는 나무라는 뜻. 하지만 1980년대 초 감귤의 과잉생산과 겨울한파로 감귤나무가 고사되면서 주민들은 더 이상 감귤로 생계를 유지할 수 없게 되자 납도를 떠나게 되었다. 그 후 납도의 감귤나무는 버려져 몇 그루 남지 않았다.

한남일보 2015년 4월 3일자 기사 등 언론기사들에 의하면, 과거 감귤의 시험대가 된 납도를 통영시에서 다시 개발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고 한다. 납도를 ‘창작예술섬’으로 만든다는 계획이다. 아트체험센터와 예술인촌, 감상의 길 등을 만들어 제2의 전성기 납도를 만들겠다는 야심찬 의도다. 2018년이 그 프로젝트 완성의 해인데 섬 개발에 아무런 진척이 없어 주민에게 물어보니 계획이 무산됐다고 한다. 당시 지자체에서 거창하게 발표했던 계획이 폐기됐다니 아쉽고 안타깝기도 하다.

필자가 접촉해본 일부 섬 주민은 개발계획 폐기가 오히려 잘된 일이라는 반응이다. 섬의 특성을 제대로 고려하지 않은 무모한 인공섬 개발계획이 초래된 결과가 아닌가 싶다.

납도에는 수백 년 된 동백나무와 후박나무 등이 숲터널을 만들어 아름답기 그지없다. 동백섬으로 유명한 지심도에 결코 뒤지지 않는 자연경관이다. 섬 곳곳으로 이어진 동백터널을 꽃이 만발한 2~3월에 걸어보면 얼마나 가슴 벅찰까 상상해본다.

붉은 동백꽃 핀 나름드리 나무 사이로 천상의 새들이 입을 모아 지저귀는 섬. 납도는 자생동백이 잘 보존된 섬 중의 하나다.

라디오에서 동백이 아름다운 백련사의 동백꽃을 나무에 핀 목화(木花)요, 땅에 떨어진 낙화(落花), 마음에 핀 심화(心花)라고 소개하는 소리를 들었다. 백련사의 동백이 삼화(三花)라면, 납도의 동백은 실락원에 불타는 꽃, 삼화(森花)다. 그러나 사람이 살고 있지않다 보니 주 도로를 제외한 섬 대부분 지역은 마치 아프리카 밀림처럼 정글화되어 현재 이대로는 도저히 사람이 살 수 없을 정도의 숲으로 변해 있다. 납도의 숲은 제주도의 곶자왈에 비견할 만한 자연생태로 살아 있다.

여기저기 폐가들이 흉물스럽게 남아 있고, 사람이 다니던 길은 그 흔적조차 찾기 힘들 정도로 잡초로 덮혀 있다. 옛 교회건물도 보인다. 찢어져 만신창이가 된 비닐 문 사이로 십자가가 애처롭게 섬을 지키고 있다. 창조주 하나님은 외롭게 버려진 이 섬에 아직도 성령 충만의 거룩한 뜻을 설파하고 계신다. 인간이 아닌 자연을 향해 문을 열고 있다.

교회 바로 뒤에 나무가지들이 지붕을 휘감아 덮고 있는 집이 보인다. 전형적인 폐가 건물이다. 이 집은 이덕남 씨의 집. 이덕남 씨는 우장춘 박사보다 먼저 밀감나무를 납도에 식재하신 분으로 알려져 있다.

암벽해안 쪽에서 미처 가보지 못한 옛 학교터를 찾아가보기로 한다. 잡목과 낙엽으로 뒤덮인 숲길은 이어지고 끊기기를 반복한다. 굳이 길이라고 할 수도 없다. 정글탐험 그 자체다. 날카로운 가지에 살이 찢기기도 하고, 도저히 빠져나갈 수 없을 것 같은 빽빽한 숲벽을 만나기도 한다.

그 밀림 속 여기저기에는 털머위가 아름다운 꽃을 뽑내고 있다. 반갑다. 11월초인데도 이 꽃은 마치 봄꽃처럼 계절을 거꾸로 읽고 있다. 방향과 길을 잃었는가 싶게 한참을 헤매자 눈앞에 희미한 돌담이 보인다. 누군가 학교담 같다고 소리친다.

숲을 빠져나가자 갑자기 건물 한 채가 나타난다. 학교터다.

불과 몇 미터 앞이었는데도 워낙 짙은 밀림이라 전혀 보이지 않았던 게다. 이처럼 어렵게 정글을 헤치며 찾아간 밀림 속에는 마치 수백년 간 숨겨져 있다가 우연히 밀림 속에서 발견된 캄보디아의 앙코르왓트처럼 폐교 하나가 앙상한 건물 형체만 남은 채 잠자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23년 전에 폐교된 원량국민학교 납도분교. 복도는 물론 교실 안도 망가진 채 오랜 세월 오지 않는 학생들을 기다리고 있다. 흑판도 바닥에 떨어져 뒹굴고 있다.

학교 정문 쪽은 그나마 길이 보인다. 정문 앞에는 여기저기 팔손이나무가 눈에 띈다. 이 학교의 교목은 팔손이나무. 교화는 동백꽃이다. 섬 학교다운 교목과 교화이다.

학교길 주변에는 누워서 자라는 후박나무도 보인다. 납도에는 다양한 품종과 모양의 식생들이 분포되어 있다. 복숭아나무도 있고 겨울철에는 희귀종인 흰 동백도 핀다.

소나무숲과 대나무숲을 거쳐 좁은 동백터널을 지나자 앞이 트이면서 갈림길에 이르고 통신시설 경고문이 보인다. 아, 이곳이었구나. 이곳은 약 1시간 전 쯤 지나갔던 길인데 입구가 눈에 잘 띄지 않아 지나쳤던 것 같다. 주민들은 이 지역을 먼당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학교 가는 길 입구는 마치 동굴 같은 좁은 숲터널로 들어가야 한다.

그러나 납도는 밀림으로 뒤덮인 숲 만 있는 건 아니다. 해안 쪽으로 나가자 앞이 휜히 트이면서 거대한 암벽해안이 방문자들을 깜짝 놀라게 한다. 잠수함갯바위 바로 뒤 납도전망대에 서면 정면으로 소봉도, 적도, 봉도(쑥섬)가 차례로 보이고(좌측으로부터), 우측으로는 두미도 등이 선명하게 시야로 들어온다.

   
▲ 마을회관, 밀감선별장.

가파른 해벽을 조심스럽게 내려가자 넓은 마당바위도 만나고 책바위 모양의 기암벽도 만난다. 납도 해벽은 주상절리 중의 하나인 수평절리라고 한다.

바위해안에서 바라보면 우측으로 두미도, 정면으로 상노대도와 하노대도, 비상도, 막섬, 쑥섬 등이 보이고, 그 뒤로 욕지도가 시야에 잡힌다. 또, 약간 좌측 방향으로는 외부지도, 적도, 외초도, 연화도 및 우도도 보인다. 외부지도, 적도, 외초도는 세월호 사건의 주범이었던 유병언의 소유라고 한다. 종교단체 법인 명의로 되어 있어 압류 등 법적조치는 당하지 않았다고 한다. 특정도서로 지정되어 있어 일반인들의 출입은 금지되어 있다. 납도는 이웃한 상노대도와는 3km가량 떨어져 있다.

그 바위 틈 곳곳은 온통 거북손과 해초들이 지천이다. 인간의 손이 닿지 않는 해안은 그들 바다생물들의 세상이다.

암벽해안에서 홍합여선착장 방향으로 코너를 돌면 넓은 몽돌해수욕장도 만난다. 몽돌해안에서는 수영은 물론 피크닉도 가능하며, 홍합, 고동 등이 많다.

홍합여 선착장. 드디어 납도를 떠날 시간이다. 선착장 왼쪽 앞바다 가까운 곳에 홍합여라는 바위섬이 있다. 홍합이 많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예전 납도 주민들은 '딴여'라고도 불렀다. 두 시간 남짓의 납도 트레킹은 마치 아프리카 정글탐험을 한 듯 이제까지의 섬여행에서 거의 경험해 보지 못한 특별한 체험이었다.

배는 하얀 포말을 일으키면서 통영 삼덕항을 향해 바다 위를 달린다. 납도가 점점 멀어져 간다.

아름다운 경관과 함께 자연이 살아있는 섬 납도. 자연과 함께 공존할 수 있는 섬으로 개발되어 주민들이 다시 정착할 수 있는 날이 멀지않기를 간절히 기대해본다. 

글·사진 임윤식

*납도 가는 길
납도는 통영 우도에서 낚싯배로 약 20분 거리에 위치해 있다. 정기여객선은 다니지 않는다. 우도는 통영여객선터미널과 삼덕항에서 출항하는 여객선을 타고 약 1시간 거리의 연화도 연화항에서 내려 연화항이나 우도항에서 낚싯배를 이용한다. 또 통영 삼덕항에서도 낚싯배를 빌리면 20분이면 갈 수 있다. 낚싯배에 편승하면 1인당 왕복 4만 원 정도면 가능하다. 연화도와 우도 사이에는 2018년 6월에 개통된 인도교를 통해 걸어서 왕래할 수 있다. 연화도 가는 여객선은 통영여객선터미널의 경우 ㈜대일해운(055-641-6181)이 06:30, 09:30, 11:00, 13:30, 15:00 등 하루 5회 운항하며, 삼덕항에서는 ㈜경남해운(055-641-3560)이 09:00, 12:15, 16:30 등 하루 3회 운항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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