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특유의 ‘전파력’과 ‘씀씀이’에 업계 주목

최근 여성들이 독립적인 경제주체의 지위를 확보하면서 과거 일부 분야에서만 소비가 이루어지던 여성들의 소비범위가 늘어난 것. 이에 따라 각 업계에서는 여성 소비자를 겨냥한 다양한 마케팅들을 내놓는 등 마케팅 트렌드에 지각변동이 일고 있다.소위 잘나가는 미혼 여성을 가리켜 한때 ‘골드미스’라는 신조어가 널리 쓰였다. 이제는 그런 그들의 소비 패턴을 지칭하는 신조어가 생겨났다. 여성을 지칭하는 ‘그녀(She)’와 경제를 뜻하는 ‘이코노미(Economy)’의 합성어 ‘쉬코노미’는 여성을 중심으로 한 ‘여성 경제’를 뜻한다. 미국을 시작으로 전파된 쉬코노미는 우리나라에서도 발 빠르게 퍼지고 있다.

여성 위주 마케팅 봇물

최근 소비 시장의 키워드로 ‘여성’이 주목받고 있다.

젠더 관련 연구에 따르면 여성들은 전 세계적으로 전체 소비의 80%를 차지하고 있으며, 미국의 경우 전체 구매결정자 중 85%가 여성 소비자다. 이런 양상이 미국을 시작으로 빠르게 전파돼 ‘쉬코노미’가 최근 소비 시장의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여성이 경제 활동 주체이자, 소비 주체가 되면서 단순히 개인이 소비하는 것뿐만 아니라 온 가족이 함께 소비하는 자동차, 가전, 식료품에 대한 소비 결정권을 쥐게 된 것. 이는 여성들의 소비가 단순히 패션이나 화장품 등 일부 분야에서만 두각을 드러냈던 과거와 달리 그 분야가 다양하게 확대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처럼 여성의 경제활동이 경제의 한 축으로 떠오르면서 각 업계에서는 이에 맞춘 다양한 마케팅들이 등장하고 있다.

국내에서 쉬코노미가 두드러지고 있는 곳은 여행업계인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여행업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해외로 출국한 여성은 1245만 명으로, 이는 해외 출국을 가장 많이 한 남성의 수치인 1238만 명을 처음으로 남성을 앞선 수치다. 특히 20대의 경우 해외 출국자의 60% 이상이 여성으로 집계됐을 만큼 여행업계에서는 여성이 큰 손으로 떠올랐다. 가족여행을 결정하는 데에 있어서도 여성이 주도권을 가지는 경우가 많고 친구들과 여행, 모녀 여행 등 여성끼리 여행을 하는 수요 증가에 따른 것이다. 이 때문에 여행업계에서는 스파, 마사지, 럭셔리 디너·바 등 여성들의 취향을 고려한 패키지 상품을 출시하는 등 쉬코노미 시대에 걸맞는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 여성은 자신뿐만 아니라 남성에게도 전파력이 크고, 친구, 가족, 동료 등 자신이 구매한 제품과 그 효능까지 공유한다.

여행업계뿐만 아니라 스포츠나 주류, 자동차 등 기존의 남성 위주 업계도 여성 취향을 반영해 적극적으로 여성 소비자를 포용하고 있다. 세계 최대 주류 업체인 디아지오는 여성 애주가를 위해 지난 3월 위스키 조니 워커의 여성 버전 제인 워커를 선보였다. 이 주류 업체의 대표 로고도 신사에서 숙녀로 대체했다. 또 전통적으로 남성을 모델로 기용하던 주류 업계는 기존의 마케팅 원칙을 깨고 최근 맥주 모델로 김혜수, 김태리, 김지원 등의 여성 모델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자동차 광고도 여성 모델로 교체되는 분위기다. 과거 자동차 모델은 남성들이 주를 이뤘다. 남성성을 자동차에 투영한 광고들이 대부분이었던 것. 반면 여성은 주로 남성이 운전하는 차의 조수석이나 뒷자리에 앉아 있는 모습이 전부였다. 그러나 이것도 옛말이다.

최근 자동차 업계는 적극적인 여성의 모습을 담은 광고로 여심 잡기에 나서고 있다. 한국지엠의 쉐보레 더 스파크 광고는 남자 모델 없이 구혜선을 원톱으로 기용했다. 이에 앞서 현대자동차는 i30 광고에 유인나와 아이유를 기용하기도 했다. 스웨덴 브랜드의 수입차 볼보 역시 올해 선보인 XC60, XC90의 광고에 김혜수를 메인으로 기용해 여성의 주체성을 강조하는 메시지를 전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스포츠 업계에도 쉬코노미 여파가 크다. 지난해 남자 프로배구의 여성 관중은 전체 중 68%에 달했고 프로야구는 역대 최다 관중인 840만 명을 기록 해 전체 중 42%의 비율을 달성했다. 여성 관중이 늘면서 각 구단들은 여성을 대상으로 다양한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다. SK와이번스는 매주 금요일, 두산베어스는 월 1회를 각각 '레이디스 데이'와 '퀸즈 데이'로 지정해 여성 관중들에게 입장권 할인 혜택 등을 제공한다.

왜 ‘지금’, 왜 ‘여성’인가

지난 2010년 타임지는 여성의 임금 인상과 구매력 증대에 주목하며 앞으로 쉬코노미가 떠오르게 될 것이라고 예견한 바 있다. 결혼과 출산, 그리고 육아 등으로 경제 활동에 큰 제약이 따랐던 과거와 달리, 비혼이 하나의 문화처럼 자리 잡은 오늘날에는 여성들이 꾸준히 경제 활동을 이어 가고 있다. 과거에 비해 여성의 소득 역시 올랐다. 여성의 결혼을 염두에 두어 자녀를 둔 기혼 여성을 기준 삼아 임금을 낮게 책정하던 경향이 완화된 것으로 풀이된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여성 근로자의 월 평균 급여는 194만 6000원으로, 이는 141만 3000원이었던 지난 2008년 여성 근로자의 월 평균 급여와 비교했을 때 약 38%나 상승한 수치다. 경제력이 높아질 경우 여성들의 소비 역량은 더욱 커진다. 이들의 소득 인상에 자신을 위해서라면 아낌없이 지갑을 여는 ‘욜로’ 열풍이 더해졌다.

‘비혼’과 ‘욜로’와 같은 오늘날 사회 흐름이 여성의 경력단절을 막고 경제력 증가의 원인이라면 왜 여러 업계들은 ‘남성’이 아닌 ‘여성’ 위주의 마케팅에 주력하는가.

남성 역시 오늘날의 비혼과 욜로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임을 고려해 본다면 왜 ‘여성’인지는 쉽게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먼저 여성들이 가진 ‘전파력’에 주목했다. 여성 소비자들이 만들어내는 ‘입소문 효과’는 무시할 수 없는 요인으로 꼽힌다는 것. 여성은 자신뿐만 아니라 남성에게도 전파력이 크고, 친구, 가족, 동료 등 자신이 구매한 제품과 그 효능까지 공유한다. 특히 여성들은 자신이 써보고 좋은 제품은 반드시 SNS 등을 통해 상품평 및 후기를 남겨 추천하려는 성향이 강한 것으로 나타났다.

여성들의 ‘다방면에 대한 관심’은 소비하는 가지 수를 늘린다. 잠실 롯데 백화점 식품매장에서 근무하는 한 점원은 “남성 소비자들의 경우 선택이 매우 제한적이다. 가령 쌀을 구매하는 상황에서 남성 소비자들은 백미 혹은 흑미 가운데 하나를 선택한다. 그 밖의 곡물에 대해서 큰 관심을 보인다거나 그들의 기능과 효능에 대해 질문하는 경우가 적다. 그러나 여성 소비자들의 경우 백미, 흑미와 더불어 퀴노아 라이스, 검은콩 가루 등의 구매가 같이 이루어져 남성 소비자들의 비해 구매하는 가지 수가 많다”고 설명한다. 이는 다른 기타 제품을 살 때에도 마찬가지다. 비누 한 개를 사더라도 파라벤 등의 유해성분을 포함하고 있지 않은 제품인지, 특정 식물의 추출물이 들어 있는 제품인지, 만일 그렇다면 그 식물이 유기농인지 등 여성들 사이에는 ‘하나를 사도 꼼꼼히 따져 좋은 것을 사자’라는 소비 공식이 존재한다. 많이 아는 만큼 좋은 제품을 살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 주류 브랜드 조니 워커가 여성 애주가를 위해 출시한 위스키 ‘제인 워커’.

여성들의 ‘씀씀이’ 역시 새로운 쉬코노미 마케팅의 이유다. 실제로 국내 25세~39세에 해당되는 여성 1인 청년가구의 월평균 소비지출은 약 125만 원으로 월평균 소비 지출이 110만 원인 남성보다 더 많은 지출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에서는 상속의 70%가 여성으로부터 이루어지고 있고, 아시아에서는 도시 가계소득의 83%가 여성의 기여로 이루어지고 있다. 이 같은 사실을 바탕으로 전문가들은 여성들이 자신의 잠재력만큼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한다면 2030년까지 1인당 소득을 현재 소득 수준의 12%를 증가시킬 수 있다고 내다보고 있다.

여성의 경제주체의 지위 상승은 앞으로도 꾸준히 이어질 것으로 관측되고 있어 쉬코노미 역시 일시적인 사회 현상이 아닌 하나의 경제 문화로 자리 잡게 될 거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여성들을 지나친 마케팅의 타깃으로 삼아 돈벌이 수단으로만 이용될 수도 있다는 부작용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전문가들은 쉬코노미의 본질이 흐려지지 않도록 올바른 경제 마케팅 활동이 되어야 할 것이라고 조언한다.

이정현 기자  news@kpc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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