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블루오션 시장 할랄메뉴가 확산되고 있다.

끊임없이 새로운 성장동력을 모색하는 국내 유통기업들 사이에서 최근 ‘무슬림 시장’이 블루오션으로 부상하고 있다. 무슬림이 먹는 할랄(Halal)푸드가 전 세계적인 화두로 떠오른 데 따른 것이다. 할랄은 ‘신이 허용한 것’이라는 뜻의 아랍어로 ‘먹어도 되는 식품’을 말한다. 무슬림 율법에 따라 생산, 도축, 처리, 가공된 식품과 공산품에 부여된다. 이 같은 할랄식품이 주목받는 이유는 무슬림 인구의 지속적인 증가와 경제성장에 있다.

무슬림을 믿는 무슬림은 17억 명으로, 세계 인구의 약 23%에 달한다. 무슬림의 인구 증가는 할랄식품 시장의 급성장에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다. 경제 전문가들은 2015년 1.2조 달러에 달하던 할랄식품 시장규모가 약 10년 내 62% 이상의 성장률을 보이며 2조 달러에 육박할 거라고 내다봤다. 이는 모슬렘만 놓고 봤을 때 나온 분석이다. 하지만 웰빙의 이미지까지 더해진 할랄푸드가 최근 무슬림뿐 아니라 이슬람을 믿지 않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각광받고 있어 잠재력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국내 유통기업들도 앞다퉈 할랄식품 인증 획득을 가속화해 중동시장 공략에 나섰다.

중동시장 공략 위해 할랄인증 받는 K푸드

포스트차이나로 불리는 동남아 시장과 중동시장 공략을 위해 국내 기업들이 해결해야 했던 첫 번째 과제는 할랄식품 인증 획득이었다. 완성품뿐 아니라 재료 처리와 가공, 유통까지의 과정이 이슬람 율법에 어긋나지 않았다는 인증절차를 거쳐야 한국 식품을 할랄식품으로 수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세계 3대 할랄인증으로는 말레이시아 ‘자킴(JAKIM)’, 인도네시아 ‘무이(MUI)’, 싱가포르 ‘무이스(MUIS)’ 등이 있는데, 이 중 말레이시아 ‘자킴’은 가장 엄격하고 어려운 할랄 인증에 속해 최고 권위의 할랄인증으로 여겨진다.

국내 식품업체 가운데 최초로 ‘자킴’ 할랄인증을 회득한 기업은 CJ제일제당이다. CJ제일제당은 할랄식품 시장이 활성화되기 전인 2013년부터 할랄식품 인증 획득에 열을 올렸다. 수출식품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무슬림이 먹지 않는 대표적인 음식 돼지고기를 비롯해 도축되지 않은 고기, 인공 바닐라 추출물, 알코올, 젤라틴 등을 철저히 배재하는 등 다각도의 시도를 진행했다. 그 결과 햇반류, 김치류, 조미김류 등 총 3개 품목에서 30개의 자체 브랜드 제품을 시작으로 현재는 46개 제품에 대한 할랄인증을 획득하며 해마다 20% 매출 규모를 늘리고 있다.

삼양식품은 라면업계 최조로 인도네시아 ‘무이’ 할랄인증을 획득했다. 제품 성분표, 시험 성적서 등 안전성 관련 서류는 물론 제조·유통 과정까지 현장 실사를 받고, 원료를 공급하는 협력업체 역시 동일하게 심사를 통과해야 하는 등 까다로운 ‘무이’ 할랄 인증 획득 조건들을 충족시키기 위해 삼양식품은 지난해 10월부터 준비해왔다. 또 삼양식품은 수출 초기부터 국내에서도 메가히트 행진을 기록한 ‘불닭볶음면’의 할랄 인증을 획득해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에서 소위 ‘대박’을 터뜨렸다. ‘불닭볶음면’은 지난해 해외에서만 1750억 원의 매출을 올리며 삼양식품의 대표 식품으로 거듭났다. 말레이시아가 전 세계 라면 소비국 중 10위 안에 든다는 점을 전략적으로 파고든 결과다. 삼양식품은 이 기세를 몰아 세계 2위 라면 소비국이자 동남아 시장을 대표하는 인도네시아 수출 증대를 위해 핵불닭볶음면, 마라불닭볶음면 등 다른 불닭 브랜드의 MUI 인증을 추가로 획득하고 스낵 제품으로도 확대해나갈 예정이다.

후발주자는 신세계푸드다. 최근 동남아 공략을 본격화하고자 무슬림을 위해 개발한 제품들의 할랄 인증을 획득한 신세계푸드는 ‘대박라면 김치맛’, ‘대박라면 양념치킨맛’을 출시했다. 지난해 말레이시아 식품기업 마미 더블 데커와 설립한 합작법인 신세계 마미를 통해 만든 대박라면 2종은 ‘자킴’ 할랄 인증을 받았다. 모든 원재료의 입고, 생산, 운반, 저장과정에서 이슬람 율법으로 금지된 돼지고기와 교차오염이 되지 않도록 엄격하게 배제했다는 얘기다. 이뿐 아니라 신세계푸드는 자사 고추장 제품도 할랄 인증을 받기 위해 자킴과 동등한 효력이 있는 한국이슬람교중앙회(KMF)로부터 인증을 획득했다. 할랄인증 획득을 위해 신세계푸드가 개발한 고추장은 이슬람 율법에서 금지하는 주정(酒精)의 첨가 없이 만들어졌으며, 자연 숙성 시 발생할 수 있는 알코올의 생성 역시 철저히 차단했다. 이번 고추장 할랄인증 획득을 바탕으로 떡볶이 등 다양한 한국식 매운맛으로 무슬림의 입맛을 사로잡겠다는 계획이다.

이들 기업 외에도 부산공장에 할랄 전용 생산라인을 두고 ‘할랄 신라면’을 출시하고 있는 농심, 인도네시아 현지 법인에서 할랄 브랜드 ‘마마수까’를 론칭한 대상을 비롯해 풀무원, 동원, 오리온, 해태 등 할랄시장 진출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 지난 평창올림픽 선수촌에 등장한 할랄푸드 코너.

‘유커’ 대신 ‘무슬림’ 잡아라

할랄 바람은 식품계를 넘어 뷰티업계, 관광업계 등 다른 영역까지 번지고 있다. 2015년부터 정부의 할랄시장 진출 지원은 본격화됐지만 음식료를 제외한 영역에서는 할랄시장 대응이 활발하게 이루어지진 않았다. 하지만 지난 2016년 글로벌 화장품 제조자개발생산(ODM) 1위 기업 코스맥스가 국내 화장품 업계 최초로 인도네시아 할랄인증 ‘무이’를 획득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아모레퍼시픽을 필두로 여러 뷰티업계가 중동 수출을 겨냥해 할랄 화장품 개발에 박차를 가한 것이다. 여기에는 사드 보복으로 인한 중국인들의 한국 화장품 보이콧을 계기로 중국 의존도를 줄이고 동남아로 눈길을 돌리겠다는 숨은 의미가 담겨있다.

아모레퍼시픽은 철저한 현지화에서 답을 찾았다. 화려하게 꾸미는 것을 선호하는 중국인과는 달리 히잡을 두른 무슬림 여성들은 화장을 하는 사람이 많지 않아 다른 전략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아모레퍼시픽은 하루 다섯 번의 기도를 올리는 이슬람의 문화를 이용하기로 했다. 기도 전에는 반드시 ‘세정의식’을 하도록 돼 있는 이들의 문화에 착안해 무슬림 여성들을 위한 ‘딥클렌징’이 필요 없는 화장품을 개발 중에 있는 것. 이뿐 아니라 아세안 지역의 수용에 대응하기 위해 2020년 완공을 목표로 말레이시아에 새로운 생산기지를 구축하고 있다.

관광업계도 빠져나간 중국인 관광객 수요를 대체하기 위해 무슬림 관광객 유치에 열을 올리고 있다. 관광업계는 2016년 한국관광공사가 모슬렘 7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설문 결과를 분석했다.

설문 조사에 따르면 대부분의 무슬림 관광객들은 한국 관광 시 할랄 음식이나 기도실 등 무슬림 친화 관광 인프라가 부족해 여행에 불편을 겪었다. 이런 상황을 고려해 관광업계는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롯데호텔·쉐라톤디큐브시티·더플라자 등 무슬림 친화 식당 분류제 인증을 받은 총 34곳과 제휴를 맺고, 기도매트·코란·나침반을 제공하는 등 무슬림 관광객을 위한 서비스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이제 유커 중심에서 벗어나 무슬림을 위한 새로운 전략이 국내 업계에 고착화될 것으로 보인다.

▲ 고추장 할랄인증을 받은 신세계푸드.

국내는 할랄 열풍 부작용

할랄시장 공략 성공은 경제적 측면에서 우리나라에 플러스가 되지만 아직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생소한 할랄 열풍은 국내 곳곳에서 갈등을 빚고 있다. 이 같은 갈등은 지난 4월 서울대학교 학생식당에 할랄 메뉴가 도입되면서 시작됐다. 서울대는 학교에 재학 중인 무슬림 학생들의 음식에 대한 불편함을 해결해주고자 할랄 메뉴 도입을 결정했다. 하지만 무슬림 학생이 서울대 총 재적학생 2만 1004명 중 1%도 되지 않는 상황이라 ‘문화적 다양성’을 이유로 메뉴를 도입하는 게 맞는지에 대해 학교 내 의견은 엇갈리고 있다. 서울대 영어영문과에 재학 중인 A양은 “할랄 메뉴를 도입했다고 해서 기존의 메뉴가 없어지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큰 불편함이 없다”고 말하면서도 “하지만 적지 않은 동기들은 이를 두고 소수를 위한 지나친 배려라고 생각하는 편”이라고 전했다.

지난해에는 충남 부여군 구룡면에 할랄푸드 도축장 건립이 추진되는 것을 반대하는 종교 단체와 주민들이 항의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슬람식 도축방식에 따라 도축한 고기만을 사용해야 할랄 인증을 획득할 수 있다는 점을 이유로 들어 농림축산식품부는 할랄 도축장을 지을 예정이었다. 할랄식품 단지 조성이라는 농식품부의 큰 그림은 특정 종교단체와 일부 주민들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쳐 큰 소란을 빚은 바 있다.

▲ 무슬림 관광객을 위해 잠실 롯데에 설치된 기도실.

이 밖에도 할랄시장 진출에 혈안인 된 국내 기업이 할랄인증 획득 없이 할랄푸드로 속여 인도네시아에 식품을 수출해 문제가 됐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인도네시아 식품의약청(BPOM)은 한국 라면 4종에서 무슬림들이 금기시하는 돼지고기 유전자가 검출됐다. 이는 까다로운 할랄인증 획득과정을 정상적으로 거친 국내 기업들에게 타격이 될 수도 있는 사례였다. 연이어 빚어지는 할랄관련 잡음에 대해 전문가들은 “국민의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며 “너무 대우할 필요도 없고 너무 배제할 필요도 없이 객관적으로 접근하고 이해해야 할랄 산업이 신성장동력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우리 기업들이 할랄산업 선두를 달리기 위해 정부 및 업계 관계자들의 투명성도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이정현 기자  news@kpc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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