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3년 6월 어느 날, 고향집에서 부모님과 한담을 나누던 정오 무렵에 갑자기 주변이 소란해졌다.

앞옆집의 아낙이 고래고래 울부짖으며 집으로 내달리고, 동네 사람 너댓명도 같이 달려오고 있었다.

황구(黃狗)가 벌인 살인미수 사건 때문이었다.

두세 살 터울의 아들만 일곱이 있던 그 집은 바쁜 농사철이라 어린 것을 안방에 재워 놓고 들에 나갔다.

모기장을 씌우고 방문은 열어 둔 채였다. 일터에서 일하는 사이 아기는 똥을 누어 뭉갠 상태로 잠을 잤는데 마침 그곳에 어슬렁거리던 개 한 마리가 구수한 향기의 진원지를 찾아 방에 들이닥쳤다.

황구(黃狗)는 아이의 기저귀를 헤치며 맛있게 한 끼 때우고 육식까지 탐하여 아이의 고환을 훑어 먹었다.

성(性)의 정체성은 물론 목숨까지 잃을 번한 절체절명의 순간이었다. 다행히 아기는 한 쪽 고환이 남아 남성의 기능을 잃지는 않아 지금은 두 아이를 둔 가장으로서 아무 이상 없이 살고 있다.

30여 년 전에 목격한 그 일은 단 한 번으로 끝이었지만 그 같은 사건은 의외로 많았다.

조선 시대 환관 중에는 그렇게 불의의 사고로 불구가 된 자들이 많았다는 점이 이를 증명한다.

그렇게 한 순간의 사고로 평생 지울 수 없는 한을 안고 살아서 그런지 환관들은 재물과 권력에 욕심을 부려 부정적인 이미지를 남겼다.

그래도 2012년에 정상인보다 14년 정도 더 오래 살았다는 연구결과가 나왔으니 황구는 환관의 계보를 잇고 장수하게 하는 데 크게 공(?)을 세운 셈이다.

일반인들은 대부분 내시를 조선 시대의 산물로 이해한다. 역사를 소재로 한 궁중 드라마나 영화에 내시와 궁녀의 역할이 중요하게 나타나고, 권력층의 암투에 그들이 감초처럼 등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환관은 신라 흥덕왕 이야기에 처음 나타난다.

『삼국 사기』 '신라 본기' 흥덕왕(826~836) 원년의 기록이다.

흥덕왕 원년 12월에 왕비 장화 부인이 죽자, 정목 왕후로 추봉한 후 왕은 새 왕비를 맞이하지 않았다.

여러 대신들이 새 왕비를 맞이할 것을 주청하였으나 왕은 짝 잃은 새 이야기를 예로 들며 시녀들까지도 가까이 하지 않고, 오직 좌우에 있는 심부름꾼 환수(宦竪)만 가까이 했다는 내용이다.

환관을 달리 환자(宦者), 환수(宦竪), 환시(宦侍 등으로 부르는 것에 견주면 환수가 곧 환관이다.

우리나라의 환관은 이미 흥덕왕 이전부터 왕실의 구성원으로 존재했다는 증거다.

다만 그 기록 외에는 다른 데서 발견할 수 없다는 것이 한계다.

중국에서는 은나라(상나라)의 갑골문자에 성기와 고환, 그 우측에 칼을 그린 문자가 보이고, 유교의 경전『서경(書經)』에 ‘거세’에 관한 기록이 있어 환관에 대한 역사를 확인할 수 있다.

특히『서경(書經)』 ‘여형(呂刑)’ 1조에 나타난 형벌은 죄의 종류에 따라 문신, 코자르기, 다리절단, 거세, 사형 등 5형(五刑)으로 구분했다.

이는 목왕(穆王)이 백세 가까운 노인이다 보니 악한 세상을 예전처럼 다스리기가 힘들어 여후(呂侯)에게 중한 법률로 다스릴 것을 구체적으로 설명한 내용이다.

이 시기에는 형벌에 의한 환자(宦者)와 궁형을 받은 전쟁포로들로 환관을 삼았는데 이들이 점차 출세하여 절대 권력을 휘두르자 스스로 거세하는 자궁(自宮) 환자(宦者)가 많이 나타났다.

수나라 이후 궁형이 사라지면서 자궁에 의한 고자가 늘었고, 명나라 후기에 궁녀들의 역할까지 환관들이 맡다보니 환관은 무려 10만 명 내외에 이르렀다.

1632년의 명나라 천계제(天啓帝) 3년에 환관 3천 명을 모집하는 데 무려 2만 명이 모였다는 기록이 이를 증명한다. 그 만큼 환관은 인기직종으로 떠올라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

진나라가 환관에 의해 망한 대표적인 나라라면, 명나라는 환관의 나라라 할 만큼 환관의 영향이 절대적이었다.

명태조 주원장은 아예 환관이 정치에 참여하지 못하게 금지령을 내렸는데 넷째 아들 영락제는 조카 건문제(建文帝)로부터 황위를 찬탈하기 위해 ‘정란(靖難)의 변’을 일으켰을 때 황궁의 환관들과 내통한 것이 도움이 되어 환관을 중용하였다.

이것이 환관정치의 서막이었다. 그래서 황종희, 고염무과 함께 명말 청초의 3대 학자라 하는 왕부지(王夫之1619~1692)는 ‘환관의 죄악은 선비들보다 심하다. 오로지 염치를 빌 곳도, 자손을 염려할 것도 없는 까닭에 가엽게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하물며 간사함으로 군주의 곁에 있다’고 한탄했고 마지막 황제 숭정제는 ‘우리 선대의 황제들이 창고에 쌓아 전해온 기이한 보물과 금은보화들을 그대들이 결탁하여 훔쳐 텅 비게 하였다’고 꾸짖기도 했다.

조선의 내시(內侍)

내시(內侍)는 고자(鼓子)와 같은 존재로 인식하여 환관(宦官)과 동일시한다. 그러나 적어도 고려시대 공민왕 이전까지 이 등식은 성립하지 않았다.

내시와 환관은 분명히 달랐다. 문자적으로는 ‘안에서 모신다.’는 뜻이지만 명사적으로는 ‘안에서 임금을 모시는 사람’의 뜻이니 요즈음 청와대 비서관에 해당하는 관직이다.

임금을 대신해 외교 문서는 물론 모든 문서를 대필해야 하기 때문에 유려한 문장력은 물론 상당한 학식이 있어야 했다.

『삼국사기』를 쓴 김부식의 아들 김돈중이 내시였던 것을 보면 고려의 내시는 곧 과거에 급제한 명망 있는 집안의 자제였다.

임금을 최측근으로서 정책의 결정에도 자문하여 신임이 두터웠고 쉽게 중요한 관직에 오를 수 있는 엘리트였다. 그런 자리가 내시였는데, 무신정변의 계기를 제공한 의종이 환관 정성을 내시직에 임명했다.

이에 내시들이 반대하며 상소를 올리자 의종은 명령을 거두어 환관의 내시직 진출은 무산되었다. 그 후 원나라의 지배를 받던 시절, 원나라가 환관을 보내 정치에 관여하면서부터 내시는 곧 환관이라는 등식이 성립했다.

환관을 고자라 하는데 그 고자의 유래는 환관의 역사만큼이나 깊고 다양한 이야기가 전한다. 박갑천님은 어원이야기』(1995. 을유문화사)에서 ‘고자’에 대한 여러 가지 재미있는 설을 함께 실었다. 그 내용에 필자의 설명을 부연하여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우선 『훈몽자회』에 실려 있는 ‘고쟈(엄)’ ‘고쟈宦(환)’ ‘고쟈(혼)’ ‘고쟈(시)’를 통해 중세에는 ‘고쟈’였음을 밝히고 송나라 손목의 『계림유사』에서는 광대나 풍류하는 사람도 ‘고자’라 했다는 예문을 들었다.

그러면서 고자에 대한 느낌은 예로부터 그렇게 좋은 감정이 아니었다는 가설에 의해 진나라의 환관 조고(趙高)와 곳간지기 ‘고자(庫子)’에서 비롯되었다는 이야기를 전개했다.

조고는 진시황의 유조(遺詔)를 위조하여 맏아들 부소(扶蘇)를 죽이고 어린 호해(胡亥)를 황제로 세운 환관이다. 어리석은 황제를 농락하며 권력을 휘어잡은 조고는 승상 이사(李斯)를 제거한 후 자신이 승상이 되어 중신들을 제압하기 위한 술책을 폈다.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 한 소위 지록위마(指鹿爲馬)의 촌극이다. 이로 인해 진나라는 혼란에 빠져 유방의 한나라에 멸망했으니 조고는 나라를 망친 간신이자 역신의 대명사로 바뀌었다. 나라를 망친 환관 조고, 그래서 조고처럼 떳떳하지 못한 행동을 하는 자를 가리켜 씨도 없는 고자의 아들이라 비아냥거리며 ‘조고의 아들’ 로서 고자(高子)라 했다는 것이다.

고자(庫子)는 창고를 지키는 자를 일컫는 말인데 이들이 환관인데다 발음이 같아 ‘고자’라 했다는 설도 덧붙였다. 모두가 역사적 사실에 근거를 두고 발음의 유사성에서 유추해낸 풀이다.

그러나 환관이나 내시라는 명칭이 좋은 느낌이 들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고자질’이라는 말이 파생했다. 미주알고주알 남의 잘못을 일러바치는 행위가 고자질이므로 환관이 임금에게 있는 말 없는 말로 꾸며 온갖 고자질을 한다는 데서 파생되었다는 것이다.

재미있는 풀이다. 언어는 그렇게 의미를 확대하며 어휘를 늘리고, 그것에 해학적 의미를 덧입혀 재미있게 파생한다. 그런 상상력이 어원을 공부하는데 도움을 준다. 그러나 ‘고자’를 문자대로 해석하면 북‘고(鼓)’자를 사용한 ‘고자(鼓子)’다.

여기에 고자의 의미를 밝혀내는 재미있는 힌트가 있다. 고자는 고환을 제거하여 알집의 속이 텅 빈 북과 같아서 고자(鼓子)라 한 것이다.

속이 텅 빈 사람, 그것도 중심추를 이루는 남성의 상징이 텅 비었으니 성격적으로 모가 나고 시세에 민감하게 변덕을 잘 부렸는지도 모른다.

김처선, 엄자치, 김계한과 같이 충절을 지킨 훌륭한 내시도 있으나 김자원, 박한종과 같은 권력지향형의 내시로 인해 부정적인 의미가 많다.

환관의 생활

중국의 환관은 성기까지 잘라내 성생활은 생각할 수도 없다.

그런데도 명나라 시대의 환관들은 궁녀와 눈이 맞아 결혼도 하고 심지어는 수십 명의 첩을 거느린 자도 있었다.

조선의 환관과의 차이는 자신의 양물을 도자기에 담아 잘 보관해야 하는 점이다.

이는 노애가 진시황의 모후와 연결하여 거짓 환관으로 황궁에 진입한 후 두 아들을 낳고, 그 아들을 황위에 올리기 위해 반란을 일으킨 데에 기인한다.

환관들이 승진하거나 중요한 행사가 있을 때마다 자기의 양물을 보여주며 진짜 환관임을 확인하기 위한 절차였다.

이 검사를 험보(驗寶)라 하는데 험보 때 아무리 고과점수가 높아도 양물이 없으면 승진할 수 없어 보물단지처럼 관리했다.

만일 분실하면 양물절제 수술을 해주는 도자공에게 비싼 값을 치르고 사와야 했다.

간혹 수술을 받고 정신없이 양물을 놓고 간 자가 있어 도자공은 양물을 소유하고 있었다.

그런 중에 왕진(?~1449)과 같이 횡포를 부린 환관과 세계 최고부자라 할 만큼 재물을 긁어모은 유근(?~1510), 그리고 황제에게 ‘만세’를 외치듯 자신에게 ‘구천세’를 외치게 한 위충현 등이 무도하고 흉악한 패륜을 저질렀다. 그래서 청나라에서는 꼭 필요한 인원으로 오륙백 명 정도만 남겼다.

조선의 환관도 정식으로 결혼하여 가정을 꾸렸다.

생식 능력이 없어 자식을 낳을 수는 없으나 전국의 정보망을 이용해 개에게 물린 고자들을 입양했다.

이들을 양세계보(養世系譜)에 올렸는데 이 족보에 등재된 가족은 부자간이라도 성씨가 다르다. 입양자가 이성(異姓)이라서 그의 혈족을 보존하기 위함이었다.

영등포역쪽에 고환을 자르는 시술소가 있었는데 이상하게 비가 오고 천둥번개가 치는 날에 시술을 했다.

통행인이 적어 신경 쓸 일도 없고 천둥소리에 비명을 잠재울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생사를 가르는 고통을 치르며 환관이 된 내시들은 또 다른 고통에 시달려야 했다.

고환만 제거하고 남은 성기로 부부행위를 하는데 아무리 애를 써도 사정이 되지 않는 고통이었다.

그 고통을 이기지 못해 내시는 부인의 어깨와 목덜미를 물어뜯었다. 그래서 내시가 부부행위를 할 때는 먼저 부인이 남편의 입을 수건으로 묶어 물지 못하게 사전조치를 취했다. 고환이 없어도 발기는 가능하다는 것은 의학계의 보고에 의해 확인된 바다.

그렇다면 누가 내시에게 시집을 갔을까?

불구자나 먹고 살기 어려운 사람이 시집갔으리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권력욕에 눈이 먼 사대부들이 자기의 딸을 시집보내 출세의 희생양을 삼았다.

내시는 왕을 가장 가까이 모시는 자이기 때문에 그의 말 한 마디는 곧 출세로 이어지는 보험이나 다름없었다.

그래서 환관이라 해도 사대부들이 함부로 대하지 못했다.

일반적으로 내시는 신체가 여성적으로 허약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오해다.

평균 8세에 궁궐에 들어간 어린 내시는 10여 년 동안 다양한 훈련을 받는다.

요즈음의 환경 미화원을 선발할 때와 같이 큰 돌을 지고 옮기는 것을 비롯하여 물고문을 누가 잘 견디는가에 대한 시험도 거친다.

궁궐에 위급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임금을 업고 뛰쳐나갈 만한 힘이 있는지의 여부와 엉뚱한 정변에 연루되었거나 궁실의 비밀을 지켜야 할 때 비밀을 지킬 수 있는 인내심이 어느 정도인지를 알기 위함이다. 그 시험에 합격해야만 정식 환관으로 인정받아 부서에 배속되었다.

조선왕실에서는 내시부를 두어 환관을 관리했는데 최고위직이 종2품의 상선이다.

2명의 상선을 비롯하여 종9품의 상원에 이르기까지 품계를 받은 59명의 내시는 일반 내시와는 달리 엄격한 규제를 받았다.

특히 상선은 수라를 관리하여 임금의 생명을 지키는 책임이 있었다. 『경국대전』에서는 내시부를 홍문관이나 승정원처럼 독립된 하나의 부서로 인정하여 그 임무를 상세히 기록해 놓았다.

그 부서는 궁중의 음식 전반을 감독하는 대내감선, 왕명을 전달하는 왕명출납, 궁중의 문을 지키는 수문. 궁궐내의 청소를 담당하는 소제 등 4개의 부서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보다 많은 분야에서 일을 했다.

궁궐의 건물을 관리하고 보수하는가 하면 왕실의 제사와 재산관리 등 궁중 내의 대소사에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일꾼이었다.

그래도 출퇴근했기 때문에 드라마에서 보듯 종살이처럼 불쌍하게 살지는 않았다.

다만 장번은 교대기간이 길어 궁궐에 머무는 시간이 길었고 출입번은 매일 출퇴근했으므로 자유스러웠다. 다만 장번의 근무조건이 힘들었던 만큼 신임이 두터워 출세 길이 빨랐다.

왕실을 유지하기 위해 없어서는 안 될 왕의 수족과 같은 사람, 그 중요성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러나 망나니 같은 연산군에게 충언을 하다 손발이 잘리고 활에 맞아 죽은 김처선이 있는데도 부정적인 이미지를 주는 것은 꼭 환관의 탓만은 아니다.

일 년에 네 차례씩 사서로 시험을 볼 만큼 학식이 있는데도 사대부들이 실록에 내시를 좋게 기록하지 않은 부분이 상당히 작용한다.

김처선으로 인해 연산군은 처자와 선자를 사용하지 말라 했는데도 과거에 급제했던 충재 권벌(1478∼1548)의 답안지에서 처자를 발견하고는 합격을 취소했다.

이는 김처선이 얼마나 충신이었는가를 반증한다. 연산군은 좋아하는 처용무(處容舞)조차 풍두무(豊頭舞) 바꿀 정도였으니 김처선으로부터 받은 충격이 분명 트라우마(trauma)로 작용했다.

그동안 왕실문화의 한 축으로서 내시는 많은 편견과 오해 속에서 부정적인 느낌을 받았지만 임금과 더불어 다시 봐야 할 우리 역사의 한 부분이다.

강기옥  k-toda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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