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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 시간이 멈춘 섬, 교동도1960년대 골목시장 그대로 재현, 예스러움에 취해
임윤식 기자  |  webmaster@k-tod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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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3.06  11:0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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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동도에서 바라본 석모도 전경

교동도는 강화도 북서부, 민통선(민간인출입통제구역) 안에 위치한 섬이다. 규모가 제법 큰데도 강화도에 가려 많이 알려지지는 않았으며, 예전에는 간첩의 침투가 잦았고, 북한 주민 귀순소식 등으로 언론에 종종 오르내리곤 했던 섬이다.

북쪽으로 불과 2∼3㎞의 바다를 끼고 황해도 연백군이 있다. 섬 북부에서는 황해도 땅을 쉽게

바라볼 수 있으며, 좀 높은 곳에서는 예성강 하구, 맑은 날에는 개성 송악산도 바라볼 수 있어 실향민들이 화개산 산정에서 북쪽을 바라보며 망향제를 지내는 곳이기도 하다. 동쪽으로 바다를 건너면 강화도 양사면과 내가면이 있고, 남쪽으로는 강화군 삼산면 석모도가 있다.

전에는 강화도 창후리에서 군부대의 검문검색 후 배를 타고 건너가야 했으나 2014년 7월 교동대교 개통으로 강화도와 연결됨으로써 육지와의 교통이 편리해졌다. 민통선 지역이라 아직도 군부대의 통제를 받아야 하지만 신분증만 지참하면 누구나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다.

   
 

지리적 위치상 외세의 침범이 빈번했기에 섬에는 많은 고적이 남아 있다. 이 섬은 특히 6·25 때 황해도 연백군에서 피난 온 주민들이 생계를 위해 고향 연백시장을 본떠 만든 골목시장이 있어 1960년대의 삶과 분위기를 엿볼 수 있으며, 지금도 상당수의 실향민과 그 후손들이 살아가고 있다.

교동도에 가려면 자가용은 강화도를 거쳐 48번 국도 인화리에서 교동대교를 건너가고, 대중교통은 강화버스터미널에서 월선포행 군내버스를 타면 된다.

교동도 여행 및 트레킹은 두 코스가 있다. 가장 대표적인 코스는 ‘다을새길’로 월선포-교동향교-화개사-화개산 정상-석천당-대룡시장-남산포-교동읍성-동진포-월선포 코스로 총 16km, 약 6시간 소요되며, 중간에 화개산을 오르지 않고 평지만 걷거나 자가용으로 돌 수 있는 약간

짧은 코스도 있다. 또 하나의 코스는 ‘머르메’ 코스로, 대룡리-난정저수지-수정산-금정굴-애기봉-죽산포-머르메-양갑리 마을회관-미곡종합처리장-대룡리 코스로 17.2km, 약 6시간 걸린다.

   
▲ 안양사지 터

이들 코스는 강화도 전체 둘레길인 ‘강화나들길’의 일부(9코스 및 10코스)다. 이 중 필자는 교동도의 경관과 역사적 흔적을 함께 맛볼 수 있는 ‘다을새길’을 걸어봤다. ‘다을새’란 교동의 옛 지명으로 대운도(戴雲島: 구름에 뜬 섬) 또는 달을신(達乙新: 하늘에 닿을 새)이라 하였으며 다을새는 달을신의 소리음이다.

‘다을새길’ 출발지점인 월선포는 2014년 이전만 해도 배로 강화도를 왕래하는 선착장으로 번영을 누렸으나 교동대교가 놓임에 따라 이제는 선착장 흔적만 보일 뿐 한적하기 그지없다.

월선포에서 몇 분만 가면 교동교회 건물이 보이고 우측 길로 교동면 상룡리라고 쓰여진 낮은 장승 두 개가 눈에 띈다. 이 길을 따라 마을을 지나면 숲속에서 폐교회도 만난다. 교동도 지역에는 일찍이 1899년 복음이 들어와 사랑방 형태의 교회가 있었고, 1900년에 교회가 생겼는데 권신일이라는 사람에 의해 시작되었다고 한다. 권신일의영향을 받은 많은 사람 중에 상용리에 살던 박성대와 박형남 부자가 교동교회를 세웠다. 이 폐교회가 (구)교동교회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자료를 찾아보니 그게 아니다. (구)교동교회는 교동면 상용리 516번지 한글 점자 훈맹정음 창안자 송암 박두성 선생 생가터 바로 옆에 따로 있다.

   
▲ 교동향교

폐교회를 지나 20분쯤 강화나들길 표시를 따라 마을길을 가다 우측 숲길로 접어들면 곧 여러 개의 벤취가 있는 안양사지(安養寺址) 터에 이른다. 안양사지는 화개사와 함께 동국여지승람에 기록될 정도로 그 연혁이 있으나 현재는 터만 남아 있다.

사역 전체의 규모는 동서 21m, 남북 17m로 사찰지는 동쪽을 향했던 것으로 짐작된다.

안양사지터에서 숲길로 20분 정도 더 가면 교동향교에 이른다. 이곳 향교는 국내 최초의 수묘로서 고려 충렬왕 12년(1286)에 유학자 안향(安珦)이 원나라에 갔다가 공자의 초상화를 가지고 돌아오면서 이곳에 모셨다고 전해온다. 향교 안에는 공자의 신주와 우리나라 유현들의 위패를 모시는 대성전과 좌우에 선현들을 제사지내는 동·서우를 두었고, 유생들이 배움을 익히고 닦는 명륜당과 서재, 제수용품을 보관하는 제기고 등이 있다. 교동향교 정면으로는 멀지 않은 거리에 바다도 내려다보인다.

   
▲ 화개산 초입

필자 일행은 화개산을 오르기 위해 화개사 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월선포에서 교동향교까지는 3.8km, 향교에서 화개사는 0.8km 거리.

화개사는 목은 이색이 머물렀던 사찰로 유명하며, 절 입구에는 수령 210년의 소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화개사 앞 삼거리에서 좌측은 교동면 사무소 및 대룡시장 가는 길로 1.5km, 직진하면 화개산 정상 오르는 길로 정상까지 1.5km 거리다. 등산을 하지 않고 짧은 코스를 택하고자 할 경우에는 이곳에서 좌측 길을 따라가면 된다.

화개산 등산 초입길은 특히 숲이 울창하고 아름답다. 완만한 비탈길을 20분쯤 걸으면 로프 난간이 설치된 급경사 너덜길을 만나고 곧 능선에 이른다. 시야가 트이면서 우측으로 석모도가 보이고 교동읍성과 교동도 들판, 남산포도 내려다보인다. 석모도 뒤로 강화도 마니산, 국수산, 진강산 등도 희미하게 눈에 들어온다.

봄비가 조금씩 내리기 시작한다. 비옷을 입고 산행을 계속한다. 능선 좌우 숲에는 봄을 알리는 새순과 이름 모를 야생화도 눈에 띈다. 화개산 봉수대를 지나 아기자기한 능선숲길을 200m쯤 더 가면 드디어 화개산 정상(259.6m). 정상에는 표지목과 함께 산불감시초소와 정자가 있다. 이곳에서는 날씨가 맑으면 황해도 연백평야와 개성의 송악산을 뚜렷하게 볼 수 있으며, 석모도는 물론 멀리 주문도, 아차도, 볼음도 등도 손에 잡힐 듯 볼 수 있다는데 필자가 오른 날은 날씨가 흐려 석모도와 강화도, 남산포 앞바다의 기장섬, 미법도 정도밖에 볼 수 없어 아쉬웠다.

화개산 정상에서 잠시 쉰 후 다시 트레킹을 이어간다. 정상에서 2~3분 정도 가면 성‘ 혈(星穴)바위’를 만난다. 성혈은 바위구멍 그림을 말하는데 성혈이 새겨진 바위는 청동기시대 이후의 유적으로, 하늘의 별자리, 풍요와 다산(多産), 장수, 태양 또는 자연 숭배, 마을 제단 등 민간신앙의 일종으로 바위구멍을 통한 주술적 행위의 흔적이다.

주로 고인돌에서 볼 수 있으나 자연암석에서도 발견된다고 한다. 이 바위는 바다가 한눈에 들어오는 높은 지점인 점을 고려해볼 때 자연숭배신앙의 흔적으로 보고 있다.

이제부터 완만한 하산길이다. 산 아래 거대한 호수가 내려다보인다. 고구저수지다. 교동도에는

고구저수지 이외에도 난정저수지가 있다. 아름다운 저수지를 내려다보면서 산허리 길을 내려가면 화개산성을 지나고 약수터도 눈에 띈다. 화개산 정상에서 25분 정도 내려오면 조선 후기부터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한증막도 만난다. 이 한증막은 황토와 돌을 사용하여 축조된 것으로 선조들의 병환과 피로를 다스리는 민간요법으로 이용되어온 시설이다.

한증막에서 약 1 50m 좌 측에는 연산군 유배지가 있다. 연산군은 조선의 제10대 왕(재위 1494~1506)이며, 무오사화를 일으켜 많은 신진 사류들을 죽이고 생모 윤 씨의 폐비에 찬성했던 윤필상 등 수십 명을 살해했다. 경연을 없애고 사간원을 폐지하는 등 비정(秕政)이 극에 달하여 중종반정으로 폐위되었으며, 교동도로 유배되어 그해 11월 31세로 사망했다. 조선시대 교동은 폐군이나 종친의 유배지로도 유명하다. 교동으로 유배된 폐군으로는 연산군과 광해군이 있으며, 종친으로는 세조의 동생인 안평대군과 인조의 동생 능창대군, 인조의 5남 숭선군, 철종의 사촌 익평군, 흥선대원군의 손자 이준용 등이 있다. 교동도에서 연산군 유배지로 추정되는 곳은 두 군데다. 이곳 화개산 자락 이외에도 교동읍성 인근에도 유배지로 추정되는 곳이 있다.

1시경 고구리로 내려와 일단 산행은 마무리하고 석‘ 천당’이라는 제법 넓고 아기자기한 개인 정원에서 점심식사를 했다. 석천당은 석천 김흥기 시인이라는 분의 개인 소유인데 예스러운 정자와 여러 개의 가마솥과 장독, 오래된 농기구 등 제법 고풍스럽게 꾸며놨다. 입구와 정자 등 정원 곳곳에는 자작시가 걸려 있고 사슴우리도 보인다.

2시 반쯤 석천당을 나와 대룡리로 향했다. 이곳에서 대룡리까지는 1.1km, 20여 분 소요된다.

   
▲ 교동이발관 내부

대룡리는 면사무소, 파출소, 시장 등이 위치한 교동도의 대표적인 마을이다. 대룡시장은 6·25 때 연백군에서 교동도로 잠시 피난 온 주민들이 한강 하구가 분단선이 되고 고향에 다시 돌아갈 수 없게 되자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고향에 있는 연백시장의 모습을 재현한 골목시장이다. ‘시간이 멈춘 섬, 교동도’를 대표하는 곳이다. 지금은 시장을 만든 실향민들이 대부분 돌아가시고 인구가 급격히 줄어들면서 시장의 규모도 상당히 줄었다. 그러나 2014년 7월 교동대교 개통과 함께 1960년대의 영화세트장 같은 대룡시장의 모습을 보려고 찾아오는 여행객이 늘면서 다시 관광명소로 떠오르고 있다.

대룡시장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교동이발관이 눈에 들어온다. KBS ‘1박 2일’에 소개되어 더욱 유명해진 곳. 이발관을 운영하는 분은 지광식 할아버지(78)다. 할아버지는 13살 때 가족들과 함께 교동도로 피난 왔다고 한다. 27살 때 처음 이발관에서 일하기 시작, 지금까지도 이 일을 계속하고 있다. 원래 교동이발관은 황해도 출신 이발사 2명이 운영하고 있었는데 당시는 손님이 많아서 별도로 사람이 필요했던 시기였다. 할아버지는 3년 동안 이발사 보조 노릇을 하면서 이발 기술을 배웠다고 한다. 이발관 벽에서는 53년 전인 1965년 7월 10일에 취득한 지광식 할아버지의 이용사면허증도 걸려 있다.

   
▲ 교동이발관 내부

대룡시장 골목은 영락없는 1960년대 풍경이다. 좁은 골목에는 연지곤지식품점, 중앙신발, 청춘부라보, 통일주막 등 예스럽고 정겨운 간판이 보이고, KBS ‘1박 2일’, MBC드라마 ‘전설의 마녀’ 촬영지인 ‘거북당’ 건물도 만난다. 거북당 2층 ‘제일다방’ 역시 MBC 아침드라마 ‘좋은 사람’ 촬영지다. 전쟁폭격을 피해 혈혈단신으로 월남했던 최 노인이 언젠가 가족과 지낼 요량으로 정성 들여 건축한 건물로서, 당시 물자가 부족했던 섬 지역에선 역작으로 꼽히는 건축물이다.

골목 벽에는 ‘일시에 쥐를 잡자’, ‘1975년은 세계여성의 해-둘만 낳아 잘 기르자’ 등의 포스터와 함께, ‘리승만, 박정희, 윤보선, 김영삼 등 선거벽보’ 등이 붙어 있고, ‘뻥 튀기는 장면’ 등 추억의 벽화도 만날 수 있다.

이 외에도 대룡시장 골목에서는 이제는 우리나라 농어촌에서 찾아보기 힘든 실제 제비집도 볼 수 있다. 연백군 실향민들은 해마다 찾아오는 제비들이 고향 연백군의 공기와 흙냄새를 가져다 준다고 생각하고 집집마다 제비집을 소중하게 관리하고 있다. 매년 3~10월에 찾아오는 제비들을 위해 둥지에 가까이 접근하지 않도록 주의하라는 문구도 보인다.

대룡시장에서 나머지 코스인 남산포-교동읍성-동진포-월선포 코스는 교동읍성 이외에는 대부분 교동평야, 해안길 및 제방길이다. 교동도는 섬이지만 섬 같지 않게 평야가 넓다. 교동쌀은 맛 좋기로 유명하며, 주민들은 1인당 벼 재배면적이 전국 최고라고 자랑하기도 한다.

   
▲ 교동읍성

교동읍성은 읍내리 577번지 일원에 위치한 성으로, 조선 인조 7년(1629) 교동에 경기수영(京畿水營)을 설치할 때 돌로 쌓은 읍성이다. 둘레 430m, 높이 6m 규모로 세 개의 문을 내고 문루를 세웠는데 동문은 통삼루, 남문은 유량루, 북문은 공북루라 하였다. 동문과 북문은 언제 없어졌는지 알 수 없으며, 남문은 1921년 폭풍우로 무너져 현재 홍예문만 남아 있다.

임윤식 기자  webmaster@k-tod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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