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 부동산대책 발표 이후 서울 강남 재건축 아파트 매매가는 수주 연속으로 하락했다. 서울 전역이 투기과열지구로 지정된 뒤 그 여파로 부동산 재건축 시장은 직격탄을 맞은 셈이다. 하지만 최근 꾸준히 하락세를 보였던 재건축 아파트 매매가는 보합세로 접어들더니 8.2 부동산대책 6주 만에 처음으로 다시 상승세를 타기 시작했다. 그 배경에는 서울시가 지난 9월 7일 잠실 주공 5단지 재건축 계획안을 약 14년 만에 승인했기 때문이다. 반면, 최고 49층 높이로 재건축을 추진 중이던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는 재건축 심사 과정에서 계획안이 논의조차 되지도 못하고 거부 당했다.

‘잠실 50층’이 쏘아올린 재건축 신호탄
서울 아파트가 몇 층까지 올라갈 수 있을까. 서울시는 주거지역의 경우 최고 층수를 35층으로 엄격하게 제한해왔다. 사업성만을 고려한 무분별한 재건축으로 인해 서울시의 스카이라인이 훼손되고, 특정 집단만이 경관을 누리게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에서다. 이 때문에 인근의 미성, 크로바, 진주아파트 등도 최고 층수를 35층으로 정했다. 하지만 최근 잠실 주공 5단지 3개동이 서울시 심의 문턱을 넘으며 이제 최고 층수 50층, 6400여 가구의 재건축이 가능해졌다. 주상복합아파트를 제외하고 일반아파트로는 국내최고 층수다. 잠실역 부근이 '광역중심지'로 지정된 데에 따른 결과다.

이로써 1978년 준공된 최고 15층, 총 30개동 3930가구의 해당 아파트는 6401가구로 규모로 재탄생하게 됐다. 주공아파트 측은 삼성물산, GS건설, 현대산업개발를 시공사로 선정하는 등 큰 틀의 합의도 이미 마쳤다. 전체 부지의 16.5%에 공원, 학교, 문화시설 등 을 짓고 단지를 관통하는 도시계획도로도 건설할 계획이다. 일부 동에 국한되기는 하지만 50층 재건축 허가에 힘입어 잠실 주공 5단지 아파트의 현재 호가는 8.2 부동산대책 이전 수준을 넘어섰다.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잠실 5단지 전용 76㎡ 호가는 16억 원으로, 1주일 새 1억 원이 올랐다. 

치솟는 몸값은 물론 거래 역시 활발하다. 급매는 자취를 감춘 상태다. 단지 내에 위치한 D부동산 관계자에 따르면 재건축 승인이 이뤄진 후 문의전화가 끊이질 않고 있다. 심의가 통과된 6일 이후 잠실 주공 5단지의 거래량은 총 22건으로 나타났다. 인근 아파트들도 도미노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이제 잠실 주공 5단지는 이미 입주를 마친 주공 1단지 엘스, 주공 2단지 리센츠, 그리고 주공 3단지 트리지움과 함께 완전체로 거듭날 일만 남았다.

연이은 퇴짜에 몸 낮춘 은마아파트
49층 재건축 허가를 두고 서울시와 오랜 줄다리기를 해오던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가 결국
백기를 들었다. 4400여 가구 대단지로 조성된 은마아파트는 서울 강남의 부촌 1번지, 재건축 1번지로 불리며 잠실 주공 5단지와 함께 재건축 아파트의 쌍두마차로 꼽힌다. 잠실 주공 5단지가 강남 한강변 첫 50층의 주인공이 됐다는 소식이 전해진 후,은마아파트의 재건축 계획안 통과 여부에 초미의 관심이 쏠렸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2009년까지 안전진단에서만 세 차례 탈락했던 은마아파트는 2010년 3월 안전진단을 간신히 통과했지만 2015년부터 서울시 초고층 규제 벽에 부딪혀 번번이 고배를 마셔야 했다.

결국 은마아파트는 고집해온 49층 높이의 재건축 계획을 포기하고 서울시 요구대로 35층으로 몸을 낮춰 재건축 본격 추진을 결정했다. 그 배경은 이렇다. 2003년 설립된 은마아파트 재건축 추진 위원회는 지난 14년간 꾸준히 재건축을 추진해왔다. 하지만 ‘최고 층수 35층’룰을 준수하지 않고 49층을 고수하던 은마아파트 재건축안에 대해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가 ‘미심의’ 판정을 내린 것. 즉, 심의 자격이 없는 안건이 돼버렸다. 

이는 만일 은마아파트 조합이 아파트 최고층 높이를 35층 이하로 계획안을 수정하지 않으면 재건축은 아예 물건너 갈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서울시의 단호한 입장이었다. 결국 주민들은 서울시가 수용하지 않을 재건축안을 밀어붙였다간 더 많은 규제와 부담에 직면하게 될 것이 라고 판단해 꼬리를 내렸다. 1979년 준공돼 잠실 5단지보다 두 살 적은 은마아파트는 이번 재건축 승인 여부를 두고 ‘역시 형보다 나은 아우 없다’는 소리를 듣게 됐다.

비록 35층으로 몸을 낮추긴 했지만 잠실5단지에 뒤질세라 서둘러 삼성물산과 GS건설을 시공사로 선택한 후 시세를 회복하고 있는 것은 은마아파트도 마찬가지다. 이웃 강남 부동산시장의 전반적 회복세 및 층수변화 가능성이 작용했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조회결과 지난 8월 전용 76.79㎡ 월별 최고가 12억 6000만 원을 기록한 은마아파트는 9월 13억 5000만 원으로 오르더니 재건축 층수를 35층으로 낮춘 이후에는 2000만 원~3000만 원이 더 올랐다. 비록 몸은 낮췄지만 재건축사업승인으로 집값이 급등해 지금은 ‘금마아파트’로 불리고 있다.

두 아파트 희비 가른 ‘광역중심지’가 뭐길래
잠실 주공 5단지와 은마아파트의 희비를 가른 결정적 요인은 입지(立地), 즉 잠실이라는 지역이
가진 특수성이었다. 서울시의 ‘2030 서울플랜’에 따르면 ‘3대 도심’(광화문·시청, 영등포, 강남)과
‘7대 광역중심’(용산, 청량리, 창동, 상암, 마곡,가산, 잠실)에 짓는 주상복합 건물은 35층 이상
높이가 허용된다. 도심 기능 강화를 위해서다. 롯데월드타워 등 업무·상업지구에 가까이 위치한
잠실 주공 5단지가 여기에 속한다. 그러나 은마아파트는 사정이 다르다. 잠실과 같은 광역중심 기능을 수행한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

이를 의식한 은마아파트 재건축 추진 위원회는 인근 학여울 일대가 오는 2021년까지 서울 최대 전시컨벤션센터로 탈바꿈하는 것을 들어 은마아파트의 광역중심지화 가능성을 언급했지만 서울시는 잠실 5단지의 경우와는 전혀 다르다고 못 박았다. 잠실 5단지와 비교해 은마아파트는 학여울 일대와 거리가 있고, 양재천으로 인해 주변과 단절된 주거지라는 것. 또 다른 이유로는 은마아파트 재건축 문제가 서울 아파트 시장에 주는 영향력이 큰 만큼 서울시측은 은마아파트를 본보기로 삼아 층수, 용적률, 용도변경 등의 예민한 사안을 좀 더 엄격하게 검토했을 거라는 의견도 있다.

최근 재건축 시장 훈풍
잠실 주공 5단지 초고층 재건축 확정으로 서울 송파일대에서 진행되고 있는 각종 재건축 사업이 급물살을 타게 됐다. 잠실을 주무대로 삼았던 송파 재건축이 가락동·문정동·오금동·송파동 등 동남쪽으로 번지면서 재건축 지도가 바뀌고 있는 것. 환경영향평가 협의를 이미 마친 몽촌토성역 인근의 진주 아파트는 사업시행 인가만 통과하면 재건축이 확정되고 3000가구 규모의 대단지로 탈바꿈하게 된다. 이 외에도 가락동 가락1차 현대와 가락극동, 가락삼환 등도 최고 35층 높이로 재건축이 확정됐고 오금 현대아파트와 한양3차도 속도를 내고 있다. 555가구의 가락극동아파트는 재건축 후 1070가구로, 648가구의 가락삼환아파트는 1082가구로, 그리고 514가구의 가락1차 현대아파트는 915가구로 재건축된다.

재건축 확정 후 아파트값 역시 술렁이고 있다. 가락극동아파트의 경우 전용 120㎡가 올해 9월 9억 원(12층)에 거래됐다. 이는 같은 면적이 지난해 8월 7억 7500만 원(3층)에 거래된 것과 비교했을 때 1년 새 1억 2500만 원이 오른 것이다. 가락삼환아파트 또한 전용 84㎡는 기준 작년 6억 4700만 원(5층)에서 올해 7억 4000만 원(10층)으로 약 1억 원 정도 비싸게 팔리고 있다. 거여·마천뉴타운도 재개발 사업이 한창이다. 

2005년 송파구 거여·마천동 일대 104만 3843㎡의 노후 주거지역은 아파트단지로 정비하는 거여·마천뉴타운으로 지정됐으나 사업이 멈춰선 상태였다. 하지만 최근 재건축사업으로 인한 부동산 경기 회복세에 힘입어 12년 만에 다시 활기를 찾았다. 2010년 정비예전구역으로 지정된 뒤 약 6년 동안 사업이 지지부진했던 송파구 문정동 136번지 일대 재건축 사업도 다시 살아났다. 재건축 이후 최고 18층 1265가구 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설 예정이다.

집주인과 매수자 간 ‘눈치 보기’ 돌입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강남구에 비해 송파구의 경우 재건축 사업 추진 속도가 빨라 투자 가치가 높다고 평가된다. 롯데월드타워나 타워730과 같은 프라임급 오피스에 입주하는 대기업이 늘고 있는 점, 내년 10월로 예정된 9호선 3단계 개통과 같은 교통호재, 그리고 잠실 주공 5단지나 미성크로바 등의 주택 재건축 사업이 순항 중인 점, 여기에 오는 2021년 완공을 앞둔 현대자동차 GBC 사옥과 잠실종합운동장 개발 등 송파구는 여러모로 투자자들에게 매력적인 투자처로 급부상했다.

잠실역 역세권 입지에 한강변 50층 초고층 단지로 재건축된다는 희소성 역시 빼놓을 수 없다. 잠실 5단지 상가에서 십 수년째 부동산을 운영 중이라는 P씨는 “조합측에서 인터뷰를 철저히 막고 있어서 앞으로의 시세 흐름이나 전망에 대해 말을 아낄 수밖에 없다”면서도 “앞으로 잠실 주공 5단지의 가격은 오르면 더 오르지 하락할 일은 없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하지만 매수자들의 움직임은 둔하다. 8.2 부동산대책 및 후속 조치 등 정부의 고강도 대책으로 경제적 이익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이 때문에 매수자들은 사이에서는 시세 흐름, 정책 변화 등 내년까지는 추가적인 변수를 지켜봐야 한다는 의견이 팽배하다. 매수자들은 가격이 더 떨어질 가능성을 전혀 배제하지 않아 매도 시기를 늦추고 있고, 집주인은 가격을 낮추지 않아 집주인과 매수자 간의 ‘눈치 보기’ 양상은 앞으로 당분간 심화될 듯 보인다.

이정현 기자  webmaster@k-tod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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