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 모내기를 하여 보세. 여기는 가서는 하나, 하나는 가서는 둘, 둘에는 가서는 셋, 셋에는 가서는 넷, 넷에서 가서는 열, 열에는 가서는 다시 하나~!” “동무님들, 김매러 갑시다! 좋구나 좋아! 이 방아가 웬 방아냐? 여주·이천은 자라 방아, 김포·통진은 밀타리 방아~” “닐리리, 상타도야! 어깨춤이 절로 난다. 대대손손 잘 살아 보세. 월출 동녘에 달 솟아나네. 에헤여라~”

화려하고 강렬하면서도 애처로운 소리를 내는 국악기인 태평소 가락과 함께 “잘한다”는 중간 추임새가 명인의 꽹과리 소리와 어울려 한 폭의 옛 그림으로 펼쳐진다. 점차 옛것이 잊혀 가는 이때 참으로 보기 드문 농악 공연으로 감동의 무대를 선사한다. 모내기와 김매기 등을 거치면서 한바탕 신명나는 춤판을 벌인 후 마지막으로 제사상을 올린다.

“하늘의 천왕님, 천지신명님! 오늘 한민족 반만년 역사가 시작되며 조상대대로 소중히 가꿔온 풍요로운 땅 일산문화광장에서 경기도 무형문화재 제22호 고양 송포호미걸이 보존회 공연을 맞이하여 맑은 술과 화포를 마련해, 올해 을미년 국태민안과 국민의 염원인 남북이 통일되어 문화예술이 세계만방에 국위선양을 하게 하옵시고 농자지 천하대본을 이뤘으니 태평성대를 이뤄 이곳을 찾은 모든 분들의 가정에 대복과 건강과 사업 번창을 기원해 한결같이 보살펴주시옵소서.”

‘고양 송포 호미걸이’ 민속놀이 인기

경기도 무형문화재 제22호인 고양송포호미걸이보존회(회장 조경희)가 마련한 이번 행사는 “5000년 가와지 볍씨로 출발한 역사문화도시 고양은 소통과 나눔으로 미래를 열어갑니다”는 슬로건을 내건 제15회 대한민국 막걸리축제의 한 축으로 선보였다. 이날 축제는 가와지 12채 농악 길놀이, 가와지 12채 농악 앉은반, 대북, 오천년의 가와지 소리, 십이지신 불한당 몰이 놀이판, 태평성대 기원 모듬북, 경기민요 등을 선보였다. 

이어진 공연에서는 호미걸이보존회와 고양 가와지 예술단, 고양시 태권도 시범단의 젊은 출연진들이 함께 어우러져 농경을 중심으로 한 조상들의 삶과 정서를 다채로운 방식으로 표현했다. 마지막 김을 매고 난 뒤 내년을 대비해 호미를 씻어 걸어둔 데서 유래한 호미걸이는 풍년 기원의 의미를 지닌 고양 송포 지역의 고유한 민속놀이다. 1984년 경기도 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우수상, 1998년 경기도 무형문화재 제22호 지정, 2002년 월드컵 행사 공연 참가 등 그 작품성과 우수성을 인정받았다.

이번 공연은 무형문화재로 원형보존과 재현에 의미와 중요성을 두면서 대중과 어우러지는 예술 자체의 생명력을 위해 다양한 시도를 했다. 예부터 고양시에 내려오던 가락인 고양두레 12채가락의 길놀이를 시작으로 사물놀이 식의 앉은반, 김매기소리인 두레소리(가와지소리), 우리 가락을 재미있게 변형시켜 작품화한 설장구와 경기민요, 12채가락으로 새롭게 창작한 모듬북 등으로 보다 친숙하게 문화재를 알렸다.

호미걸이는 김매기가 끝난 뒤 당제를 지내고 판놀음을 벌리며 풍농제를 지내는 놀이로 이 지방에 전승돼 온 긴소리·양산도·방아타령·놀놀이·자진방아타령·상사듸어·자진놀놀이·몸놀이·훨훨이 등의 민요를 부르며 김매는 시늉을 한다. 물론 농부들이 실제로 김을 매고 막걸리를 마시는 표현이 사실적일수록 더욱 실감난다. 선율의 음조직은 솔·라·도·레·미로 이뤄졌고 장단은 못방고라는 북으로 쳐나간다. 3연적인 1박자를 기본으로 긴소리의 느린 장단에서 보통빠르기와 빠른 장단으로 속도가 빨라지나 내용은 일정하다.

이 농요들은 음악적으로 매우 뛰어나고 씩씩한 느낌을 준다. 송포호미걸이보존회 조경희 회장은 “전통 민속놀이 대부분이 지방의 특색과 뒤섞여 원래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하지만 경기 웃다리(경기북부지역) 가락은 원형이 그대로 살아 전승되고 있다”며 “이런 전통을 지켜나간다는 의미에서 뜻이 깊고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고양 가와지 볍씨’로 5000년 농경 입증

‘고양 가와지 볍씨’는 5000년 전 일산 가와지 마을에서 이미 농경이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소중한 자료이다. 1991년 6월 일산신도시를 개발할 때 가와지 마을에서 발굴된 볍씨를 미국 베타연구소가 5000년 전의 것으로 확인했다. 이로써 그동안 일본으로부터 쌀이 전래됐다는 학설을 뒤엎고 거꾸로 한반도에서 일본으로 전파됐을 것이라는 학설이 입증됐다.

고양송포호미걸이보존회는 5000년 전의 농경사회와 함께 오랜 역사와 문화를 후손들에게 알려주기 위해 10여년 전부터 가와지 볍씨 축제를 해왔다. 호미걸이보존회 조경희 회장은 지난 2015년 ‘고양 가와지 볍씨 아리랑’을 최초로 선보인 적이 있다. 이 노래는 고양 땅에서 5000년 동안 이어온 농경의 역사를 한민족 정서에 담은 아리랑에 실어 표현한 곡이다. ‘가와지 볍씨 아리랑’은 현대의 리듬과 민요의 구성진 가락이 어우러진 곡으로 공연장에 모인 많은 관객들로부터 찬사를 받았다.

조경희 회장은 지난 5월 20일 제10회 송포호미걸이보존회 춘사제를 지역민과 함께 치러 이제는 어엿한 전통 행사로 자리 잡았다. 송포호미걸이 풍물단의 길놀이로 시작된 춘사제는 모내기 열소리와 함께 참가자들이 직접 논에 들어가 모내기를 시연하며 축제의 분위기를 즐겼다. 조 회장은 “전수자들과 참가자들이 하나가 돼 못줄을 넘겨가며 모내기를 하고 농경신에게 풍년을 원하는 춘사제를 지냈다”며 “송포호미걸이는 앞으로도 전통 대동놀이를 통해 지역민들과 하나가 되는 문화 공연을 만들어가며 농업문화를 계승하겠다”고 말했다.

칠석(七夕) 전후 행해지던 민속놀이

경기도 고양시 송포에서 칠석(七夕) 전후로 행해지던 민속놀이인 호미걸이는 ‘호미씻이’·‘공굴(共屈)’·‘공회(公會)’·‘백중놀이’·‘두레놀이’·‘머슴놀이’·‘술메기’로도 불린다. 이는 농기에 호미를 걸어둠으로써 한 해의 농사를 마감하며 풍년을 기원하고 피로를 푸는 잔치의 의미를 지녔다. 이 놀이는 고양시 송포의 김매기소리와 고양 두레 12채 가락으로 구성된 농악으로 구성돼 있다.

경기도 고양시 송포(松浦)는 한강 하류의 벼농사 지역으로 수확이 좋은 곡창지대로 두레문화의 형태를 띠고 공동체적인 노동과 놀이가 발달해 왔다. 이곳에서는 음력 7월 7일경 2~3벌 김매기가 끝나는 시점에 농사가 잘됐다고 판단했을 때 호미걸이를 연행했다. 농기는 그 마을 공동체의 두레문화를 상징한다. 농기의 버릿줄(벌이줄, 버렛줄)에 호미를 씻어 걸어둔다는 것은 공동체의 휴식을 상징하며 풍년을 염원하는 마을공동체적 신앙과도 연결된다. 

일제시대인 1931년 중단됐다가 1977년 김현규에 의해 발굴 재현돼 고양송포호미걸이보존회에서 보존·전승하고 있다. 2004년 작고한 김현규의 뒤를 이어 전수조교 조경희가 활동 중이다. 호미걸이는 「상산제」, 「대동고사」, 「대동놀이」, 「유가제」, 「뒤풀이」 순서로 연행된다. 이 놀이는 농기를 앞세우고 마을의 도당산에 올라 상산제(上山祭)를 거행하는 것으로 시작된다.「상산제」는 마을주민 대표나 두레패의 영좌가 도당나무 앞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는 유교식 제사이다. 

상산제 이후 두레패가 산에서 마을로 내려오면 여성들 중심으로 「대동고사」를 지낸다. 이 고사는 각 가정의 소원을 빌고, 마을의 무사태평을 염원하는 것으로 덕망 있는 마을노인 중 여성이 제주로 비손한다.「대동놀이」는 ‘기(旗) 세배’, ‘기수 뽑기’, ‘깃대 재주 부리기’, ‘무등타기’, ‘호미걸이 소리’ 등의 순서로 진행된다. ‘기 세배’는 기 절받기로 신(新) 두레패의 기가 절하면 구(舊) 두레패의 기가 반절하는 형식으로 이뤄진다. ‘기수 뽑기’는 힘센 사람을 뽑아 필목 등을 상품으로 주는데 ‘깃대 재주 부리기’에서 뽑힌 기수는 이 필목으로 재주를 부린다. 이 재주에는 기쓸기·종기놀리기·조사놀리기 등이 있다.

‘무등타기’는 멍석으로 만든 모의(模擬) 소를 등장시켜 춤을 추며 노는 것이다. 이때 나오는 두레패의 ‘호미걸이의 소리’는 긴소리·사두여·양산도·방아타령·놀놀이·떴다소리·자진놀놀이·상사디야·훨훨이·몸돌소리 등 10가지다. 「유가제」는 두레패와 함께 마을 각 가정집을 돌며 풍물과 함께 덕담을 주고받는 것이다. 「뒤풀이」는 유가제가 끝난 후 호미걸이에 참여한 마을사람들이 음식과 술을 나누고 마지막으로 풍물을 치며 신명나게 노는 것이다.

조경희 회장은 “호미걸이는 두레문화의 공동노동 형태의 하나로 일과 놀이를 중시했던 과거 농경문화를 반영하는 귀중한 문화유산의 하나이다”며 “특히 호미라고 하는 농사도구를 매개로 공동체의 노동과 휴식, 의례를 이룬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강조했다. 고양 송포 호미걸이의 연원은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옛 송포면 대화리·가좌리·법곶리 일대에서 비롯된 호미걸이가 그 맥을 잇는다고 볼 수 있다.

특히, 대화리 범개마을은 김녕 김씨가 450여 년 전부터 살던 대촌으로 송포 벌판이라는 넓은 평야에서 농업이 성행했다. 하지만 1932년 한강 제방이 축조되기 전까지는 해마다 한강 범람으로 농사 피해 우려가 많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조 회장은 “호미걸이는 매년 벌이는 것이 아니라 김매기를 마치고 농사가 잘됐다고 판단될 때 각 두레패의 의견이 모아지면 준비했다”며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논매기를 마치고 펼치는 농사놀이인 호미걸이는 1년 농사의 중요한 행사로 치러졌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에 두레 활동이 금지되면서 점차 사라졌다”고 전했다.

대한민국 명인, 무형문화재 명맥 잇다

조경희 회장은 대한민국 명인이기도 하다. 고양가와지문화예술단과 고양가와지 12채농악예술단 대표, 국제문화개발연구원 부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또한 용구재이무지재, 싱아대소리, 멩개안사줄놀이, 십이지신불한당몰이 원형 재현 및 전승 보존자로 행사 기획과 공연, 연출을 한다. 조경희 회장은 “고양 호미소리보존회에 기본으로 참여하는 사람은 20명이고 많을 때는 40~50명이다”며 “행사를 참여하다 보면 많은 인원이 필요할 때도 있다. 그러면 가르치는 초등학생들까지 합해 300명까지도 참여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방과 후 수업으로 초등학생들을 가르치고, 호미걸이 명인학교에서 직접 아이들을 가르치는 프로그램도 있다. 고양 토박이인 조 회장은 지금 고양 예술고등학교의 전신인 고양여고를 나왔다. 그는 “학교 다닐 때부터 소리를 한 건 아니고 어릴 적부터 이쪽이 좋아서 한국 무용도 조금씩 하고 그랬다”며 “고등학교 때 은사님이 현재 이사장이다. 결혼하고 큰딸이 초등학생 5학년 때 은사님께 인사드리러 갔는데 고양시청 앞에 호미걸이 무형문화재 분이 계시니 한번 가서 배워보라고 추천했다. 

저도 아이들이 어느 정도 크면 뭔가 몰입할 일을 찾던 시기인데 처음에는 아이와 함께 배워보려고 찾아갔는데 너무 좋았다”고 기억했다. 당시 선생님께서 그녀가 장구 치는 것을 보고 개인적으로 사사해 주면서 결국 수제자가 됐다. 조 회장은 “그 당시 선생이 폐결핵을 앓아 건강이 안 좋으신 데다 마땅한 전수 조교가 없었다. 스승님께서 저를 얼른 가르쳐 전수 계보를 잇게 하고 싶었다”며 “그래서 그때부터 선생님 옆에서 웬만한 공연과 교육을 다했다. 처음에는 장구와 꽹과리를 치다가 가르치면서 많이 배웠다”고 말했다. 선생님은 그렇게 4~5년 사사해 주시다가 2004년 지병으로 타계한 이후 그때부터 호미걸이 보존회를 맡은 것이다. 

조 명인은 “후계자 양성이 고민됐는데 다행히 큰딸(권슬기, 현재 송포호미걸이보존회 사무국장)이 계승하고 있다. 딸이 중고교 때까지도 큰 대회에 나가 같이 장구를 쳤고, 방학 때마다 연습했다”며 “그리고 대학에 가서도 대한민국 12채 가락으로 ‘가온누리’라는 풍물 동아리를 만들어 축제 때 공연했다. 그래서 모듬북과 꽹과리를 가르치면서 호미걸이를 진지하게 생각해보라고 얘기해 졸업 이후 본격적으로 맡았다”고 밝혔다. 

지금은 큰딸이 없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사람이다. 현재는 둘째 딸도 호미걸이를 해본다고 연습하고 예술단 활동도 한다. 끝으로 조경희 회장은 “정신적으로 신경 쓸 부분이 많지만 몸을 계속 움직여야 하니까 체력적으로 부담이 되는 부분이 있다”며 “어떨 때는 내가 내 자신을 볶는 듯해 아쉽지만 그러면서도 내 자신이 너무 대견스럽기도 하다”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선조들과 함께해 온 우리의 들소리인 두레농악과 소리를 통해 송포호미걸이가 지닌 반만년의 역사적 의미와 가치가 새삼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준다.

박관식 기자  webmaster@k-tod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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