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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곤 여행작가“자연 속에서 충분히 느꼈으면 더 이상 후회하지 마라”
박관식 기자  |  webmaster@k-tod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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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10.11  14:3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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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타살에 의하지 않고 이승을 떠날 때가 되어 그냥 죽은 것이다. 혹여 내가 죽거들랑 다른 절차 없이 땅에다 그냥 묻어주고 나무 십자가를 꽂아 달라. 그러면 내가 죽은 다음에 혼이 바람에 날려 고향으로 갈 것이다. 그냥 흙에다 묻어 달라. 내가 썩어 영혼이 바람에 날려 천국으로 갈 것이다.”

이는 몽골의 여행 가이드가 한국의 여행객들에게 요구한 유서의 내용이다.

여행객을 통해 먹고 사는 일개 미천한 가이드 신분이 이처럼 폭력적인 언어를 과연 요청할 수 있을까? 하지만 그런 미지의 수수께끼 같은 경험을 쌓을 수 있는 곳이 몽골이라고 말하는 이가 있다.

   
 

최근 여행서 『나는 디지털 유목민이다』(말벗)를 펴내 화제가 됐던 김동곤 여행 전문가를 만나 그의 여행 철학을 들어보았다.

몽골과 러시아 시베리아횡단철도 여행 등 젊은 시절부터 호텔과 여행 분야에서 잔뼈가 굵은 김동곤 작가는 호텔 컨설턴트, 여행 칼럼니스트, 한국관광공사 교수, 외국어통역 무료봉사자 등으로 활동 중이다.

앞의 유서는 알타이산맥을 여행하기 전에 가이드로부터 요구받은 황당한 내용이지만 여행객들은 결국 그에 응했다는 얘기다. 그 몽골 가이드는 예전에 에베레스트 등 세계 고산을 두루 다녀온 전문산악인인 영국의 80세 여성을 안내했다가 이틀 만에 사망해 패가망신했다는 것.

김동곤 작가는 “결국 그 가이드는 20년간 모은 돈을 그 영국 할머니 때문에 다 날렸다. 그래서 가이드는 여행객들에게 장사꾼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간곡한 부탁이니 들어달라고 유서를 요구한 것”이라며 “유서는 당신이 위대한 자연 앞에서 엄청난 신비를 가져가기 위한 필수조건이다. 이걸 과감하게 쓸 수 있는 사람은 가고 자신 없으면 낙오하라. 건강에 문제가 있는 건 당신 책임이다. 이렇게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이만큼 느꼈으면 더 이상 후회하지 마라. 그렇게 미리 설명하면 유서를 안 쓰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고 설명했다.

요컨대 여행이란 그 정도로 소중한 뭔가를 느끼기 위해 가는 것이지 아무나 가는 게 아니라는 뜻이다.

 

20여년 다녀온 몽골 여행 전문가

지금까지 20여년 몽골을 다녀온 김동곤 작가는 매번 여행 때마다 배우는 것이 새삼스럽다고 술회한다.

김동곤 작가는 “몽골은 거의 매년 다녀와 식상할 때도 되었지만 가면 갈수록 그들의 관광자원이라는 데서 상상 이상의 유목민의 지혜를 느낄 수 있다”며 “가난한 사람들이 믿는 종교인 라마 불교의 사원에 가면 초라하지만 그들의 미니멀리스트적인 데서 많은 것을 배운다”고 말했다.

사실 가난한 데도 좋은 것을 남에게 베풀려고 하는 그들로부터, 어떤 목적 등을 이루는 데 필요 이상의 것을 완전히 억제하려는 금욕을 배울 수밖에 없다.

얼마 전 몽골을 다녀왔을 때도 현지의 친구로부터 두 가지의 배움을 터득했다고 고백한다. 그 첫 번째는 영감이고 두 번째는 물에 관한 이야기이다.

김 작가는 “영감이란 단어를 설명하는 데 깜짝 놀랐다. 라마 불교에서 나온 얘기이겠지만 유목민의 지혜가 깃들어 있는 말이었다”며 “즉, 영감이란 내 안의 생각이 내 머리에서 떨어져 나와 나를 보는 것이란다. 그야말로 글 쓰는 사람한테는 상당히 유익한 논리 아닌가”라고 되물었다.

이어 그는 “몽골 사람들은 물을 소중히 여긴다. 강물에 침을 뱉지도 오줌을 누지도 않으며, 머리 감을 때도 비누거품을 강물에 버리지 않고 뭍에 버릴 정도”라며 “자연은 어머니이며 물도 하나의 신으로 여긴다. 칭기즈칸은 아랍 점령 당시 부하 장군이 승전의 기쁨으로 강물에 오줌을 쌀 때 목을 날려 버렸다”고 전했다.

그만큼 몽골 사람들은 물을 신격화하다 보니 강물을 소중하게 여긴 것이다.

한반도보다 7.8배 큰 몽골은 전국토의 25%만 물을 풍부하게 사용하는 반면 나머지는 열악한 상황이다. 그런 연유로 물보다는 말 우유를 발효시킨 음료수인 마유주, 우유에 녹차 잎을 끓여 마시는 수태차 등을 마시면서 행복감을 느낀다. 관광객들이 처음에는 맛에 길들여지지 않아 꺼리다가 쉽게 마신다고 했다.

김동곤 작가는 “일본은 우리와 비교도 안 될 만큼 칭기즈칸에 대한 많은 저작을 남겼다. 일본의 모대학 교수가 쓴 베스트셀러 『물은 알고 있다』도 알고 보면 몽골의 물 사랑에서 힌트를 얻은 것이 아닌가 싶다”며 “그 책에 나온 내용을 읽고 그걸 느꼈다. 내가 22년 전 몽골에 처음 갔을 때도 수학여행을 온 일본 청소년들이 많이 보였다. 이미 오래 전부터 일본은 몽골을 많이 연구하고 있었다”고 강조했다.

우리나라가 몽골에 많은 투자를 하는 것 같지만 일본에 비하면 새 발의 피라는 것이다. 겉으로는 우리가 다 도와주는 듯하지만 실효성이 없고 값어치가 떨어져 몇 년 지나면 영원히 잊혀질 것들이란다.

   
 

추리소설 같지만 현실적인 생각

김동곤 작가의 생각은 마치 추리소설처럼 재미가 넘친다. 앞뒤 이론을 맞춰 볼 때 몽골 유목민의 지혜를 칭기즈칸이 주최로 해서 내려온 구전을 일본 교수가 도용했다는 얘기다.

칭기즈칸이 “남을 험담하거나 욕하지 마라. 비평과 불평불만과 함께 험담하면 그 독이 술잔에 녹아들어가 스스로 독배를 마신다”고 말했다는 얘기다. 더욱이 “화가 나 욕하고 싶을 때는 강물을 떠서 물에다 욕해 나쁜 놈의 얼굴이나 그 방향으로 뿌리라”는 것. 결국 그 물은 4차원 식으로 그 메시지를 전달받아 전해진다는 전언이다.

김 작가는 “네덜란드에서는 실제로 해바라기에 음악을 틀어놓고 작황을 알아보니 양이 늘어난 것을 경험했다. 이는 식물의 물이 메시지를 알아듣는다는 뜻이다”며 “그 책의 저자도 한 가지 물을 7개 컵에 떠놓고 사랑, 평화, 증오, 저주, 미움 등의 말을 한 다음 -70℃로 급랭시켜 촬영해 봤다. 그런데 사랑과 평화 등 컵은 얼음이 눈꽃으로 피어 있는 반면 미움과 저주 등 컵은 깨져 있었다”고 설명했다.

더불어 그는 “유목민은 권리 주장을 하지 않는다. 그들은 바람에 이야기하고 바람에 역사를 쓴다. 종이와 양피에 기록하면 저주받는다고 믿는다”며 “힌두교도 그런다. 그런 내용을 구전하기 때문에 실제 역사를 학문으로 바라볼 수 없다. 몽골의 최고 오래된 역사책도 자료가 부족해 짜깁기로 되어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김동곤 작가가 그런 몽골의 역사 얘기를 젊은이들에게 하면 오히려 놀란다고 한다. 한국인이 더 많이 아는 데 대한 반응일 수밖에 없다. 그것이 그들에게 먹고 사는 데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김동곤 작가는 몽골에 관한 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는 말이 실감난다. 그의 재미가 철철 넘치는 말을 듣다 보니 시간이 가는 줄 모른다. 자그마한 키 어디에서 저런 기와 힘이 나오는지 마치 ‘작은 거인’ 같다.

몽골 현지에서 주워들은 얘기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신비스런 동화 같기도 하지만 가만 뜯어보면 일리가 있다. 그래서 그는 이런 이력을 인정받아 몽골 당국과 대학 등에서 강의를 할 때도 있다.

“땅속의 금은 태양의 기를 받아 자란다고 합니다. 은은 밤에 달빛을 받아 자란다는 말이 전해지지요.”

“몽골 사람들은 아기가 태어날 때 눈이 세 개라고 믿습니다. 정수리에서 벌렁거리는 연약한 피부도 눈이라는 것이죠. 영을 보는 눈이라는 얘기입니다. 애기가 무서워 계속 우는 이유는 악령을 봤기 때문입니다.”

“몽골 어머니들은 아기를 끌어안고 ‘부아 부아 부아’라며 읊는데 이는 부모가 있다, 용기 내라, 무서워 마라는 뜻이랍니다. 그러면 잔다고 합니다. 우리는 숨구멍이라고 하는데 정수리가 딱딱해지면 눈이 안 보여 잘 자기 시작한다는 것이지요.”

김동곤 작가는 몽고반점은 물론 우리나라와 유일하게 유전자가 같은 몽골은 발해의 후예들이라는 설에 대해서도 동조했다.

김 작가는 “칭기즈칸이 지구의 1/3을 점령했을 당시 고려만 유일하게 간섭하지 않았다. 또한 고려를 무지개가 뜨는 동경하는 지상의 아름다운 나라란 뜻의 ‘솔롱고스’로 불렀다”며 “몽골 사람들은 모르지만 몽골은 발해의 후예가 맞다. 중국과 일본은 그런 우리나라의 역사를 지우려고 애쓰지만 말이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우리나라 독립투사들의 흔적이 많은 우수리스크 스위픈강에 홍수가 났을 때 헤이그 특사 이상설 공적비 등이 유실될까 걱정이 돼 페이스북에 서글픈 글을 올리기도 했다. ‘스위픈강’의 유래에 대해서도 “일제시대 때 조선인 아낙네들이 독립투사인 남편과 자식이 죽어 강가 빨래터에서 눈물 흘리니까 러시아인들이 ‘슬픈 강’이라고 불러 전해진 것”이라고 조언했다.

 

한국인 최초, 만주리 통해 국경 넘어

김동곤 작가는 그동안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세 번이나 탔다. 남들은 단 한 번도 타기 힘든데 왜 탔을까. 또 그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이에 대해 김 작가는 “심심해서? 타락해서? 시간 남아서? 일상 정리하기 위해? 모든 게 다 포함돼 있다”며 “사람들은 우스갯소리로 이별여행을 하기 전에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탄다고 한다. 그것은 결국 1주일간 기차 여행 동안 혹시라도 옛날 감정이 되살아나 재결합하라는 마지막 카드로 쓰라는 뜻이다”고 웃었다.

이어 그는 “블라디보스톡에서 모스크바까지 가는 동안 계속 가기 때문에 시차가 11번 바뀐다. 열차 내가 치외법권 지역이라 차장이 최고 권력자이며 술 마시고 떠드는 등 자기 활동을 못한다. 그러다가 여권이라도 빼앗기면 큰일난다”며 “너무 두껍고 지루해 함부로 읽지 못했던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 같은 소설책을 가져가면 다 읽는다. 옆 사람과 대화할 시간도 없고, 언제 내릴지 몰라 정을 줄 필요도 없다”고 팁을 전해 준다.

김동곤 작가는 일찌감치 러시아에 관심을 가졌다. 물론 그 시작은 젊은 시절 조선호텔에 입사해 외국인들을 많이 접하면서 비롯됐다. 영어에 일찍 눈을 뜬 그는 그만큼 국제정세에 빨랐다.

그는 러시아가 무비자 여행국가가 되면서 한국인 최초로 만주리 국경도시를 통해 러시아에 입국한 장본인이다. 또한 러시아 울란우데에서 몽골 울란바토르로 가는 노선과 치타에서 만주리까지 가는 철도를 다 타본 것도 마찬가지다.

김 작가는 “만주리는 중국에서 러시아로 넘어가는 최고의 무역 통로로 시가지 모습이 모스크바와 엇비슷하다. 옛날 러시아인들이 만들었기 때문이다”며 “러시아, 중국, 몽고가 서로 접한 트라이앵글 국경지대로 이곳을 가보면 많은 상념이 교차한다”고 고백했다.

김동곤 작가는 박승 전 한국은행총재와 대하소설 『대조영』 유현종 작가 등이 졸업한 이리공고 출신으로 여행업계에 종사한 것이 특이하다.

하지만 그의 행적을 들여다보면 이 길이 운명처럼 정해졌음을 알 수 있다. 고등학생 시절부터 헌 책방에 들러 1주일 전의 『타임』·『뉴스위크』지 등을 읽으며 영어와 세계 동정을 일찍이 깨우쳤다.

그 후 군대에 입대해 시간 날 때마다 영어 원서 성경을 공부하고 미군 통역도 하면서 회화를 제대로 익혔다. 결국 관광종사원 자격시험에 합격해 1978년 조선호텔에 입사하면서 이 분야로 접어들었다.

그러다 보니 공무원은 물론 다른 업종보다 더 많은 월급을 받는 데다 외국인 대사 등 고위직 인사들을 만나면서 한층 더 업그레이드됐다. 결국 그의 앞서가는 여행 업종의 무수한 아이디어들은 여기서 탄생한 셈이다.

그는 아내와의 해외여행도 많이 다녔다. 이런 데는 신혼 때 사정상 신혼여행을 못 간 데 대한 미안한 마음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한국유스호스텔동우회 6~7대 회장도 역임한 김동곤 작가는 그 당시 나고야 엑스포, 시베리아 횡단열차, 2006년 몽골 나담 축제 등에 부부동반 여행을 다녀와 아내와의 약속을 지켰다.

한편 그의 명함에는 ‘BBB 1588-5614’라는 전화번호가 있는데 이는 무료전화통역봉사를 뜻한다. 2002년 월드컵 때 이어령 박사가 만든 봉사대로 어느덧 15년이 흘렀다.

   
 

『나는 디지털 유목민이다』 책도 펴내

김동곤 작가는 오랫동안 한국관광업계에 종사하며 그동안의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각종 매체에 발표한 글을 묶은 『나는 디지털 유목민이다』도 발간했다.

여행과 호텔업계에서 끊임없이 디지털적 생산과 소비를 주도하던 저자가 분명 디지털 유목민이었다는 얘기다.

김 작가는 정보와 지식 중심인 디지털 시대에서 여행을 통한 자신의 삶의 질은 물론 여행길에서도 관광업계의 발전을 위한 자유롭고 창조적인 생각을 이어나갔다.

또한 험난하고 고된 그런 와중에서도 각종 디지털 기기로 세상과 끊임없이 소통해 나갔던 저자는 남은 인생도 끊임없이 방랑하겠다고 고백했다.

사실 김동곤 작가처럼 깨어 있는 진정한 여행 전문가들이 말로만 떠드는 당국자들의 탁상공론보다 훨씬 뛰어나다는 생각은 기자만의 느낌일까?

그가 쓴 책을 읽으면 그가 얼마나 끊임없이 창조적인 생각들을 이어왔는지 알 수 있다. 한국관광 발전을 위한 좋은 생각들을 아낌없이 쏟아내는데, 솔직히 여행 관련 공무원들이 의무적으로 읽어보길 바란다.

김동곤 작가는 이 책에서 ‘창조’에 대해 피터 드러커가 “문제 해결이 아니라 시각을 달리하는 것”이라고 한 말과 스티브 잡스가 “여러 가지 요소를 하나로 연결하는 것”이라는 말로 소개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칭기즈칸이 이미 800년 전에 두 사람을 뛰어넘는 생각, 이른바 “다양한 사람들과 논쟁을 벌이고 토론해야 창조적인 생각이 이루어진다”고 밝힌 것을 들었다.

김 작가는 “칭기즈칸은 민족과 신분·종교를 따지지 않고 다양한 참모들과 함께 또한 자기를 저격한 적군까지도 자기 오른팔로 만들었다”며 “그는 40㎞마다 역참을 두어 네트워크를 형성했다. 그래서 그가 지구의 1/3을 점유할 수 있었던 창조적인 리더가 된 것이다”고 덧붙였다.

그는 2011년 10월부터 두 달간 울란바토르에서 강의를 한 후 12월 3일 ‘몽골 관광전’ 첫날 세미나에서 특강을 했다. 귀국길에는 비행기 표를 포기하고 몽골의 고비사막 개발 붐을 확인하기 위해 국제열차(TMR) 티케팅을 했다.

그런데 12월 19일 김정일 사망이란 긴급 뉴스가 터졌다. 서울발 뉴스는 더 심각해 조바심이 깊어졌지만 현지 몽고인들은 관심이 없어 보였다.

다음날 그는 호텔에서 페이스북을 열고 그리스 여가수 아그네스 발차가 부른 「기차는 8시에 떠나네」란 제목의 동영상을 올리고 이런 글을 올렸다.

“저희 한반도를 위해 빌어주소서(God, pray for our Korean peninsula!)”

그리고 그는 오바마 대통령에게도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도와달라’고 개인 메시지를 보냈다.

박관식 기자  webmaster@k-tod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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