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산악, 박연과 더불어 우리나라 3대 악성의 한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평가는 양면적이다. 예술가로서 문화영웅과 조국을 배신한 기회주의자와 같은 상반된 평가는 우륵을 보는 세속적 가치관과 편협한 시각으로 감금에서 비롯된 오해이다.

문화영웅(culture hero)은 신화 속에서 그다지 대접을 받지 못한다. 문화의 기원은 불의 사용과 농경, 언어와 문자의 기원 등인데 예컨대 에피메테우스(Epimetheus)의 어리석음만 뺀다면, 흙과 물로써 최초의 인간을 만든 티탄 신족(Titan) 프로메테우스(Prometheus)를 어렵지 않게 떠올릴 수 있다. 원시 종교에서 신들은 냉엄한 ‘자연의 법칙’과 ‘운명’의 상징이다. 문화는 인간에게 밀어닥친 오이디푸스(Oedipus)적 숙명에 대한 저항이다. 문화는 신들을 축출함으로써 비로소 인간의 세계에 등장하였다. 그러므로 문화영웅은 인간생활에 유익한 기술이나 제도와 관습의 존재이유를 설명하고자 하는 요구에서 비롯된 것이며, 초인적 존재에 의한 활동의 소산이라고 신뢰함으로써 정당화된다.

그러므로 우륵은 그 시대의 역사성 즉 시대의 구속성으로 읽을 때 비로소 그를 둘러싼 아포리아(Aporia)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즉 편향된 가치관에 의한 성급한 판단은 ‘결과주의’를 맴도는 이중적 우륵만 재생산될 뿐이다. 우륵을 둘러싼 상반된 평가 변용의 원형을 탐색하는 일이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혼란기 속 우륵의 사유를 중심으로 신라 망명 이전의 대가야의 민요적 음악담론과 망명 후 유교적 음악담론의 공간으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우륵은 가야의 음악을 결코 폐기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우륵은 오히려 외형적 유가적 예악을 수용하면서 가야음악의 내재적 이식을 추구하여 ‘신라’라고 하는 새로운 공간을 가야의 ‘문화영토’로의 편입과 변용을 시도하였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신라 망명까지 우륵의 음악 활동 과정을 ‘탈영토화’(deterritorialization)의 문제로 설정하고, 망명 후 음악의 가야 회귀를 추구한 일련의 음악활동을 ‘문화적 재영토화’(cultural reterritorialization)로 해석해야 한다.

문화영웅 우륵은 신라의 ‘영토화’(territorialization)에 의한 새롭게 짜여진 ‘질서’ 아래 강요된 가치와 삶의 방식에 저항하며 자기부정을 통해 새로운 자아를 모색한 유목주의 즉 노마디즘(nomadism)을 재현했다. 우륵의 노마드는 정치적으로 버려진 대가야에서 새로운 생성의 땅 신라로의 공간적인 이동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기존 가치와 삶의 방식으로부터 자유롭게 자신을 변화해가는 창조적인 사유와 행동이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정복국가는 영토의 욕망이 지배하는 사회이다. 정복은 거대한 ‘살육의 시대’를 필연적으로 동반했을 것이다. 진흥왕은 정복군주와 아울러 문화군주를 자처하였다고 할 수 있다. 상대적으로 그때까지의 신라는 가야에 비하여 열등한 문화였음을 반증하고 있다. 따라서 우륵의 기억과 호출은 단순한 환원을 지향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가실왕이 12곡을 짓도록 한 이유는 고대 사회에서 음악이란 통치술의 일환이자 사회 질서를 유지하는 예법이었다는 점이다.

우륵의 탈영토화(deterritorialization)는 흥미롭게도『論語』미자(微子)편에 유사한 용례가 보인다. 노(魯)나라 군주 소공(昭公)은 왕권을 위협한 유력 가문 제거에 실패 후 궁정 악사 집단과 더불어 제나라로 떠난 정치적 망명 사건 이른바 노나라판 엑소도스(exodus)가 나온다. 군주의 망명은 주군의 부재이며 천하를 지탱하는 두 축 즉 예악(禮樂)의 붕괴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륵이 ‘국난(國難)’으로 판단했던 당시 대가야의 상황은 국내외 두 가지 측면이었다. 대외적으로 백제파에 대항하기 위함이었고 그러기 위해서 무엇보다도 대내적으로 가야 연맹의 통합문제였다. 춘추시대 혼란한 정국을『詩經』을 통한 통합의 전례를 따라 가실왕(嘉悉王) 역시 명목만 남은 대가야의 암울한 ‘현실’ 타개를 목적으로 수행과제로 삼아 끊임없는 대외 전쟁과 사람들의 고단한 삶을 음악을 통하여 분열된 가야연맹체의 12지방의 통합담론(豈可一哉)이다. 즉 가야 연맹의 여러 음악을 모아 각 지역의 방언을 극복하고 하나로 하고자 한 것은 음악을 국가의 통치이념의 표현으로 삼기 위한 이른바 ‘음악정치’이기도 했다. 근대 이후의 ‘국가’ 개념을 들어 우륵을 정치적 망명자라고 제한하는 것은 오해라고 생각한다. 당시는 철저히 왕조라는 시공간이었지 근대적인 ‘국가와 국민’과는 이질적인 개념이다. 김유신과 같은 가야계가 진한(辰韓)・변한(弁韓)・마한(馬韓) 등 거시적 ‘三韓’의 통합을 이루었듯이 동일한 맥락으로 음악으로 통일한 우륵은 재평가되어야 될 필요가 있다. 우륵에 의한 문화적 재영토화(cultural reterritorialistion) 과정은 진흥왕이 보낸 신라의 음악천재 대나마 주지(注知)․계고(階古)․대사 만덕(萬德) 세 사람과의 만남이다. 우륵의 가야 열 두곡을 전수받고 ‘번잡하고 또 음란하다. 우아하고 바르다고 할 수 없다.(此繁且淫, 不可以爲雅正)’와 같이 하극상을 범하고 다섯 곡으로 줄였다. 이는 인식의 방향이다. 신라의 거만한 음악천재들은 우륵의 음악을 두고 혼종과 잡종성 나아가 음란(淫亂)의 패러다임으로 해석해 버렸다. 당시 정복국가 신라가 추구한 ‘바른’ 음악의 궤도이탈을 자각과 ‘망국지음(亡國之音)’의 가야음악을 전면적인 수용을 거부한 신라의 음악관을 가늠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륵의 선언이 놀랄만하다. 우륵의 평가는 공자가『論語』에서 평가한 ‘낙이불음(樂而不淫), 애이불상(哀而不傷)’을 ‘낙이불류(樂而不流), 애이불비(哀而不悲)’로 화답과 동시에 ‘바른 음악이라 할 만하다(可謂正也)’이라고 탄식한 글귀이다. 과연 우륵이 말한 그 시대의 바른 음악적 사고는 어떤 음악관을 말하는 것일까. 신라인 음악가의 비판은 우륵의 악에 대하여 음악이란 고상하고 바른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유교적 정치이념이 도입된 이후 음악은 통치수단으로 인식되었다. 신라사회의 발전과 그에 따른 체제정비에 순응하면서 王道政治를 지향하는 진흥왕의 통치 구상에 맞추어진 것이다. ‘정악(正樂)’은 민요의 희로애락과 같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감정이입을 허용하지 않는다. 인간의 자유로운 감정이란 ‘배출’임에도 불구하고 유가적 음악관은 이를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있다는 점이다. 가야의 음악을 유교적 음악 담론과 같은 타력에 의해 변화시켰다고는 하지만 오히려 문화적 영토는 가야악으로 대표되는 우륵의 음악적 상상은 무너지지 않았다. 왜냐하면 신라가 강요한 유교담론 이전 우륵은 이미『詩經』과 『論語』의 禮樂에 대한 핵심을 잘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신라음악에 대하여 ‘여유롭게’ 패했으나 승리한 가야문화의 재영토화에 성공했다고 할 수 있다.

우륵의 음악적 사유는 가야문화 인식이 반영된 ‘문화영토’를 향해 있었다. 대가야의 중앙귀족에 편입되지는 않았으나 예술가 우륵을 넘어 지식인 집단을 대표하는 우륵으로 재조명해야한다. 그 중심에 가실왕의 명으로 이루어진 가야악 12곡은 가야의 실제 ‘소리’ 즉 생명을 담은 소리는 혼란기 가야 연맹의 절망적인 세상을 향해 외친 음악적 울림이었다. 시대를 바라보는 예리한 ‘관찰’과 ‘감지’를 통해 흩어진 경계를 하나로 묶어냈다. 신라중심의 새로운 질서(cosmos)를 수용하면서도 ‘가야의 소리’를 최후까지 지키고자 한 예술가의 면모를 파악할 수 있었다. 禮樂과 같은 유가적 음악담론으로 무장한 신라의 음악가들이 공자가 鄭나라의 음악을 비판했듯이, 우륵의 음악을 두고, 혼종과 잡종성의 ‘번잡과 음란’(此繁且淫)의 패러다임을 비판하고 교조적 ‘우아미와 곧음’(雅正)의 正樂을 강요함은 당시 정복국가 신라의 문화정책의 방향에 다름 아니다. 우륵의 음악에 대한 비질서(非秩序), 부조화(不調和) 인식은 우륵의 학문적 소양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가야의 이미지로 ‘재구성’된 大樂은 기표는 가야적 상상 사유의 종말을 의미한 것은 결코 아니다. 다시말해 신라의 유교 담론적 음악은 우륵의 상상력을 완전히 차단하지는 못했다.

가야의 문화영웅 우륵은 창조적인 사유는 민요의 희로애락과 같은 감정이입을 허용하고 ‘배출’하고자 했다. 유가적 음악관의 차단을 벗어나 자유로운 감정을 생산하는 상상의 공간을 획득하고자 했다. ‘통일’을 지향한 신라를 목격하는 만큼 시대는 더 이상 우륵을 유유자적한 음악가로 머물게 두질 않았다. 문화영웅으로서 뛰어난 예술가로서 혹은 조국을 배신한 기회주의자로 재단(裁斷)해 버리는 ‘결과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 ‘낙이불음, 애이불상(樂而不淫, 哀而不傷)’의 음악을 ‘낙이불류, 애이불비(樂而不流, 哀而不悲)’의 음악으로서 ‘亡國之音’의 비판을 극복한 우륵은 弁韓과 辰韓과 그리고 馬韓을 초극한 ‘韓의 諸國’이라는 거대감론적 탈영토주의자이며 ‘통일’된 韓의 諸國의 문화영토를 꿈꾼 문화영웅으로 재정립되어야 할 것이다. 결국 우륵은 문화적 탈영토화(déterritorialistion)와 문화적 재영토화(cultural reterritorialistion) 체험한 가야의 문화영웅이었다고 할 수 있다.

안수현  webmaster@k-tod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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