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으로 살아가기에 바쁜 나라 대한민국, 아니 눈치껏 민첩하게 서둘지 않으면 한 순간에 도태되는 것이 한국의 삶이다. 매일 아침 출근길 지하철과 버스 정류장에서 목격하는 수많은 한국인의 얼굴은 다들 너무 진지하다 못해 화가 난 자화상이다. 과연 한국인은 웃음을 잃어버린 것일까? 느긋함과 유유자적은 어느덧 화석어가 되었고 부정되었다. 만나는 사람마다 입으로는 좋은 아침을 예찬하면서 실제 그들은 얼마만큼 진실한 웃음일까 하는 의문이 든다.

우리 속담에 ‘웃는 얼굴에 침 못 밷는다’와 더불어 ‘일로일로(一怒一老) 일소일소(一笑一少)’ ‘소문만복래(笑門萬福來’)는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온 말이다. 너무 익숙한 말들이라 별다른 감흥도 일지 않지만 ‘웃을 소(笑)’라는 글자가 궁금해졌다. 대나무(竹)와 개(犬)로 구성된 소(笑)의 어원은 설문해자(說文解字)에는 궐(闕)자(笑此字本闕)로 나오며 의미 또한 다양하지만 정설은 아니다. 핵심은 ‘어릴 요(夭)’자이다. 젊고 아름다운 여자 무당이 웃으면서 하늘을 향해 양손을 치켜들고(竹) 춤을 추는 모습이다. 신을 달래기 위하여 ‘웃음’으로써 기원과 신탁을 행한다. 특히 농경민족의 경우 고대부터 신과의 교신을 통해 삶이 보장되었다. 하늘에 대한 기우제, 풍양제는 엑스터시 상태의 무당이 개입하여 생명의 지속을 기원하던 신성한 의식이 바로 ‘웃음’인 셈이다. 그런데 우연의 일치일까 흥미롭게도 산스크리트어에 ‘웃다(ut-tha)’라는 말이 있고, 웃음을 뜻하는 그리스어 겔로스(gelos)는 본래 건강(health)을 의미하는 ‘헬레(hele)’에서 파생되었다거나 웃음에 대한 심리학적, 생리학적 관점에서, 미국의 경우 지난 1960년대에 이미 하나의 학문영역 즉 ‘젤로톨로지’(Gelotology)로 정착되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웃음은 희로애락(喜怒哀樂)과 같은 인간사와 밀접한 관계를 가진다. 미소(微笑), 함소(含笑), 대소(大笑), 가가대소(呵呵大笑), 파안대소(破顔大笑), 박장대소(拍掌大笑) 한술 더 떠서 포복절도(抱腹絶倒)까지 확대된다. 그런데 모든 일에 양지가 있으면 그만큼 음지가 있는 법이라 했듯이 소(笑)는 비웃다고 하는 부정적 의미로도 사용된다. 고소(苦笑), 냉소(冷笑), 실소(失笑), 조소(嘲笑) 등이다. 플라톤은 웃음을 ‘악덕과 어리석음’으로, 아리스토텔레스는 ‘추함과 비천함의 발현’이라고 했는데, 특히 냉소(冷笑)는 자신보다 강한 자에 대한 적대적인 풍자웃음을 가리킨다. 홉스(Thomas Hobbes)는 조소(嘲笑)를 타자 혹은 과거 자신의 결점과 비교한 자신의 우월감을 문득 자각했을 때 돌연히 나타나는, 우쭐해하는 의기양양한 기쁨 이외의 아무것도 아닌 것이며 이를 웃음의 전형으로 보았다. 나아가 ‘마지막에 웃는 자가 진정한 승자이다’ 쯤 되면 웃음이란 단순히 감정반응을 넘어선 영역이다. 결국 웃음의 속성은 결국 ‘본능적’ 웃음과 ‘사회적’ 웃음으로 나눌 수 있다. 예컨대 위록지마(爲鹿之馬)와 관련된 진시황의 어리석은 아들 호해(胡亥)의 웃음은 본능적인 웃음이었고, 부처의 염화미소(拈華微笑)와 공자의 웃음(夫子哂之), ‘웃음과 비웃음’이란 두 가지 이름을 가진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Isaac), ‘웃음의 연인’ 및 ‘남성 파괴자’ 등 수많은 이름을 가진 음란하고 관능적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 천둥은 하늘의 여신 누트(Nut)의 웃음소리라고 믿는 이집트 신화 등에서 알 수 있듯이, 웃음은 타자에 대한 지배와 해방의 양의성을 가진 사회적 웃음이다.

한국인의 웃음하면 풍류(風流)와 같은 미의식과 더불어 공동체적 이상을 담은 해학(諧謔)과 흥(興)일 것이다. 해학은 약자의 긍정적 측면을 발견과 타자에 대한 존중을 전제로 한 발산이며, 흥은 정태적 가치보다 동태적 가치에 중점을 두는 상호 지향적 웃음이라 할 수 있다. 한편 예술영역의 웃음은 역시 ‘진지함’과 대립되는 개념으로 간주되어 왔다. 18세기 후반 프리드리히 쉴러(J.C. Fridrich von Shiller)에 의해 예술의 주변 담론을 벗어나기 시작하였고, 일찍이 기대와 실현의 갑작스런 불일치(無化)가 웃음의 본질이라고 한 칸트(Immanuel Kant)를 계승하여 19세기에 이르러 웃음 자체가 ‘불일치의 표현’이라고 제기한 쇼팬하우어(A. Schopenhauer)를 거쳐, 20세기 이후 베르그송(Henri Louis Bergson)은 웃음의 가치에 대하여 ‘살아있는 것에 기계적인 것이 부착됨으로써 웃음이 발생’한다고 지적하였고, ‘생물을 기계적인 것보다 우위에 설정’ 했음에도 불구하고, 생물이 기계적으로 행동하는 의외성이 바로 웃음이라고 규정하였다.

한국인은 진정한 의미에서 놀 줄 모른다. 한국인의 풍류의 밑바탕은 ‘해학과 흥’이라고 했는데 양자는 ‘놀이’가 전제된다. 놀이의 본질은 다양한 ‘가능성’을 체험하는 일이다. 노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제도에 의해 선택한 놀이가 예상과는 다른 경우, 제도의 복잡성은 오히려 증대되어 제도와 환경의 ‘낙차’를 축소시키게 되므로 제도의 존속과 관련된 고통을 수반하게 된다. 따라서 적어도 그러한 ‘낙차’에서 야기되는 비자발적 고통을 ‘쾌(快)’로 전환하는 메커니즘이 필요하게 된다. 즉 놀이가 바람과 같이 흘러가는 존재의식의 風流와 같이 ‘웃음’ 또한 존재자와 타자와의 관계망을 이어주는 ‘가시적 행복’이라 할 수 있겠다.

웃음은 위기상황과 조우했을 때 자신을 지켜주는 수호신(genius)이며, 운명적 상황에 대한 초극성의 선언이라 할 것이다. 생존의 가치는 바로 웃음의 선택에 있으며 정신적 저항이다.

종교의 구원관처럼 현실을 구원하는 키워드는 웃음이며 변수에 대한 거리감을 체득하게 하는 원동력이기도 하다. 웃음 마이너리티를 벗어나 웃음의 ‘성스러움’을 환원해야 한다. 웃음의 근원을 통하여 내・외적으로 그리고 초월적으로 실천해야 한다. 그러므로 웃음을 유발하는 주요 장치로서 흥의 본질은 타자와 더불어 즐기는 것에 있으며 적극적인 동참을 유도한다. ‘관계성’을 전제로 한 웃음의 구성요소는 종합적인 감정반응이며 깨달음까지 포용하고 있는 것이다. 상황에 따라 웃음의 질은 확연히 다르다. 상위자와 하위자 사이는 권력과 저항 담론의 양상으로서 지배와 하극상을 놓고 ‘우열관계’가 질서화되고 있다. 인간의 웃음은 타자와 긴장 상태를 완화시키려는 기호이며 완충지점을 모색하려는 사회적 웃음 짓기에 골몰한다. 실재적인 것에서 개념으로 이행할 때는 ‘기지(機知)’, 그 반대가 ‘엉뚱함’이라고 정의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재적인 것 다음에 개념이 등장하는 것에 반해 개념과 실재가 순서적으로 반대인 것이다. 개념과 실재의 순서가 바꾸면 ‘웃음’이 발생한다. 실수와 실패는 현실이 예상을 벗어난 전형적인 결과론이다. 자신의 실수와 실패를 웃어넘기는 방어책과 같다. 플라톤을 원용할 것까지도 없이, 모방자는 모방의 불완전성과 모방대상보다 하위의 행동에서 오는 낙차를 발견할 때 웃음이 유발된다. 또한 타자에 관한 정보와 검토가 불충분하기 때문에 무지(無知)에서 웃음을 유발하는 경우도 있다. 그 만큼 웃음은 아직 미지의 영역이다. 무릇 아리스토텔레스가 지적한 ‘인간만이 웃는 동물’이라고 단언은, 자연이 준 최고의 선물을 웃음으로 수용한 니체(F. W. Nietzsche)의 웃음의 ‘안과 밖’이 확연히 다른 질서로 작동되고 있음을 증명하고 있다. 응고된 타자에만 머물러서, 변화없는 박제된 웃음 틀을 생산해서는 안 된다. 그래서 웃음은 항상 새로운 생명을 준비하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한 세대만 달라도 ‘썰렁한’ 웃음으로 추락하는 것을 매순간 숨 가쁘게 체감하고 있다. 웃기는 사회가 아니라 웃는 사회를 기다리자. 웃음간 거리와 채감 온도 또한 사람마다 상황마다 천차만별이다. 웃음을 통해서 우리는 현상의 본질을 마주하는 동시에 그것으로부터 벗어남을 경험한다. 웃음의 의미는 이렇듯 늘 양가적이며 동시적이다. 웃음의 황금기를 맞이해야 할 것이다. 왜곡된 성리학적 악몽에 의한 웃음담론의 부정적 평가와 위선적 분열로부터 아직 웃음을 해명하지 못했다. 자연스럽게 우러나는 본능적 웃음과 타자의 눈을 의식한 ‘불쾌를 무화(無化)’하는 사회적 웃음 양자에 인색한 우리 한국인은 ‘지금 여기’를 사유했던 처용의 ‘체념과 경고성의 웃음’을 호출함으로써 웃음의 근원을 회복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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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람(淸嵐) 안수현

부산대 한국민족문화연구소 전임연구원

문학박사, 문학평론가, 문학번역가, 시조시인

국제시조협회 평론분과 위원, 부산시조시인협회 정회원, Japan Tanka Poets’ Society

번역시조집: 靑銅魚, 꽃벼랑, 아지랑이, 고시조 100선

번역시집: 박목월 시 100선

역서: 藤原定家의 詩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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