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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오름을 오르면 오르가슴을 느낀다”미술작가 박수영, 제주 오름 그림 통해 4·3사건 치유
박관식 기자  |  webmaster@k-tod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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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09.06  14: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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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오름을 오르면 오르가슴을 느낍니다. 흔히 말하는 그런 상투적인 것이 아닌 슬픔이 최고조에 달하는 오르가슴을….”

미술화가 박수영 작가의 말을 듣는 순간 단어의 오묘한 연관성에 청자(聽者)는 화들짝 놀라고도 부족하다.

어쩌면 박 작가는 이미 그런 언어의 우연성을 파악한 듯하다. 그러고 보면 화가는 그림만 그리는 것이 아니라 시적 영감도 뛰어나다는 얘기가 성립된다. 하기는 시나 그림이나 주제를 찾는 심미안은 동격(同格)인고로 당연할 수밖에….

작가가 말한 ‘오름의 오르가슴’이란 어구는 쉽게 지어낸 것이 아닌 듯하다. 그 말을 듣고 새삼스럽게, 흥분이 최고조에 이른 상태를 뜻하는 오르가슴(orgasme)이란 프랑스어를 뜯어보니 ‘오르는 가슴’이 연상된다. 유럽 대륙의 말과 아시아 대륙 동방의 말이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이것은 과연 우연의 일치일까. 아니면 지나친(?) 끼어 맞추기일까.

   
 

‘제주 화가’라 불리는 이유 따로

지난달 22일 오후 미술의 거리 인사동 갤러리에서 만난 소위 ‘제주 화가’라 불리는 박수영 작가는 범상치 않았다. 이제 불혹의 나이를 갓 넘긴 여류화가였지만 겉으로 풍기는 풍채는 물론 대화를 하면서 숨겨진 내공이 만만찮았기 때문이다.

그런 내면의 열(熱)과 성(誠)은 그의 작품 속에 고스란히 배어 나온다. 처음 그의 미술 작품을 목격한 이들은 언뜻 보면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게 마련이지만, 정작 화간(畵間)에 담긴 뜻을 알고 나면 급작스럽게 감당하기 어려워질 수도 있다.

무슨 계열이든 다 엇비슷하겠지만 소설가나 시인도 아주 어린 나이부터 두각을 보이는 천재성이 있듯이 미술화가도 역시 마찬가지인 듯하다. 그러나 오래도록 수명이 길게 회자되는 예술가들은 대개 늦되는 경우가 허다하고, 특히 작품에 몰입하는 진정성과 성실성에서 판결나게 마련이다.

박수영 작가는 아무래도 후자의 경우 같다. 박 작가를 말할 때 이른바 ‘제주 작가’라고 부르는 것을 보면 그의 고향이 제주도인가 싶지만 전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박 작가는 여러 차례의 오름 개인전을 통해 과거 조선시대로부터 일제 치하의 수탈, 4‧3 사건으로 인한 비극의 역사들을 되짚어 현대인들에게 이 모든 일들이 “그들만의 비극이 아니다”는 사실을 알리고 있다.

제주도의 역사는 제주만의 일이 아닌 우리 근대사의 아픔임을, 그리고 그것을 애써 모른 척할 일이 아니라 제대로 알려 숨겨진 응어리들을 보듬어 감정의 씻김을 통해 후손에게 되풀이되지 않도록….

그래서 박 작가는 처음 작품들의 주제인 슬프고 음울한 과거에서 벗어나 화해, 용서, 미래를 향한 작가의 의지를 표현했다. 이전 작품에 반복된 ‘하얀 집’은 여전히 과거사에 연결된 죽음과 무덤 등을 상징하지만, 화폭에 새로 등장한 여러 생명체를 통해 이어지는 삶과 앞으로의 삶에 대한 ‘생명력’을 이야기하고 있다.

   
 

25살 때 제주 처음 찾아 매료돼

그가 제주도를 처음 접한 것은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한 후 기간제 교사로 처음 일하기 시작한 25살 때였다. 그처럼 바람, 돌, 여인이 많다는 제주도와 인연이 먼 그런 낯선 이방인에게 ‘제주 작가’로 호칭했으니 그 노력이 어찌했을까.

“바람 섬 제주 섬을 드나든 지 십여 년이 지났습니다. 아름다운 바람소리만 간직하고 싶은 그곳은 근현대사의 쓰라린 흔적이 깊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반세기 이전 제주에는 타민족이 점령군으로 있었습니다. 태평양전쟁 막바지에는 아름다운 땅 곳곳에 헤아리기 힘들 만큼 진지를 쌓고, 비행장을 닦고, 무수히 많은 땅굴을 파헤쳐 놓았습니다. 이 식민의 산물을 짓기 위해 수많은 제주 사람들이 처참한 노역과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박수영 작가는 그동안 제주의 숨겨진 일제 잔재인 땅굴 등 숱한 유적들을 찾아다니면서 눈으로 피부로 확인했다.

“그러나 해방의 기쁨도 잠시뿐, 4‧3사건은 제주도민들에게 같은 겨레로부터 크나큰 고통을 주었습니다. 이 무슨 기구한 운명의 장난입니까? 낮에는 토벌대, 밤에는 산사람들에게서 무고한 백성들이 희생되었습니다. 가해자는 어디로 가고 모두가 피해자인 속에서 갈등과 대립의 시간들이 이어져 왔습니다.”

박 작가는 처음 제주를 방문할 때는 풍경화를 스케치할 생각에 왔다가 그 풍경 속에 숨겨진 슬픈 역사를 눈치 채기 시작한 것이다. 그가 가장 마음 아파하는 것은 일제 때 그토록 모진 노역으로 고통당한 이들이 해방 후 왜 서로 감싸주지 못했을까 하는 역사의 미궁이다.

제주도는 오름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가 없다. 눈길 닿는 곳마다 오름으로 시작해서 오름으로 끝난다. 제주 자연의 모체이며 온갖 생명체를 품고 있는 오름은 늘 그곳에 자리 잡고 있다. 제주의 창조 여신인 ‘설문대할망’의 치맛자락에서 잉태하여 한라산을 겹겹이 감싸며 온갖 아픈 역사를 품어냈다.

오름은 제주의 생명수, 자생식물의 보고, 사계절 각양각색의 자태를 보여주며 독립 화산체로 변화무쌍한 신비의 세계를 연출한다. 오름에서 태어나 오름으로 돌아가는 귀소본능의 철학이 담겨 있다.

제주의 이런 아름다운 오름에 흥취를 가진 박수영 작가는 수많은 오름을 올랐다. 결국 그는 1년 365일의 숫자와 비슷할 만큼 다양한 오름을 거느린 오름의 왕국 제주에서 새로운 희망을 본 것이다. 그래서 그는 오름을 소재로 제주의 아픈 혼과 넋을 달래는 작품을 그리기 시작했다.

 

2010년부터 오름 주제 개인전 열어

그 결과 박 작가는 2010년부터 본격적으로 오름을 주제로 한 개인전을 열면서 ‘제주 작가’로 알려진다. 같은 해 제3회 개인전인 「오름- 길을 잃다」전(안산 문화예술의 전당)이 바로 그것이다.

그 전의 개인전은 2007년 제1회 「새야 새야」전(수원시립미술관)과 2009년 제2회 「작은 이야기」전(수원시립미술관)이었다.

제3회 개인전에서 제주의 오름을 소재로 한 그림이 관심을 끌면서 그의 작품 세계가 알려지기 시작한다. 정갈하면서도 화사한 색깔로 수놓아진 그의 화폭을 들여다보면 안개 숲 사이로 오름이 보일 듯 말 듯 드러난다. 여인의 둔부처럼 아름답고 고운 선이 느껴진다. 하지만 그 곡선 사이로 잃어버린 여러 조각의 기억을 짜 맞춰 보니 아픈 상흔의 이야기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고중영 시인은 그의 작품에 대해 “홑치마 걷어 올린 여인의 당찬 이 오르가슴을…”이라고 단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앞에서 박 작가가 귀띔한 ‘오름의 오르가슴’을 이미 파악한 시적인 심미안이 서로 통했음이리라.

박 작가는 “제주 방문에서 첫 비행기의 이륙소리가 긴 정적을 깨면 이윽고 바람 섬 제주의 육지와 소통이 시작됨을 느낀다”며 “태고의 신비함이 가득한 오름길이 아닌 또 다른 어떤 영험함, 구도자의 길에서나 얻을 법한 그런 순수하고 애달픈 감정이 북받쳐 오른다.”고 말했다.

육지의 사람들은 잊어 버렸지만 매년 4월 3일 제주도 전체가 제사를 지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 집 건너 한 집씩 오래지 않은 과거사의 희생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국적인 풍광 아래 수많은 수탈의 역사와 이해 못할 이데올로기적 희생의 역사가 마치 오름의 완만한 형상 아래 치받쳐 오르다 굳어버린 용암처럼 묻혀 이제는 오름의 풍만함만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뭔가 일깨우고 싶은 것이다.

제4회 개인전은 2011년 「섬, 그리고 남은 이야기- 오름」전(갤러리 IS), 2012년 제5회 개인전 ‘갤러리즈 신진작가 창작지원 프로그램 선정 작가’전에 이어 같은 해 2월 1~26일 제주 4·3기념관에서 제6회 「오름- 섬에 살다」전이 열리면서 공식적으로 ‘제주 작가’가 제주도에 첫 입성을 했다. 이에 따라 제주도 출신의 화가들뿐만 아니라 소설가, 무용가 등 다양한 예술인들이 관심을 가졌다.

   
 

제주 4·3기념관에 모인 제주도의 예술인들은 박수영 작가의 오름 그림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4·3사건은 그동안 어둡고, 슬프고, 무섭고, 힘든 이미지가 강했는데 박 작가는 이를 밝고, 편안하고, 친숙하게 표현했습니다. 제주 인구 절반이 희생당한 아픈 역사를 잊을 수 없습니다. 제주 전역이 4·3사건과 관계되어 있습니다. 박 작가는 아픈 역사를 다시 되새겨보는 제주도민에게 경각심을 일깨워주는 계기를 마련해 줬습니다.”

“박 작가는 스케치하러 제주에 왔다가 처음에는 풍경만 그렸습니다. 여러 번 오다 보니 제주 역사에 관심을 가지면서 4·3사건에 포인트가 맞춰져 역사적으로 어떤 곳인지, 이데올로기가 무엇인지, 제주 사람이 왜 당했는지 점점 깊이 파내려간 것이지요. 하지만 여자이기 때문에 부드럽고 아름답게 그렸지만 섬에 숱한 무덤이 있고, 산 오름에 수많은 집이 있고, 과거와 현재가 어우러지면서 비극성이 그 밑에 숨어 있는 그림이 된 것입니다.”

“제주의 화가들은 이런 그림을 이전에 못 그렸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제주를 바라보는 새로운 특이한 눈으로 캐낸 것입니다. 4·3사건은 현기영 소설가가 「순이 삼촌」이란 소설을 썼지만 그림과 조형미술로 표현한 것은 박 작가가 처음입니다. 그래서 더욱 돋보이기 때문에 ‘제주 작가’란 호칭을 붙여준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과거에 서민은 억눌리고 비참한 상황에서 학살당하며 서럽게 살아왔습니다. 역사 속에서는 하나의 무덤으로 묻혔지만 정신은 되살아납니다. 작가는 우리 민족정신의 뿌리부터 원초적인 우리 문화를 되살리자는 취지였지요. 그래서 퍼포먼스 공연을 부탁했지요. 화해와 상생을 얘기하고, 이방인이 모르는 4·3사건의 아픈 역사를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고 했습니다. 이 옷이 일반 살풀이와 다른 이유가 있지요. 이곳은 영혼이 모셔진 현장이라 그들에게 우리의 소식을 전하는 상생 차원에서 상복을 입었습니다. 그 후 상복을 벗고 화해하고 소통하기 위해 외부에서 와 제주 4·3의 상생을 위해 노력하는 박 작가에 대한 고마움을 춤으로 표현했습니다.”

박수영 작가는 4·3의 영혼을 달래기 위해 무용가도 초청해 공연 퍼포먼스도 펼쳤다. 물론 자신의 작품 역시 같은 맥락의 연장선에서 진행됐다.

아이러니하게도 제주도 태생이 아닌 작가가 제주의 아픔을 찾아 회화로 씻김굿을 시도하는 것이 모순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너무 아픈 당사자는 감정적 체념과 차라리 망각하고 싶은 아픔으로 과거를 돌이키고 싶지 않은지도 모른다.

그래서 어쩌면 이방인인 작가로서는 너무도 사랑하는 제주도의 풍광 속에 감춰진 아픔들을 제주도민과 함께 공감하고, 무관심한 육지 사람들에게도 우리 근대사의 비극들을 다시 각성시켜 그러한 고통을 다시 반복하지 말자는 작가적 소명의식이 이 전시의 시작이고 끝인 셈이다.

 

종국에는 ‘화해의 장’을 의미

“섬사람들에게 ‘육지 것’일 수밖에 없는 나는 이방인으로서 섬을 떠돌며 작업을 한다. 수많은 오름과 바당. 그 속에서 가라앉지 않는 삶과 죽음에의 고통과 오랜 동안 소외된 변방민으로 살아온 섬사람들의 헛헛한 마음은 섬 안의 또 다른 섬으로 떠돈다. 오늘도 나는 바람섬의 오름을 떠돌며 고통의 돌길과 슬픔의 둔덕을 올라 오름 위에서 아픔 끝에 순수한, 오르가슴을 느낀다.”

박수영 작가는 작가 노트에서 오름 위에서 비로소 오르가슴을 느낀다고 술회한다.

이어 그는 “제주의 봄은 슬프다. 노란 유채밭 위에 죽은 자의 무덤은 빈집으로 떠돌고 산 자는 죽은 자의 집 위에 밭을 일군다. 유채 만발한 오름에 오르면 바람결에 상여소리 묻혀 온다.”며 삶과 죽음의 윤회를 은유하고 있다.

그녀의 오름에는 제주 도민들의 응어리진 4·3의 한과 아픈 역사가 오롯이 담겨 있다. 작품 안에는 앞서 살다간 이들의 무덤과 현재를 살고 있는 이들의 집들이 혼재한 채 아득하게 펼쳐진다.

외양은 간결하지만 어슴푸레한 오름들 사이로 희미하게 드러난 작은 길과 희뿌연 나무들이 있다. 십여 년 전 제주와 인연을 맺은 작가의 초기 오름 연작에는 창도 문도 없는 하얀 집들이 있었다.

하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창이 생기고 작은 문이 생기면서 세상과의 소통을 시도했다. 어둡고 음울한 색조의 단상들이 점차 화려하게 바뀌었다.

종국에는 ‘화해의 장’을 의미하지만 작가 스스로의 마음에 자리한 삶과 인생에 대한 고통스런 통찰일 것이다.

그의 그림을 보면 객지 사람으로서 보는 또 다른 제주의 아픔, 그리고 말하지 못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종이·먹·옻칠을 바탕으로 색연필·아크릴을 혼용하면서 농묵·담묵 등을 뒤섞은 작품에서 익숙하지 않은 조형미가 오히려 빛을 발한다.

건국대 교육대학원 미술교육 석사 과정을 졸업하고, 숙명여자대학교 예술대학 박사과정을 휴학 중인 박 작가는 한국미술협회 이사로 활동 중이다.

박관식 기자  webmaster@k-tod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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