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한 달 전, 필자는 우연히 나 홀로 여행을 떠났다. 목적지는 선비의 고장 안동. 우리 전통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예향 안동을 찾게 된 것이다. ‘안동’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우선 ‘하회마을’이다. 필자 역시 하회마을과 부용대, 안동댐과 월영교, 임청각, 연미사 등 관광명소 여러 곳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들르게 된 곳이 바로 ‘지례예술촌’.

몇 년 전부터 ‘지례예술촌’의 차종손인 김수형 씨를 알고 지냈으나 이번이 처음 방문이었다. 필자가 지례예술촌을 방문한 그날 저녁, 마침 ‘딩가딩가’라고 이름 붙인 통기타 축제가 열리고 있었다. 고택에서 벌어지는 음악회라니! 공간이 주는 특별함과 예술의 향기가 더해서 여행객으로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기분과 여흥을 만끽할 수 있었다.

다음은 ‘지례예술촌’의 차종손이자 안동시 소재 두루 협동조합 이사장, 지촌 종가 14대손인 김수형 씨와의 대담을 엮은 글이다.

#‘지례예술촌’은 단순한 고택이 아니라 외국의 아티스트 콜로니(예술창작촌)처럼 ‘예술촌’이라는 콘셉트도 동시에 지니고 있다. ‘지례예술촌’은 어떻게 조성되어 이어져오고 있는가?

아버지(김원길)께서 수몰을 앞두고 재미 소설가 김용익 교수의 방문을 통해 미국의 창작마을 얘기를 듣고 이를 계기로 ‘지례창작예출촌’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지례예술촌’이라고 불리지만 원래는 ‘지례창작예술촌’이었으며 창작예술가들을 위한 공간을 꿈꿨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5학년 때(86년쯤) 수몰로 동네가 사라진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공사가 하나씩 시작되었습니다. 동네 뒷산에 산을 깎아서 터를 만들고 지산 서당을 먼저 옮겼습니다. 우리 삼 남매는 공사인부들 점심을 날라다 주면서 공사가 이루어지는 것을 초등학교 졸업 때까지 봤습니다. 그리고 정곡 강당을 옮기고 마지막으로 지촌 종택을 옮겨지었습니다.

지례 마을은 저의 14대조 때 들어와서 살기 시작한 마을로 지촌 할배와 순포 할배 두 분이 들어오셔서 살기 시작했습니다. 그전에는 고성 이 씨들이 살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게 약 360년 정도를 한마을에서 대대로 살아왔습니다. 92년경에 임하댐이 완성되면서 ‘지례예술촌’이라는 이름을 쓰게 되었습니다. 안동 인근 지역의 경우 고택 체험을 운영하는 곳은 대부분 후손들이 직접 운영을 합니다. 일부 그렇지 않은 곳도 있습니다.

동네가 없어질 때 수몰 지역 안에 있던 건축물을 현시대에 맞게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다가 아버지께서 ‘지례 창작예술촌’이라는 이름을 사용하셨고 그렇게 약 30년 흘렀습니다. 조용히 창작예술 하시는 분들을 중심으로 창작활동을 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지례예술촌’의 구성 및 운영방식은?

지례예술촌은 지촌 종택을 중심으로 동쪽에 지산 서당과 정곡 강당이라고 불리는 지촌 제청 그리고 제청의 부속건물인 주사 건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지산 서당에 방이 2개 대청마루가 하나 그리고 툇마루 등의 작은 마루가 여럿 있습니다. 지촌 종택은 10개의 방을 가지고 있으며 안마루, 큰 사랑마루, 동쪽 사랑마루 등의 큰 마루를 가지고 있고 부속 건물로 별묘 건물이 있습니다. 행랑에 방이 3개 있고 방앗간 건물에 화장실과 샤워시설이 들어가 있습니다. 정국 강당은 방이 2개에 큰 마루가 하나 있고 부속건물인 주사건물이 2동인데 방은 3개 마루가 하나 있습니다. 각 건물마다 별도의 화장실과 샤워시설이 건물과 별도로 만들어져있습니다.

큰 사랑, 안방, 상방, 책방은 가문을 대표하는 방과 가족들의 편의를 위해서 쓰고 있습니다. 그래서 전체 18개의 방 가운데 5개의 방을 제외한 13개의 방을 고택체험 용으로 제공하고 있습니다. 이 가운데 주사체의 방 3개는 때에 따라 운영하기도 하고 운영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지산 서당의 경우 큰 마루가 있어서 세미나 등의 공간으로도 활용되고 있습니다.

# ‘지례예술촌’을 찾은 기억에 남는 손님은?

국내외의 많은 사람들이 지례 예술촌을 찾아왔는데 내국인으로는 이문열, 조병화, 구상, 홍신자, 김용익, 유안진, 성춘복, 최현묵, 김용옥 님이 지례를 찾았고, 프랑스 대사부부, 노르웨이에서 찾아온 노부부가 기억에 남습니다.

프랑스 대사 부부는 지례예술촌이 하도 오지에 있다 보니까 어디론가 납치돼 오는 기분이었다는 얘기를 남기셨고, 노르웨이 노부부는 생애 첫 아시아 여행의 첫날을 보내기 위해 지구를 반 바퀴 돌아서 지례예술촌으로 찾아왔는데 마침 그날이 지례종가에 제사가 드는 날이어서 함께 제사를 지내고 음복까지 하게 되었죠.

그리고 그날 국학중앙연구소의 문옥표 교수와 제자들이 지례 종가의 제례를 보러 방문해 있었는데 일본에서 유학 온 학생과 우즈베키스탄에서 유학 온 학생도 함께 있었습니다. 이들은 엄숙하게 제례에 참석하였고 사랑방에서 제례가 진행되는 것을 사랑마루에서 지켜보았는데 제사가 끝난 후 한상에 모여서 음복을 하고 국학중앙연구소팀에는 영어를 잘하는 사람이 있어서 촌장인 김원길씨와 함께 한국의 제례를 포함한 문화 전반에 관해서 노르웨이에서 온 노부부에게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그날 밤늦게까지 다국적의 사람들이 한국의 오지 중에 오지인 지례에서 이야기꽃을 피우게 된 거죠.

이처럼 소중한 추억과 잊지 못할 재미난 얘기는 촌장인 김원길 씨가 문학작품으로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신발을 신고 방에 들어가는 이야기, 이불로 침대를 만들어서 자는 이야기 등 문화충격에서 오는 재미난 이야기가 넘쳐나는 이곳이 가장 한국적이면서 유가의 전통을 잇고 있는 지례예술촌의 오늘의 모습입니다. (지촌 종가 13대손인 현 종손 김원길 씨는 시인이기도 하다.)

#‘지례예술촌’이 추구하는 바는?

원래 ‘지례예술촌’은 조상들이 남긴 건축물을 현대에 맞게 잘 활용하자는 취지에서 문학 등의 창작예술 쪽으로 활용하는 것이 좋을 것으로 여겨져 ‘지례창작예술촌’이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IMF 등을 거치면서 한국 사회의 급격한 변화와 이전의 예술인들의 작품 활동과 이후의 작품 활동이 많이 변하게 되었죠.

이제 고택들을 현대인들에게 체험시킬 수 있는 공간으로도 활용하게 되었습니다. 과거와 현대를 잇는 매개체이면서 전통사회의 장점을 후대에게 알릴 수 있는 공간이며 이 공간을 현대와 미래에 어울리는 공간으로 만들어가는 것이 지례예술촌의 추구하는 바입니다.

#앞으로 ‘지례예술촌’을 이어가는데 있어 중점을 둘 부분과 우리가 보존하고 가꾸어야 할 전통문화의 계승 방향은?

한국 사회의 급격한 변화로 고택과 고택에 살던 사람들이 고택을 버리고 대도시로 나가 살다가 다시 돌아와 새로운 형태로 고택을 활용하기 시작했으며 ‘지례예술촌’이 그 시발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 세대가 그 1세대이고 이제 2세대로 넘어가는 전환의 시기가 지금입니다. 1세대는 대도시에서 생활하다가 고향으로 돌아와 고택을 체험 공간을 이끌어냈습니다. 주로 숙박 형태로 고택을 활용하고 있습니다.

지례예술촌의 경우 예술 공간이라는 조금 특수한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지만 그 차이가 아주 크다고 보기는 힘든 부분도 있습니다. ‘지례예술촌’에 대한 저의 생각은 기존의 고택의 1차원적 활용이 아닌 지역사회와의 연대가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옛날 조상들이 지역 사회에서 책임감 있는 삶을 살았듯이 고택과 연결되어 있는 사람들은 고택을 중심으로 지역사회와 다양한 도전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경제적인 부분과 문화적인 부분까지 다양한 분야를 고택을 중심에 놓고 충분히 움직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숙박이라는 틀에서 벗어나야 하는 시기가 지금이 아닌가 합니다. 그리고 이를 통하여 고택을 보존하면서 나아가 더욱 그 문화를 발전시키고 죽어서 박제된 공간이 아닌 살아서 숨 쉬고 움직이는 공간이 되길 바라고 있습니다.

#에필로그

‘지례예술촌’ 방문으로 필자는 고택에 대한 느낌이 새롭게 다가왔다. 옛 조상이 살던 곳, 케케묵은 옛날이야기, 잘 가꾸고 보존해야 되지만 잊혀져가는 유산… 뭐 이런 이미지에서 지금은 조상의 얼과 더불어 숨 쉬는 곳, 언제라도 찾을 수 있는 아늑한 고향, 가문의 가풍이 풍겨나는 곳, 과거와 현재의 교감같이 대를 잇고, 전통과 문화, 예술을 이어가는 이미지로….

더군다나 현재 그 고택에서 후손이 그대로 머물며 살아간다는 것은 그 집 후손이 아닌 나로서도 여간 반갑고 대견한 일이 아니다. 가끔 ‘지례예술촌’ 같은 고택에 머물며 ‘나’를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고 싶고, 고택에서 벌어지는 여러 행사에도 관심을 가지고 찾아보고 싶어진다.

※ 지례예술촌은 경상북도 안동시 임동면(臨東面) 지례리(知禮里)에 있는 예술인들의 창작 및 휴식 공간으로 임하댐 건설로 수몰 위기에 있던 고건물들을 이건·조성하여 1989년 7월에 개촌 하였다.

김영주 방송작가  webmaster@k-tod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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