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필자가 대학 새내기 때 ‘햄버거에 대한 명상’이라는 시를 가지고 등장했던 젊은 시인이 있었다. 당시로서는 꽤 반항적이고 도전적이던 그 시인은 이 시의 부제로 ‘가정 요리서로 쓸 수 있게 만들어진 시’라고 덧붙였다. 시인은 이 시를 통해 풍요와 편리만을 추구하는 당시 세태를 꼬집어 사회에 대한 반항적인 독백을 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로부터 세월은 30년이 흘렀다. 때는 바야흐로 ‘쿡방’ 시대! 이제 우리는 단순히 ‘햄버거’를 얘기하지 않는다. 요리하는 남자가 섹시해 보이고, 유명 셰프가 있는 식당을 찾아 몰려다닌다. 자신 있는 요리 한두 가지는 할 줄 알아야 되고, 새로운 음식이나, 비주얼이 괜찮은 음식을 대하면 인증 샷은 기본이다. 30년 전에 비하면 참 편리해지고, 다양해지고, 풍부해진 오늘날의 음식들, 그리고 다채로워진 음식문화. 이제 우리는 어떤 음식을, 요리를 추구하고 있는 걸까?

#요즘 음식문화의 트렌드는?

대중들은 참 많이 똑똑해졌다. 식재료의 원산지를 확인하고 산지 직송 식품을 찾는다. 식재료의 중요성을 알고, 이력까지 추적한다. 한식의 우수성을 확인하고 장점은 흡수한다. 급속도로 서구화돼 가던 식문화 시장에 브레이크를 걸고 ‘웰빙음식’을 추구하기 시작했다. 건강음식, 건강 밥상을 추구하는가 하면 지구촌이 하나 되고 글로벌해지면서 식문화도 국경이 없어졌다.

단순히 건강과 영양만 추구하는 것도 아니다. ‘전통음식의 재해석을 통한 세계화’라고 할까? 옛것을 익혀 새로운 것을 만들고, 신(新) 하이브리드 음식을 추구한다. 한식을 응용한 신개념의 음식이 탄생하고, 기존의 중식이나 일식의 장르가 다양해지고, 우리나라에서 세계 여러 나라 음식을 어렵지 않게 맛볼 수 있다. 외식과 가정식의 중간인 반(半) 외식 형태, 가정식 대체식품의 발전, 고급 반찬가게가 등장하고 프리미엄 도시락이 개발되고 있다.

또 하나 눈에 띄는 점은 바로 ‘쿡방’을 꼽을 수 있겠다. 식문화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결국 방송가에 ‘쿡방’이라는 새로운 장르의 예능을 탄생시켰고, 이로 말미암아 우리 음식에 대한 새로운 접근과 관심을 불러일으켰다고 볼 수 있다.

#‘밥’을 먹는다는 것

하지만 나는 자주 배가 고프다. 고급스러운 음식을 찾아서 먹고 식도락을 즐기는데도, 가끔은 엄마가 차려주신 식탁에서 고향의 음식을 맛봐야지만 허기가 가신다.

그건 ‘밥’을 먹는다는 게 단순히 음식을 섭취하는 거 이상의 의미가 있다는 반증 아닐까?

‘밥’을 먹는다는 것은 단순한 영양섭취 이상의 감동과 즐거움이 있다. 우선 음식을 먹는 행위 자체에 즐거움이 있고, 어떤 분위기에서 누가 해주는 요리를 먹느냐에 따라 감동과 정성이 따른다. 영양뿐 아니라 음식의 맛과 포만감, 비주얼과 분위기가 어우러졌을 때 비로소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온전한 의미에서의 한 끼 식사가 되는 것이다.

#‘밥심’ ‘밥정(情)’ ‘밥값’

우리나라 사람들은 “식사하셨나요?”, “언제 만나 밥 한 끼 해요” 같은 말을 인사 대신한다.

“밥심(밥힘)으로 산다”, “밥 먹으며 정든다”, “밥값 좀 하자”라는 말들로 서로 고무시키고 위로하고, 격려하기도 한다. 계절마다 나오는 제철 음식을 본능적으로 찾아먹고, 약선 요리라던가, 선식, 건강식, 음식 치료 같은 데도 관심이 많다.

그만큼 ‘밥’과 ‘식문화’를 중요시 해왔으며 음식은 그것을 향유하는 사람들의 환경과 매우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

반면, 점점 더 맛난 거, 고급스러운 것, 새로운 것을 추구하다 보니 이젠 그러한 욕구가 지나쳐서 요즘 현대인들은 그동안 우리가 먹어오지 않았던, 혹은 접해보지 못 했던, 생소하고 산업화의 결과물로 만들어진 증명되지 않은 음식을 과하게 소비하고 있고, 그 결과 다양한 병과 부작용을 얻게 되기도 했다. 이것은 ‘약도, 먹는 것도 그 근원은 하나’라는 ‘약식동원’의 삶을 실천했던 우리 선조의 식문화와는 너무나 반대되는 현상인 셈. 그렇다면 앞으로 우리 음식문화는 어떻게 발전해가면 좋을까?

#우리 음식문화의 발전 방안은?

예로부터 우리 조상들은 ‘약식동원(藥食洞源)’이라고 해서 음식이 건강과 직결되는 것을 일찌감치 깨달았고, 그런 이념과 가치를 기반으로 한 식문화를 독자적으로 발전시켜 왔다. 그것이 이른바 ‘한식(韓食)’이라고 일컬어지는 우리 식문화의 정수가 아닌가 한다. 이미 한식의 우수성은 충분히 입증되었지만 아직도 갈 길은 멀다.

그렇다면 우리 식문화와 한식을 발전시키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

한국식품연구원의 안일국 씨에 따르면 한식을 발전시킬 수 있는 방안으로 “무엇보다 한식을 제대로 규명해야 된다”라고 말한다. 덧붙여, “그동안 ‘한식의 세계화’는 겉치레에만 치중하는 경향이 없지 않아 있었다. 우리가 지금 일상적으로 즐기고 있는 것을 한식이라고 보기 어렵다. 즉 가시적으로 보이는 형체의 한식이 아니라 우리 한식이 갖고 있는 내적 의미와 가치에 대해서 대중에게 올바르게 알리고, 또 이를 바탕으로 새롭게 재해석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본다”라고 꼬집었다. (주)다이어리알·쿠겐네트의 이윤화 대표는 “이제 시장은 넓어지고 확대됐지만 천편일률적인 트렌드에 치우칠 것이 아니라 참신한 음식의 상품화, 신개념의 메뉴 개발과 스토리의 조화가 이루어진, 감동이 있는 음식만이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에필로그

한껏 멋을 내고, 욕심을 부려 봐도 ‘밥’의 본질은 곧 ‘생명줄’. 우리는 먹기 위해 살고, 살기 위해 먹는다. ‘생존’을 위해 먹는 ‘밥’이지만, 이왕이면 맛있고 따뜻하고 분위기 있게, 좋은 사람들과 행복한 밥상, 힘이 나는 밥상을 마주할 수 있다면 좋겠다.

아! 이번 주말에는 정성이 담뿍 담긴 ‘엄마표 밥상’을 받기 위해 고향집에 내려가야겠다.

(※도움말 주신 분 : 안동시립민속박물관·한국식품연구원 안일국 연구원 / (주)다이어리알·쿠겐네트 이윤화 대표)

김영주 방송작가  webmaster@k-tod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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