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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례 시인 <한국어가 꽃피는 사마르칸트> 펴내2년간 우즈벡에서의 치열한 생존 및 봉사 기록
임윤식 기자  |  webmaster@k-tod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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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02.02  14:0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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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었어도 열심히 살다보면 종종 자신의 나이를 잊을 때가 많다. 건강이 허락하고 열정이 살아있다면 굳이 나이는 별문제가 되지 않는다. 환갑 나이라 하더라도 30-40대의 마음으로 활동할 수 있고 자신이 꿈꾸는 도전적인 삶을 얼마든지 누릴 수 있을 것이다.

2013년 3월 한국국제협력단(Korea International Cooperation Agency, 일명 KOICA) 해외봉사단원 자격으로 우즈베키스탄으로 떠났던 이석례 씨(62세)가 2년의 임기를 마치고 돌아왔다. 그리고 그동안 우즈베키스탄에서의 봉사활동경험을 책으로 펴냈다. 그 이름은 <한국어가 꽃피는 사마르칸트>. 제목은 아름답고 서정적이기까지 하지만 내용을 읽어내려가다 보면 즐겁고 보람있는 생활 만 있었던 건 결코 아니다.

   
 

이석례 씨는 1993년 <문예한국>과 2010년 시 전문지 <유심>을 통해 등단한 수필가이며 시인이다. 또 2009년에는 한국어강사자격증도 취득했고 논술지도교사자격증, 독서지도사자격증, 보육교사자격증 등 보유 자격증도 화려하다. 늦은 나이에 중앙대 문예창작전문가과정 및 심화과정 3년 이수 후 동국대 문화예술대학원에서 석사학위도 취득했다.

한국국제협력단은 ‘함께 잘 사는 인류사회 건설’이라는 모토 아래 저개발국 또는 개발도상국을 무상지원하는 정부차원의 대외협력사업 전담기관이다. 의료봉사, 교육 및 문화 봉사, 기술지원, 물자공여 등 지원사업 범위도 광범위하다.

이석례 씨가 해외봉사활동에 관심을 갖고 코이카단원을 지원하게 된 것은 막내딸(조소현)의 영향도 컸다. 딸이 2009-2010년 2년 간 코이카 해외봉사단원으로 우크라이나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돌아왔기 때문이다. 딸이 우크라이나에 있을 때 약 한 달간 그곳을 방문, 딸을 따라다니며 한국어 가르치는 방법을 보고 배우면서 본인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고 한다. 일종의 ‘교생실습’을 미리 한 셈이다.

난방이 안 되어, 추워서 잠이 잘 오지 않았다. 난 하나의 묘책을 궁리해 냈다. 바로 뜨거운 물을 끌어안고 자는 방법이다. 가스 불에 물을 아주 뜨겁게 데워서 5리터짜리 빈 물통에 그물을 부었다. 뚜껑을 아무리 꼭 비틀어 닫아도 물통을 눕히면 물이 샐 위험이 있었다. 그래서 뚜껑을 꼭 닫고 그 위에 테이프 넓은 것으로 둘둘 말아 감았다. 그러면 샐 염려가 줄어들었지만 처음에는 불안했다. 그래도 하루 이틀을 잘 넘기고 나서 물 온도를 높여갔다. 끌어안기 좋은 온도의 물은 밤새 식어서 아침에 머리 감을 때 다시 물을 데워야 했다. 그런데 뜨거워서 끌어안기 어려울 정도로 높은 온도의 물은, 아침에 머리를 감을 수 있을 정도로 온기가 남아 있었다.”

여인으로서 언어도 통하지 않고 생활풍속도 다른 저개발국가에서 봉사활동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웠을까? 망망대해에 던져진 일엽편주 같았다면 지나친 추측일까? 책을 읽어내려가다 보면 우즈벡에서의 그녀의 삶이 얼마나 어렵고 치열했는가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이석례 씨는 우즈베키스탄 수도 타슈켄트에서 기차로 남쪽 3시간 반 거리에 있는 사마르칸트라는 도시로 파견됐다. 우즈베키스탄은 고유의 우즈벡어와 러시아어를 함께 사용한다. 그러나 지방으로 갈수록 자기들 고유언어인 우즈벡어를 주로 사용한다. 그녀는 그곳 사마르칸트 외국어대학교 한국어과 2-4학년 학생과 대학원생에게 한글과 한국문화를 가르치고 현지 한국어교수들의 한국어교육을 도와주기도 했다. 또 현지주민들에게 한국문화도 전파했다.

“파견 된지 6개월이 되던 날 나는 결국 울고 말았다. 한 달 전부터 나를 보러 온다고 약속을 해서 호텔도 예약을 해 놓고 스케줄도 며칠 밤이나 잠을 설쳐가며 짜고 지우고 다시 짜고 했는데 그 손님들이 올 수 없다는 연락이 왔다. 그 손님들은 내가 여기 오기 전 매주 수요일마다 만나 시 창작 공부를 하고 저녁을 먹고 차도 마시면서 몇 년 정을 쌓았던 은사님과 문우들이다. 은사님은 키르키스탄도 구경하려 했는데 그곳에 페스트가 발병했다는 뉴스가 나오고 또 피치 못 할 사정이 생겼다고 한다. 나는 많이 외롭고 혼자 지내는 것이 힘들었다. 그래서 기다리던 사람들이 오지 않는다하니 괜히 버림받은 기분이 들고 억제 할 수 없게 설움이 밀려들었다. 혼자 꺼억꺼억 울었다. ‘내가 왜 쥐가 뜯어 먹고 간 빵을 먹고, 종일 누구와 말 한마디 못하고, 왜 이러고 있는가? 나이 들어 왜 사서 고생을 하는지......,’ 알 수 없는 눈물이 자꾸 났다.”

이럴 때 이석례 씨를 붙잡아 준 것은 베르나르가 쓴 <나는 걷는다>라는 책이었다고 한다.

당시 61세의 베르나르는 사랑하는 가족, 친구들을 떠나 혼자 이스탄불에서 서안까지 장장 12,000km의 실크로드 전 구간을 단 1m도 빼놓지 않고 두 발로 걸었다. 1,099일을 침묵과 외로움 속에서 온갖 고통을 겪으면서 걷고 또 걸었다. 그에게는 외로움이나 고독보다 실질적으로 목숨을 위협하는 위험도 자주 닥쳤다. 이석례 씨는 바로 베르나르의 굽힐 줄 모르는 용기에 힘을 얻었고 계속 도전할 수 있었다고 한다.

6개월을 넘긴 후 그녀는 서서히 현지생활에 적응되기 시작한다. 이석례 씨는 “이들 방식에 맞춰 살아가기가 쉽지 않다. 이들이 나에게 ‘여기 와서 봉사활동을 해 달라’고 한 것도 아니고 내가 스스로 와서 하는 일이기 때문에 내 방식에 이들을 맞추기 보다는 이들에게 맞춰야 되지만 좌절을 겪을 때는 맥이 빠져버린다. 이런 날은 나도 모르게 치약을 칫솔 가득 짜서 양치질을 한다. 빨리 시간이 지나가기를 바라는 무의식이 아닐까? 나도 모르게 치약이나 화장품 등을 빨리 써버리면 시간이 빨리 지나가 임기를 마치고 내가 돌아갈 날이 빨리 오리라는 그런 생각이 무의식적으로 작용하는 것 같다.”고 혼자 중얼거린다. 그녀는 시간이 지나면서 나름대로 어려움을 극복하는 지혜가 생기고 현지학생들과 친해지면서 현지생활의 보람을 찾게 되고 점점 더 그녀가 하는 봉사활동이 중요하다는 인식을 갖게 된다.

   
 

2학년 2학기 ‘한국어발음’ 수업을 했던 학생들을 1년이 넘어 4학년 1학기 ‘한국어회화’ 수업에서 다시 만났다. 네 개 반 총 50여 명에 가까운 학생들 중 한두 명 학생의 이름을 잊어버리기도 했지만 거의가 다 아는 얼굴이라 반가웠다. 안 보이는 사람은 이주근로자로 한국에 일하러 갔고, 한 학생은 영어과로 전과를 했다고 한다. 하지만 거의 이름과 얼굴을 알기 때문에 첫 시간 수업부터 분위기가 화기애애했다. 먼저 그동안 자기에게 있었던 변화와 이젠 4학년이기 때문에 앞으로의 인생계획을 말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한국어를 전공했으니 한국어를 이용해서 학생들이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궁금하기도 하고 또 걱정이 되기도 했기 때문이다. 예상했던 대로 남학생들은 한국으로 취직해 가고 싶은 사람이 제일 많았다.”

이석례 씨는 딸 조소현 씨가 우크라이나에서 코이카 봉사단원으로 있을 때 딸의 봉사활동을 보면서 단순히 한글교육에 머무르지 않고 한국문화와 접목해서 가르치면 더욱 효과적이고 현지 교육생들도 흥미를 느끼는 것을 직접 체험했다고 한다. 예를 들어 한글을 가르칠 때 현지교육생들에게 한글이름을 지어주고 우리고유의 한지에 붓글씨로 자기이름을 쓰게 하니까 그들이 매우 재미있어 하고 쉽게 한글을 익히더라는 경험담을 들려준다. ‘한지’라는 한국 고유문화를 전해주면서 붓글씨와 한글도 가르치는 일석삼조의 효과를 보는 셈이다. 또 한국에서 ‘김밥말이’ 도구를 가져가 그곳에서 구할 수 있는 식재료를 이용, 김밥을 만들어 함께 먹으면서 교류하니까 현지교육생들과 친해지기도 쉽고 그들도 아주 좋아하고 우리나라 문화도 전수시키는 효과가 있었다고 한다.

“‘제 5회 중앙아시아 성균한글백일장’이 올해는 조금 늦게 11월 28일 타슈켄트에서 열린다는 공문이 왔다. 참가대상은 우즈베키스탄, 타지키스탄, 키르키스탄, 카자흐스탄 등 중앙아시아 4개국 대학에서 한국어를 전공하는 대학생이다. 성균한글백일장은 전 세계 모든 나라에서 한국어를 공부하는 젊은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줄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기 위해 시작했다고 한다. 중앙아시아대회는 2008년 카자흐스탄에서 처음 개최된 후 2회부터는 타슈켄트에서 열리고 있다. 백일장에서 입상하는 학생은 2년간 전액 학비 면제 혜택을 받으며 서울에 있는 성균관대학교 대학원에 진학을 할 수 있게 된다. 이곳 학생들을 한국으로 유학 보낼 수 있는 프로그램 중 제일 큰 행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지 선생님들과 상의해서 한국어 실력이 제일 좋은 학생을 선발해 내가 지도하기로 했다.

나는 논술이나 창작 글쓰기지도를 한국에서 25년 넘게 했다. 그래서 이 일은 내 운명이라 생각하고 이곳 학생들에게 내 지도가 도움이 되어서 한 명이라도 한국으로 유학을 가는 꿈을 이루게 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는 코이카에 지원하면서 갖고 있었던 나의 꿈이다. 외국 학생들에게 한글을 잘 가르치는 것은 물론 우리 문학작품을 가르쳐 주고 또 글쓰기를 한국어로 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내가 코이카 단원으로서 한국어교사가 된 목적이기도 했다.”

이석례 씨는 이처럼 글쓰기 지도에 진력한 결과 제5회(2013년) 중앙아시아 성균한글백일장에서 제자들이 금상과 동상, 장려상을, 제6회(2014년)에서는 은상, 장려상을 수상하고 또 한국어로 “한국의 통일에 대한 말하기 대회”에서는 1등과 3등을 수상하는 등 엄청난 성적을 거뒀다

“‘금상, 사마르칸트 국립외국어대학교 이로다!’ 나는 너무 놀라서 잠시 혼이 나간 것처럼 멍하니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사람들이 우리가 앉아 있는 쪽을 바라보고 손뼉을 쳤다. 놀란 우리들은 서둘러 이로다를 앞으로 나가라고 떠밀었다. ‘어머나, 이게 웬일일까? 정말 꿈에도 생각하지 않은 이런 결과가 나오다니.’ 무척 기뻐서 날아갈 것 같았다. 한국에서 학생들을 가르쳐서 대학교에 합격시켰을 때와는 또 다른 기쁨이다. 얼마나 한국으로 유학을 가고 싶어 하는가? 그들의 간절한 소망을 알기 때문에 나는 더욱 기쁜 마음에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으면서 거의 춤을 추다시피 했다. 이로다가 상을 받고 오늘 쓴 글을 낭독했다. 한국어 발음도 정확하게 차분히 글을 잘 읽어 내려갔다. 글을 읽는 이로다는 감정에 얽매이지 않고 침착했지만 오히려 내가 감정에 흔들려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이석례 씨가 얼마나 기쁘고 보람있었을까? 이 글을 읽으면서 필자 역시 가슴이 뭉클하고 마음속 깊은 곳으로부터 탄성이 저절로 터져나왔다. 이석례 씨는 우즈벡 학생들에게 단순히 한국어 만 가르쳐준 게 아니다. 한국문화와 한국 문학도 그들에게 전파시켰다. 한국문화의 전도사 역할도 한 셈이다. 다음은 제 13회 한국 문화의 날 행사 중 한 장면이다.

“분위기를 바꿔 아리랑 공연이 이어졌다. 이 때 모두들 깜짝 놀랐다. 한복을 입은 2학년 따냐의 한국 부채춤과 남학생 자혼기르의 브레이크 댄스가 절묘하게 잘 어우러졌기 때문이다. 아리랑과 비보이의 현란한 춤, 부드럽게 이어지는 부채의 놀림과 한복의 고운 자태, 고전과 현대의 만남이 이루어낸 신선한 충격이었다. 이어서 2학년 여학생 여섯 명이 한복을 입고 추는 부채춤은 부채로 꽃도 피우고 꽃물결도 만들면서 한국문화의 아름다움을 아주 잘 보여줬다. 선배가 후배를 가르쳐서 전수하는 부채춤이지만 한국의 멋을 훌륭하게 표현했다. 이렇게 동적인 공연 만 하는 것은 아니고 그 다음 순서로는 시낭송을 했다. 김춘수의 ‘꽃’을 낭송하고 또 축제가 벌어지는 체육관 벽에 한국시화 작품을 만들어 여러 편 전시했다. 한국문학 강독 수업도 있기 때문에 학생들이 한국시를 많이 알고 있어 흐뭇할 때가 많다.”

이석례 씨는 이와 같은 과정을 거치면서 현지적응의 어려움을 당당하게 이겨냈고 우즈벡 학생들을 위한 한국어교육이라는 임무를 훌륭하게 마치고 건강하게 돌아왔다. 큰 박수를 보내지않을 수 없다. 그녀야 말로 나이를 잊고 사는 ‘열정과 도전’의 표상, 의지의 한국인이다.

이욱헌 주 우즈베키스탄 대사는 추천사에서 “이석례 선생님은 2년이 넘는 기간 동안 사마르칸트 외대에서 열정적으로 한국어를 가르쳐 우즈베키스탄에서 개최된 많은 한국어 말하기대회 등에서 훌륭한 성적을 거둔 제자를 배출하였다. 특히 2014년 타슈켄트에서 개최된 성균관대학교 주최 백일장 대회에서 제자가 수상을 하게 되자 자신의 일처럼 기뻐하던 모습이 눈에 선하게 남아있다.”라고 말한다.

또, 이우걸 한국시조시인협회 명예이사장은 “실크로드의 흔적을 답사하기 위해 우리 일행이 우즈베크를 찾은 때는 무덥기 그지없던 2014년 8월이었다. 그곳에서 코이카 봉사단원으로 활동하는 이석례 시인을 만났다. 그를 한마디로 말하면 봉사를 위해 태어난 사람 같았다. 특히 우즈벡 외국어대학교 한국어과 학생들을 위한 노력은 눈물겨웠다. 한국어교육은 물론이고 결혼, 취업, 기타 인생 상담까지 도맡아 애정을 베풀고 있었다. 그는 교수요 카운셀러요, 어머니 같았다. 그래서 학생들은 스스럼이 없었다. 1년이란 짧은 시간에 능숙하게 구사하는 현지어는 물론이고 현지 주민들과의 관계도 마치 가족 같았다. 귀국한 뒤로도 한국에 와 있는 우즈벡 출신 제자들을 보살피고 염려하는 그는 진정한 한국의 홍보대사이고 이름 없는 천사라고 나는 생각한다.”고 칭찬의 말을 아끼지 않는다.

이석례 씨는 ”이제 우즈베키스탄에 아는 사람이 아주 많아졌다. 그들은 앞으로도 계속해서 나와 인연을 맺어갈 것이며 서로에게 힘이 되어줄 것이다. 가르친 학생들 중에는 사마르칸트 외대와 자매결연을 맺은, 한국에 있는 국립대학교 대학원에 진학해 석사과정을 자비유학으로 와 있는 학생이 6명, 사립대학교에 3명, 또 성균관대 대학원에 장학생으로 3명이 진학하여 공부하고 있다. 또, 산업비자 시험을 보고 이주근로자로 성남, 병점, 진천, 거제, 부산, 구미, 목포, 울산 등 전국 여러 곳에서 열심히 일해 돈을 벌고 있는 우즈베키스탄 제자들이 있다. 사마르칸트 외대에서 한국어를 전공한 모든 사람들에게 한국어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돼서 잘 살았으면 좋겠다. 또 나와 공부하면서 보낸 시간이 알찬 씨앗이 되어 향기로운 꽃으로 피어나기를 기원한다“고 말한다.

나이를 잊고 젊게 사는 삶, 도전하는 삶, 나눠주는 삶, 그녀의 삶의 자세가 참으로 아름답다. 먼 나라에서 건강하게 봉사하고 돌아온 걸 진심으로 축하드리고 싶다.(글/임윤식)

임윤식 기자  webmaster@k-tod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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