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창녕은 우포늪과 화왕산, 부곡온천은 유명하지만 가야신라 시대의 대규모 고분군이 있다는 사실은 많이 알려져 있지는 않은 것 같다. 필자 역시 송현이길 트레킹을 통해 창녕 지역 고분군의 규모와 역사성을 새롭게 알게 됐다.

창녕의 대표적인 트레킹 코스는 진흥왕행차길과 송현이길, 그리고 우포늪 주변을 도는 생태탐방코스 등이다. 진흥왕행차길은 가야정벌과 신라부흥이라는 큰 꿈과 불교에 대한 굳은 신념을 가졌던 진흥왕을 따라 그의 업적을 둘러보고 창녕 속의 불교를 만나는 문화탐방로로서

이동거리 약 7 ~ 8㎞, 소요시간 4시간 정도 걸린다. 그리고 송현이길은 순장소녀 송현이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가야신라 고분군과 함께 옛 창녕의 숨결을 느껴보는 코스이다. 창녕박물관 → 송현동 고분군 → 송현동 마애여래좌상 → 진흥왕 척경비 → 만옥정공원(진흥왕척경비·객사) → 창녕 석빙고 → 명덕수변공원 → 창녕 향교 → 교동고분군 → 창녕박물관 코스로 4km, 약 2-3시간 정도 걸린다.

우포늪 트레킹은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우포늪 주변을 돌면서 1억4천만년 태고의 신비를 직접 보고 느끼는 생태탐방 길이다. 필자 일행은 우포늪생태관광협회 초청으로 1박2일 일정으로 이중 송현이길 및 우포늪생명길 트레킹 코스를 걸어봤다.

이들 트레킹 코스 출발점은 창녕박물관이다. 화왕산 기슭에 위치한 창녕박물관은 제 1․2전시실과 별관인 계성고분 이전복원관, 야외전시장 등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토기류, 마구류, 장신구류 등 가야 및 신라 시기의 유물을 보유, 전시하고 있다.

박물관을 돌아본 후 약 10분 정도 창화사 방향으로 가면 송현동 고분군을 만난다. 이 고분들은 목마산성 아래 창녕읍 교리와 송현리 일대에 분포하고 있는 대형고분군으로 40여 기 정도가 확인된다. 1911년 일본인 학자 세키노 타다시(關野貞)에 의해 처음 알려졌다. 1917년의 분포조사를 시작으로 1918년, 1919년에 걸쳐 11기의 고분이 발굴조사 되었으나 제21, 31호분을 제외하고는 보고서가 간행되지 않았으며, 이 시기 조사를 통해 마차 20대와 화차 2량분의 토기와 금공품들이 출토되었다고 전해지나 현재 국립중앙박물관과 일본 도쿄국립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일부 유물을 제외하고는 보관처가 확인되지 않고 있다.

2002년부터 경남문화재연구원(2002년~2004년),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2004년~2006년)에 의해 실시된 송현동고분군 6.7호분의 발굴조사에는 국내 최초로 배모양의 녹나무관과 함께 280여 점의 토기를 비롯한 장신구·마구·무구·농공구 등 90여점 이상의 철기와 100여 점이 넘는 목기가 출토되어 학계의 큰 주목을 받은 바 있다. 특히 제 15호분에서는 4구의 순장인골이 나왔는데 그 중 1구가 ‘송현이’로 복원되었다. 송현이는 1,500년 전 고분군에 순장되었던 16세 소녀이다. 정강이와 종아리뼈 상태로 보아 무릎을 많이 꿇는 생활을 했음을 알 수 있어 주인을 가까이에서 모시던 시녀로 추정된다.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은 1963년 1월 21일 각각 사적 제80호와 제81호로 지정·관리되어 오다가 2011년 7월 28일 역사성과 특성을 고려한 인접지역 고분군 통합에 의해 사적 제514호 "창녕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으로 재지정되었다.

송현동 고분군에서 창녕여고를 지나 10여 분만 걸어가면 만옥정공원을 만나고 곧 석빙고에 이른다. 만옥정공원은 면적 1만㎡의 도심공원으로, 공원 내에는 신라 진흥왕 척경비, 창녕 척화비, 창녕 객사, 퇴천 삼층석탑, 창녕 현감비군 등 여러 유물들이 집결되어 있는 곳이다.

진흥왕척경비는 국보 제 33호로 원래 화왕산 기슭에 있던 것이 소풍 갔던 학생에게 발견되어 알려졌는데, 학계에 보고된 것은 1914년 2월7일 창녕 초등학교 일본인 교장 하시모토(橋本良臧)에 의해서였다. 그 후 1924년 지금의 만옥정으로 옮겨 보존하고 있다. 흔히 순수비로 통칭되나 북한산, 황초령, 마운령에 있는 순수비처럼 순수관경(巡狩管境)이란 말이 없고 다만 왕이 새 점령지를 다스리는 내용과 이에 관련된 사람들을 열거했으므로 따로 척경비(拓境碑)라 일컫는다.

창녕 척화비는 경남 문화재자료 제 218호로, 흥선대원군이 1866년에 일어난 병인양요에서 프랑스군을, 1871년 신미양요에서 미군을 물리치면서 백성들에게 외국과의 화친을 경고하기 위하여 1871년 전국 각지에 세운 비석이다. 비의 앞면에는 “서양 오랑캐가 침범하는데 싸우지 않음은 곧 화친을 하자는 것이요, 화친을 주장함은 나라를 파는 일이다”라는 내용의 글자가 쓰여져 있다.

만옥정공원에서 정취어린 돌담길을 따라가면 성당과 함께 고색창연한 목욕탕 건물을 만나고 곧 석빙고에 이른다.

창녕석빙고는 조선조 시대에 중수하였다고 보는 빙고(氷庫)이다. 이 빙고는 봉토도 거의 완전하며, 외부의 모양은 마치 거대한 고분처럼 보이고 뒤에 흐르는 개천에 직각되게 남북으로 길게 구축되었다. 빙실(氷室)의 입구는 남쪽에 시설하였는데, 좌우에 장대석(長大石)을 옆으로 건너 지르며 쌓아 올려서 천정을 구성하였으며 사이의 천정에는 외부로 통하는 환기공(換氣孔)이 두 곳 설치되었다. 벽은 잡석(雜石)으로 쌓았으나 평평한 방벽(房壁)이 되게 표면(表面)을 치석(治石)하였다. 이러한 구조양식은 석빙고의 전형적인 경주나 안동의 석빙고와 동일한데 규모에 있어 이 석빙고가 약간 작을 뿐이다. 빙고 우측에 남아있는 비에 의하면 “崇禎紀元後再壬戌二月初一日女四月初十日畢”이라 새겨져 있으며 조선 영조 18년(1742)에 현감 신서(申曙) 등이 축조한 것으로 되어있다.

명덕초교를 지나 창녕사직단을 지나면 명덕저수지를 만난다. 석빙고에서 약 700m, 창녕 향교 앞쪽으로 자리잡은 명덕저수지는 수변산책로가 잘 꾸며져 있으며 경관 역시 수려하다. 교동고분군이 500여m 거리에 인접해 있어 문화유적지들과 연계성도 좋은 곳이다.

교리 일원에 분포되어 있는 교동고분군은 40여 기가 복원, 정비되어 있다. 1910년대 여러차례 발굴조사를 통해 토기류, 금속장신구, 옥류, 철제품 등 다양한 유물이 출토되었다. 출토 유물과 고분 구조로 볼 때 5-6세기 전반의 고분군으로 추정된다.

송현이길 트레킹을 마치고 일단 숙소인 우포늪 인근 펜션으로 가 짐을 푼 후 우포늪 대대제방 저녁산책에 나섰다. 세진마을 소재 우포늪 생태공원안내소를 지나 약 500m 가면 대대제방에 이른다. 대대제방에 서면 우포늪 호수가 한 눈에 들어온다. 우포늪은 우포(소벌), 목포(나무벌), 사지포(모래벌), 쪽지벌을 총칭하는 이름으로 국내 최대의 자연늪이다.

창녕군 대합면 주매리와 이방면 안리, 유어면 대대리, 세진리에 걸쳐있는 습지면적은 약 2.31㎢정도(70만평)로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광활한 늪지에는 수많은 물풀들이 머리를 내밀고 있다. 부들, 창포, 갈대, 줄, 올방개, 붕어마름, 벗풀, 연꽃 등이 무더기로 자라고 있으며, 늪에 반쯤 밑둥이를 담그고 있는 나무들이 '원시'의 분위기를 자아낸다.

개발이란 미명아래 국내의 많은 늪은 사라지고 이제 늪의 모습을 제대로 갖추고 있는 곳은 국내 한 곳. 바로 우포늪 뿐이다. 1억4천만년전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마지막 자연늪인 우포는 산으로 둘러싸여 개발이란 탐욕의 칼날을 피할 수 있어 '생태계 박물관'로 남게 되었다. 1997년 7월 26일 생태계보전지역중 생태계특별보호구역(환경부고시 1997-66호)으로 지정되었으며, 국제적으로도 1998년 3월 2일 람사르협약에 등록되었다. 람사르협약은 이란의 람사르라는 도시에서 처음 개최되어 그 도시의 이름을 딴 것으로, 물새 서식지로서 특히 국제적으로 중요한 습지에 관한 협약이다. 1999년 2월 8일 환경부에 의해 습지보호지역으로, 2011년 1월 13일 천연보호구역(천연기념물 제524호)으로 지정되었으며, 같은해 2월에 문화체육관광부에 의해 '한국관광 으뜸명소' 8곳에 선정되었다.

늪(습지)란 한마디로 물에 젖어있는 땅, 물이 주변의 자연환경과 더불어 살아가는 동식물의 생태를 조절하는 주된 역할을 하는 곳으로 ‘물도 아니고 뭍(땅)도 아닌 지역’을 의미한다. 이런 습지는 물가에 사는 새들의 비롯한 다양한 생물이 살아갈 수 있는 공간이 된다. 람사르협약의 습지조건은 자연적이든 인공적이든 간조시 물의 깊이가 6m 이하인 지역이다.

우포늪은 물이 흐르다 고이는 오랜 과정을 통하여 다양한 생명체를 키움으로써 완벽한 생산과 소비의 균형을 갖춘 생태계의 보고이며, 생태계를 안정된 수준으로 유지시켜 주는 야생 동식물의 천국인 셈이다.

다음날 새벽 5시, 우리 일행 중 대부분은 일출 장면을 찍기 위해 우포늪생태관광협회 안내원의 안내를 받아 목포제방 쪽으로 향했다. 목포제방 아래 징검다리 뒤편 산비탈이 촬영 포인트. 필자는 우포늪 방문이 두 번째다. 2003년 4월에도 일출장면을 담기 위해 이곳 산비탈을 오른 적이 있다. 그때는 일출과 물안개를 어느 정도 찍을 수 있었는데 이번에는 아쉽게도 날씨가 흐려 일출장면은 볼 수가 없었다. 대신 우포늪지킴이로 유명한 어부 주영학 (68) 씨의 배젓는 모습을 담는 것으로 만족할 수 밖에 없었다. 주영학 씨는 매일 이곳 우포늪에서 '이마배'라고 부르는 조그만 쪽배를 타고 물고기를 잡으면서 우포늪의 생태환경을 관리하고 있는 분이다. 이마배는 쪽배 또는 나룻배라고도 부르는 우포의 명물. 늪에 가득 깔려있는 수초를 헤쳐나가기 위해 뱃머리 '이마'를 곧추세운 목선이다.

날이 밝아오자 호수 좌측에서 어부가 배를 저어오는 모습이 시야에 들어온다. 한 폭의 동양화 같은 풍경이다. 그는 이른 아침 사진작가들을 위해 호수 위에서 노젓는 모습, 물퍼내기, 그물(초망)던지는 모습 등을 연출해 주기도 한다. 우포늪 사진에서 노 젓는 어부의 모습은 결코 빠져서는 안될 하일라이트. 따라서 주영학 씨는 우포늪을 찾는 사진작가들에게 최고의 모델이요 귀한 존재가 되는 셈이다. 그러나 주영학 씨는 단지 사진작가들을 위해 포즈나 취해주는 어부가 아니다. 그는 뉴트리아, 베스, 블루길 등 생태계를 해치는 외래생명체들을 잡고 늪 청소와 동식물을 돌보는 우포늪생태지킴이로서 대통령상, 국무총리상 등 수많은 상을 수상한 분이기도 하다.(우포늪 및 주영학 씨의 활동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필자가 쓴 월간 시사종합지 ‘오늘의 한국’ 2013년 7월호 기사 참조)

아침식사 후 ‘우포늪 생명길’ 트레킹에 나섰다.

우포늪 트레킹길은 ⑴생태관-제1전망대-숲탐방로1길-생태관으로 이어지는 도보 30분 코스(1km), ⑵생태관-대대제방-제1전망대-숲탐방로1길-생태관으로 이어지는 도보 1시간 코스(2.5km), ⑶소목마을주차장-숲탐방로3길-목포제방-우만제방-왕버들군락-푸른우포사람들-소목마을주차장으로 이어지는 도보 2시간 코스(4.8km), ⑷생태관-대대제방-사지포제방-숲탐방로2길-소목마을주차장-숲탐방로3길-목포제방-사초군락-전망대-생태관으로 이어지는 도보 3시간의 ‘우포늪 생명길’코스(8.4km) 등이 있다. 그리고 생태관광안내소 옆에서 자전거를 빌려(2시간 이내, 대인요금 3천원) 자전거로도 돌아볼 수 있다. 이중 필자 일행은 우포늪생태관광협회 안내원의 안내를 받아 탐방센터-제1전망대-사초군락-목포제방-제2전망대-소목마을주차장으로 이어지는 코스를 걸어봤다.

우포는 봄과 가을에 남쪽과 북쪽을 이동하는 새들에게 중간에 쉬어가는 휴식처를 제공한다. 이들은 먼 거리를 비행하고, 또 이동을 해야하기 때문에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그래서 우포는 이러한 새들에게 풍부한 먹이와 휴식처를 제공하여 철새들이 이동하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

우포의 사계절 가운데 가장 많은 철새를 관찰할 수 있는 계절은 겨울철이다. 큰 기러기, 고니, 청둥오리, 쇠오리, 홍머리오리, 물닭 등 겨울철새들은 북극 지방의 혹독한 기후를 피해 10월쯤 4,300 ~ 6,000Km를 남쪽으로 날아와서 겨울을 지내는데, 우포에서는 이러한 겨울철새들이 월동하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붉은머리오목눈이, 박새, 딱새, 멧비둘기, 종다리, 노랑턱멧새, 까치, 까마귀 등 텃새는 한지역에서 사계절 내내 살아가는 새로, 우포의 텃새는 주변의 농경지나 낮은 산지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새들 중에는 전세계적으로 매우 중요하거나, 멸종위기에 있는 희귀한 새들이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이들을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우포늪에서는 노랑부리저어새, 황조롱이, 황새, 큰고니, 고니, 잿빛개구리매, 매 등 천연기념물들도 볼 수 있다.

수천 종의 생명체가 살아 숨 쉬고 있는 우포늪을 걷다보면 마치 자연과 한 몸이 된 느낌을 받는다. 제주의 올레길이 넓고 푸른 바다를 보며 걸을 수 있다면 우포의 길은 아기자기한 생명체와 호흡을 같이하며 걸을 수 있는 생명길이다. 계절에 따라 길옆에선 거미줄에 걸린 잠자리가 필사의 탈출을 시도하고 있는 장면도 볼 수 있고 귀여운 새끼오리들이 어미를 따라 먹이사냥에 나서는 장면도 만날 수 있다. 우포가 혼자 걸어도 외롭지 않은 이유는 바로 다양한 생명체들과 함께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우포늪 생명길 탐방로'를 걸으며 보는 것 못지않게 듣는 재미도 빼놓을 수 없다. 새·바람·억새·갈대들이 빚어내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나도 어느새 자연의 일부가 되어 그들과 대화를 나누는 착각에 빠진다.(글,사진/임윤식)

임윤식 기자  webmaster@k-tod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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