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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식 저 <그와 나 사이를 걷다>망우리 사잇길에서 읽는 인문학
임윤식  |  lgys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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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12.07  16: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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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서울에 처음 올라온 건 1963년. 당시 시골 촌놈이 아버지 손에 이끌려 어린 나이에 유학을 와서 그대로 이곳에 머문지도 어언 52년이나 되었다. 서울 사람이 된지 반백이 지났지만 아직도 난 서울을 잘 모른다. 서울이 어떻게 변해왔는지, 그 뒷골목은 얼마나 깊은지, 그 속에 살다간 사람들이 얼마나 치열하게 살아왔는지 그들의 이야기들이 얼마나 절절했는지 별로 관심이 없었다. 살기에 바쁘다는 핑계로 늘 걷모습 만 봐온 셈이다.

그런데 근년 들어 점점 주위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나이 탓인가? 정릉 비탈길을 힘겹게 오르는 허리굽은 할머니 모습이 보이고, 깜깜한 새벽 서울을 빗질하는 환경미화원 아저씨의 모습도 보인다. 틈날 때마다 박물관, 미술관을 가보고싶고 전쟁기념관에서 우리 민족의 아픔도 깊이 느껴보곤 한다.

몇일전 매월 만나는 ‘6인 친목모임’에서 갑자기 망우리공원을 돌아보자는 의견이 나왔다. 망우리? 아, 그렇구나. 서울에서 산지 50년이 넘었지만 그동안 한번도 가본 적이 없구나. 난 등산을 즐겨하는 편이어서 아차산, 용마산은 여러번 다녀왔지만 바로 옆에 있는 망우산은 미쳐 가보지를 못했다. 솔직히 말한다면 묘지공원이라는 선입견 때문에 가보고싶은 마음이 적었던 게 사실이다. 그 망우리공원을 산책하자는 제안에 필자도 크게 반겼던 건 이 역시 나이 탓인지도 모른다. 철들면 조상 묘역을 자주 찾아가 본다던데 나도 이제 철 좀 드는 걸까?

필자가 돌아본 망우리공원은 묘지들 만 모여있는 혐오지역이 결코 아니었다. 시인, 화가, 소설가, 아동문학가, 독립운동가, 정치인, 의학자, 가수, 체육인, 작곡가, 교육자, 변호사, 종교인, 언론인, 사회주의운동가 등 우리 근현대 격동기의 주역들이 잠들어 있는 역사박물관이었다. 깊은 숲 속에 4.7km에 이르는 산책로도 잘 정비되어 있어 어느 공원 못지않은 아늑함과 멋진 경관을 갖추고 있었다. 우리에게 죽음의 의미를 되새겨보게 하는 '사색의 길'이며, 걸으면서 생명의 귀중함을 느끼는 삶의 길이기도 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대다수가 알고 있는 만해 한용운, 소파 방정환, 화가 이중섭, 시인 박인환, 정치인 조봉암과 장덕수, 서화가 오세창, 사학자 문일평 등 유명인 외에도, 가수 차중락, 연극 및 영화「동승」의 원작자인 극작가 함세덕, 「탈출기」의 소설가 최학송, 민족대표 33인의 한 분이지만 친일 행적으로 그 이름이 생소한 박희도, 대구 출신의 천재 화가 이인성, 근대 조각의 선구자 권진규, 해방 후 좌우익의 투쟁 속에 희생된 삼학병, 반민특위의 선봉장이었던 국회의원 이병홍, 몰락한 왕조의 상징과도 같은 명온공주와 부마 김현근, 한국의 산과 민예를 자기목숨처럼 사랑하고 결국 한국의 흙이 된 일본인 아사카와 다쿠미, 포플러와 아카시아를 도입한 총독부 초대 산림과장 사이토 오토사쿠, 뒤늦게 서훈을 받은 사회주의계 독립지사 오기만과 박원희, 안창호의 조카사위 김봉성과 안창호의 비서 유상규 등 수많은 선열과 조상들이 잠들어 있어 한편의 대하소설을 읽는 듯한 곳이기도 했다. 총독부 관료 등도 잠들어 있어 이념적으로는 친일파와 좌파까지 마치 우리 사회의 축소판을 보는 듯했다. 이곳에는 보수도 진보도 없고 친일파도 반일파도 없었다. 모두 같은 땅에 묻혀 조선의 흙을 이루고 있었다.

   
 
산책로 초입에 만나는 박인환 시인의 묘는 북한산, 도봉산이 바라보이는 양지바른 곳에 자리잡고 있었다.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그 눈동자 입술은/ 내가슴에 있네" 그의 시 '세월이 가면'이 노래가 되어 흘러나왔다. 1956년 3월 20일, 시 ‘목마와 숙녀’로 유명한 박인환 시인은 불과 31세의 나이에 망우리 묘지에 묻혔다. 함께 산책길에 나선 육명심 교수(사진가), 서정춘 시인, 이규진 도예연구가, 윤길수 서지가, 김종태 변호사, 임윤식 시인(필자) 등은 미리 준비해온 소주 한 잔을 따르면서 고인을 추모했다.

이중섭 화가의 묘 가는 길은 100계단 쯤 내려가야 했다. 그의 고된 삶처럼 멀고 숨가빴다. 그의 불우한 삶은 우리 민족의 고난을 생각게 한다. 그의 대표작인 ‘황소’(1953)를 보면 석양의 붉은 색을 배경으로 누런 소가 슬픈 큰 눈을 하고 우짖는 듯 하다. 이중섭은 병원에서 죽은 후 무연고자로 처리돼 방치되어 있다가 사흘 만에 고향 친구 김병기 화가에게 발견됐다. 유해는 서울 홍제동 화장장에서 화장돼 반은 망우리묘지에 묻히고, 반은 일본의 가족에게 보내졌다고 한다. 일본에서는 처가인 야마모토가(山本家)의 묘에 합장됐다. 그의 망우리 무덤 앞 상석은 먼 훗날에 세워진 것으로 오른 편에 아들 태현과 태성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사망 1년 후 친구 한묵이 ‘대향이중섭화백묘비’라고 쓰고 후배 차근호가 아이 둘의 모습을 새긴 조작품을 세웠다.

일행 중 육명심 교수는 이중섭 화가의 일생을 그려보는 듯 묘비 앞에서 오랫동안 깊은 사색에 잠기셨다. 육 교수는 1975년에 신구대학 사진학과를 창설하셨고, 1981년에는 서울예술대학 사진과도 창설하신 한국 사진계의 대표적 거장이시다.

'탈출기' 등 명작을 남긴 최학송 소설가는 유족의 행방도 모르고 미아리공동묘지에 묻혔다가 이곳으로 이장되었다고 한다. 31세의 짧은 생애에 너무 가난하고 외로워서 서러웠던 문인, 함북 성진 태생인 최학송 소설가는 일제하 만주와 한반도를 전전하며 곤궁하게 살다 서울에서 숨을 거두었다.

詩 '죽편' 등으로 유명한 서정춘 시인은 특히 최학송 소설가 묘 앞에서 가장 아파했다. 서 시인 역시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던 기억 때문일까? 서정춘 시인은 ‘어리고, 배고픈 자식이/고향을 떴다/아가, 애비 말 잊지마라/가서 배불리 먹고 사는 곳/그곳이 고향이란다’(30년 전, 1959년 겨울)이라는 시를 쓰신 분이다.

60년대 가요계의 우상이요, ‘오빠’의 원조 차중락(1942-1968)은 멋진 남성적 외모에 대중의 감성을 흔드는 음성으로 최고의 인기를 얻었으나 27세의 아까운 나이에 세상을 떠나 이곳 망우리에 잠들었다. ‘찬바람이 싸늘하게/얼굴을 스치면/따스하던 너의 두 뺨이/ 몹시도 그리웁구나(후략)’로 유명한 그의 노래 ‘낙엽 따라 가버린 사랑’이 생생하게 귀에 들리는 듯 하다.

공원관리소 위 순환로 갈림길에서 왼편으로 1.5km 쯤 가면 동락천 약수터가 나오는데, 약수터에 도착하기 전에 오른 쪽 위를 처다보면 둥근 항아리 모양의 조각품이 서 있는 산소가 보인다. 망우리공원에서 한국인들의 존경을 받으며 잠든 일본인 아사카와 다쿠미의 묘다. 다쿠미 씨는 조선총독부 농공상부 산림과 임업시험장(현 국립산림과학원)에서 조선의 산림녹화에 힘썼고, 개인적으로는 조선의 민예를 수집하고 연구했다. 단지 그것 뿐이라면 그가 여기 묻힌 이유가 부족하다. 당시 이땅에서 그들만의 사회 속에서 살다 돌아간 대다수의 일본인과는 달리, 그는 조선말을 하고 조선옷을 입고 조선인의 이웃으로 살면서 진정으로 조선의 마음에 접한 사람이었기에 죽어서도 이땅의 흙이 됐다. 그의 묘 오른 쪽에는 항아리 모양의 조각품이 보이는 데 이는 다쿠미가 생전에 좋아한 ‘청화백자추초문각호’로 그의 형 아사카와 노리다카가 다쿠미 타계 1주기 때 세운 것이라 한다. 그의 형 역시 조선 도자기의 역사를 정립한 최고의 조선 도자기 전문가였다.

망우리공원을 다녀온 후 몇일 전 우연히 문학모임에서 가까이 지내는 지인이 책 한권을 소개시켜 주었다. 필자가 망우리공원 얘기를 했더니 마침 망우리공원에 묻힌 유명인물 50여 명의 이야기를 풀어낸 귀중한 책이 개정판으로 나왔다는 것이다. 반가웠다. 얘기를 듣자마자 바로 서점에 들러 그 책을 사봤다.

망우리공원에 잠들고 있는 우리 근현대사의 주역들을 처음으로 발굴 및 정리하여 소개한 이 책은 『그와 나 사이를 걷다 - 망우리비명으로 읽는 근현대인물사』(2009년 4월, 골든에이지)로, 출간 그 해에 문광부 우수교양도서로 선정되는 등 망우리공원의 인문학적 토대를 마련해 주었다는 평가를 받으며 관심 있는 독자의 사랑을 받아왔다고 한다.

그동안 저자는 지속적인 현장답사 안내 및 실내 강연을 통해 망우리공원의 인문학적 가치와 인물들의 스토리를 대중에게 널리 알리는 데 노력하였고, 그 결과 2012년에는 한국내셔널트러스트로부터 산림청장상(‘꼭 지키고 싶은 우리 문화유산’ 부문)을, 2013년에는 서울연구원으로부터 서울스토리텔러 대상을 받았으며, 2014년에는 서울시의 ‘망우리공원의 가치제고’ 및 ‘인문학길 조성’ 용역에도 참여하게 되었다.

저자는 이곳을 찾는 답사객들을 위해 초판 내용의 전반적인 수정 및 보완을 거쳐 이번에 보다 정확하고 튼실한 개정판을 내어놓은 것이다. 기존 소개 인물에 대해서는 그동안에 새로 밝혀진 사실 및 연구 결과를 덧붙이고, 자료 부족으로 미처 소개하지 못했거나 출간 후에 새로 발견한 10여 명의 인물에 관한 이야기를 추가하였다. 이제 망우리공원에서 근현대사를 들려주는 인물은 무려 53명에 이른다.

저자 김영식은 작가․번역가로 부산에서 출생하여 네 살 때 상경. 망우리공원에 가까운 중랑구 중화동과 상봉동에서 대학 때까지 살았다. 대학생 때 한 번 찾아갔던 망우리와의 인연은 오랜 세월 후에 그 결실을 맺게 되었다. 문예진흥원 우수문학사이트로 선정된(2003년) ‘일본문학취미’ 블로그를 통해 일본 문학과 문화를 소개하고 있으며, 2002년 계간『리토피아』신인상(수필)으로 등단한 문인이다. 역서로는『기러기』(모리 오가이),『라쇼몽』(아쿠타가와 류노스케),『무사시노 외』(구니키다 돗포),『조선』(다카하마 교시) 등이 있다.

한반도에 역사가 시작된 이래, 19세기 조선말처럼 혼란스러운 시기가 없었으며, 일제강점기처럼 주권과 국토를 잃은 치욕스러운 시기가 없었다. 또한 해방 이후 6․25전쟁까지 이념의 갈등으로 수백만 명이 희생되고 전국토가 폐허가 된 시기도 없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선진 한국을 만들어낸 ‘고난 속의 기적’이라는 성장의 역사 또한 없었다. 바로 이러한 시기를 치열하게 살다간 많은 유명 인사들과 서민들이 망우리공원의 역사(1933~1973)와 함께하였다.

액자처럼 잘라낸 이 40년의 기간을 오롯이 간직한 이 공간은, 이제 우리 역사의 가장 격동적인 근현대사와 그들의 삶을 비명을 통해 전해주고 있다. 더군다나 이제 망우리공원은 울창한 수목과 최고의 경관을 갖춘 서울둘레길의 제2코스에 속하며, 어제와 오늘 그리고 삶과 죽음의 ‘사잇길’을 걸어가는 사색의 장소이기도 하니, 진정 최고의 인문학적 공간으로 거듭났다고 말할 수 있으리라.

본서는 그동안 단편적이고 산발적으로 알려진 망우리공원 내 저명인사의 묘와 비문을 한데 모아 최초로 정리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서가의 한 자리를 차지할 자격이 있지만, 이에 그치지 않고 그동안 전혀 혹은 거의 알려지지 않은 인사들의 묘를 찾아내 망우리공원의 문화자원을 크게 늘려주었다는 점 또한 높이 평가받아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본서의 가장 큰 장점은, 단지 사료로서의 가치를 뛰어넘어 독자에게 읽는 재미까지 안겨준다는 점이다. 이 책은 망우리공원이라는 문화자산을 넓이 뿐 아니라 깊이와 재미까지 더해주었다. 단순히 그곳에 묘가 있다는 지리 정보의 차원을 벗어나, 구한말 개화기부터 1960년대 말까지의 우리 역사를 고인의 비석을 통해 말하면서, 알려지지 않은 비화도 꽤 많이 소개하고 있다.

예를 들면, 소파 방정환의 묘 바로 아래에는 방정환의 숭배자요 후배인 최신복의 가족 3대가 함께 묻혀 있다는 사실, 화가 이인성과 방정환의 인연, 가수 차중락의 숨겨진 애인 미국 여대생 알린의 사진과 편지, 이중섭의 묘에 소나무가 서 있는 사연, 동아일보 편집국장 설의식과 배우 김보성과의 관계, 야구선수 이영민과 미야다케가 벌인 숙명의 한일 라이벌전의 기록, 도산 안창호가 비서 유상규 옆에 잠들었던 사연, 소설가 김말봉의 드라마틱한 러브스토리, 유관순 열사와 이태원무연분묘합장비와의 관계, 그리고 망우리의 독립지사들과 악연이 깊어 막간 인물로 등장시킨 미와 경부 관련의 최초 발굴 사료 등이 그것이다.

전 문화재청장인 명지대 유홍준 교수는 “이제는 더없이 중요한 역사 공간이 된 망우리공원을 우리는 하나의 문화재로 받아들일 때가 되었다고 생각된다. 청순한 산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날 때 망우리공원을 거닐다 보면 인간은 어쩔 수 없는 자연의 아들임을 떠올리며 멀리 한강을 처연한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는 귀중한 문화유산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나는 몇 차례 학생들과 여기를 답사 다녀왔고, 또 어느 해 봄엔 여기를 찾아갈 것이다”라고 말한다.

또, 전 서울대 지리학과 교수인 최창조 교수는 “망우리라는 땅의 성격은 대체로 연로하신 어머님의 ‘내 방’ 같은 느낌이다. 어머님에게 ‘내 방’은 세상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천하의 명당이다. ‘내 방’은 나만의 ‘둥지’이다. 둥지는 안온함과 안전을 보장하는 곳으로 믿는다. 망우리에서 어머님의 ‘내 방’ 맛을 보라. 죽음도 생각해보라. 이 책은 망우리 사색객에게 좋은 참고서가 될 것”이라고 추천한다.

저자 김영식 작가는 “망우리공원은 일제에 의해 40년간(1933~1973) 시립공동묘지로 사용되며 아무도 찾고 싶지 않은 근심의 장소(‘忘憂’할 수 없는)였으나, 폐장 후 40년이 지난 지금은 무성한 숲으로 둘러싸인 우리 근현대사의 박물관이 되었을 뿐 아니라, 삶과 죽음의 사이, 고인과 나 사이의 ‘사잇길’을 걸어가며 ‘즐거이 깨달음을 얻어 근심을 잊는(樂而忘憂 낙이망우, 『논어』)’ 최고의 인문학공원이 되었다”고 말한다.

임윤식  lgys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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