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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병구 시인 시집 「달빛 한 줌」사랑의 빛깔을 찾아가는 여정
임윤식  |  lgys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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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10.05  11:3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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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은 류병구 시인은 대학에서 불문학과 동양철학을 전공한 철학박사이며, 사진작가이기도 하다. 한국정신문화연구원을 거쳐 가천대학교 교수를 역임하였다.

필자가 사진공부를 하면서 교분을 갖게 되었는데, 류 교수의 시나 사진에는 늘 깊은 철학적 사유가 담겨 있어 그 깊이를 헤아리기가 쉽지않다. 모든 예술이 마찬가지이겠지만 시나 사진 역시 함축된 언어나 오브제 속에는 깊은 은유와 역설 등이 숨어 있기 때문에 보이는 것 만으로 그 작품을 함부로 평가할 수는 없다. 예를 들어 성철스님이 말씀하신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라는 짧은 한 구절을 우리가 감히 쉽게 해석할 수 있겠는가? 이 짧은 한 줄 속에는 그 분의 평생의 구도와 깨우침이 모두 응축되어 있을 것이다. 선시(禪詩)도 마찬가지다. 대체로 선시는 짧은 편이지만 그 속에는 불가의 깊은 사상과 사유가 용광로처럼 녹아있는 게 보통이다. 류병구 시인의 시집을 읽으면서 철학적 사유가 부족한 필자가 문득 선시를 만난 듯한 느낌을 받았다면 과장일까? 선시란 선 수행을 통한 깨달음의 경지를 나타낸 시다. 즉 선시는 시와 선의 만남이다.

 

무갑사 뒷골짝,

 

그늘볕을 쬐던 어린 꽃

가는 바람 지나가자

여린 목을 연신 꾸벅댄다

 

전등선원 동명스님은

깜빡 졸음도 수행이라 했다

 

꽃도

절밥을 하도 먹어

그 정도는 알아듣는다

 

요새

무갑사엔

허물벗은 봄이 바람이고,

바람이 꽃이다

 

<무갑사 바람꽃> 전문

 

"깜박 졸음도 수행이고...허물벗은 봄이 바람이고 바람이 꽃'이라니, 필자로서는 감히 그 은유의 물속을 헤아리기가 쉽지않다. 시는 해석의 영역이 아니다. 그냥 주관의 거울 속에서 그 속을 들여다보고 느낄 뿐이다.

마경덕 시인은 "무갑사...어디쯤인지 굳이 알고 싶지않다. 마치 곽재구 시인의 사평역처럼, 어딘가에 존재할 그런 곳으로 간직하고 싶어진다. 오직 꽃과 바람이 사는 곳에 풍경소리만 오갔으면 좋겠다. 봄이 알몸으로 뒹굴어도 전혀 부끄럽지 않은 그런 곳이 무갑사가 아닐까? 속세의 티 한 점 들지않은 무갑사, 절집의 청아한 풍경소리만 얻어먹은 그늘에 살던 바람꽃들이 귀가 트여 바람의 말도 알아듣고 가녀린 목으로 끄덕거리는"이라고 풀이한다. 졸음 끼가 많은 필자로서는 '졸음도 수행'이라는 알듯 말듯한 싯귀에 괜히 마음이 편해진다.

 

그런 고린내나는 이름만 아니었다면

눈 제대로 맞추지 않았을 꽃,

제 이름을 숨기고 너스레를 떤다

 

사관생도 모자깃털을 꽂고

하늘거리는 꽃술

연홍의 싱그러움이 꼼실대지만

 

나는 알고 있다

뿌리에 노루오줌 냄새를 숨겨둔 것을,

그러나 짐짓 눈감아 준다

 

꽃빛이 농익은 지금

 

고운 입술 한껏 사르며

기약 없는 사랑을 쪼고 있다

 

이름 갖고 따지는 것에 동의할지말지를 두고

흔들리는 채

'노루 제 방귀에 놀라 듯'

 

나는 저 내음을 매달고 허허로운 들판을 휑하니 달린다

 

<노루오줌꽃> 전문

 
   
 

동국대 총장과 한국문학평론가협회 회장을 역임한 홍기삼 교수는 류병구 시인의 시에 대해 "동양의 시적 전통 중에 삼훈(三訓)이라는 것이 있다. 승(承), 지(志), 지(持)가 그것이다. 승이란 우주와 자연의 근본이치를 깨닫는 일, 철학적 사유를 거쳐 인식의 궁극화에 도달하는 길이며, 지(志)란 그것을 심미적 언어로 재구조화하고 표현하는 것, 또한 지(持)란 시인의 마음에 사악함이 없는 순결한 정신을 뜻한다. 류병구 시인의 시편들은 이러한 삼훈의 시적 정신을 매우 훌륭하게 이어받고 있는 드문 성과를 보여주고 있다"고 평한다. 홍기삼 교수는 이어 "그 어떤 병든 문명, 추악한 세계, 사악한 정신같은 부정적 계열의 정신들이 철저히 배제된 대신 자연과 삶에 대한 깊은 통찰, 아름답고 순수한 사물과 존재에 대한 사랑, 시간과 소박한 일상에 대한 심미적인 시의 정신으로 가득차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를테면 지(持), 사무사(思無邪)의 빛나는 경지로 볼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한다. '사무사(思無邪)'란 생각함에 사특함이 없음을 뜻한다. 공자가 시 305편을 산정(刪定)한 후 한 말이라 한다.

 

저 새들,

 

날갯죽지는

싸늘히 식은 지 오랜데

아직도 바람을 버티고 있다

 

어쩌다가

뭇 새들이 머리에 집을 짓고

자고 날아가고 다시 날아와도

저 나무부리로는 물 수가 없다

 

으슥한 새벽을 마름질하는

미심쩍은 물까치들의 붉은 울음 속으로

 

저 새는

 

한 번도 섞인 적이 없지만,

맘을 아는 이에게는

싫은 내색 없이 몸을 연다

 

<솟대> 전문

 

 

우주에는 기본적으로 대칭의 원리가 작용한다. 음과 양, 밤과 낮, 하늘과 땅, 남과 여 등 상반의 구조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거의 없다. 대칭의 대립과 조화 속에서 창조되고 변천해 가는 것이 우주의 질서이다. 류병구 시인은 죽어 있는 새인 솟대를 통해 죽음과 삶의 차이,

동(動)과 정(靜)의 심상(心象)을 자연스럽게 끌어낸다.

마경덕 시인은 "'바람과 날개'는 불가분의 관계이지만 그것은 '새가 살아있을 때의 일'이다. 싫어도 내색조차 할 수 없는 무력에 의한 약자의 상처, 넘을 수 없는 한계, 도처에 널린 아픔, 시인은 속박의 '한 부분'을 통해 '전체의 환부'를 보여주고 있다"고 말한다.

 

물인 듯 뭍인 듯

간월암에 걸린 달

마음에 스쳐

바르르 전율이 인다

 

천강(千江)에 번지는

달빛 향기

 

파도마저

심술 난 목소리를

얼른 제 품에 숨기고

쪽배도 숨을 삼킨다

 

시간 한 점 집어 물고

아주 잠깐,

피안을 거니는 꿈을 꿨다

 

<달빛 향기 한 줌, 내게로 뛰어들다> 전문

 

간월암(看月庵)은 충남 서산시 간월도에 위치한 절이다. 조선 태조 이성계의 왕사였던 무학대사가 창건하였으며, 다른 암자와는 달리 간조시에는 뭍과 연결되고 만조시는 섬이 되는 아름답고 신비스러운 암자이다. 류병구 시인은 섬이나 절의 아름다움은 숨기고 간월암에 걸린 달 만을 대상으로 하여 시적 상상력을 전개한다. 사진작가들도 자주 사용하는 소위 '전경화' 기법을 적용한 것이다. 시인의 시야에 들어온 풍경 중에서 시적진실과 무관하거나 시의 형상화에 도움이 되지못한다고 생각되는 것은 과감하게 생략하거나 폐기시켜버리는 방법이다. 시인은 자신의 시적 발상과 상상력에 비추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달빛 한 줌' 만을 선별적으로 그린다. 시인은 또한 문학이나 사진에서 말하는 '낮설게 하기'의 예술적 방법을 적절히 활용한다. 즉, 다른 사람들이 대부분 간월암의 풍경에 취해 있을 때 시인은 한 발 물러서서 섬 전체를 관조한 후 엉뚱하게도 '달빛 한 줌' 만을 시적 오브제로 포착한다. 신선한 충격이다.

 

웬 거울을 그리 오래 바라보는가

그냥 대충 대충 윤곽 형편이나 살피고

그만둘 일이지

 

각이 지면 어떻고

둥글면 또 어떤가

 

원형이정(元亨利貞),

 

거울 속의 나에게서

원각(圓角)의 이치를 깨닫는다

 

<논어>에

"새가 죽을 때는 그 소리가 슬프고

사람이 죽으려 할 때는 그 말이 선하다" 했다

 

<둥근 모서리> 전문

 

류병구 시인은 시인 이전에 철학자이다. 이 분의 글이나 말 마디마디를 듣다보면 심해와 같이 잔잔하면서도 도도하게 흐르는 사유의 깊이를 느낀다.

원각(圓角)은 원만함과 각짐이다. 이것의 원만한 융합을 강조한 것이 원각(圓覺)이요 원융회통(圓融會通)이다. 진정한 원각(圓覺)은 모나고 각진 것까지도 아우르는 깨달음이리라.

 

류병구 시인은 시집 서문에서 "개칠않은 정감에 덧대어 말을 다듬고 생각을 달구면 '삼라만상 그대로가 다 지극한 도의 모습'이라는 게 당나라 고승 조주선사의 탁견이다. '사랑'은 사랑(愛)이고, 생각(思)이다. 정중하고 고결한 눋지않은 삶의 미학, 아직도 사랑을 생각을 삶을 배우는 중이다"라고 겸손하게 말한다.(임윤식/시인·사진작가)

*펴낸 곳 : 시각과 언어, 값 9,000원

 

 

 

 

 

 

임윤식  lgys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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