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가끔 문화적 편견에 빠질 때가 있다. 고급 승용차를 타고 여행을 하거나, 맛이 있는 음식을 배불리 먹었을 때 느끼는 만족감은 그 편견의 깊이를 더해준다. 수직적인 시간을 수평적인 공간에 올려놓고 맞비교하는 통시적(通時的) 사건의 공시적(共時的) 해석이다.

이는 옛사람들의 멋과 풍류를 간과하는 행위로 나타난다. 즉 과거에 살았던 사람은 좋은 차를 타보지 못하고, 맛있는 음식도 먹어보지 못하여 불쌍하다는 오류다. 문명의 발달이 행복지수의 절대적인 기준이 아니기 때문에 그 시대의 문화와 정신적인 가치를 오늘의 그것으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 옛 사람들은 그 시대에 맞는 문화로 얼마든지 행복을 느끼고 살았기 때문이다. 옛사람들은 현대사회보다 더 귀한 가치가 있었고 오늘의 가치를 초월하는 삶이 있었다.

그 행복과 여유는 어디에서 비롯되었을까? 선조들의 삶이 묻어있는 현장으로서 선비 문화와 문학, 그리고 가문의 영광을 지켜온 학문이 있는 누각과 정자다.

한국 문화의 특성은 자연과의 조화에 있다. 특히 노장사상에 크게 영향을 받아 자연과 더불어 유유자적하는 여유는 우리 생활 전반에 잘 나타난다. 모든 것이 물 흐르듯 자연스러우면서도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삶의 고리를 이어가는 것이 우리의 삶이다. 그래서 동양의 문화를 유수(流水)의 문화라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 문화는 물이 흐르면 흐르는 대로 물길을 터주었고, 산이 높으면 높은 대로 에돌아갈 망정 산을 끊거나 뚫지는 않았다. 자연을 거스르는 것이 아니라 더불어 살며 순응해야 할 친화의 대상으로 보았고, 기대고 살아야 할 의지의 대상으로 보았다.

그러나 과학적 합리주의에 근간을 둔 서양은 물길을 막고 산을 뚫어 생활의 편의성을 추구하였다. 자연을 어떻게 정복하고 생활의 일부로 끌어들이느냐에 따라 힘이 센 선진국으로 보았다. 그래서 흐르는 물도 역류시켜 산꼭대기에서도 물 뿜어낼 수 있는 분수(噴水)의 문화를 창조해낸 것이다.

물은 아래로 흘러야한다는 노자의 사상을 근간으로 하는 유수의 문화는 그렇게 분수의 문화에 의해 무시당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이제는 과학의 힘에 의존한 문명만 쫓는 시기는 지났다. 분수의 힘이 강하면 강할수록 환경은 파괴되고 사람은 자연으로부터 유리되어 사람다운 삶을 유지하기에 힘든 환경 문제에 봉착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추구하던 문명의 선진화는 결국 우리의 목을 조이는 큰 손과 같은 존재임이 밝혀지자 이제 다시 선조들의 생활에 관심을 기울여 그 시절의 문화를 복원하려는 움직임이 보이고 있다. 그래서 동도서기(東道西器)가 화두로 떠올라 분수의 문화가 절대적인 가치가 아니라는 것을 드러냈다. 오히려 유수의 문화를 구가하며 정신적 여유를 즐기던 우리 문화에 관심을 기울이는 서구인들이 늘어나 우리 문화의 우수성을 반증하기도 한다.
도(道)를 무시한 기(器)와 기(器)를 무시한 도(道)는 모두 위험하다. 전자는 정신적 피폐현상을 일으킬 수 있고, 후자는 관념의 세계에 빠져 현실을 도외시할 위험성이 있다. 그래서 동도서기는 상호 조화와 보완이 필요하다. 전통사회의 생활상이 신세대 문화에 밀리는 현실에서 조상들이 만족하게 살았던 삶의 흔적을 살려내며 여유로운 정서를 되살려야 한다. 유수의 문화를 가장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는 정자와 누각을 찾는 것도 그 때문이다.

* 전라도의 모정(茅亭)

‘우리나라 국토의 70% 이상이 산’이라는 말을 나는 중학생이 도기까지 믿지 못했다. 사방이 논뿐인 평야라서 산은 멀리 산수화처럼 보이는 노령산맥의 줄기가 전부였다. 들녘에서 놀다가 지평선에 걸린 태양이 대머리 같은 꼭지를 마저 숨겨버리면 땅거미 지는 길을 되돌아 마을 모정(茅亭)으로 달려갔다. 그 곳에는 아이들이 모여 장난을 쳤고, 어른들은 곰방대를 빨아가며 한담을 나누었다. 가끔씩 징소리가 동네를 한 바퀴 돌고 나면 집집마다 어른이 나와 함께 마을일을 논의하고, 더운 여름날에는 김매기에 지친 농부들이 한숨을 쉬어 가기도 했다. 모정은 일종의 회의장과 사교장의 다목적 공간이기에 어른이나 아이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공공 시설물이었다.
내 어린 시절의 정자문화는 그렇게 모정에서부터 시작되었다. 평야지대라서 바람이 잘 드는 마을 어귀에 지어 놓은 모정을 정자나 누각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더구나 같은 평야라 해도 충청도나 경기도, 경상도 등 다른 지방에서는 찾을 수 없는 전라도만의 독특한 문화 공간이다. 그래도 누마루가 있고 마루 밑으로 아이들이 드나들 수 있을 정도로 공간이 있어 누각과의 구조와 비슷하다. 그래서 누정의 한 형태로서 누각과 정자의 범주에 포함하기도 한다.
전라도 아낙네들의 음식 솜씨도 바로 모정 문화에서 비롯되지 않았나 싶다. 한 여름에 각 가정에서 준비한 음식을 모정으로 가지고 나와 마을 사람들이 같이 나눠 먹는 잔치를 벌이는데 이곳에 가져오는 음식은 그 집안의 자랑거리이자 칭찬의 대상이다. 내 집 음식의 우수성을 드러내기 위한 공간이 모정이었으니 모정은 음식 솜씨를 발전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이제 모정은 그 생명을 다했다. 일손이 모자라 묵정밭이 늘어나는 만큼 모정의 마루도 부풀어 올라 허연 먼지만 날린다. 이곳에서 허리 펼 어른도 없고 숨바꼭질할 아이도 없다. 그러다 보니 그 용어까지도 변질되었다. 초가를 뜻하는 볏짚이나 띠를 뜻하는 모(茅)자의 모정이 각(角)을 뜻하는 모로 바뀌어 육모정이나 팔모정(팔각정)으로 바뀌었다. 그 변질된 모습에서나마 모정의 옛 정서를 느끼며 노인들은 허허로운 마음을 달랜다.

* 누각과 정자

누각과 정자는 사람이 자연을 만나는 공간이다. 자연 속으로 들어가 자연을 볼 수 있는 공간, 그래서 자연과 하나 될 수 있는 곳이 누각과 정자다. 흔히 누각(樓閣)과 정자(亭子)를 하나로 묶어 누정이라 하지만 누각과 정자는 분명히 구분 지을 수 있는 차이가 있다. 

우선 누각은 개인이 설치하는 정자에 비해 국가나 정부 기관에서 설치하는 데서부터 정자와 다르다. 그러다 보니 누각은 공적인 일로 사용하고 정자는 사적인 일로 사용한다. 누각에서는 정치를 논하고, 과거시험을 치르고, 외국 손님을 위해 잔치를 베풀고, 국가의 크고 작은 행사를 치른다. 지방에서도 누각은 지방 수령이 조영(造營)하기 때문에 일반인은 범접할 수 없는 공간이었다. 더구나 관망대처럼 우뚝 솟아 외부인을 감시하듯 서 있는 건물이라서 일반인에게는 공포의 대상이기도 했다.
그러나 정자는 권력이나 재력이 있는 사람, 또는 문중에서 조상을 섬기기 위해 설치하여 힘 있고 권력 있는 자들의 사교장이자 문중의 집합장소였다. 조선 후기에 들어서는 당쟁에 밀려 잠시 조정을 떠난 사대부들이 과시적인 목적으로 조영하기도 했지만 뜻이 있는 사람은 후학을 가르치는 교육의 장으로 사용하기도 했고, 조상의 뜻을 기리거나 그들의 학맥과 인맥을 기르는 장소로 사용하기도 했다. 그러나 시인 묵객이 모여 음풍농월하기도 하고 시류(時流)를 한하기도 하여 일반 백성은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기도 했다. 결국 모정이 서민들의 휴식처였다면, 정자는 권문세족들의 사교장이었고, 누각은 국가의 정책을 펴기 위한 공공 장소였다.
건물의 사용주체와 이용 방법이 그렇게 확연히 다른 만큼 건축의 방법과 건물의 구조 또한 큰 차이를 보인다. 정자는 건물이 대부분이 1층이거나 마루가 지면에 가까운 저상식(低床式) 인 반면 누각은 2층 건물(그래서 다락이라고도 했음)이다. 마루 밑 1층은 사람이 드나들 수 있을 만큼 마루 밑의 기둥을 높게 세워 공간을 높였고 그 위에 마루를 깔았기 때문에 고상식 구조의 건물이다. 크기도 누각은 주로 정면 5칸 이상의 큰 규모인데 비해 정자는 보통 2칸이나 3칸으로 작고 누각은 사방이 확 트인 마루 그대로이지만 정자는 작은 방 한 칸을 내어 온돌까지 마련해 두어 때로는 잠을 잘 수도 있게 했다.
특히 누각은 앞뒤가 확 트인 개활지에 설치하기 때문에 조망이 탁월하다. 그러나 정자는 산 깊고 물 맑은 곳에 설치하기 때문에 전망보다는 경관에 치중했다. 그래서 누각에는 경치 좋은 곳을 일걷는 팔경(八景)이 없지만 정자에는 어김없이 팔경을 지정하여 시인묵객들의 시정(詩情)을 자극했다. 그래서 권력 있고 학문이 출중한 인물이 다녀간 정자에는 유명한 정치인이나 시인 묵객들의 글이 자랑스럽게 현판으로 걸려 있다.

* 누정의 용도와 위치

전라남도 강진의 다산 초당에는 살아있는 정자가 있다. 다산이 강진만을 내려다보면서 생각에 젖었던 정자 천일각이다. 다산은 이곳에서 멀리 흑산도에 유배되어 있는 형님 약전과 마현의 처자에 대한 안부를 걱정하기도 하고 위정자들과 민초들을 위한 저술을 구상하기도 했다. 저술활동과 제자 육성으로 외로움을 달래며 국가의 내일을 걱정했던 한 시대의 지성이 머물던 곳, 그런 애틋한 사연이 있는 곳이기에 이곳을 찾는 사람은 누구나 천일각에 올라 다산의 심정으로 돌아가 본다. 확 트인 시야에 강진만이 들어와 정자의 쓰임새를 금방 이해할 수 있다. 더구나 이곳은 방문객이 신발을 벗고 들어가기 쉽게 해 놓아 관리하는 주인이 없어도 마루가 반질거린다. 문화재는, 더구나 목재 건축물은 출입을 금지하여 박제된 표본처럼 관리하는 것보다 그렇게 사람의 훈김으로 보존해야 더 가치가 있다. 천일각을 살아있는 정자라 하는 것은 그 때문이며 주인의 생각대로 자연을 감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보길도의 세연정, 안의의 농월정, 봉평의 팔석정 등은 정자가 앉은 위치와 장소가 다르다. 산꼭대기에 세운 정자들은 관망을 위한 것이며, 불타버린 농월정으로 유명한 정자문화의 보고 함양 안의의 화림동 계곡은 팔담(八潭) 계곡의 풍치를 감상하기 위해 팔정(八亭)을 지었다. 그런가 하면 담양의 정자는 문학의 산실로서 시단을 형성하고 창작과 감상을 위한 기능을 한다.
지역과 시대와 조영자의 필요에 따라 정자는 그 규모뿐만 아니라 위치도 다른 특수성을 지닌다. 통시적인 발달사를 정리하기도 어렵고 공시적인 특징을 규정하기도 어려운 것은 그 때문이다. 개별성에 의한 문화의 한 양식인 것이다. 그래서 영남의 누정과 호남의 누정은 큰 차이가 있다.
누각은 지역성이나 시대성을 초월한 공통점이 많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누각으로 영남루, 촉석루, 죽서루 등을 꼽고, 아름답기로 소문난 북한의 부벽루가 있지만 이들은 모두 강물이 흐르는 천애의 절벽에 세웠다는 공통점이 있다.. 국가 위난시(危難時)에는 군인의 훈련장으로 사용하기도 하고, 객관에 딸려 있기에 접빈용이나 국가적 행사에 많이 사용하였다. 부연하기는 영남루와 광한루만큼은 건축적 미학에서도 빼어난 건물이기 때문에 누정에 관심이 많은 독자는 먼저 경회루와 광한루, 영남루를 찾아보기를 권한다. 사람에게 인격이 있듯이 사찰에는 사격(寺格)이 있고 건축물에는 품격(品格)이 있기 때문이다.

* 누각과 정자의 분포

우리나라에는 누정이 몇 동이나 있을까. 누각은 성(城)과 사찰, 향교에도 있고, 지방 관청에도 있기 때문에 그 수효를 헤아리기는 어렵지 않다. 그러나 정자는 산과 골짜기, 강과 해변, 심지어 사대부의 집안에도 있기 때문에 그 수효를 헤아리기 어렵다. 다행히 『동국여지승람』에 553동이 있다는 기록이 있어 그 수효를 짐작하게 한다. 성종조(1481년) 기록에 5백여 동으로 미루어 조선후기 김정호의 지리서 『대동지지』등의 기록을 추산하면 조선 말기에는 거의 천여 동이 있었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조선 전기에는 사림들이 많지 않아서 누각이 정자보다 많았다. 그러나 조선 후기에는 당쟁의 소용돌이를 피해 정치가와 학자들이 향리에 묻혀 정자를 세운 경우가 많아 정자가 누각보다 많았다. 후학 양성으로 더 강한 당파와 학맥을 형성하는 누정의 부정적인 역기능이 심해진 것도 이때부터다.
문화는 사람살이가 외형적으로 나타난 양식이기 때문에 권력과 사람의 이동을 민감하게 반영한다. 누정도 그렇게 문화의 한 양식으로 나타나기까지 사대부들의 삶을 밀접하게 반영했다. 그래서 누정의 분포는 지역에 따라 큰 차이를 보인다. 문화공보부의 『문화총람』에는 경북이 173동, 경남이 98동, 전남이 83동, 강원이 50동, 경기가 45동, 서울이 42동, 충북이 38동, 충남이 19동, 전북이 13동, 제주가 3동으로 나타나 있다. 경상남북도에 있는 누정이 총 271동으로 전국 분포 568동의 48%다. 이는 단순히 자연경관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한다. 준봉과 계곡, 그리고 그곳에서 발원한 낙동강의 지류들이 만들어낸 경상도의 선비문화는 그렇게 화려한 누각과 정자로 꽃을 피웠다.

누각과 정자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궁궐을 답사하기를 권한다. 궁궐(宮闕)은 궁(宮)과 궐(闕)의 합성어다. 궁은 임금이나 왕족이 거처하는 곳으로 궁가(宮家), 궁실(宮室)을 뜻한다. 대원군이 살던 집에 궁(宮)을 붙여 운현궁이라 하는 것도 그 이유에서다. 그러나 궐(闕)은 문의 좌우에 높게 세운 망루와 같은 시설물이다. 백성에게 알릴 일이 있을 때 여기에 방을 붙이기도 하고, 궁 내외를 살피는 역할도 했다. 예전에는 동십자각도 경복궁 담장에 연결되어 있어 궁 내외를 살피는 망루 구실을 했는데 일제가 삼청동 길을 내면서 독립된 건물처럼 따로 떼어 놓았다. 지금은 서쪽에 있던 서십자각은 없어지고 동쪽의 동십자각만 남아 궁궐의 균형을 잃었지만 궐(闕)의 용도와 역할을 살펴 볼 수 있는 좋은 자료다. 아울러 경복궁 내에 있는 경회루와 향원정은 지방이나 일반인이 사용하는 누정문화와 또 다른 일면을 볼 수 있어 이 분야에 관심이 있는 사람에게는 좋은 자료와 볼거리는 제공한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누각과 정자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면 삶의 또 다른 여유를 찾을 수 있다. 옛 선비들이 즐겨 찾던 누정을 각박한 현실의 휴식처로 재생해 낸다면 새로운 관광지로 개발할 수도 있을 것이다. 누정에 올라 시조 한 수라도 읊조리며 조상들의 멋에 취해보면 어떨까. 작은 것이지만 누각이나 정자를 통해 소박한 멋과 여유 있는 삶을 기원한다.

글 강기옥 
한국문협회원. 국제PEN한국본부 이사. 칼럼니스트. 미래일보 논설위원 .
한국교총자문위원. 화백문학편집자문위원; 월간 아트앤씨편집주간.
국사편찬위원회사료조사위원. 서초문인협회사무국장. 

강기옥  kangko52@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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