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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역사를 찾아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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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8.06  11: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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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민족은 만여 년의 역사 속에서 만고풍상을 겪으며 살아왔다.
오늘날 우리의 잃어버린 역사를 찾아서 한민족의 유구한 뿌리를 알고,
세계화 시채에 찬란한 우리 여사를 밝혀 전 인류가 평화롭게 살 수 있는 길을 모색해 본다.

✤ 8세 안부련 한웅(3240)
안부련 한웅은 강수 지역의 나라를 지나족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소전(곰씨에서 갈라진 자) 장군을 보냈다. 소전은 소호 금천씨와 함께 모두 고씨의 방계이다. 그의 아들 신농은 그곳에서 여러 가지 풀과 뿌리를 가지고 약을 만들었다. 오늘날 한방계통의 원 시조이다. 그 뒤 열산(중국 호북성 수현 북쪽)으로 옮겨 사람들이 서로 물건을 교역하게 하여 삶을 편안하게 해주었다.
신농씨는 여와가 다스리던 곳에서 지나족에게 농사짓는 법과 성 쌓는 법을 가르쳤다. 그리고 임금이 된 뒤부터 염제라고 불렸다. 미개한 지나족들을 깨우쳐서 오늘날 중국역사의 시발점이 된 것이다. 그래서 중국의 역사는 그의 세력이 점점 커지고 지나족들의 신망이 두터워지자 신시에서는 강수 지역을 걱정하게 되었다.

✤ 10세 갈고 한웅(3071)
갈고 한웅께서 염제를 문책하고, 동족의 왕위를 찬탈한 것을 나무랐다. 이에 신농 염제께서는 사죄하고 지나족의 거수로 남아 있기를 간청해서 국경조약을 맺고 제후로 삼았다.
후에 신농씨의 후손들은 동족을 배반하고 치우 천황님과 황제가 싸울 때 황제 편에 서서 동족의 가슴에 화살을 쏘았다.
중국에서 삼황이라 일컬어지는 신농께서는 미개하나 지나족을 깨우쳐서 오늘날 중국 역사의 시발점을 만들어 주셨다. 중국 역사는 후에 백제에서 우리 민족이 왜놈들에게 천황제도를 전해주고, 역사를 세워준 것처럼 복희 할아버지께서 토대를 만들어 주시고 신농께서는 나라를 일으켜 세워 주셔서 그 역사가 시작 되었다.
   
 

✤ 제14세 자오지 한웅이신 치우천황(2707)
신국의 치우천황 할아버지께서는 우리 민족의 영원한 등불이다. 우리의 얼과 혼과 정신을 일깨워 주시면서 가슴속에 영원히 살아 계신다. 치우천황 할아버지께서는 구리로 된 머리와 쇠로 된 이마(투구)를 하고 큰 안개를 일으켰으며 천둥과 번개를 다루셨다. 이는 치우천황 할아버지 시대가 철기나 청동기를 이용한 최첨단의 문명국이었음을 알 수 있다. 치우란 우레가 크게 치고 비가 많이 내려 산과 강을 크게 바꾸라는 뜻을 지녔다.
치우천황 할아버지께서는 은하세계의 칠성님들의 힘을 받으셔서 백성들과 더불어 제도를 새롭게 하셨다.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땅을 가꾸고 인물들을 발탁하셔서 백성들의 삶의 질을 높이셨다. 또한 지혜와 힘과 덕을 갖추셔서 안으로는 병사를 기르고 밖으로는 세상의 변화를 관찰하셨다.
그 동안 나라의 국력이 쇠약해져 신의 자손으로서 그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치우천황 할아버지께서는 윗대 선조들이 신의 자손으로서 그 역할을 다하지 못해 국력을 약화 시킨데 대해 안타까움을 금하지 못하고 국력을 회복하기 위해 쇠를 캐어 도개, 모주, 큰활, 화살을 만드시고 천부경에 의하여 81명의 장수를 선발하여 유망의 탁록을 점령했다. 유망은 제대로 싸워 보지도 못하고 패하여 성을 내주었다.
치우천황 할아버지께서는 배달국에 등을 돌린 아홉 개 거수국들을 점령하고 옹호산에 웅거하여 수금과 석금을 개발하여 창을 만들고 군사를 정리했다. 휴식 후 유망의 도읍지 공상으로 진격해서 소호와 싸워 크게 승리했다. 이 전쟁을 끝낸 후 소도에서 삼신(하늘님, 일지성신, 천지신명)께 예를 올리고 태평시대를 열 것을 맹세했다. 태평성대도 잠시 지나족의 우두머리인 황제 헌원이 싸움을 걸어 왔다. 황제 헌원은 중국의 오제라 일컬어진다. 결국 신농의 후손으로 우리와 같은 동족이었음에도 지나족으로 행세했기 때문에 적으로 간주했다.
치우천황님은 9군(구이족)에 명을 내리고 보병과 기병 3000을 거느리고 직접 탁록으로 나갔다. 탁록에 닿아 격문을 만들어 황제 헌원을 꾸짖었다.
“그대 헌원아! 너도 배달국의 사촌이 아니더냐! 짐의 꾸지람을 새겨 들어라! 곰자리자손으로서 신의 명을 받은 자, 칠원성군의 아들은 이 땅에서 오직 짐 하나뿐이라! 미개한 지나족과 한패가 되어 형제간의 싸움을 일으키느냐! 만세를 위하고 공동생활의 옳음을 위해 인간의 맹세를 다짐하여라! 그대 헌원아! 우리의 삼신 일체의 진리를 모독하였으니 삼신은 더러운 것을 싫어하여 짐에게 명하여 너를 토벌하도록 했노라! 그대 일찌감치 마음을 바로 하여 행동을 그칠 것이니라! 깨달음은 네 스스로 찾을 것이며 그대와 머릿속에 있으리라. 만약 명령에 순응치 않는다면 하늘과 사람이 함께 진노하여 네 목숨이 아닐 것이니라. 네 어찌 두렵지 않으리!”
마침내 탁록의 유웅 들판에서 전쟁이 시작되었다. 치우천황님은 비호 같이 헌원의 방어벽을 분쇄하고 닥치는 대로 섬멸하였다. 역습을 가할 때에는 흙바람과 안개를 일으켜 적의 5관을 마비시켰다. 적들은 그 속에서 눈 , 귀, 코 , 입 ,숨통이 막혀 죽는 줄도 모르고 치우천황군대의 창칼 받이가 되어버렸다.
헌원의 전군은 반격할 능력을 잃고 멀리 달아났다. 전쟁은 언제나 치우천황 할아버지의 일방적인 승리였다. 그러나 헌원은 고집을 꺾지 않고 탁록으로 돌아와 전쟁 준비를 지시하였다. 성곽을 수리하고 군량을 준비하였다. 헌원은 싸울 때마다 패하자 치우천황을 본따서 병기와 갑옷을 만들고, 지남차를 만들어 싸움터마다 출전했다. 그러자 치우천황할아버지는 헌원의 군으로 하여금 감히 공격해 올 뜻을 품지도 못하도록 하셨다. 이 싸움에서 우리쪽 장수 가운데 ‘치우비’가 공적을 쌓으려고 서둘다가 죽었는데 <사기>에서는 치우천황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고 잘못 기록을 했다. 역사는 이렇게 아이러니컬하다.
치우천황 할아버지는 탁록을 중심으로 연의 회대 땅을 모조리 점령했다. 10년 동안 73회나 전쟁을 치렀는데 헌원은 한번도 이기지 못했다. 치우천황 할아버지는 헌원과의 싸움을 승리로 이끈 후 수도를 산동 반도의 청구국으로 옮겼다.
“치우 천황 할아버지!
천세 천세 천천세
만세 만세 만만세
영원무궁토록 우리 민족의 등불이 되소서.”
   
 

<한서>지리지에 의하면 치우천황 할아버지의 능은 산동성 동평군 수장현 관향성 가운데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먼 옛날 중국 땅에 우리의 배달국시대인 한웅천황시대가 역사적으로 증명됨에도 불구하고 후대에 세워진 단군조선(고조선)을 신화나 설화로 불렀다. 진나라, 한나라 때 주민들은 10월이면 빠짐없이 치우천황 할아버지의 능에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능에서는 붉은 기운이 뻗어 나와 깃발 모양의 연기처럼 날리는데 이것을 치우의 깃발이라고 불렀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그 붉은 기운을 치우천황 할아버지의 영혼이라 믿었는데 그 영혼은 천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았다. 그런 현상은 헌원의 도읍지에도 나타났는데 헌원은 치우천황 할아버지의 영혼이 머무른다고 믿어 헌원도 영원히 치우천황할아버지를 따랐다고 한다. 치우천황 할아버지는 우리 민족의 불세출의 영웅이며, 중국 오랑캐들조차, 신의 자손을 알아보고 숭배하며 수호신으로 모셨다.
황제 헌원과의 싸움 이후 중국인들 사이에서 위급한 상황이 되면“36계 줄행랑을 치자.”를 외치며 도망가는 습성이 생겼다. 이것은 36궁에서 오신 치우천황 할아버지의 위력과 괴력에 두려웠음을 느껴 사시나무 떨듯이 도망가는데서 유래되었다.
치우천황 할아버지와 황제 헌원의 싸움은 우리 역사에서 분열의 시점이었다. 그 싸움은 후에 전쟁의 불씨가 되어 엄청난 파장을 일으킬 줄 어느 누가 알았겠는가! 이는 우리 민족들이 역사적으로 치욕적인 수모를 당하고, 패배를 당하는 형제간의 싸움의 시작이었다.

◆ 도깨비
치우천황 할아버지는 예전부터 전해오는 도깨비 신으로 유명하다. 도깨비는 상상의 동물로 알고 있다. 그러나 도깨비의 존재가 처음 나오게 된 것은 치우천황 할아버지의 용맹성에 의한 지나족의 두려움에서 비롯되었다. 미개하게 살아가던 지나족들은 배달국을 신국(하늘님 나라)으로 알고 있었다. 그들은 배달국이 철기와 청동기를 이용한 그 시절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갑옷과 투구를 만들어 최첨단의 문명을 이루었다는 것을 모른 채 살아갔다. 그들은 치우천황 할아버지의 구리로 된 머리와 쇠로 된 이마(투구)를 하고 큰 안개를 일으키고 천둥, 번개를 다루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 두려움에 떨며 도깨비 형상으로 본 것이다.
그 후부터 치우천황 할아버지를 ‘전쟁의 신’으로 우러러 봤다고는 하나 사실은 곰자리자손으로서 지상을 점령하신 것을 미개한 지나족이 봤을 때는 엄청난 괴력의 힘을 발휘하는 분으로 바라 봤기 때문에 그렇게 평가가 된 것이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의 현존하는 사학계를 주름잡고 있는 민족 사관들은 치우천황 할아버지 존재조차도 기억하지 못하고 있는데, 중국 쪽 문헌 곳곳에서 높이 평가 된 흔적이 남아 있다. 후손들은 치우천황할아버지를 도깨비 상으로 해서 위용과 기상을 영원히 잊지 않기 위해 건축물, 공예품, 무덤이나 심지어 제기 등에도 각종 장식 문양으로 즐겨 써왔다.
우리나라의 60년대 반공표어와 쥐약 광고에 도깨비 상이 그려져 있다. 자손들 중에 정신, 얼과 혼이 희미하게 살아있는 이가 있어 그 도깨비 모습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고 사용해왔다. 반공 표어에 그려진 도깨비 모습은 머리에 뿔이 나고, 눈은 부릅뜨고, 귀는 크고, 무섭게 생긴 표정으로 창을 들고 서 있으면서 빨강색 옷을 입고 있다.
적색의 의미는 천산의 남쪽에 있는 태백산을 가리키며, 태백산은 하늘의 남쪽에서 지상에 내려와 오늘날 무속으로 전해오는 산신의 의복이 적색인 것과 같다. 빨갱이라는 어원은 지나족들이 우리의 치우 천황님의 모습을 보고 사용한 말이다. 지금의 중국과 북한의 국기가 빨간색 별로 되어 있는 것은 우주의 별자리인 은하세계를 뜻하며, 배달국을 흉내 내어 만들어졌다. 그래서 오늘날 남북이 갈라져서 북한군을 빨갱이라고 한 것처럼 보이나, 본래는 지나족들이 한웅천황님의 갑옷과 투구를 보고 무서워 도깨비로 표현하고 적색을 사용한 것이다.
쥐약 광고도 반공표어에서 나와 있는 도깨비의 모양과 비슷한데 치우천황님께서 지상의 천부적인 요새로 이룬 땅, 비옥하고 기름진 땅을 쥐새끼처럼 점점 파고들어 우리 땅을 훔쳐 먹는 것을 발로 밟은 모습이다. 여기서는 중국인들을 쥐새끼로 표현했다. 그러나 우리 자손들은 그것도 모르고 선조님들이 물려준 그 땅을 그림자도 밟아보지 못하고 있다.
   
 

 

✤ 배달국 시대의 종교, 문화
배달민족은 삼신일체사상과 천부사상으로 살아왔다. 종교를 초월한 하늘의 민족, 하늘의 자손이기 때문이다. 이는 후에 모든 종교의 근본이 되었다.
삼신은 하늘과 땅, 인물이 사는 세상을 다스리는 신을 말한다. 하늘세계의 만물을 다스리는 신을 대일신(하늘님)이라 하고, 은하세계의 땅을 다스리는 일을 일지성신(칠성님)이라 하고, 태양계의 인물들을 다스리는 신을 천지신명(철인)이라 한다. 삼신일체는 삼일 신고를 말한다.
대우주, 중우주, 소우주를 관장하시는 분을 삼신일체라 한다. 천, 지, 인 삼신이 하나라는 우주관으로 천부사상을 가졌던 것이다. 삼성께서 종교, 정치, 문화의 최고 통수권자가 되는 것이다. 삼성께서는 소도를 쌓고 하늘에 제천의식을 치렀다. 소도를 신단이라고 불렀다.
해마다 5월과 10월, 두 차례에 걸쳐 소도에 나아가 천신께 제천의식을 주관할 때 주위에는 금줄을 그어 부정을 살만한 일을 삼가토록 했다. 지금도 아이를 놓으면 금줄을 쳐서 부정 타는 일을 막는데 유래는 우리 선조들의 제사의례에서 나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거수국들이 모이는 태백산은 천부사상으로 천부적인, 천연적인 요새의 땅으로 비옥하고 기름진 땅이다. 그러나 단군 조선 개국의 성지는 잘못 알려져 평양으로 알고 있었다. 요즘에는 우리 민족의 성지가 현재의 한반도가 아닌 하얼빈의 완달산 또는 백두산으로 바뀌고 있으나 정확히 태백산 신단수이다. 예전에는 그렇게 비옥했던 땅이 지금은 사막화 되어가고 있다. 현재 그 땅에서 살고 있는 자들이 대지인 어머니의 뜻을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한웅천황님의 정신혼과 얼이 담긴 지상낙원을 파헤치고 환경오염을 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사스나 조류독감으로 인한 전염병으로 피해를 보고 있다. 하늘이 내린 벌을 그대로 받고 있는 것이다. 하루 빨리 정신 차리지 않으면 사막화되어 황무지가 될 것이다. 그 동안 중국사관들의 흉내를 낸 반도 사관들은 무지하고 나약한 자신들을 숨기며 자리 지키기에 바빠 우리의 소중한 역사를 잃어버리고 있다.
신시가 자리 잡히자 한웅천황은 고시례로 하여금 먹여 살리는 임무를 담당시키고 이를 주곡이라 했다. 이 고시례는 지금도 농촌에 가면 들밥을 먹기 전에 ‘고시례’하며 숟가락에 밥을 떠서 던지는 습관이 있다. 이는 한웅천황 시대의 고시례에 대한 감사의 예의다. 이 삼신할미는 한웅천황님의 역할을 말한다.
이 시대에 토주대감(터줏대감) 업주가리라는 말이 사용되었다. 토주 대감을 집터를 지키는 신으로 모셔졌고, 또 성조대군은 집의 발원을 비는 신이었다. 업주가리는 삼신께 곡식을 주셔서 감사함을 전하고 다음해에 농사지을 제일 알찬 곡식의 씨앗을 담는 그릇을 말한다. 봄에 씨앗을 부려야 가을걷이를 하는 이치이다. 한웅천황은 천부경을 기록한 신지혁덕에게 문자를 만들도록 명했다는 기록이 보인다. 신지씨는 대대로 황명을 받아 전하고, 출납의 의무를 맡은 천황님의 측근이었다. 그리고 돌이나 바위에 새겨 남기기도 했다.
   
 

어느 날 한웅할아버지께서 무리들을 거느리고 사냥을 나갔다가 사슴 한 마리를 보고 활을 날려 쏘려 했으나 사라졌다. 사슴을 찾다가 모래에 사슴 발자국이 찍힌 것을 보고 신지혁덕에게 문자를 만들게 했다. 신지씨는 그 명을 받아 만물의 모양을 관찰하여 문자 만드는 법을 깨달았다. 이 것을 태고 문자의 시작이며 지금의 중국 곳곳의 바위에 새겨져 있다고 한다.
한반도에서는 남해군 이동면 양아리의 계곡 및 경박호의 선춘령과 오소리 사이의 바깥쪽 암석에서 이상한 문자가 새겨져 있는 것이 발견 됐다. 이 시대에 문자를 만들었다는 사실을 세계 최초로 문화 민족이었음을 증명해주고 있다.
선사시대의 음악은 무리들이 둘러서서 줄을 지어 합창으로 삼신을 기쁘게 하고 민족의 번성과 민심이 윤택해질 것을 빌었다. 이것을 공수, 또는 두열이라 했다. 이것을 삼국사기는 도솔이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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