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또 한명의 국제재판관이 탄생했다. 그 주인공은 캄보디아 특별재판소(ECC) 국제재판관에 임명된 백강진 서울고등법원 판사(46)다. 지난달 18일 백 판사를 ECC 전심재판부 국제재판부 국제재판관으로 임명됐다고 외교부가 밝혔다.

국제재판관은 유엔 회원국의 추천을 받아 유엔 사무총장이 지명하고 캄보디아 정부가 임형한다. 백 판사는 유엔 본부 관계자와 화상 면접을 한 후 지난 4월 말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으로부터 재판관 지명을 받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특히 백강진 판사는 “현직 법관이 지원하는 경우가 거의 없는데 그런 점이 좋게 보였던 것 같다”며 “무엇보다 ECC 재판이 늦어지고 있기 때문에 규칙 등을 개정해서라도 불필요한 절차들을 해결해 바른 결론이 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하면서 의지를 다지고 있다.

또한 그는 “국제재판소는 인류의 마지막 보루라고 할 수 있다”며 “봉사라고 하면 과한 듯 하고, 한국 사법부의 국제적 기여에 보탬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ECC는 1975년 4월부터 1979년 1월까지 크메르루주 정권 시기에 이른바 ‘킬링필드’로 불리는 집단학살 등 중대 범죄를 처벌하기 위해 유엔(UN)과 캄보디아 간 양자협정에 따라 2005년 설립된 재판소로 아시아에 소재한 유일한 유엔특별재판소다.

이 특별재판소는 캄보디아 국적의 재판관 및 검사 3명과 유엔 파견 법관, 검사 2명이 함께 기소와 심리를 수행한다.

캄보디아의 급진 좌익세력이었던 크메르루주는 마르크시즘을 내세운 폴포트가 이끈 무장단체였다. 1975년 쿠데타를 일으켜 친미 성향의 론 놀 정부를 무너뜨리고 정권을 잡았다. 당초 표방했던 개력은 실패했으며 이 과정에서 1979년까지 반대파와 지식인들을 무차별 숙청했다.

당시 학살되거나 강제 이주 도중 굶어죽은 이들은 170만명에 달한다. 국민 전체의 4분의 1이 희생됐다. 하지만 크메르루주 전범들이 법의 심판을 받기까지는 긴 세월이 걸렸다.

크메르루주가 베트남군에 축출된 건 1979년이었다. 그러나 이들이 태국 접경지대 정글에 도피해 20년 가까이 게릴라전을 벌이는 바람에 정작 재판정에는 세우지 못했던 것이다. 1998년 크메르루주 최고 지도자 폴포트가 체포된 직후 심장마비로 사망하면서 내전은 종식시켰지만 캄보디아 정부는 이들의 처벌에 여전히 소극적이었다. 과거 크메르루주에 몸담았던 훈센 총리는 국가 분열을 이유로 전범 처벌을 반대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무려 200만 명이 희생된 만행 당사자들은 단죄해야 하는 캄보디아 국제재판소 활동은 그다지 진전이 없었다. 그동안 담당 재판관들의 잇따른 사퇴와 직원 파업 등으로 파행 운영을 거듭하며 많은 시간을 허비했던 것이다. 게다가 훈센 총리는 기소 대상자를 축소하도록 압력을 행사, 부당하게 간섭하면서 재판에 적잖은 차질을 빚기도 했다.

첫 재판의 중심인물은 추올슬렝의 악명 높았던 S-21 보안 사무소의 전 지도자였던 두크 였다. 그는 2010년 전쟁 범죄 및 인류에 대한 범죄로 기소됐다. 두 번 째 재판에는 살아남은 두 명의 크메르루즈 고위 지도자인 누온 찌어와 키우 삼판이 포함됐다. 이들은 2014년 인류에 대한 범죄로 기소됐으며 현재 추가 혐의가 거론되고 있다.

캄보디아 인민당인 훈센 정권 고위직에 크메르루주 출신 많아

훈센 총리 기소 대상자 축소 등 압력 행사, 재판 차질 빚기도

훈센총리는 유엔이 임명한 검사들이 추가로 6명의 용의자들을 재판에 올리려고 했으나 이를 막았다. 그는 추가 재판이 분쟁의 불씨를 재점화할 수 있다고 주장하며 2010년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에게 더 이상의 재판은 없을 것이라고 반발하기도 했다.

훈센 총리는 “캄보디아 측 법정 담당자들은 정부의 선을 확실하게 지키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은 추가 용의자들이 가각 수천 명을 학살한 혐의를 받고 불구하고 그들이 크메르루주가 행한 범죄에 대한 주요 책임자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주장한 것이다.

유엔이 지명한 외국인 재판관 2명은 정부의 비협조적인 태도와 현지인 출신 재판관과의 갈등 끝에 중도 사임하기도 했다. 캄보디아 정부 대변인은 유엔 담당자들이 캄보디아 정부의 행보에 반대한다면 짐을 싸도 좋다고 말하기도 했다. 2015년 3월 훈센 총리는 유엔이 임명한 판사가 세 명의 추가 용의자를 기소하자 자신의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랐다고 경고하며 체포영장 집행을 거부했다.

이처럼 캄보디아 정부가 크메르루주 전범 재판을 방해하는 것은 정권유지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훈센의 캄보디아 인민당이 이끄는 현 정권 고위직에는 크메르루주 구성원 출신이 많다. 훈센 총리도 1979년 베트남으로 넘어가 폴포트를 몰아내려는 저항 세력을 돕기 전까지 크메르루주에서 활동했다.

캄보디아 정부가 크메르루주 전범 처벌을 돕는다는 것은 곧 자신들의 파멸을 얘기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 유엔과 국제사회도 지속적인 캄보디아의 방해에 적극적인 대처를 하지 않았다. 유엔 담당자들은 ‘심각한 우려’를 담은 성명을 발표했으나 정치적 간섭에 대한 혐의는 조사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특히 캄보디아 정부의 체포 영장 집행 거부에 시민단체는 반발했다. ECC재판 감시 단체인 열린사회정의위원회(OSJI)는 캄보디아 정부의 방해보다 유엔이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실패한 것이 ‘훨씬 더 끔찍하다’고 주장했다.

독일 대사는 “현재 진행중인 법원 절차에 대한 그 어떤 형태의 정치적 간섭도 허용될 수 없으며, 법정에 대한 지원을 철수하는 것 또한 잘못된 일이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는 사이에 검찰 측이 기소한 크메르루즈의 핵심 지도부 가운데 이엥 사리 전 외교장관은 지난 2012년 초 사망하고, 치매를 앓는 렝 티리트 당시 사회부 장관 역시 재판에 부적합하다는 이유로 배제됐다.

재판 지연을 우려하는 여론에 전범들의 혐의를 분리 심리하는 대책을 내놨지만, 가해자들에 대한 조속한 단죄를 바라는 희생자 가족 등 피해 당사자와 국제사회의 기대에 크게 못 미쳤다.

천문학적인 경비에도 불구하고 고작 전범 3명만 단죄

크메르루주 전범재판소는 2006년부터 2013년 말까지 무려 2억 달러(2천69억원)를 웃도는 운영비를 집행해 국제전범 재판 사상 새로운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그러나 천문학적인 경비가 집행됐음에도 법정에는 채 10명도 서지 않았고 재판 결과에 대해서도 여전히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유엔과 캄보디아 정부가 2006년 공동 설립한 전범재판소는 학살이 일어난 지 32년이 흐른 지난 2011년부터 전범 4명에 대한 재판을 시작했다. 그리고 2013년 10월 ‘킬링필드’ 학살의 핵심인물이었던 누온 체아 전 공산당 부서기장과 키우 삼판 전 국가주석에게 종신형을 구형했다.

2006년 유엔과 캄보디아 정부가 공동 설림한 크메르루주 전범재판소에서는 종신형이 최고형이다. 천문학적인 경비가 집행됐음에도 학살을 주도한 교도소 소장 1명을 포함해 지금까지 고작 3명만 단죄함으로써 크메르루주 전범재판소는 논란의 도마에 오르기도 했다.

체아 레앙 검사는 “이들에게 적합한 처벌은 종신형뿐”이라며 “끔찍한 정권 하에서 살아남은 희생자들을 위해서, 캄보디아의 국민과 국제사회를 대신해 재판부에 정의를 요구한다”고 말한 바 있다.

또한 전범재판소 윌리엄 스미스 검사는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며칠에서 몇 달씩 음식도, 이동수단도 없이 걸어서 무더운 시골 지방까지 가게 한 것은 인류에 대한 범죄”라며 “이들은 누가 죽고 살지를 결정했다”고 말했다. 이 재판에는 연인원 10만 명 이상이 참석하는 등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한편 백강진 판사 이외에도 국제형사사법기구에서 활동해 온 우리나라 법조계 인물로는 송상현 전 국제형사재판소장, 권오곤 구유고슬라비아 특별형사재판소 재판관, 정창호 국제형사재판소, 박선기 전범재판소 잔여업무처리기구 재판관 등이 있다.

마연옥 기자  k-toda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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