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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선(死線)을 넘어서(Out of India)인도 페스트 발생지로부터의 탈출기
글/임윤식  |  k-toda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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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7.09  15:3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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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우리나라는 메르스 바이러스 때문에 온 나라가 공포에 떨고 있다. 중동발 독감의 일종이라는 데 문제는 아직 결정적인 치료제가 개발되지않았다는 점이다. 사람들 모이는 데 가기가 무섭고 기침이라도 하면 혹시 메르스가 아닐까 해서 주위가 초긴장상태에 빠진다. 의학이 발달됐다고 하는 데도 인간이 이렇게도 나약한 존재였단 말인가? 더구나 사람의 병을 치료하는 병원에서 주로 전염이 됐다고 하니 아연실색할 뿐이다. 이럴 땐 감기도 걸려서는 안되고 어떤 이유에서건 몸에 열이 나서도 안된다. 답답하기만 하다. 언제쯤이나 이런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병원 갈 일이 없도록 그저 기도할 뿐이다.

갑자기 20여 년 전 페스트 발생으로 100명이 넘는 사망자를 낸 인도로 출장갔을 때의 기억이 생생하게 되살아난다.

필자는 당시 업무상 인도에 출장갈 기회가 많았다. 90년대 초반 인도에 처음 출장갔을 때의 일이다.

3일 후면 출발하는데 갑자기 우리나라 신문에 1면 톱으로 인도에 페스트가 발생하여 100명 이상이 죽었다는 기사가 실렸다. 페스트는 흑사병이라고 불리워지는 무서운 전염병이다. 우리나라에는 아직 한번도 발생한 적이 없다고 한다.

페스트가 얼마나 무서운 병인가는 유럽의 페스트 발생 역사를 보면 알 수 있다. 1347년부터 4년간 발병된 페스트로 유럽의 인구 7천 500만 중에서 3분의 1이 죽었다고 하며, 이후 8년에 1번 꼴로 발생하여 유럽 전체 인구의 4분의 3을 휩쓸었다고 한다. 역사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유럽에 페스트를 일으킨 페스트균은 아시아의 중국에서 시작되어, 비단길을 통하여 인도, 페르시아, 시리아, 이집트로 확산되었고 1347년에 유럽에 도달하였다고 한다. 1347년 10월에 페스트에 감염된 사람들이 시칠리아 섬에 도착하면서 유럽에 페스트가 시작되었으며, 이후 튀니지, 프랑스를 거쳐서 전 유럽을 휩쓸게 되었다. 그러나 페스트가 유럽을 강타한 것은 14세기가 처음이 아니다. 6세기경에 동로마의 유스티니아누스 황제 때에도 발생하여 전 유럽을 휩쓸었으며, 그 후에도 두 세기에 걸쳐서 국지적으로 발생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이토록 무서운 병이니 회사에서도 집에서도 위험하니 당연히 가지 말라고 만류하는데 필자는 인도를 꼭 가보고싶었다. 인도는 한번도 가본 적이 없어서 호기심을 억누르기가 어려웠다. 필자는 모험심이 약간 강한 편이다. 암벽등반도 그래서 시작했고 60대 후반의 나이에 아직도 손을 놓지않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고심,고심 끝에 결국 가기로 마음 먹었다. 어쩌면 죽음을 무릅쓴 결단이었는지도 모른다. 출장가는데 죽음을 각오하다니 지금 생각하면 무모하기 짝이 없는 행위였다. 당시 인도인구가 8억인데 그 중 100명 죽을 정도라면 그건 교통사고 확률 정도가 아닌가. 만약 내가 잘못되어 페스트에 걸린다면 그건 운명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운명이란 길거리에서 자전거에 치어도 죽을 수 있는 것이니까.

우선 병원, 보건소 등에 문의하니 예방약은 없다고 한다. 다만 항생제로 테트라싸이클린인가, 기억은 정확하지 않지만 그 약이 그나마 약간 예방 및 치료가 된다고 한다. 인도 현지의 아는 사람에게 전화하니 테트라싸이클린이 품귀이니 그 약을 많이 사오라고 한다. 그래서 테트라싸이클린을 사가지고 과감히 출발했다.

공항에서 내려 봄베이(지금은 뭄바이로 이름이 바뀌었음)로 가는데 길 옆을 보니 페스트가 만연할 만 하다. 마치 50-60년대 우리나라 청계천 모습과 비슷한 것 같다. 명색이 공항로인데 길 옆에 다닥 다닥 붙어 있는 판자집들이 마치 빈민굴같다. 페스트는 쥐가 전염시키는 병이다. 쥐는 지저분한 곳에 사는 동물이니 그럴 수 밖에 없다. 그 당시 만연된 페스트는 공기전염되는 것이라고 해서 더욱 무서웠다.

   
 
소를 숭배하는 것으로 잘 알려진 인도인들은 대부분의 나라에서 싫어하는 '쥐'도 숭배 대상으로 삼는다. 힌두교 신화에 따르면 쥐는 인도인들이 숭배하는 코끼리 머리모양을 한 가네시신(神)의 절친한 친구로서, 가네시신은 행차를 할 때마다 쥐의 인도를 받기 때문에 쥐를 숭배하는 것은 바로 가네시신을 잘 받드는 일이 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인도에서는 쥐들이 해마다 인도국민들의 석달치 이상 식량을 축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쥐를 잡으려고 나서지 않는다. 또 쥐가 부엌에 들어와 음식을 축내도 쥐를 죽이면 천벌을 받는다고 생각한다고 한다. 인도정부는 페스트 확산을 막기 위해 대대적인 쥐잡기 운동을 독려하고 있지만 국민들의 비협조로 별다른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단다.

인도에는 쥐를 숭배하는 사원도 있다. Karni Mata사원이 그곳이다. 이 사원에서 왜 쥐를 숭배하고, 이 쥐들에게 먹을 것을 제공하는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Karni Mata사원의 전설을 알 필요가 있다. Karni Mata는 죽음의 신인 Yoma의 손으로부터 그녀의 신봉자의 아이를 부활시켰다고 한다. 그리고 그녀는 그를 따르는 모든 사람들에게 알렸다. 그녀는 Yoma로 부터 사람을 살리는 방법을 알아냈다고 전했지만 Yoma에 의해 죽음의 세계로 떨어질지 모른다고 전했다. 그녀는 이를 막기 위해 잠시동안 그들을 쥐의 모습으로 환생시킨다고 이야기했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단순히 하나의 전설에 불과하다. 역시 그 전설 만으로 수만 마리가 넘는 쥐와 조화를 이루며 살고 있는 이 사원을 설명하기에는 무리가 있을 것이다. 쥐는 보통 사람을 두려워 하는 동물이다. 사람을 보면 도망을 가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이곳의 쥐는 신도들의 주위를 함께 걷거나 심지어는 신도들의 팔과 머리에 올라타기도 한다고 한다. 그리고 이런 행위는 신의 축복으로 믿고 있다고 한다.

이곳의 쥐는 Kaba라고 불리워지는데, 신도들은 Kaba에게 우유와 곡물을 매일 제공하고 있으며 Kaba가 마시던 물은 성스러운 물이라 하여 이곳의 신도들은 그 물을 함께 마시고 있다고 한다. 쥐를 이처럼 숭배하니 페스트가 발생하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당시 페스트가 발생한 지역은 뭄바이로부터 100km이상 떨어진 지방도시였다. 필자가 출장간 뭄바이시에는 아직 페스트환자가 발생되지 않은 상태였다. 그래도 인도에서 제일 좋은 호텔 중 하나라고 하는 오성급 타지마할호텔에 여장을 풀고 그때부터 칩거에 들어갔다. 호텔주변에도 아침에 일어나 보면 길거리에 누워 자는 거지들이 가득하다. 길가에는 팬티 만 걸친 여자가 벌거벗은 애기를 안고 동냥을 한다. 인도에 가 본 사람들은 잘 알 것이다. 인도란 그런 곳이다. 타다남은 시체가 떠다니는 갠지스강에서 목욕을 해도 아무렇지도 않은 나라가 인도이다. 어쨋든 낮에 업무차 꼭 가봐야 할 거래처나 관공서 방문하는 것 제외하고는 호텔에만 머물렀다.

   
 
그럭 저럭 어렵고 아슬아슬한 출장일정 5일을 보내고 귀국길에 올랐다.

그런데 공항에 가 보니 외국으로 나가는 대부분의 비행기가 취소됐다. 거의 공항 봉쇄 상태였다. 마치 전쟁터를 방불할 정도였다. 페스트가 다른 나라로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 일차적으로 공항부터 통제하기 시작한 것이다. 페스트가 얼마나 무서운 병인지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어찌 어찌 하여 새벽 2시경에야 가까스로 무조건 필리핀으로 가는 비행기를 타게 됐다.

필리핀 비행기는 생각보다 삼엄하지 않았다. 필리핀공항에서 건강체크 몇가지 하더니 통과시켰다. 그래서 필리핀에서 하루저녁 자고 다음날 귀국하게 됐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나라 공항이었다. 인도에서 직접 오거나 경유한 모든 입국자들은 예외없이 격리조치를 취했다. 일단 건강체크를 하고 집으로 보내주긴 하는데 집에서 가족들과 격리하여 1주일을 버텨야 된다고 한다. 페스트 잠복기간이 1주일이기 때문이란다. 딸아이는 외갓집으로 보냈다. 아내도 외갓집에 가 있으라고 하는데 막무가네다. 페스트환자일지도 모르는 필자 만 혼자 집에 남겨두고 피신할 수가 없기 때문이리라. 죽더라도 같이 죽겠단다. 역시 어려울 때는 부부밖에 없는 모양이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아내와 함께 1주일을 보냈다. 병원 입원도 하지 않고 치료도 받지않은 채로 그냥 집에만 있었다. 생각하면 정말 말이 안되는 방역조치였다. 회사는 당연히 1주일간 휴가였다.

그 다음 날 부터 공항 검역소, 서초구 보건소, 서울시 방역과에서 아무 이상 없느냐고 매일 집으로 전화가 왔다. 그냥 이상유무 만 체크하는 것이었다. 그게 전염병 예방의 전부였다.

필자가 귀국한 후 이틀 후부터는 인도에서 오는 여행객은 모두 공항에서 집으로 보내지 않고 바로 병원으로 직접 격리시켰다고 한다. 사태가 좀 더 심각해졌던 것 같다. 당연히 그래야 되는 것이었다. 만약 필자가 실제로 페스트에 감염됐다면 어떻게 됐을 것인가. 그것도 공기전염을 하는 페스트였을 경우 말이다.

어쨋든 필자는 일주일을 버틴 후 이상없이 격리해금됐다. 살아서 지금까지 이렇게 숨쉬고 있다. 그렇게 사선(死線)을 넘어왔다. 필자와 함께 생사를 함께 했던 전우(?)인 아내도 여전하다. 작금의 메르스 사태를 보니 그때와 별반 다를 게 없다는 생각이 자꾸 든다. 만일 필자가 그 당시 진짜 페스트 환자였다면 어떻게 됐을 것인가? 그것도 가장 무서운 공기전염이었는데 말이다. 페스트 전파 1호 환자로서 온 나라를 발칵 뒤집어놨을 것이 아닌가? 방역당국의 방역태도 역시 그때나 지금이나 달라진게 무엇이란 말인가?

글/임윤식  k-toda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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