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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일락 향기에 묻어온 그리움
글/ 정연희  |  k-toda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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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6.18  14:3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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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이루고자 노력하는 모습에서 삶의 희망을 배웠고, 선망의 눈빛에서는 미안함을 느꼈다.

알고 있는 만큼, 딱 그만큼만 배우고 느끼는 한계를 깨닫고 끊임없이 공감하기 위해 노력했다.

     
 
   
 
계절의 변화에 따라 해마다 피어나는 꽃들이 온 대지를 덮을 때면 라일락 향기를 품은 내 마음은 늘 꽃향기보다 더 진한 그리움을 품는다. 마음을 다해 함께 아파하고, 그것을 극복하고자 했던 제자 숙이와 낡은 야간학교 교정의 울타리였던 라일락은 해마다 그리움이라는 이름으로 찾아온다.

대학교 2학년 때 선배의 권유로 야간학교 교사를 하게 되었다. 설렘과 두려운 마음으로 처음 학교를 찾아갔을 때 낡고 작은 교정 가에 피어있던 라일락꽃이 제일 먼저 반겨주었다.

교실에서 아이들과 처음 만나 인사를 하는데 한 학생이 질문을 했다.

“대학생이면 재미있게 놀 수 있을 텐데, 왜 힘들게 이곳에 왔어요?”

그 질문에 나는 수줍게 답을 했다.

“지금 나는 나를 위해서 이 자리에 와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난 후에는 여러분들을 위해서, 그리고 저를 위해서 이 자리에 서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거창하게 봉사를 한다는 생각은 없었다. 처음으로 나 아닌 타인을 위해서 무엇인가를 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학생과 교사를 오가며 생활하는 것이 보람도 있었고 때로는 힘이 들기도 했다. 특히 학교 시험과 야학의 시험 날짜가 겹쳤을 때는 중요한 일이 뭔지 모르는 건 아닌지 회의가 들기도 했다. 친구들은 도서관에서 열심히 공부를 할 때 나는 시험지를 만들어서 야학에 가야 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시간이 참으로 행복했다.

아이들과 정도 쌓고 열심히 한마음으로 수업도 하면서 즐겁게 보내던 중 한 여학생이 상담을 신청했다. 야학에는 나와 또래인 학생도 있어서 늘 조심스러웠는데 숙이는 중학생 나이여서 편안하게 상담을 했다.

숙이는 어려서 부모님을 잃고 가족들과 헤어져서 고아원에서 지내다가 지금의 양부모를 만나 불편함 없이 잘 지내고 있다고 했다. 양어머니가 귀가 안 들리셔서 어려서부터 늘 곁에서 귀 역할을 했다고 했다. 그런데 나이가 들고 보니 자기 인생을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어떻게 그 집에서 나오면 좋겠냐고 물었다. 그 때까지 큰 어려움 없이 살아온 내가 누군가의 삶에 깊이 개입해서 문제를 해결해 줄 능력은 없었기에 누구나 할 수 있는 답을 얘기했다.

“그래도 지금까지 키워주신 분들이니까 상의를 드려서 좋은 방법을 찾아보는 게 좋을 것 같아.”

숙이는 그 후로 별말이 없었고, 잘 지내고 있는 줄 알았는데 몇 달 후 갑자기 전화가 왔다. 숙이 언니인데 자기네 집으로 찾아와 줄 수 있겠냐는 정중한 부탁을 했다. 무거운 마음으로 숙이네 집을 찾아갔다.

양어머니가 화가 잔뜩 나서 들어가자마자 나에게 하소연을 했다. 숙이의 담임선생님이 양녀인 숙이를 종처럼 부려먹었다며 화를 냈다는 것이다. 사실 나도 양녀라면 정식 학교를 보내 주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었기에 담임선생님의 말이 잘못됐다고 생각지는 않았다. 내 마음을 알았는지 양어머니 대신 언니가 나를 부른 이유를 설명했다.

“숙이가 집을 나간 후 일기장을 봤습니다. 그 일기장에 선생님과 상담한 내용이 있더군요. 그래서 선생님은 우리 입장을 잘 이해해 줄 거라 생각했고, 숙이가 원하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 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어렵게 여기까지 오시라고 했습니다.”

그 언니라는 분이 계속 그동안의 삶에 대해서 얘기를 했다. 그 집에서는 숙이를 자식으로 생각하지는 않았고, 어머니의 귀 역할을 하게 한 것은 사실이라고 했다. 아이가 영리하고 똑똑해서 자기 어머니가 무척이나 좋아했고, 고등학교에 보내 은행에 취직시켜서 독립하게 해 줄 계획이었는데 갑자기 숙이가 집을 나가겠다고 해서 자기들도 당황스럽고 배신당한 기분이라고 했다. 그 말을 들으면서 ‘감수성이 예민한 시기에 얼마나 힘이 들었을까’ 생각하니 그 아이의 말을 더 많이 들어주지 못하고 그 아픔을 더 깊이 헤아려주지 못해서 너무나 미안했다.

그 언니가 자기들의 입장에서만 얘기하는 것에 화가 났다.

“아무리 어머님이 귀가 안 들리셔도 아이를 맡았으면 학교는 보내는 게 도리 아닌가요?”

“어머니가 힘들어 하셔서 어쩔 수가 없었어요.”

사람마다 각자의 사정이 있지만 그래도 어른들이 한 아이의 인생을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 같아서 숙이를 바로 볼 수가 없었다. 나도 세상을 잘 모르지만 숙이 은혜도 모르는 사람으로 만들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고개를 숙이고 죄인처럼 앉아있는 숙이에게 말했다.

“숙아, 지금까지 키워주신 은혜를 모르면 사람이 아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먼저 감사 말 씀을 드리고 너의 마음을 얘기하는 게 좋을 것 같다.”

숙이가 울면서 말을 했다.

“그동안 키워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제가 말도 안하고 집을 나간 것도 죄송 합니 다. 하지만 저도 이제 공부도 하고 싶고 다른 친구들처럼 공장에 가서 돈 벌어서 제가 살 아가고 싶습니다. 다른 거 다 필요 없습니다. 이제 제가 돈 벌어서 혼자 힘으로 살고 싶 습니다.”

말을 마친 숙이가 슬픔을 못 이기고 소리 내어 울자 그 양어머니도 숙이를 끌어안고 울었다. 그 방에서 누구도, 어떤 말도, 쉽게 할 수가 없었다. 나는 숙이를 데리고 나와야 할지 두고 나와야 할지 순간 판단을 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숙이가 함께 살았던 분들과 마음을 터놓고 서로 오해를 풀고 인간의 도리를 다 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혼자 집으로 돌아왔다.

며칠 후 학교에 도착하자, 숙이가 기다렸다면서 달려왔다. 어머니와 언니, 식구들과 얘기를 잘 했다며 혼자 방을 구해 나왔다고 했다. 가끔씩 들르면서 예전처럼 잘 지내기로 했다며 환하게 웃었다.

“선생님 덕분에 은혜를 아는 사람이 되었어요. 감사합니다.”

내 손을 꼭 잡고 한없이 흔드는 숙이의 모습을 보면서, 처음으로 타인의 아픔 때문에 잠 못 든 시간들을 보상받는 것 같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아이들의 삶에 깊숙이 개입하게 되었고 그 아이들을 통해 세상사는 법을 배웠다. 어린 나이에 낮에는 공장에 다니면서 자신들의 꿈을 이루고자 노력하던 아이들의 모습에서 삶의 희망을 배웠고, 나와 같은 나이의 학생이 보내는 선망의 눈빛에서는 미안함을 느꼈다. 내가 알고 있는 만큼, 딱 그만큼만 배우고 느끼는 것 같은 한계를 깨닫고 끊임없이 아이들과 공감하기 위해 노력했다.

아이들을 가르치기 위해 간 곳에서 난 지식은 전달했지만 삶의 지혜는 아이들에게서 배웠다. 아이들과 2년 동안 함께 한 시간들을 마무리하는 졸업식을 앞두고 나는 처음의 약속을 잘 지켰는지 스스로에게 물어 보고 답을 얻었다.

‘그래. 넌 약속을 지켰어. 처음엔 너를 위해 그 자리에 섰지만, 지금은 아이들이 너에게 감사하기에 넌 약속을 지킨 거야.’

세월이 흘렀지만 지금도 라일락 향기를 맡으면서 처음 보았던 그 교정을 기억한다. 만약 그때 친구들의 말처럼 영어공부를 더 열심히 했더라면 내 인생이 달라졌을까? 한 때는 후회한 적이 있었다. 매일 아이들에게 달려갔던 그 시간 때문에 자기 개발을 하지 못해서 대학원 진학을 포기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몇 년 후 중국으로 유학을 떠난다며 집으로 찾아왔던 숙이와의 만남에서 난 후회를 완전히 지울 수 있었다.

내 인생에서 참으로 화려했던 시절이었고, 아름다운 순간이었음을 난 지금도 믿고 있다. 라일락 향기가 영원한 것처럼, 내 기억 속 야학의 교정과 아이들은 모두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어디서 행복한 삶을 살고 있을까? 보고 싶다. 그 때 그 시절의 모든 ‘인연’들이.

 

글/ 정연희  k-toda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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